국회의원을 포함해 중앙정치인의 활동은 주요 언론에서 늘 접하게 되지만, 지방정치인의 활동은 설사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일이어도 좀처럼 유력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조명되기 어렵다.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시민의 대표가 권한을 남용했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 정치인을 공천한 정당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공천제와 책임정치의 기준에서 보면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현장! 지방정치"를 연재하며
지방자치를 다시 시작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지역은 ‘지방자치는 정치적이면 안 되고 순수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는 오랜 통념 속에 갇혀 있다. 지역도 역시 하나의 공동체이고, 지역공동체의 다원적 이익과 가치를 다루는 지방자치도 정치의 한 부분이다. 이제는 지방자치를 ‘지방 정치’로 인식하고 그 오랜 통념을 넘어서야 풀뿌리민주주의도 더 민주적일 수 있다. 8년 동안 현장에서 지방의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 정치의 공간인 지역에서도 ‘정당’이 왜 중요하고, 강하고 유능한 대중정당을 만들기 위해 지방의원이나 당 지역 활동가들의 정치 활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
현장! 지방 정치 ① 지역에서 왕따가 되어 버린 ‘정당’
글쓴이 ㅣ 이동영
지방자치에서 사라진 ‘정당’
대개의 시민들은 공공요금은 중앙정부가 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버스・지하철・택시 등 교통요금부터 수도요금・쓰레기봉투까지 시민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은 지방정부가 정한다. 요금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실례로 수도요금은 서울시가 톤당 568원, 성남시는 452원, 과천시는 906원, 가평군은 무려 1,257원이다(환경부 『상수도통계』 2017).
미술・체육・영어 등 아이들의 특별활동 수업료에 대한 연간 상한액을 얼마로 할 것인지,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놀이터를 보수하거나 단지 내 가로등 공동 전기요금 보조금을 어느 정도 지원할 것인지를 정하는 조례와 예산을 다루는 곳도 지방의회다. 그만큼 지방 정치는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을 포함한 중앙 정치인의 활동은 주요 언론에서 늘 접하게 되지만, 지방 정치인의 활동은 설사 정치적으로 의미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일이어도 좀처럼 유력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조명되기 어렵다. 단 지방의원이 추문에 휩싸이거나 사건 사고를 일으켰을 때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시끄러웠던 ‘○○군 의원 해외연수 가이드 폭행 사건’, ‘○○구 의원 동장 폭행 사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여론의 지탄을 받는 지방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줄곧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지역 위원장과 의원으로 활동했던 지방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만 이와 같은 지방 정치 관련 사안에 대한 언론기사를 접할 때마다 한 가지 납득되지 않는 점이 있다. 국회의원 관련 보도에는 대부분 해당 의원이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거의 예외 없이 표기되는 데 반해, 유독 지방의원들에 대한 기사는 소속 정당을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사건 사고에 대한 정당의 입장이나 대책 따위는 당연히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시민의 대표가 권한을 남용했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 정치인을 공천한 정당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 공천제와 책임정치의 기준에서 보면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인 개인의 책임도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책임은 해당 정치인을 시민에게 공천한 주체인 정당에 있다. 자당 정치인이 물의를 일으켰다면 그 정당은 시민에게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고 합당하게 조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에 관한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정당을 불문하고 지방의회 전체를 도매금으로 손가락질한다. 정당이 이런 언론 보도 뒤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 버리면, 잘못은 개선되지 않고 다음 선거에서 문제 있는 사람이 다시 공천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의 결과는 결국 “지방의회는 없애야 되고 정치인들은 다 썩었다”라는 지방의회 폐지론이나 반정치적 담론으로 남는다. 지방 정치에서 정당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에 입각해,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고 책임을 묻는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지방 정치에서 정당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지방선거 때만 되면 유력 정당의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당선이 유력한 정당의 공천장을 받기 위해 같은 당 예비 후보들끼리 ‘영혼까지 탈탈 털릴 만큼’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른다. 본선과 달리, 당내 경선은 노선이 유사한 후보들 사이의 경쟁이기 때문에 주로는 도덕성과 자질을 둘러싼 이전투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지방의원은 바로 이런 경합을 통해 정당 스스로 골라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작년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1번 공천장을 지역에서는 ‘로또’라고 부를 정도로 정당의 힘은 막강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봐도 정당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선관위에서 “정당보다는 인물이나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연예인을 앞세워 텔레비전 광고도 하고 거리마다 현수막 홍보에 열을 올려도,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선택 기준은 결국 ‘정당’이다. 정당은 유권자가 갖는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지름길이라는 이론을 불러올 것도 없이, 유권자 한 사람당 무려 7표를 찍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정당밖에 없다. 오랜 지방 정치 활동의 경험에서 보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정당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치를 다루는 공론장에서 정당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당은 정말 선거 때만 사용되는 일회용 번호표에 불과한가? 문제는, 막강한 공천권을 갖고 있으며 유권자의 투표 선택 기준이 되는 ‘정당’이 선거 때만 반짝 보일 뿐 시민의 구체적인 생활공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방의원은 정치가인가, 지역 봉사자인가?
“선거가 끝나면 당은 잊어 버려야 한다. 우리는 시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지 국회의원처럼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방의원으로 활동할 때 선배 의원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얼핏 보면 모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공익적인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역 역시 하나의 공동체이다. 다원적 이익과 가치, 열정과 요구가 존재한다. 정당은 이런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를 부분으로 집약하고 대표함으로써 공익에 기여한다. 정치인들이 정당의 이름표를 떼고 모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대표하고 조정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을 회피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정당이 사라지면, 지방 정치의 책임성 역시 사라진다. 필자가 지방의원이었던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 해였고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많은 지방의회가 ‘새마을운동단체 지원 조례’ 문제로 시끄러웠다. 내가 속해 있는 자치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치단체 행사 때마다 눈을 마주치는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의원들에게 “이 조례를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조례안에 반대하는 다른 시민단체들은 “왜 특정단체만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느냐”며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시당과 중앙당 등 당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당시 조례 제정을 추진한 새누리당은 당연히 찬성이었지만,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들은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 확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1) 당론은 정해졌으나 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 조례안에 찬반 표결을 해야 하는 의원들에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지방의회의 구성은 재적 22명 가운데 민주통합당 11명, 새누리당 8명, 정의당 등 진보정당 2명, 무소속 1명이었기 때문에 당론을 기준으로 보면 부결이 확실했다. 표결 당일 조례안에 찬반 입장을 가진 시민들 130명이 회의장과 복도에 가득 찼다. 의회 공무원들은 지방의회 개원 이래 최대의 ‘인파’라고 했다. 예상대로 부결되었을까? 뚜껑을 열었을 때 표결한 의원들조차 놀랄 결과가 나왔다. 찬성 16표, 반대 4표로 예상을 뒤엎는 압도적 찬성으로 조례안이 통과됐다.
내가 더 놀란 것은 표결 결과보다 표결 이후였다. ‘새마을운동단체 지원 조례’는 지방 정치 사안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전국적인 쟁점이었다. 그러나 당론과 배치된 결정을 내린 지방의원 자신은 물론이고 당 차원의 어떤 설명이나 조치도 없었다. 당론과 다른 표결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두 다시 그 정당의 공천을 받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정치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치인은 당의 가치와 입장에 따라 책임 있게 정치 행위를 해야 하며, 정당은 소속 정치인의 정치 행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시민과 정당 간에 신뢰와 책임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로 지역 주민의 삶에서 정당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늘 선거가 끝나면 잊히고 불신의 대상으로 남게 되는 것은, 이처럼 ‘정당’을 확인할 수 없는, ‘책임 없는 정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당은 ‘주민자치’에서 빠져라?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 자치 회관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조례에 따라 설치된 주민 협의 기구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입안된 이래,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존 주민자치위원회가 담당하던 자문 역할에서 읍・면・동 행정의 자치 업무, 위탁 업무, 주민 참여 예산 신청 권한까지 부여하는 ‘주민자치회’를 지방분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법적 근거인 <지방분권특별법>(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29조와 행정안전부에서 전국의 지방정부에 내린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 17조를 보면 ‘지역사회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이 눈에 띈다. 이 조항 때문에 일부 지방의회에서 주민자치회 시범 운영 조례를 심의하면서 ‘정당의 당원 배제’ 조항을 조례에 넣을지 말지 논쟁이 있었고, 중앙선관위에 ‘정치적 중립’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도 했다(당시 선관위는 지방정부가 판단할 사항으로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했고, 대부분의 지방의회에서는 당원 배제 조항을 삭제했지만 정치적 중립 의무와 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유지했다).
정당의 배제는 비단 주민자치회 문제뿐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사업에서는 일관되게 ‘정당’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배제의 대상이다. 특히 선거에 출마했거나 당의 주요 활동을 하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주민자치의 공간에 진입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골목 민원부터 지역 예산까지 따지고 보면 다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고, 주민자치도 정치의 한 부분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중앙 정부에서도 공익적 의미가 큰 위원회나 협의 기구를 만들 때는 반드시 정당 추천을 통해 정당이 참여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에서는 정당의 ‘정’자도 꺼낼 수 없게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다. 실제 현장에서 보면,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정당의 당원이거나 정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중립이란 것도 넌센스다. 선거 때는 정당의 공천을 받은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시민의 대표로 선출해 놓고, 평상시에는 그들의 기반이 되는 정당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행위는 정치와 시민을 분리시키는 것이며 정당이 가진 정치적 책임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 혐오의 악순환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지방 정치에서 보여 준 정당과 정치인의 모습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도,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정치에 있다는 것도 모두 인정한다. 또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거버넌스 사업이 가진 긍정적 의미까지 애써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당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의 능력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방의회도 뽑아 놓고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의회와 의원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것이 지방자치를 풍성하고 작동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공공재, ‘정당’
정당은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공공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좋은 지방 정치, 좋은 지역공동체, 좋은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 생활 속에서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역에서 시민의 대표가 될 예비 정치인을 찾아내고 훈련시키는 역할과 책임도 정당에 있다. 정당은 1백 미터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처럼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체력과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 때마다 출마자를 발굴하는 데 급급하거나 한 방을 노리고 유명인, 인기인, 명사 정치인들을 찾아다녀서는 결코 좋은 정당을 기대할 수 없다. 정당이라는 좋은 감독을 만나서 지역이라는 운동장에서 단단하게 단련된 좋은 정치가들이 많아져야 조금 시간이 걸려도 오래가는 정당, 강하고 유능한 정당이 될 수 있다. 지역의 미래는 정당에 있고, 정당의 미래도 지역에 있다. 지역은 지금 ‘정당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끝>
주석
1) 당시 민주통합당은 새마을운동 예산 확대에 대해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려야 할 ‘새마을 운동’을 현재의 국민 정신 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발상은 ‘독재’와 ‘국민 동원’의 추억을 박근혜 정부에서 되살리겠다는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당 차원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2013년 2월 6일 민주통합당 부대변인 논평).
이동영 l 정치발전소 지방자치교육원장
서울 관악구에서 진보 정당 소속의 재선 지방의원과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했다. 8년 연속 의정 활동 1위라는 영광스러운 기록도 가지고 있지만 지역에서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면 다 허망한 일임을 낙선하고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치발전소에서 정당과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며, 더좋은지방자치연구소에서 지방 정치에 대한 연구와 지방의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중앙정치인의 활동은 주요 언론에서 늘 접하게 되지만, 지방정치인의 활동은 설사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일이어도 좀처럼 유력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조명되기 어렵다.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시민의 대표가 권한을 남용했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 정치인을 공천한 정당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공천제와 책임정치의 기준에서 보면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현장! 지방정치"를 연재하며
지방자치를 다시 시작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지역은 ‘지방자치는 정치적이면 안 되고 순수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는 오랜 통념 속에 갇혀 있다. 지역도 역시 하나의 공동체이고, 지역공동체의 다원적 이익과 가치를 다루는 지방자치도 정치의 한 부분이다. 이제는 지방자치를 ‘지방 정치’로 인식하고 그 오랜 통념을 넘어서야 풀뿌리민주주의도 더 민주적일 수 있다. 8년 동안 현장에서 지방의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 정치의 공간인 지역에서도 ‘정당’이 왜 중요하고, 강하고 유능한 대중정당을 만들기 위해 지방의원이나 당 지역 활동가들의 정치 활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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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방 정치 ①
지역에서 왕따가 되어 버린 ‘정당’
글쓴이 ㅣ 이동영
지방자치에서 사라진 ‘정당’
대개의 시민들은 공공요금은 중앙정부가 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버스・지하철・택시 등 교통요금부터 수도요금・쓰레기봉투까지 시민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은 지방정부가 정한다. 요금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실례로 수도요금은 서울시가 톤당 568원, 성남시는 452원, 과천시는 906원, 가평군은 무려 1,257원이다(환경부 『상수도통계』 2017).
미술・체육・영어 등 아이들의 특별활동 수업료에 대한 연간 상한액을 얼마로 할 것인지,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놀이터를 보수하거나 단지 내 가로등 공동 전기요금 보조금을 어느 정도 지원할 것인지를 정하는 조례와 예산을 다루는 곳도 지방의회다. 그만큼 지방 정치는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을 포함한 중앙 정치인의 활동은 주요 언론에서 늘 접하게 되지만, 지방 정치인의 활동은 설사 정치적으로 의미 있고 모범이 될 만한 일이어도 좀처럼 유력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조명되기 어렵다. 단 지방의원이 추문에 휩싸이거나 사건 사고를 일으켰을 때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시끄러웠던 ‘○○군 의원 해외연수 가이드 폭행 사건’, ‘○○구 의원 동장 폭행 사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여론의 지탄을 받는 지방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줄곧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지역 위원장과 의원으로 활동했던 지방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만 이와 같은 지방 정치 관련 사안에 대한 언론기사를 접할 때마다 한 가지 납득되지 않는 점이 있다. 국회의원 관련 보도에는 대부분 해당 의원이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거의 예외 없이 표기되는 데 반해, 유독 지방의원들에 대한 기사는 소속 정당을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사건 사고에 대한 정당의 입장이나 대책 따위는 당연히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시민의 대표가 권한을 남용했거나 공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 정치인을 공천한 정당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 공천제와 책임정치의 기준에서 보면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인 개인의 책임도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책임은 해당 정치인을 시민에게 공천한 주체인 정당에 있다. 자당 정치인이 물의를 일으켰다면 그 정당은 시민에게 책임 있는 입장을 밝히고 합당하게 조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에 관한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정당을 불문하고 지방의회 전체를 도매금으로 손가락질한다. 정당이 이런 언론 보도 뒤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 버리면, 잘못은 개선되지 않고 다음 선거에서 문제 있는 사람이 다시 공천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악순환의 결과는 결국 “지방의회는 없애야 되고 정치인들은 다 썩었다”라는 지방의회 폐지론이나 반정치적 담론으로 남는다. 지방 정치에서 정당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에 입각해,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고 책임을 묻는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지방 정치에서 정당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지방선거 때만 되면 유력 정당의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당선이 유력한 정당의 공천장을 받기 위해 같은 당 예비 후보들끼리 ‘영혼까지 탈탈 털릴 만큼’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른다. 본선과 달리, 당내 경선은 노선이 유사한 후보들 사이의 경쟁이기 때문에 주로는 도덕성과 자질을 둘러싼 이전투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지방의원은 바로 이런 경합을 통해 정당 스스로 골라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작년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1번 공천장을 지역에서는 ‘로또’라고 부를 정도로 정당의 힘은 막강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봐도 정당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선관위에서 “정당보다는 인물이나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연예인을 앞세워 텔레비전 광고도 하고 거리마다 현수막 홍보에 열을 올려도,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선택 기준은 결국 ‘정당’이다. 정당은 유권자가 갖는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지름길이라는 이론을 불러올 것도 없이, 유권자 한 사람당 무려 7표를 찍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정당밖에 없다. 오랜 지방 정치 활동의 경험에서 보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정당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치를 다루는 공론장에서 정당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당은 정말 선거 때만 사용되는 일회용 번호표에 불과한가? 문제는, 막강한 공천권을 갖고 있으며 유권자의 투표 선택 기준이 되는 ‘정당’이 선거 때만 반짝 보일 뿐 시민의 구체적인 생활공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방의원은 정치가인가, 지역 봉사자인가?
지방의원으로 활동할 때 선배 의원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얼핏 보면 모든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공익적인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역 역시 하나의 공동체이다. 다원적 이익과 가치, 열정과 요구가 존재한다. 정당은 이런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를 부분으로 집약하고 대표함으로써 공익에 기여한다. 정치인들이 정당의 이름표를 떼고 모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대표하고 조정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을 회피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정당이 사라지면, 지방 정치의 책임성 역시 사라진다. 필자가 지방의원이었던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 해였고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많은 지방의회가 ‘새마을운동단체 지원 조례’ 문제로 시끄러웠다. 내가 속해 있는 자치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치단체 행사 때마다 눈을 마주치는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의원들에게 “이 조례를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조례안에 반대하는 다른 시민단체들은 “왜 특정단체만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느냐”며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시당과 중앙당 등 당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당시 조례 제정을 추진한 새누리당은 당연히 찬성이었지만,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들은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 확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1) 당론은 정해졌으나 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 조례안에 찬반 표결을 해야 하는 의원들에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지방의회의 구성은 재적 22명 가운데 민주통합당 11명, 새누리당 8명, 정의당 등 진보정당 2명, 무소속 1명이었기 때문에 당론을 기준으로 보면 부결이 확실했다. 표결 당일 조례안에 찬반 입장을 가진 시민들 130명이 회의장과 복도에 가득 찼다. 의회 공무원들은 지방의회 개원 이래 최대의 ‘인파’라고 했다. 예상대로 부결되었을까? 뚜껑을 열었을 때 표결한 의원들조차 놀랄 결과가 나왔다. 찬성 16표, 반대 4표로 예상을 뒤엎는 압도적 찬성으로 조례안이 통과됐다.
내가 더 놀란 것은 표결 결과보다 표결 이후였다. ‘새마을운동단체 지원 조례’는 지방 정치 사안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전국적인 쟁점이었다. 그러나 당론과 배치된 결정을 내린 지방의원 자신은 물론이고 당 차원의 어떤 설명이나 조치도 없었다. 당론과 다른 표결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두 다시 그 정당의 공천을 받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정치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치인은 당의 가치와 입장에 따라 책임 있게 정치 행위를 해야 하며, 정당은 소속 정치인의 정치 행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시민과 정당 간에 신뢰와 책임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실제로 지역 주민의 삶에서 정당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늘 선거가 끝나면 잊히고 불신의 대상으로 남게 되는 것은, 이처럼 ‘정당’을 확인할 수 없는, ‘책임 없는 정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당은 ‘주민자치’에서 빠져라?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 자치 회관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조례에 따라 설치된 주민 협의 기구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입안된 이래,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존 주민자치위원회가 담당하던 자문 역할에서 읍・면・동 행정의 자치 업무, 위탁 업무, 주민 참여 예산 신청 권한까지 부여하는 ‘주민자치회’를 지방분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법적 근거인 <지방분권특별법>(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29조와 행정안전부에서 전국의 지방정부에 내린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 17조를 보면 ‘지역사회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이 눈에 띈다. 이 조항 때문에 일부 지방의회에서 주민자치회 시범 운영 조례를 심의하면서 ‘정당의 당원 배제’ 조항을 조례에 넣을지 말지 논쟁이 있었고, 중앙선관위에 ‘정치적 중립’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도 했다(당시 선관위는 지방정부가 판단할 사항으로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했고, 대부분의 지방의회에서는 당원 배제 조항을 삭제했지만 정치적 중립 의무와 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유지했다).
정당의 배제는 비단 주민자치회 문제뿐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사업에서는 일관되게 ‘정당’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배제의 대상이다. 특히 선거에 출마했거나 당의 주요 활동을 하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주민자치의 공간에 진입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골목 민원부터 지역 예산까지 따지고 보면 다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고, 주민자치도 정치의 한 부분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중앙 정부에서도 공익적 의미가 큰 위원회나 협의 기구를 만들 때는 반드시 정당 추천을 통해 정당이 참여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에서는 정당의 ‘정’자도 꺼낼 수 없게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다. 실제 현장에서 보면,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정당의 당원이거나 정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중립이란 것도 넌센스다. 선거 때는 정당의 공천을 받은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시민의 대표로 선출해 놓고, 평상시에는 그들의 기반이 되는 정당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행위는 정치와 시민을 분리시키는 것이며 정당이 가진 정치적 책임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치 혐오의 악순환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지방 정치에서 보여 준 정당과 정치인의 모습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도,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정치에 있다는 것도 모두 인정한다. 또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거버넌스 사업이 가진 긍정적 의미까지 애써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당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의 능력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방의회도 뽑아 놓고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의회와 의원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것이 지방자치를 풍성하고 작동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공공재, ‘정당’
정당은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공공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좋은 지방 정치, 좋은 지역공동체, 좋은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 생활 속에서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역에서 시민의 대표가 될 예비 정치인을 찾아내고 훈련시키는 역할과 책임도 정당에 있다. 정당은 1백 미터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처럼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체력과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 때마다 출마자를 발굴하는 데 급급하거나 한 방을 노리고 유명인, 인기인, 명사 정치인들을 찾아다녀서는 결코 좋은 정당을 기대할 수 없다. 정당이라는 좋은 감독을 만나서 지역이라는 운동장에서 단단하게 단련된 좋은 정치가들이 많아져야 조금 시간이 걸려도 오래가는 정당, 강하고 유능한 정당이 될 수 있다. 지역의 미래는 정당에 있고, 정당의 미래도 지역에 있다. 지역은 지금 ‘정당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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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당시 민주통합당은 새마을운동 예산 확대에 대해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려야 할 ‘새마을 운동’을 현재의 국민 정신 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발상은 ‘독재’와 ‘국민 동원’의 추억을 박근혜 정부에서 되살리겠다는 것이며 민주주의 사회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당 차원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2013년 2월 6일 민주통합당 부대변인 논평).
이동영 l 정치발전소 지방자치교육원장
서울 관악구에서 진보 정당 소속의 재선 지방의원과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했다. 8년 연속 의정 활동 1위라는 영광스러운 기록도 가지고 있지만 지역에서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면 다 허망한 일임을 낙선하고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치발전소에서 정당과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며, 더좋은지방자치연구소에서 지방 정치에 대한 연구와 지방의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