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의 극우 정당이다. 현재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이다. 최근 2018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17.6%의 지지를 얻었다. 대략 유권자 다섯 중 한 명은 스웨덴민주당을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스웨덴민주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없다. 스웨덴은 지지 정당이나 정치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임에도 유독 스웨덴민주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기류도 있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스웨덴민주당, 제3당으로 올라서다
무엇이 극우 정당을 약진하게 했나
글쓴이_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한 유령이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스웨덴 민주당이라는 유령이.”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의 극우 정당이다. 현재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이다. 최근 2018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17.6%의 지지를 얻었다. 대략 유권자 다섯 중 한 명은 스웨덴민주당을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스웨덴민주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없다. 스웨덴은 지지 정당이나 정치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임에도 유독 스웨덴민주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기류도 있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1)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사진 설명> 스웨덴민주당 대표 임미 오케손(Jimmie Åkesson). 스웨덴민주당은 2018년 총선에서 17.6%를 득표, 강력한 제3당으로 약진했다. 출처_위키미디어.
2019년 12월 스웨덴 통계청이 내놓은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스웨덴민주당은 22.6%로 26.3%를 얻은 사민당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지난 5월 조사 때보다 5.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스웨덴민주당 최고 기록이며 사민당은 역대 최저의 기록이다.
이 글은 인종주의 소수 정당 취급을 받던 스웨덴민주당이 지난 100년간 스웨덴을 이끈 사민당을 위협하는 정당으로 올라서기까지 그 역사와 약진의 이유를 살펴본다. 먼저 1980년대 이후 이민 인구의 수와 구성의 변화를 추적해 스웨덴민주당 지지율의 변화와 상관관계를 알아본다. 스웨덴의 사회 통합 수준과 사회 분위기, 세계적인 극우주의의 부상이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인종주의 극우 정당의 이미지를 씻고 주요 정당으로 올라서게 된 스웨덴민주당의 이미지 재정립 전략을 짚어 보고 향후 스웨덴의 정치 지형을 전망한다.
스웨덴민주당의 전신,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
스웨덴민주당의 전신은 1986년 창당한 스웨덴당(Sverigepartiet)에서 찾을 수 있다. 스웨덴당은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스웨덴을 스웨덴답게”(Bevara Sverige Svenskt) 운동본부와 진보당(Framstegspartiet)이 합쳐져 만들어진 당이다.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는 1979년 시작된 조직으로 비유럽 이민자와 바이킹 인종이 아닌 사람을 이민자로 받는 것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신의 딸을 니그로의 장난감으로 내주지 말라”(Låt inte din dotter bli en negerleksak) 등 자극적인 문장을 인쇄한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축인 진보당은 스웨덴 남쪽인 스코네 지방을 근거지로 둔 지역 모임 형식으로 시작됐다. 1968년 창당한 이후 선거 때마다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다 1979년 스웨덴의 남동쪽에 자리한 도시인 노르쇼핑(Norrköping)에서 재창당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진보당은 주로 외각에서 당시 정부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며 세력을 키웠다. “여성은 부엌으로 돌아가라”, “정부의 주류 독과점을 폐지하라”, “에이즈는 외국에서 들어온다” 등 당시 변화하는 스웨덴 사회에 대한 반감이 정당의 주요 정책이자 동력이었다. 재창당 무렵부터 덴마크의 인기 영합주의 우파 정당인 진보당과 교류하며 비슷한 노선을 견지했다. 덴마크 진보당은 이후 덴마크민중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노르웨이에서는 여전히 진보당으로 존재한다. 모두 극우주의 정당으로 분류된다.
현재 스웨덴민주당은 부인하고 있지만 1988년 창당 당시의 일부 구성원이 공공연히 나치를 찬양하거나 백인 중심주의를 주장했던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스웨덴민주당의 전신인 진보당과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가 스웨덴 극우주의의 시초인 셈인데, 스웨덴민주당은 2000년대까지 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정치 변방에 머물렀다.
창당한 지 10년이 넘도록 스웨덴민주당은 의회 입성 조건인 득표율 4%는커녕 1%에도 미치지 못해 주변에 머물렀다. 20여 년이 넘도록 원외 정당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총선에서 5.7% 득표율로 20석을 얻어 창당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이후 2014년 총선에서 12.9%(49석)로 제3당이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2석을 획득하며 스웨덴 정당 중 다섯 번째로 유럽 의회에 진출했다. 2018년 총선에서는 세를 불려 17.6%(62석)를 획득하며, 중도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민주노동당과 중도 우파를 이끄는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의 자리를 굳혔다.
방송 금지 당한 스웨덴민주당의 TV 광고
스웨덴민주당이 처음 의회에 입성한 2010년 선거 당시 나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웨덴민주당을 제대로 된 정당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놀림감이나 무시의 대상이었다. 주요 일간지는 스웨덴민주당의 선거 광고를 거절했고 스웨덴민주당의 홍보 책자 배달을 거부한 우체국도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상업 채널인 TV4는 선거 직전 스웨덴민주당의 TV 광고2)를 거절했다. 결국 스웨덴민주당은 유튜브를 통해 광고를 내보냈다. 문제의 광고는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스웨덴민주당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담아 선거기간 내내 구설에 올랐다.
<사진 설명> 2010년 스웨덴민주당의 동영상 광고 중 한 장면. 출처_youtube.com
30초짜리 광고 영상은 빠르게 줄어드는 국가 재정 숫자판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지폐 계수기를 돌리는데 연금 기금 쪽은 돈이 바닥나고 바로 옆 이민국 책상에는 지폐가 가득하다. 국가 재정을 보여 주는 숫자판이 1억 크로나 이하로 떨어지자 긴박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점멸되듯 국가 재정 숫자판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전형적인 스웨덴인을 상징하는 은발의 백인 여성이 보행 보조기를 끌며 힘겹게 연금을 받으러 간다. 이때 뒤에 한 무리의 검은 실루엣이 등장한다. 부르카를 쓰고 유모차를 끄는 여성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한눈에 보아도 이슬람계 이민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가던 은발 여성이 급한 마음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보행기를 끄는데 검은 여성의 무리가 백인 여성을 앞지른다. 절박하게 손을 내밀며 연금 기금 창구를 향해 달린다.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차분한 내레이션이 들리며 광고를 마친다. “9월 19일, 당신은 연금이 멈추기 전에 이민을 멈출 수 있습니다. 스웨덴민주당.”3)
TV4의 CEO 얀 쉐르만(Jan Scherman)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영상은 방송법 라디오와 TV 법령의 민주주의 항목에 위배되며, 유럽 협약과 유엔 헌장에 명시된 인간의 평등권에 반한다. 또한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민중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에도 저촉된다.”며 방송 불가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스웨덴라디오의 정치 기자인 폰투스 맛손은 이 영상이 스웨덴민주당의 의도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미미한 지지율의 인기 없는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다수 유권자의 호감을 사는 전략이 아닌, 존재감을 드러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다수를 포기하더라도 이민을 싫어하는 소수집단에 강하게 호소해 확실한 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연도 | 1988 | 1991 | 1994 | 1998 | 2002 | 2006 | 2010 | 2014 | 2018 |
---|
득표수 | 1,118 | 4,887
| 13,954
| 19,624
| 76,300
| 162,463
| 339,610
| 801,178
| 1,100,266
|
득표율(%) | 0 | 0.1 | 0.3 | 0.4 | 1.4 | 2.9 | 5.7 | 12.9 | 17.6 |
의석수 | 0 | 0 | 0 | 0 | 0 | 0 | 20 | 49 | 62 |
<표1> 스웨덴민주당 역대 득표율(출처_SCB4) 2018)
스웨덴민주당의 전략이 주효했는지 2010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창당 이래 최초로 의회 진입 최소 기준인 4%의 득표율을 뛰어 넘는 5.7%로 의회에 진출했다. 당시 스웨덴 사회의 반응은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웨덴민주당을 나치와 연관이 있는 인종주의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스웨덴민주당의 광고는 스웨덴민주당의 반이민 정책과 인종주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존재한 지 20여 년이 넘도록 소수 극우주의자들의 정당으로 취급하며 백안시해 오던 정당이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창당 후 2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던 스웨덴민주당이 2010년에 와서 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민주당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반이민을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이민자의 증감과 스웨덴민주당의 지지율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민 인구의 변화와 스웨덴민주당 약진의 상관관계
스웨덴의 이민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인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해 북유럽으로 건너오거나 망명을 신청한 이가 많았다. 당시 이민을 온 사람들은 주로 독일과 덴마크, 핀란드 그리고 발틱 국가 출신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서독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브란트는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했다. 독일이 노르웨이까지 점령하자 스웨덴으로 피신해 머물다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을 비롯해 이웃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전쟁을 피해 온 이민자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귀향했지만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틱 출신 중에는 스웨덴에 남기를 선택한 이가 많았다. 이들이 스웨덴의 1세대 이민자다.
이후에는 노동 이민으로 이어졌다. 중립을 지키며 전쟁의 포화에서 살아남은 스웨덴은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아 전후 유럽에서 가장 경기가 좋은 편에 속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여러 기간 시설이 파괴된 것은 물론 도시 전체가 황폐해져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당장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스웨덴의 수출 물량이 크게 늘었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하는 이가 늘었지만 공장에는 여전히 일손이 부족했다.
스웨덴은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노동 이민 정책을 폈다. 이탈리아를 비롯,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동유럽과 그리스・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 등 발칸 국가, 멀리 터키에서도 스웨덴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왔다. 특히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쓰던 핀란드의 경우 하루 저녁 배를 타고 발틱 해를 건너면 도착하는 거리인 스웨덴으로 건너와 취직을 했다. 아예 스웨덴 기업이 핀란드로 건너가 채용 설명회를 열고 숙련된 기술자를 데려오는 일도 흔했다.
스웨덴의 초기 이민자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웨덴을 찾았듯이 스웨덴 이민의 역사는 국제 분쟁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이후 8년의 전쟁 기간 동안 이란에서 2만7천 명, 이라크에서 7천 명이 스웨덴에 난민 신분으로 정착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악명 높은 인종 청소 전쟁이 벌어지자 보스니아・코소보・알바니아 등 발칸 지역에서 10만이 넘는 이민자가 스웨덴으로 건너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난민 이민이 크게 늘었다. 특히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이 많았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난민을 많이 받았다. 인구 대비로 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2006년부터는 매년 스웨덴 인구 1천만 명의 1%에 이르는 10만 명가량의 이민을 받았다. 2016년 한 해에만 16만3천 명의 이민자를 받아 정점을 찍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창당한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아니 더 넓게 잡아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된 1965년부터 2005년까지 약 40여 년간 이민자의 수는 연평균 5만 명 안팎, 전체 인구 대비 이민 인구 비율로 보자면 1970년대 7%, 1980년대 8%, 1990년대 9%, 2000년대 11%로 유지했다. 이민자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2006년 선거까지 스웨덴민주당은 원내 진입 최소 요건인 4%의 득표율도 얻지 못하는 미미한 정당이었다. 30여 년 동안 수면 아래 잠잠하던 극우주의가 힘을 얻어 2010년 원내 정당이 되기까지 스웨덴민주당이 급격히 성장한 모멘텀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민자 수 말고도 이민자의 구성 변화와 사회 통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림 1> 이민 출신 지역 구성비(1970~2018년, 단위: 명, 출처_SCB 통계 가공)
2018년 기준, 스웨덴 전체 인구 중 해외에서 태어난 인구의 비율은 전체 인구 약 1,023만185명 중 195만5,569명으로 19.1%를 차지한다. 단순히 해외에서 태어난 인구 통계이기 때문에 이 숫자는 이민 1세대만 포함한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사람 중 부모가(부모 중 1인 또는 2인) 이민자인 경우 즉 이민 2세 인구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최근 스웨덴 통계자료는 이민자 대신 해외 배경(utländsk bakgrund)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5) 여기에는 해외에서 태어나 스웨덴 시민권을 갖게 된 사람과 부모 양쪽이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을 포함한다. 2017년 기준 전체 스웨덴 인구 중 해외 배경을 지닌 인구는 24.1%, 스웨덴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이민자 또는 이민 2세다.
2018년 스웨덴 전체 인구 중 해외에서 출생한 인구, 즉 이민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시아계로 38.1%다. 전체 스웨덴 인구의 7.3%를 구성한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주요 출신국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태국 등의 순으로 그중 64%가 이슬람 문화권6) 출신이다. 아시아계 다음으로 유럽 출신이 32.2%, 핀란드 등 이웃 북유럽 출신이 12%, 아프리카가 11.2%로 뒤를 잇는다.
연도별 해외 출생 인구의 출신 지역 변화를 보면 이민 초기를 거쳐 1990년대까지는 비슷한 문화권인 북유럽과 유럽 출신 이민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1990년대 이민자 중 북유럽과 유럽연합 출신의 비중이 72%에 이른다. 2000년대부터는 이민자의 출신국이 다양해진다. 난민 이민이 늘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인구가 유입되었는데 특히 분쟁 지역 난민이 대부분을 차지해 ‘문화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지역’ 출신의 이민자가 늘었다.
1990년대 들어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이 늘어 둘의 비중을 합하면 30% 정도로 올라간다. 2000년대를 거치며 수가 크게 늘어 2018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이민이 전체 이민의 절반을 넘는다. 2006년부터 연간 10만 이상의 이민자를 받았으니 과거 10년간 100만 명 이상, 즉 인구의 10%가 넘는 새로운 얼굴이 스웨덴의 거리를 채운 셈이다. 1980년부터 2018년까지 이민자 중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와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수 추이를 그리고, 그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연간 이민자 수 통계는 매년 집계된 자료가 있지만 이민자의 출생국 통계는 10년마다 정리된 자료만 공개되어 있다. 4년마다 있는 총선 중 1994년, 1998년, 2006년, 2014년 아시아계 및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는 연평균 증가율로 역산한 추정치를 산정해 입력했다.
<그림 2> 1970~2018년 아시아 및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와 스웨덴민주당 득표수(단위: 명). 출처_SCB 통계자료 병합 가공.
아시아 및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와 스웨덴민주당 득표율의 증가는 놀라운 정도로 비슷한 경향을 띤다.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은 이민 인구수의 변화보다는 구성의 변화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 부분은 이후 사회 통합의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 응답자 82% 그렇지 않다.
스웨덴은 여타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이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은 2016년 이후에도 긍정적인 인식은 변함없다. 2018년 유럽연합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응답자의 76%가 ‘이민을 받는 것은 사회에 긍정적’이며, 93%가 ‘이민을 통해 음식・예술・음악 등 문화가 풍성해진다’고 답해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긍정 응답률을 보였다. 그 밖에 이민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며(응답자 중 69%),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87%)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7) 긍정적인 효과는 경제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경기 부양의 효과가 커서 이민자의 노동시장 유입에 힘입어 스웨덴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질문에 절대 다수인 8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반이민 정서의 기저에 현지 태생의 일자리를 이민자가 빼앗아 간다는 인식이 강한 데 반해, 스웨덴의 반이민 정서는 일자리 경쟁이 아닌 문화적 이질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2014~2017년까지 4년에 걸친 답변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응답자의 성향은 대동소이하나 특이점이 있다. 이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이민자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우려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민자는 단지 스웨덴의 복지를 누리려고 왔다” 항목에서는 46%가 그렇다, 54%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인식의 대립이 팽팽했다. “이민자 그룹의 문화나 전통이 때때로 스웨덴 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항목에 67%가 동의해 문화적 이질성을 느끼는 이가 제법 많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부정 인식의 경우 시간의 폭을 좀 더 넓히면 인식의 변화가 드러나는데, 예테보리 대학의 <1986~2015 스웨덴 트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의 증가가 염려된다는 대답이 2011년 20%에서 2016년 45%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2014년 38%에서 2016년 불과 2년 사이에 45%로 늘었다.8)
이민은 긍정적, 이웃으로는 부정적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 자체에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이민자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반기지 않는 듯하다. 이것은 거주지 분리 현상으로 드러난다. 스웨덴의 주요 도시의 전입 전출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거주 지역에 이민 인구가 늘어나면 원 거주 가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이민자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9)
스톡홀름・예테보리・말뫼 등 스웨덴의 대도시에는 이민자가 절대다수인 동네가 생겼고, 정부 주도 정착 지역 중에는 이민자가 토착 스웨덴인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 스톡홀름 외각의 링케뷔나 텐스타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길을 걸어도 스웨덴 사람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스웨덴인을 보기 어렵다. 인근 학교에는 모든 학생이 이민자로 구성된 학급이 있는가 하면, 스웨덴어를 구사하지 않는 학생이 더 많은 학급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민자와 비이민자가 분리되어 거주하는 지리적 분리가 심해졌으며, 게토가 형성되기도 한다.
스웨덴 부모들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자녀를 학교에 보낼 때는 이민자가 적은 학교를 선택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위한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민자가 많은 학교에 가면 오히려 자녀가 소수민족 그룹이 되는 경우가 있으며, 스웨덴어를 익히는 데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스웨덴 중산층에 걸맞은 “충분히 스웨덴스러운 환경”(tillräckligt svensk miljö)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한 이유다. 고학력, 고소득일수록 거주 지역에 이민 인구가 늘면 이사를 나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거주자가 늘어날 경우에 해당되며 유럽계 이민자의 경우 그 수가 늘어도 원 거주 가구가 이사를 나가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0년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을 뒷받침하는 이민자에 대한 이질감이나 반감이 늘어난 것은 이민자 수가 늘어서라기보다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의 비중이 늘면서 문화적 차이가 크게 부각된 것이라고 보는 쪽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사회 통합의 실패가 스웨덴민주당을 키웠다
과거 1980년대까지 스웨덴의 사회 통합 정책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까지 이민 인구의 절대다수가 유럽에서 건너왔고 그것은 기독교 가치관과 세계대전의 경험 등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종교나 문화, 생김새에 따른 이질감이 덜했다. 거기다 전쟁 이후 스웨덴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중산층이 강해지는 시기라 경제적인 격차도 크지 않았다.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하게 발달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했다. 비교적 사회 통합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민 인구의 증가는 과거 반세기 적극적 이민정책에 따른 스웨덴 국정 운영의 결과다. 스웨덴의 정치사에 있어 사민당의 집권 기간이 절대적으로 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당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집권당이 바뀐다고 정책이 바로 뒤집히는 일은 없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진행하다 보니 정책이 실행되기까지 준비 과정이 길고 정책의 연속성이 확보된다.
실제로 연간 이민자의 수가 극적으로 증가한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보수 연정의 집권 기간이었다. 이민정책은 스웨덴 사회 전체의 합의에 기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민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긍정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어떤 정당도 반이민을 주장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눈에 띄게 불거진 거주지 분리 현상은 이민 인구의 사회 통합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민당을 비롯한 기존의 정당은 문제의 핵심을 말하지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국경 검색 강화, 친척 초청 이민 조건 강화 같은 미봉책을 들고 나왔다. 나는 스웨덴민주당이 약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유권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스웨덴민주당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민 인구의 증가와 함께 스웨덴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았고 곳곳에서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스웨덴의 이민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2006년까지 연간 유입 인구의 수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문화적으로 거리감이 먼 지역에서 다수의 난민 이민이 유입되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세를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들 새로운 이민자 그룹은 비슷한 문화권 출신인 과거 유럽계 이민자에 비해 사회적 통합이 어렵다. 스웨덴 정부는 주택, 고용, 보육 등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년 인구의 1%가 훌쩍 넘는 수의 난민을 받았고 결국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다. 거기에 더해, 언론과 가짜 뉴스를 통해 과다 대표되고 확대 생산되는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에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상황이지만 스웨덴 사회에서 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마치 약자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어떤 개인도 정당도 드러내 놓고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때 스웨덴민주당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나선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은 반이민을 기치로 의회에 입성했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인종주의 정당의 이미지를 씻어 내고 우파 정당으로 인식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정당을 소개하는 글을 보아도 스웨덴민주당 당원과 의원 가운데 해외 배경을 가진 비율이 매우 크다고 쓰고 있다. 실제로 지지자 중 해외 배경과 스웨덴 태생의 비율은 각각 41%와 59%로 “취약 지구”, “게토”, “출입금지 지구”(No-Go zone)로 불리는 이민 인구 중심 지역에서도 스웨덴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이들이 있다.
스웨덴민주당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 스웨덴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과거에는 차마 할 수 없던 발언,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감히 할 수 없는 표현이 요즘은 공공연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주류가 되고 미디어에 연일 등장하면서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은 그 경계에 서있다.
스웨덴민주당, 극우 정당 아닌 유일한 야당?!
2018년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는 스웨덴민주당의 지지율을 많게는 25%까지 예측했다. 그럼에도 모든 당이 향후 스웨덴민주당과 손잡을 일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모든 당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스스로 스웨덴의 “유일한 야당”이라 지칭했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 위기, 복지 서비스 질의 저하 등 현재 스웨덴의 혼란은 기존 정당의 실책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어떤 당에 투표해도 결과는 같았다며 스웨덴민주당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2019년 11월 기준 지난 6개월 각 정당의 표심 흐름을 보면 스웨덴민주당은 유일하게 무려 네 정당으로부터 지지율을 흡수하고 있다.
<그림 3> 2019년 11월 기준 과거 6개월 정당 지지도 흐름 (출처_SCB, 2019)
한 나라의 구성원이라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만이나 분노를 품을 수도 있다. 이를 공론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떤 당도 변하는 인구구성과 스웨덴 사회의 갈등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았다. 그 와중에 스웨덴민주당이 물꼬를 튼 것이다. 늘어나는 이민 인구와 사회의 수용력에 대한 우려가 공공연히 퍼져 있었지만 “유일한 야당”인 스웨덴민주당 말고는 불안을 분출할 출구가 없었다.
스웨덴민주당은 이민 정책 재고를 주장하는 우파 인기 영합주의 당으로 분류되지만 스웨덴민주당에 표를 던진 110만 유권자 전체를 반이민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2010년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이후 스웨덴민주당은 반이민의 단일 의제 정당에서 벗어나 범죄 처벌 강화, 학교 시설 개선, 복지 서비스 제고 등 일반 정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책을 다루고 있다. 정당 지지자 분석 자료를 보면 스웨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중산층과 연금 수급자, 중고등 학력, 지방에 거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로 사민당의 지지층과 상당 부분 겹친다. 스웨덴민주당 지지자 중에는 당의 주장대로 이민을 줄이자거나, 이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스웨덴민주당의 여타 정책에 찬성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에 반발하거나 문화 충돌의 두려움을 느끼는 부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은 사민당의 위기
스웨덴의 정당을 좌에서 우의 이념 스펙트럼상에 나열하면 좌파당(Left Party, V), 녹색당(Green Party, MP), 스웨덴사회민주당(Swedish Social Democratic Party, S), 온건당(Moderate Party, M), 중앙당(Centre Party, C), 크리스챤민주당(Christian Democrats, KD), 자유당(Liberals, L), 스웨덴민주당(Sweden Democrats, SD) 순이다.
<그림 4> 스웨덴 정당 별 득표율(2006~2018년, 단위: %, 출처_SCB 통계 가공)
2006년부터 2018년 사이 있었던 네 차례 총선 결과를 보면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정당 득표율이 하락한 가운데 좌우를 각각 대표하는 사민당은 2006년 35%에서 2018년 28.26%로 6%포인트 하락했고, 온건당은 2010년 30%에서 20%로 10%포인트 하락했다.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고유의 정치색을 지킨 좌파당은 오히려 2018년 선거에서 세를 늘렸다. 중도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인 온건당의 표가 상당수 스웨덴민주당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민당의 표도 적잖이 흘러갔다고 보아야 한다.
단일 정당으로는 온건당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하락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민당의 위기다. 과거 30여 년 스웨덴의 투표 결과를 보면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 범좌파와, 나머지 범우파 정당이 반반의 지지율을 얻으며 한 자리 수 차이로 정권을 얻었다 뺏었다 해왔다. 과거 사민당은 줄곧 40% 이상의 지지율로 정권을 이끌어 왔지만 2002년 선거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이어 왔다.
2010년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정당이 된 이후부터는 스웨덴민주당을 빼고 좌우가 비슷한 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선거 결과를 기준으로 범좌파와 범우파의 지지율은 각각 40%로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스웨덴민주당을 우파로 분류할 경우 전체적인 범좌파 지지율은 1998년 53%에서 2018년 40%로 12%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우파 연정의 지지율은 40%지만 스웨덴민주당을 포함하면 58%가 된다.10) 전체적으로 보자면 좌파 지지 세력이 줄어든 것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은 하나의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형성하지 못하면 연정을 통해 정권을 쥐게 된다. 결국 향후에 사민당이 녹색당, 좌파당과 연정을 구성한다고 해도 범우파가 과반 이상을 점유하게 되어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8년 선거 결과 어느 정당도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연정에서 과반을 형성하지 못했다. 사민당은 우파인 중앙당의 신임으로 겨우 권력을 잡았다. 선거 기간에는 어떤 정당도 스웨덴민주당과 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가을 기독민주당을 시작으로 12월 초에는 우파의 대표 정당인 온건당과 스웨덴민주당이 처음으로 만나 향후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지율 20%의 스웨덴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어떤 정당이든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
지난 100년 간 흔들리지 않는 제1당으로 자리매김 해온 사민당의 지위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지난 12월 초 여론조사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사민당을 3.7% 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다. 다음 선거에서 사민당에 맞서는 우파의 대표 정당이 스웨덴민주당이 될지도 모른다.
스웨덴민주당, 개혁의 동력인가, 불안 요소인가?
그럼에도 스웨덴민주당은 북유럽 이웃 나라의 여타 대중 영합주의 극우 정당과는 다르다. 현실을 부정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하지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지도 않는다. 초기에는 그랬을지언정 모든 문제를 특정 그룹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방식도 벗어났다. 반이민을 전면에 내걸고 세금 감면 등 사회 전반에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덴마크나 노르웨이 극우 정당에 비해 온건할 뿐 아니라, 한 주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단일 이슈 정당의 면모를 벗어나 일반 정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책을 다루고 있다.
스웨덴민주당이 처음 내걸었던 모토는 “스웨덴을 스웨덴답게”다. 스웨덴민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당의 정책을 살펴보면 스웨덴민주당은 국가주의 보수 정당이라고 표현한다. 스웨덴의 가치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소외 지역 증가, 성범죄와 조직범죄 증가, 종교적 극단주의, 이민자에 대한 과도한 예산 지출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스웨덴의 전통과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책임 있는 이민정책, 범죄자의 형량 강화, 병원과 학교의 복지 서비스 강화와 연금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11)
인터뷰에 답했던 한 중산층 학부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다문화는 좋은 것이지만 내 아이는 “충분히 스웨덴스러운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던 그는 반이민주의자도 스웨덴민주당 지지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스웨덴스러움”은 규범으로 내재해 전형적인 스웨덴인과 이민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스러움에 적응하는 이민자는 환영하지만 일하지 않고 복지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는 이민자는 환영 받지 못한다고 했다. 복지국가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스웨덴민주당은 이민자들이 밀려들어와 스웨덴의 자랑스러운 복지 시스템을 위협한다며, 사민당이야말로 스웨덴의 이상을 저버린 것이라고 한다.
과거 스웨덴민주당과 뿌리가 닿아 있는 인종주의 신나치 조직은 생물학적 스웨덴인을 주장했지만, 진화한 스웨덴민주당은 문화적 스웨덴인으로 프레임을 바꿔 반이민을 주장하는 영리함을 보여 주었다. 과거 사민당의 핵심 지지 세력이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중산층 제조업 남성 노동자가 스웨덴민주당의 대표 지지자가 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스웨덴스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유리된 정치는 힘이 없다. 정치는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이민자의 증가는 겉으로 드러난 구실일 뿐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집값, 아이들의 교육 환경, 안전한 사회 등 삶에서 바로 느끼는 문제다. 다른 정당이 원칙을 말할 때 스웨덴민주당은 일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솔깃한 프레임과 수사로 기존의 정당을 무능력하다며 꾸짖고 나섰다.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다. 일상의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하는 것은 좋은 정치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또는 인류의 선한 가치를 위해 누군가가 일정 부분 양보를 해야 한다면, 설혹 그 누군가가 다수라고 해도 끊임없이 설득해 내 인간 내면에 있는 보편적인 양심을 일깨워 한 발짝 나아가게 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정치다.
과거 사민당이 1965년부터 10년간 매년 10만 가구의 아파트를 건축한 밀리언프로그램(Miljonprogrammet), 즉 백만 가구 정책의 목적은 단순히 인구 증가에 따라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백만 가구 정책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너머 이민자를 포함한 여러 유형의 사회적 그룹을 한 공간에 수용해 사회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근교에 학교, 병원, 도서관, 커뮤니티 공간 등을 조성해 민주적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지금은 게토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때 지어진 스톡홀름 가장자리 링케비의 아파트는 “지구촌”(Världens by)이라 불렸다. 피차 서로 다를 것 없는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자연스레 이웃이 되었고 스웨덴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집값도 잡았다.
1968년부터 1986년 사이 올로프 팔메가 수상으로 재임한 10년을 거치며 스웨덴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국제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고 이민자를 포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 사민당이 선도적으로 다문화 개념을 채택해 1975년에는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표방하는 흡수주의를 폐기하고 정부가 다문화를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민과 소수자 정책을 새로 정했다. 이민자 그룹 역시 스웨덴 사회에 융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이민자들이 모여 창업한 스톡홀름의 유명한 케밥 체인점의 이름이 국민케밥(Folketskebab)일 정도로 소속감과 자부심이 있었고, 스웨덴 사회는 호기심과 포용으로 답했다. 유럽연합 국가 중 이민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 사이 반이민 정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유로 난민의 유입과 이에 따른 대처 부실을 들 수 있다. 2006년 이후 1년마다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10만 명 이상의 이민 인구를 받아들였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일자리・복지 등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문화적 거리가 있는 지역의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었으나 적절한 사회 통합 정책이 가동되지 않아 이질감이 커졌다. 기존 정당은 늘어나는 이민 인구에 대한 대비와 사회 통합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민주당이 과거 반이민 단일 의제 정당에서 교육·보건의료·경제·복지 등 주요 쟁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스웨덴의 유일한 야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들고 나온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사민당이 실행했던 백만 가구 정책이나 다문화주의 채택과 같은 선도적 정책의 부재와 비전의 실종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사민당은 위대한 정치를 했다. 현재의 사민당 혹은 어떤 정당이든 간에 위대한 정치를 해내기를, 인류 역사는 진보한다는 낙관성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밖에. <끝>
주석
1) 스웨덴민주당은 원내에 진입한 정당 중 유일한 극우 정당이다. 원외 소수 정당으로 이민자의 원국 복귀를 주장하는 스웨덴대안당(Alternativ för Sverige)이나 네오나치즘을 신봉하는 노르딕저항운동(Nordiska Motståndsrörelsen) 등의 극우 정당도 있지만 지지율이 미미하므로 논외로 친다.
2) 인기 채널인 TV4는 스웨덴민주당의 2010년 선거 광고 영상의 방송을 금지 했다. 스웨덴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광고를 공개했고 조회 수는 100만이 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kRRdth8AHc
3) ”Den 19 september kan du välja invandringsbroms före pensionsbroms. Sverigedemokraterna.”
4) SCB: Statistiska centralbyrån는 스웨덴 통계중앙국의 약자다. 스웨덴의 정부 및 공공기관의 통계자료를 제공한다.
5) 스웨덴 정부 문서와 통계자료를 보면 과거 ‘이민자(invandrare)와 이민 2세’를 합쳐서 지칭할 때 ‘해외 배경’(utländsk bakgrund)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쓰고 있다. 스웨덴 통계청의 지침에 따르면 자료 안에 인종이나 특정 민족에 대한 정보를 드러낼 수 없다. GDPR, Art. 9.
6) 스웨덴 정부의 문서에서 이슬람 문화권 이민자를 지칭할 때 무슬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문화적 거리가 먼 지역 출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연구자로서 직접적인 언어를 두고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사회 통합의 관점에서 특정 그룹을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읽을 수 있다.
7)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유로바로메타 특별호 469회차를 보면 스웨덴 뿐 아니라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질문에 따른 스웨덴과 다른 회원국의 인식 차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Eurobarometer 2018, Integration of immigrants in the European Union, Special Eurobarometer 469, European Commission, Wave EB88.2 – TNS opinion & social. pp. 72-80.
8) 보고서 전문은 예테보리 대학교 SOM 연구소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http://som.gu.se/digitalAssets/1593/1593632_swedish-trends-1986-2015.pdf
9) 린네우스 대학교 엠마 노이만의 사회 분열 연구 참조. Neuman, E 2015, Essays on Segregation, Gender Economics, and Self-employment, Linnaeus University Dissertation No 223/2015.
10) 우수리에 해당하는 2%는 해적당, 페미니스트당 등 원외 정당 득표율이다.
11) 스웨덴민주당 홈페이지 참조.
https://sd.se/vad-vi-vill/
하수정 l 북유럽연구소 소장
정치발전소 회원이다.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공부했다. 지속가능발전을 전공했으며 한 일간지의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다. 지난 여름까지 서울시장의 연설문을 썼다. 저서로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번역), 『지도자들』(공저), 『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공저)가 있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의 극우 정당이다. 현재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이다. 최근 2018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17.6%의 지지를 얻었다. 대략 유권자 다섯 중 한 명은 스웨덴민주당을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스웨덴민주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없다. 스웨덴은 지지 정당이나 정치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임에도 유독 스웨덴민주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기류도 있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스웨덴민주당, 제3당으로 올라서다
무엇이 극우 정당을 약진하게 했나
글쓴이_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한 유령이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스웨덴 민주당이라는 유령이.”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의 극우 정당이다. 현재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이다. 최근 2018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17.6%의 지지를 얻었다. 대략 유권자 다섯 중 한 명은 스웨덴민주당을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스웨덴민주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없다. 스웨덴은 지지 정당이나 정치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임에도 유독 스웨덴민주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기류도 있었다. 분명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듯, 스웨덴의 유일한1)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그렇게 유령처럼 스웨덴을 배회하고 있다.
2019년 12월 스웨덴 통계청이 내놓은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스웨덴민주당은 22.6%로 26.3%를 얻은 사민당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지난 5월 조사 때보다 5.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스웨덴민주당 최고 기록이며 사민당은 역대 최저의 기록이다.
이 글은 인종주의 소수 정당 취급을 받던 스웨덴민주당이 지난 100년간 스웨덴을 이끈 사민당을 위협하는 정당으로 올라서기까지 그 역사와 약진의 이유를 살펴본다. 먼저 1980년대 이후 이민 인구의 수와 구성의 변화를 추적해 스웨덴민주당 지지율의 변화와 상관관계를 알아본다. 스웨덴의 사회 통합 수준과 사회 분위기, 세계적인 극우주의의 부상이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인종주의 극우 정당의 이미지를 씻고 주요 정당으로 올라서게 된 스웨덴민주당의 이미지 재정립 전략을 짚어 보고 향후 스웨덴의 정치 지형을 전망한다.
스웨덴민주당의 전신,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
스웨덴민주당의 전신은 1986년 창당한 스웨덴당(Sverigepartiet)에서 찾을 수 있다. 스웨덴당은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스웨덴을 스웨덴답게”(Bevara Sverige Svenskt) 운동본부와 진보당(Framstegspartiet)이 합쳐져 만들어진 당이다.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는 1979년 시작된 조직으로 비유럽 이민자와 바이킹 인종이 아닌 사람을 이민자로 받는 것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신의 딸을 니그로의 장난감으로 내주지 말라”(Låt inte din dotter bli en negerleksak) 등 자극적인 문장을 인쇄한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축인 진보당은 스웨덴 남쪽인 스코네 지방을 근거지로 둔 지역 모임 형식으로 시작됐다. 1968년 창당한 이후 선거 때마다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다 1979년 스웨덴의 남동쪽에 자리한 도시인 노르쇼핑(Norrköping)에서 재창당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진보당은 주로 외각에서 당시 정부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며 세력을 키웠다. “여성은 부엌으로 돌아가라”, “정부의 주류 독과점을 폐지하라”, “에이즈는 외국에서 들어온다” 등 당시 변화하는 스웨덴 사회에 대한 반감이 정당의 주요 정책이자 동력이었다. 재창당 무렵부터 덴마크의 인기 영합주의 우파 정당인 진보당과 교류하며 비슷한 노선을 견지했다. 덴마크 진보당은 이후 덴마크민중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노르웨이에서는 여전히 진보당으로 존재한다. 모두 극우주의 정당으로 분류된다.
현재 스웨덴민주당은 부인하고 있지만 1988년 창당 당시의 일부 구성원이 공공연히 나치를 찬양하거나 백인 중심주의를 주장했던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스웨덴민주당의 전신인 진보당과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가 스웨덴 극우주의의 시초인 셈인데, 스웨덴민주당은 2000년대까지 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정치 변방에 머물렀다.
창당한 지 10년이 넘도록 스웨덴민주당은 의회 입성 조건인 득표율 4%는커녕 1%에도 미치지 못해 주변에 머물렀다. 20여 년이 넘도록 원외 정당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총선에서 5.7% 득표율로 20석을 얻어 창당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이후 2014년 총선에서 12.9%(49석)로 제3당이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2석을 획득하며 스웨덴 정당 중 다섯 번째로 유럽 의회에 진출했다. 2018년 총선에서는 세를 불려 17.6%(62석)를 획득하며, 중도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민주노동당과 중도 우파를 이끄는 온건당에 이어 제3당의 자리를 굳혔다.
방송 금지 당한 스웨덴민주당의 TV 광고
스웨덴민주당이 처음 의회에 입성한 2010년 선거 당시 나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웨덴민주당을 제대로 된 정당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놀림감이나 무시의 대상이었다. 주요 일간지는 스웨덴민주당의 선거 광고를 거절했고 스웨덴민주당의 홍보 책자 배달을 거부한 우체국도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상업 채널인 TV4는 선거 직전 스웨덴민주당의 TV 광고2)를 거절했다. 결국 스웨덴민주당은 유튜브를 통해 광고를 내보냈다. 문제의 광고는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스웨덴민주당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담아 선거기간 내내 구설에 올랐다.
30초짜리 광고 영상은 빠르게 줄어드는 국가 재정 숫자판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지폐 계수기를 돌리는데 연금 기금 쪽은 돈이 바닥나고 바로 옆 이민국 책상에는 지폐가 가득하다. 국가 재정을 보여 주는 숫자판이 1억 크로나 이하로 떨어지자 긴박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점멸되듯 국가 재정 숫자판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전형적인 스웨덴인을 상징하는 은발의 백인 여성이 보행 보조기를 끌며 힘겹게 연금을 받으러 간다. 이때 뒤에 한 무리의 검은 실루엣이 등장한다. 부르카를 쓰고 유모차를 끄는 여성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한눈에 보아도 이슬람계 이민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가던 은발 여성이 급한 마음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보행기를 끄는데 검은 여성의 무리가 백인 여성을 앞지른다. 절박하게 손을 내밀며 연금 기금 창구를 향해 달린다.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차분한 내레이션이 들리며 광고를 마친다. “9월 19일, 당신은 연금이 멈추기 전에 이민을 멈출 수 있습니다. 스웨덴민주당.”3)
TV4의 CEO 얀 쉐르만(Jan Scherman)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영상은 방송법 라디오와 TV 법령의 민주주의 항목에 위배되며, 유럽 협약과 유엔 헌장에 명시된 인간의 평등권에 반한다. 또한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민중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에도 저촉된다.”며 방송 불가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스웨덴라디오의 정치 기자인 폰투스 맛손은 이 영상이 스웨덴민주당의 의도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미미한 지지율의 인기 없는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다수 유권자의 호감을 사는 전략이 아닌, 존재감을 드러내는 전략을 선택했다. 다수를 포기하더라도 이민을 싫어하는 소수집단에 강하게 호소해 확실한 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전략이 주효했는지 2010년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창당 이래 최초로 의회 진입 최소 기준인 4%의 득표율을 뛰어 넘는 5.7%로 의회에 진출했다. 당시 스웨덴 사회의 반응은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웨덴민주당을 나치와 연관이 있는 인종주의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스웨덴민주당의 광고는 스웨덴민주당의 반이민 정책과 인종주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존재한 지 20여 년이 넘도록 소수 극우주의자들의 정당으로 취급하며 백안시해 오던 정당이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창당 후 2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던 스웨덴민주당이 2010년에 와서 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민주당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반이민을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이민자의 증감과 스웨덴민주당의 지지율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민 인구의 변화와 스웨덴민주당 약진의 상관관계
스웨덴의 이민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인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해 북유럽으로 건너오거나 망명을 신청한 이가 많았다. 당시 이민을 온 사람들은 주로 독일과 덴마크, 핀란드 그리고 발틱 국가 출신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서독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브란트는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했다. 독일이 노르웨이까지 점령하자 스웨덴으로 피신해 머물다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을 비롯해 이웃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전쟁을 피해 온 이민자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귀향했지만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틱 출신 중에는 스웨덴에 남기를 선택한 이가 많았다. 이들이 스웨덴의 1세대 이민자다.
이후에는 노동 이민으로 이어졌다. 중립을 지키며 전쟁의 포화에서 살아남은 스웨덴은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아 전후 유럽에서 가장 경기가 좋은 편에 속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여러 기간 시설이 파괴된 것은 물론 도시 전체가 황폐해져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당장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스웨덴의 수출 물량이 크게 늘었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하는 이가 늘었지만 공장에는 여전히 일손이 부족했다.
스웨덴은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노동 이민 정책을 폈다. 이탈리아를 비롯,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동유럽과 그리스・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 등 발칸 국가, 멀리 터키에서도 스웨덴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왔다. 특히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쓰던 핀란드의 경우 하루 저녁 배를 타고 발틱 해를 건너면 도착하는 거리인 스웨덴으로 건너와 취직을 했다. 아예 스웨덴 기업이 핀란드로 건너가 채용 설명회를 열고 숙련된 기술자를 데려오는 일도 흔했다.
스웨덴의 초기 이민자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웨덴을 찾았듯이 스웨덴 이민의 역사는 국제 분쟁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이후 8년의 전쟁 기간 동안 이란에서 2만7천 명, 이라크에서 7천 명이 스웨덴에 난민 신분으로 정착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의 악명 높은 인종 청소 전쟁이 벌어지자 보스니아・코소보・알바니아 등 발칸 지역에서 10만이 넘는 이민자가 스웨덴으로 건너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난민 이민이 크게 늘었다. 특히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이 많았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난민을 많이 받았다. 인구 대비로 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2006년부터는 매년 스웨덴 인구 1천만 명의 1%에 이르는 10만 명가량의 이민을 받았다. 2016년 한 해에만 16만3천 명의 이민자를 받아 정점을 찍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창당한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아니 더 넓게 잡아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된 1965년부터 2005년까지 약 40여 년간 이민자의 수는 연평균 5만 명 안팎, 전체 인구 대비 이민 인구 비율로 보자면 1970년대 7%, 1980년대 8%, 1990년대 9%, 2000년대 11%로 유지했다. 이민자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2006년 선거까지 스웨덴민주당은 원내 진입 최소 요건인 4%의 득표율도 얻지 못하는 미미한 정당이었다. 30여 년 동안 수면 아래 잠잠하던 극우주의가 힘을 얻어 2010년 원내 정당이 되기까지 스웨덴민주당이 급격히 성장한 모멘텀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민자 수 말고도 이민자의 구성 변화와 사회 통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2018년 기준, 스웨덴 전체 인구 중 해외에서 태어난 인구의 비율은 전체 인구 약 1,023만185명 중 195만5,569명으로 19.1%를 차지한다. 단순히 해외에서 태어난 인구 통계이기 때문에 이 숫자는 이민 1세대만 포함한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사람 중 부모가(부모 중 1인 또는 2인) 이민자인 경우 즉 이민 2세 인구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최근 스웨덴 통계자료는 이민자 대신 해외 배경(utländsk bakgrund)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5) 여기에는 해외에서 태어나 스웨덴 시민권을 갖게 된 사람과 부모 양쪽이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을 포함한다. 2017년 기준 전체 스웨덴 인구 중 해외 배경을 지닌 인구는 24.1%, 스웨덴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이민자 또는 이민 2세다.
2018년 스웨덴 전체 인구 중 해외에서 출생한 인구, 즉 이민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시아계로 38.1%다. 전체 스웨덴 인구의 7.3%를 구성한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주요 출신국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태국 등의 순으로 그중 64%가 이슬람 문화권6) 출신이다. 아시아계 다음으로 유럽 출신이 32.2%, 핀란드 등 이웃 북유럽 출신이 12%, 아프리카가 11.2%로 뒤를 잇는다.
연도별 해외 출생 인구의 출신 지역 변화를 보면 이민 초기를 거쳐 1990년대까지는 비슷한 문화권인 북유럽과 유럽 출신 이민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1990년대 이민자 중 북유럽과 유럽연합 출신의 비중이 72%에 이른다. 2000년대부터는 이민자의 출신국이 다양해진다. 난민 이민이 늘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인구가 유입되었는데 특히 분쟁 지역 난민이 대부분을 차지해 ‘문화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지역’ 출신의 이민자가 늘었다.
1990년대 들어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이 늘어 둘의 비중을 합하면 30% 정도로 올라간다. 2000년대를 거치며 수가 크게 늘어 2018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이민이 전체 이민의 절반을 넘는다. 2006년부터 연간 10만 이상의 이민자를 받았으니 과거 10년간 100만 명 이상, 즉 인구의 10%가 넘는 새로운 얼굴이 스웨덴의 거리를 채운 셈이다. 1980년부터 2018년까지 이민자 중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와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수 추이를 그리고, 그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연간 이민자 수 통계는 매년 집계된 자료가 있지만 이민자의 출생국 통계는 10년마다 정리된 자료만 공개되어 있다. 4년마다 있는 총선 중 1994년, 1998년, 2006년, 2014년 아시아계 및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는 연평균 증가율로 역산한 추정치를 산정해 입력했다.
아시아 및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와 스웨덴민주당 득표율의 증가는 놀라운 정도로 비슷한 경향을 띤다.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은 이민 인구수의 변화보다는 구성의 변화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 부분은 이후 사회 통합의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 응답자 82% 그렇지 않다.
스웨덴은 여타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이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은 2016년 이후에도 긍정적인 인식은 변함없다. 2018년 유럽연합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응답자의 76%가 ‘이민을 받는 것은 사회에 긍정적’이며, 93%가 ‘이민을 통해 음식・예술・음악 등 문화가 풍성해진다’고 답해 유럽연합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긍정 응답률을 보였다. 그 밖에 이민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며(응답자 중 69%),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87%)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7) 긍정적인 효과는 경제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경기 부양의 효과가 커서 이민자의 노동시장 유입에 힘입어 스웨덴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질문에 절대 다수인 8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반이민 정서의 기저에 현지 태생의 일자리를 이민자가 빼앗아 간다는 인식이 강한 데 반해, 스웨덴의 반이민 정서는 일자리 경쟁이 아닌 문화적 이질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2014~2017년까지 4년에 걸친 답변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응답자의 성향은 대동소이하나 특이점이 있다. 이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이민자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우려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민자는 단지 스웨덴의 복지를 누리려고 왔다” 항목에서는 46%가 그렇다, 54%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인식의 대립이 팽팽했다. “이민자 그룹의 문화나 전통이 때때로 스웨덴 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항목에 67%가 동의해 문화적 이질성을 느끼는 이가 제법 많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부정 인식의 경우 시간의 폭을 좀 더 넓히면 인식의 변화가 드러나는데, 예테보리 대학의 <1986~2015 스웨덴 트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의 증가가 염려된다는 대답이 2011년 20%에서 2016년 45%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2014년 38%에서 2016년 불과 2년 사이에 45%로 늘었다.8)
이민은 긍정적, 이웃으로는 부정적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 자체에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이민자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반기지 않는 듯하다. 이것은 거주지 분리 현상으로 드러난다. 스웨덴의 주요 도시의 전입 전출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거주 지역에 이민 인구가 늘어나면 원 거주 가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이민자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9)
스톡홀름・예테보리・말뫼 등 스웨덴의 대도시에는 이민자가 절대다수인 동네가 생겼고, 정부 주도 정착 지역 중에는 이민자가 토착 스웨덴인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 스톡홀름 외각의 링케뷔나 텐스타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길을 걸어도 스웨덴 사람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스웨덴인을 보기 어렵다. 인근 학교에는 모든 학생이 이민자로 구성된 학급이 있는가 하면, 스웨덴어를 구사하지 않는 학생이 더 많은 학급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민자와 비이민자가 분리되어 거주하는 지리적 분리가 심해졌으며, 게토가 형성되기도 한다.
스웨덴 부모들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자녀를 학교에 보낼 때는 이민자가 적은 학교를 선택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위한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민자가 많은 학교에 가면 오히려 자녀가 소수민족 그룹이 되는 경우가 있으며, 스웨덴어를 익히는 데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스웨덴 중산층에 걸맞은 “충분히 스웨덴스러운 환경”(tillräckligt svensk miljö)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한 이유다. 고학력, 고소득일수록 거주 지역에 이민 인구가 늘면 이사를 나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거주자가 늘어날 경우에 해당되며 유럽계 이민자의 경우 그 수가 늘어도 원 거주 가구가 이사를 나가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0년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을 뒷받침하는 이민자에 대한 이질감이나 반감이 늘어난 것은 이민자 수가 늘어서라기보다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의 비중이 늘면서 문화적 차이가 크게 부각된 것이라고 보는 쪽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사회 통합의 실패가 스웨덴민주당을 키웠다
과거 1980년대까지 스웨덴의 사회 통합 정책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까지 이민 인구의 절대다수가 유럽에서 건너왔고 그것은 기독교 가치관과 세계대전의 경험 등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종교나 문화, 생김새에 따른 이질감이 덜했다. 거기다 전쟁 이후 스웨덴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중산층이 강해지는 시기라 경제적인 격차도 크지 않았다.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하게 발달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비슷한 문화를 공유했다. 비교적 사회 통합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민 인구의 증가는 과거 반세기 적극적 이민정책에 따른 스웨덴 국정 운영의 결과다. 스웨덴의 정치사에 있어 사민당의 집권 기간이 절대적으로 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당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집권당이 바뀐다고 정책이 바로 뒤집히는 일은 없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진행하다 보니 정책이 실행되기까지 준비 과정이 길고 정책의 연속성이 확보된다.
실제로 연간 이민자의 수가 극적으로 증가한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보수 연정의 집권 기간이었다. 이민정책은 스웨덴 사회 전체의 합의에 기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민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긍정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어떤 정당도 반이민을 주장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눈에 띄게 불거진 거주지 분리 현상은 이민 인구의 사회 통합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민당을 비롯한 기존의 정당은 문제의 핵심을 말하지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국경 검색 강화, 친척 초청 이민 조건 강화 같은 미봉책을 들고 나왔다. 나는 스웨덴민주당이 약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유권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스웨덴민주당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민 인구의 증가와 함께 스웨덴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았고 곳곳에서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스웨덴의 이민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2006년까지 연간 유입 인구의 수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문화적으로 거리감이 먼 지역에서 다수의 난민 이민이 유입되었다. 스웨덴민주당이 세를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들 새로운 이민자 그룹은 비슷한 문화권 출신인 과거 유럽계 이민자에 비해 사회적 통합이 어렵다. 스웨덴 정부는 주택, 고용, 보육 등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년 인구의 1%가 훌쩍 넘는 수의 난민을 받았고 결국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다. 거기에 더해, 언론과 가짜 뉴스를 통해 과다 대표되고 확대 생산되는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에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상황이지만 스웨덴 사회에서 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마치 약자에 대한 공격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어떤 개인도 정당도 드러내 놓고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때 스웨덴민주당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나선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은 반이민을 기치로 의회에 입성했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인종주의 정당의 이미지를 씻어 내고 우파 정당으로 인식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정당을 소개하는 글을 보아도 스웨덴민주당 당원과 의원 가운데 해외 배경을 가진 비율이 매우 크다고 쓰고 있다. 실제로 지지자 중 해외 배경과 스웨덴 태생의 비율은 각각 41%와 59%로 “취약 지구”, “게토”, “출입금지 지구”(No-Go zone)로 불리는 이민 인구 중심 지역에서도 스웨덴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이들이 있다.
스웨덴민주당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 스웨덴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과거에는 차마 할 수 없던 발언,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감히 할 수 없는 표현이 요즘은 공공연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주류가 되고 미디어에 연일 등장하면서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은 그 경계에 서있다.
스웨덴민주당, 극우 정당 아닌 유일한 야당?!
2018년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는 스웨덴민주당의 지지율을 많게는 25%까지 예측했다. 그럼에도 모든 당이 향후 스웨덴민주당과 손잡을 일은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모든 당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스스로 스웨덴의 “유일한 야당”이라 지칭했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 위기, 복지 서비스 질의 저하 등 현재 스웨덴의 혼란은 기존 정당의 실책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어떤 당에 투표해도 결과는 같았다며 스웨덴민주당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2019년 11월 기준 지난 6개월 각 정당의 표심 흐름을 보면 스웨덴민주당은 유일하게 무려 네 정당으로부터 지지율을 흡수하고 있다.
한 나라의 구성원이라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만이나 분노를 품을 수도 있다. 이를 공론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떤 당도 변하는 인구구성과 스웨덴 사회의 갈등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았다. 그 와중에 스웨덴민주당이 물꼬를 튼 것이다. 늘어나는 이민 인구와 사회의 수용력에 대한 우려가 공공연히 퍼져 있었지만 “유일한 야당”인 스웨덴민주당 말고는 불안을 분출할 출구가 없었다.
스웨덴민주당은 이민 정책 재고를 주장하는 우파 인기 영합주의 당으로 분류되지만 스웨덴민주당에 표를 던진 110만 유권자 전체를 반이민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2010년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이후 스웨덴민주당은 반이민의 단일 의제 정당에서 벗어나 범죄 처벌 강화, 학교 시설 개선, 복지 서비스 제고 등 일반 정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책을 다루고 있다. 정당 지지자 분석 자료를 보면 스웨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중산층과 연금 수급자, 중고등 학력, 지방에 거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로 사민당의 지지층과 상당 부분 겹친다. 스웨덴민주당 지지자 중에는 당의 주장대로 이민을 줄이자거나, 이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스웨덴민주당의 여타 정책에 찬성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에 반발하거나 문화 충돌의 두려움을 느끼는 부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은 사민당의 위기
스웨덴의 정당을 좌에서 우의 이념 스펙트럼상에 나열하면 좌파당(Left Party, V), 녹색당(Green Party, MP), 스웨덴사회민주당(Swedish Social Democratic Party, S), 온건당(Moderate Party, M), 중앙당(Centre Party, C), 크리스챤민주당(Christian Democrats, KD), 자유당(Liberals, L), 스웨덴민주당(Sweden Democrats, SD) 순이다.
2006년부터 2018년 사이 있었던 네 차례 총선 결과를 보면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정당 득표율이 하락한 가운데 좌우를 각각 대표하는 사민당은 2006년 35%에서 2018년 28.26%로 6%포인트 하락했고, 온건당은 2010년 30%에서 20%로 10%포인트 하락했다.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고유의 정치색을 지킨 좌파당은 오히려 2018년 선거에서 세를 늘렸다. 중도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인 온건당의 표가 상당수 스웨덴민주당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민당의 표도 적잖이 흘러갔다고 보아야 한다.
단일 정당으로는 온건당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하락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민당의 위기다. 과거 30여 년 스웨덴의 투표 결과를 보면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 범좌파와, 나머지 범우파 정당이 반반의 지지율을 얻으며 한 자리 수 차이로 정권을 얻었다 뺏었다 해왔다. 과거 사민당은 줄곧 40% 이상의 지지율로 정권을 이끌어 왔지만 2002년 선거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이어 왔다.
2010년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정당이 된 이후부터는 스웨덴민주당을 빼고 좌우가 비슷한 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선거 결과를 기준으로 범좌파와 범우파의 지지율은 각각 40%로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스웨덴민주당을 우파로 분류할 경우 전체적인 범좌파 지지율은 1998년 53%에서 2018년 40%로 12%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우파 연정의 지지율은 40%지만 스웨덴민주당을 포함하면 58%가 된다.10) 전체적으로 보자면 좌파 지지 세력이 줄어든 것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은 하나의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형성하지 못하면 연정을 통해 정권을 쥐게 된다. 결국 향후에 사민당이 녹색당, 좌파당과 연정을 구성한다고 해도 범우파가 과반 이상을 점유하게 되어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8년 선거 결과 어느 정당도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연정에서 과반을 형성하지 못했다. 사민당은 우파인 중앙당의 신임으로 겨우 권력을 잡았다. 선거 기간에는 어떤 정당도 스웨덴민주당과 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가을 기독민주당을 시작으로 12월 초에는 우파의 대표 정당인 온건당과 스웨덴민주당이 처음으로 만나 향후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지율 20%의 스웨덴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어떤 정당이든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
지난 100년 간 흔들리지 않는 제1당으로 자리매김 해온 사민당의 지위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지난 12월 초 여론조사에서 스웨덴민주당은 사민당을 3.7% 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다. 다음 선거에서 사민당에 맞서는 우파의 대표 정당이 스웨덴민주당이 될지도 모른다.
스웨덴민주당, 개혁의 동력인가, 불안 요소인가?
그럼에도 스웨덴민주당은 북유럽 이웃 나라의 여타 대중 영합주의 극우 정당과는 다르다. 현실을 부정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하지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지도 않는다. 초기에는 그랬을지언정 모든 문제를 특정 그룹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방식도 벗어났다. 반이민을 전면에 내걸고 세금 감면 등 사회 전반에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덴마크나 노르웨이 극우 정당에 비해 온건할 뿐 아니라, 한 주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단일 이슈 정당의 면모를 벗어나 일반 정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정책을 다루고 있다.
스웨덴민주당이 처음 내걸었던 모토는 “스웨덴을 스웨덴답게”다. 스웨덴민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당의 정책을 살펴보면 스웨덴민주당은 국가주의 보수 정당이라고 표현한다. 스웨덴의 가치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소외 지역 증가, 성범죄와 조직범죄 증가, 종교적 극단주의, 이민자에 대한 과도한 예산 지출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스웨덴의 전통과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책임 있는 이민정책, 범죄자의 형량 강화, 병원과 학교의 복지 서비스 강화와 연금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11)
인터뷰에 답했던 한 중산층 학부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다문화는 좋은 것이지만 내 아이는 “충분히 스웨덴스러운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던 그는 반이민주의자도 스웨덴민주당 지지자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말하는 “스웨덴스러움”은 규범으로 내재해 전형적인 스웨덴인과 이민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스러움에 적응하는 이민자는 환영하지만 일하지 않고 복지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는 이민자는 환영 받지 못한다고 했다. 복지국가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스웨덴민주당은 이민자들이 밀려들어와 스웨덴의 자랑스러운 복지 시스템을 위협한다며, 사민당이야말로 스웨덴의 이상을 저버린 것이라고 한다.
과거 스웨덴민주당과 뿌리가 닿아 있는 인종주의 신나치 조직은 생물학적 스웨덴인을 주장했지만, 진화한 스웨덴민주당은 문화적 스웨덴인으로 프레임을 바꿔 반이민을 주장하는 영리함을 보여 주었다. 과거 사민당의 핵심 지지 세력이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중산층 제조업 남성 노동자가 스웨덴민주당의 대표 지지자가 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스웨덴스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유리된 정치는 힘이 없다. 정치는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이민자의 증가는 겉으로 드러난 구실일 뿐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집값, 아이들의 교육 환경, 안전한 사회 등 삶에서 바로 느끼는 문제다. 다른 정당이 원칙을 말할 때 스웨덴민주당은 일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솔깃한 프레임과 수사로 기존의 정당을 무능력하다며 꾸짖고 나섰다.
정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다. 일상의 문제를 조율하고 해결하는 것은 좋은 정치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또는 인류의 선한 가치를 위해 누군가가 일정 부분 양보를 해야 한다면, 설혹 그 누군가가 다수라고 해도 끊임없이 설득해 내 인간 내면에 있는 보편적인 양심을 일깨워 한 발짝 나아가게 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정치다.
과거 사민당이 1965년부터 10년간 매년 10만 가구의 아파트를 건축한 밀리언프로그램(Miljonprogrammet), 즉 백만 가구 정책의 목적은 단순히 인구 증가에 따라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백만 가구 정책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너머 이민자를 포함한 여러 유형의 사회적 그룹을 한 공간에 수용해 사회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근교에 학교, 병원, 도서관, 커뮤니티 공간 등을 조성해 민주적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지금은 게토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때 지어진 스톡홀름 가장자리 링케비의 아파트는 “지구촌”(Världens by)이라 불렸다. 피차 서로 다를 것 없는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자연스레 이웃이 되었고 스웨덴인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집값도 잡았다.
1968년부터 1986년 사이 올로프 팔메가 수상으로 재임한 10년을 거치며 스웨덴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국제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고 이민자를 포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 사민당이 선도적으로 다문화 개념을 채택해 1975년에는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표방하는 흡수주의를 폐기하고 정부가 다문화를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민과 소수자 정책을 새로 정했다. 이민자 그룹 역시 스웨덴 사회에 융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이민자들이 모여 창업한 스톡홀름의 유명한 케밥 체인점의 이름이 국민케밥(Folketskebab)일 정도로 소속감과 자부심이 있었고, 스웨덴 사회는 호기심과 포용으로 답했다. 유럽연합 국가 중 이민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 사이 반이민 정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유로 난민의 유입과 이에 따른 대처 부실을 들 수 있다. 2006년 이후 1년마다 전체 인구의 1%가 넘는 10만 명 이상의 이민 인구를 받아들였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일자리・복지 등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문화적 거리가 있는 지역의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었으나 적절한 사회 통합 정책이 가동되지 않아 이질감이 커졌다. 기존 정당은 늘어나는 이민 인구에 대한 대비와 사회 통합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민주당이 과거 반이민 단일 의제 정당에서 교육·보건의료·경제·복지 등 주요 쟁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스웨덴의 유일한 야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들고 나온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사민당이 실행했던 백만 가구 정책이나 다문화주의 채택과 같은 선도적 정책의 부재와 비전의 실종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사민당은 위대한 정치를 했다. 현재의 사민당 혹은 어떤 정당이든 간에 위대한 정치를 해내기를, 인류 역사는 진보한다는 낙관성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밖에. <끝>
주석
1) 스웨덴민주당은 원내에 진입한 정당 중 유일한 극우 정당이다. 원외 소수 정당으로 이민자의 원국 복귀를 주장하는 스웨덴대안당(Alternativ för Sverige)이나 네오나치즘을 신봉하는 노르딕저항운동(Nordiska Motståndsrörelsen) 등의 극우 정당도 있지만 지지율이 미미하므로 논외로 친다.
2) 인기 채널인 TV4는 스웨덴민주당의 2010년 선거 광고 영상의 방송을 금지 했다. 스웨덴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광고를 공개했고 조회 수는 100만이 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kRRdth8AHc
3) ”Den 19 september kan du välja invandringsbroms före pensionsbroms. Sverigedemokraterna.”
4) SCB: Statistiska centralbyrån는 스웨덴 통계중앙국의 약자다. 스웨덴의 정부 및 공공기관의 통계자료를 제공한다.
5) 스웨덴 정부 문서와 통계자료를 보면 과거 ‘이민자(invandrare)와 이민 2세’를 합쳐서 지칭할 때 ‘해외 배경’(utländsk bakgrund)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쓰고 있다. 스웨덴 통계청의 지침에 따르면 자료 안에 인종이나 특정 민족에 대한 정보를 드러낼 수 없다. GDPR, Art. 9.
6) 스웨덴 정부의 문서에서 이슬람 문화권 이민자를 지칭할 때 무슬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문화적 거리가 먼 지역 출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연구자로서 직접적인 언어를 두고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사회 통합의 관점에서 특정 그룹을 포용하기 위한 노력을 읽을 수 있다.
7)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유로바로메타 특별호 469회차를 보면 스웨덴 뿐 아니라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질문에 따른 스웨덴과 다른 회원국의 인식 차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Eurobarometer 2018, Integration of immigrants in the European Union, Special Eurobarometer 469, European Commission, Wave EB88.2 – TNS opinion & social. pp. 72-80.
8) 보고서 전문은 예테보리 대학교 SOM 연구소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http://som.gu.se/digitalAssets/1593/1593632_swedish-trends-1986-2015.pdf
9) 린네우스 대학교 엠마 노이만의 사회 분열 연구 참조. Neuman, E 2015, Essays on Segregation, Gender Economics, and Self-employment, Linnaeus University Dissertation No 223/2015.
10) 우수리에 해당하는 2%는 해적당, 페미니스트당 등 원외 정당 득표율이다.
11) 스웨덴민주당 홈페이지 참조.
https://sd.se/vad-vi-vill/
하수정 l 북유럽연구소 소장
정치발전소 회원이다.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공부했다. 지속가능발전을 전공했으며 한 일간지의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다. 지난 여름까지 서울시장의 연설문을 썼다. 저서로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번역), 『지도자들』(공저), 『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