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의 미래를 그리기 위한 씨앗 : 대만 유학생 초청 워크숍 후기

공식 관리자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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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의 미래를 그리기 위한 씨앗 - 대만 유학생 초청 워크숍 후기


정치발전소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


정치발전소는 지난 8월 말 그동안 교류를 이어오던 대만 측 인원들을 한국에 양일간 초청했다. 올해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의 일환이다. 앞선 교류행사가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틀 안에서 한반도·양안 정세를 논의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초청 워크숍은 한반도 문제와 한국 사회의 현안을 대만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동아시아 정치사를 연구하는 대만인 유학생들이 이번 워크숍에 참가했다. 이 중에는 천위다(陳昱達) 등 지난 7월 줌(ZOOM)으로 간담회를 진행한 학생 2명이 있었다. 둘째 날에는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 박사과정 학생도 만났다. 이틀이라는 긴 일정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8.29 임진각 방문

지난달 29일 첫날 일정으로 경기도 파주의 임진각을 찾았다. 1972년 한국 정부가 실향민을 위해 건립한 공간이 관광지로 발전한 곳이다. 방문지는 한반도 분단과 관련된 장소를 찾고 싶었던 대만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결정했다. 우리 중 어느 한 명도 임진각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지라, 그들만큼이나 새로운 관점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강 건너편이 보이는 임진각 전망대에서 시작해 명절날 실향민이 북한의 고향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망배단’, 자유의 다리, 장단역 증기기관차,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등을 관람했다. 1980년대 군사 정권 시절 건립된 조형물과, 민주화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조성된 시설이 혼재돼 있었다. 한쪽에선 ‘북한공산집단’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선 ‘남북 평화’를 이야기하는 모순을 대만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 주제는 한국 정치사로 흘러가게 됐다.

 

대만 사람들 역시 중국어가 병기된 안내 문구를 읽으면서 분단 현실을 묘사하는 각 시설의 미묘한 어조 차이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북한공산집단이라는 표현을 두고는 냉전기 대만에서도 중국을 가리켜 ‘공산비적’(共産匪賊)이라고 불렀었다며 반공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한국 보수·진보 진영의 대북 인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양안 문제를 둘러싼 대만 민주진보당과 국민당의 갈등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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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마치고 천위다에게 소감을 묻자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를 생각하고 방문했지만, 예상과 달랐다”는 답을 들었다. 진먼다오는 타이완섬에선 10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중국 본토와의 거리는 2~10km에 불과한 대만의 접경 지역이다. 진먼다오 주민들은 인접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중화민국’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양안 협력 성향이 강하다는 설명이었다.

 

우리의 임진각은 거주지보단 관광지에 더 가깝지만, 6·25 전쟁 당시 남하한 실향민들이 임진각의 상징적 주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대부분 북한 공산 체제의 학정에 반대해 월남했기 때문에 매우 강한 반공의식을 갖고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진먼다오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서해5도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타 지역과 비교해 대북 위협 인식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똑같은 냉전의 유산을 안고 있음에도 양국의 역사적 맥락이 달리 작동한 결과였다.

 

한국과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배, 냉전과 분단이라는 역사를 공유하지만, 이를 둘러싼 역사·문화적 맥락은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오랜 세월 단일 국가를 유지해 왔던 한민족과 달리 대만에는 ‘본성인’과 ‘외성인’으로 구별되는 국가 정체성 갈등이 존재한다. 아직도 ‘민족적 열망’이 남아 있는 한국과 통일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대만과 한국 사회 양쪽에서 서로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대만 학생들이 한국적 맥락에서의 분단 문제를 이해하는 데 이번 방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랐다.

 


8.30 정치발전소 간담회

다음 날 30일에는 서울 마포구 정치발전소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7월 간담회에선 주로 대만에 대한 질의응답이 주가 됐던 만큼, 이번 대화에선 한국과 관련된 대만 학생들의 질문에 한국인 모임원들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노동, 산업, 정치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질문이 등장했다.

 

대만 학생들은 먼저 "길거리에서 늦게까지 가게가 영업하는” 서울에 대해 질문했다. 일본과 대만에서는 오후 9시가 되면 거리가 조용해진다며, 장시간 노동이 우려되지 않냐고 질의했다. 우리는 사회 안전망 부족이 자영업자, 배달노동자 등 불안정 일자리 노동이 확대되는 요인이 됐으며, 한편으로는 야간 근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은 대기업-중소기업의 이중 구조, 재벌 문제에 대한 한국 노동 운동과 진보 진영의 입장에도 관심을 보였다. 우리 측에선 노동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기를 거부하는 한국 대기업,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는 한국 노동 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언급됐다. 진보 정부 역시 국정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재벌 대기업들과 제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답변도 나왔다.

 

한 대만 학생은 대만 산업이 중소기업이 중심이 돼 지탱하던 경제라며, 대기업-중소기업 격차가 타이완에서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IT산업 발달로 거대 기업이 나오고 있으며, 노동·기업 격차 역시 커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천위다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에서 노동조합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상황이며, 노동법은 확립돼 있지만 개별 기업에선 기준에 미달하는 현실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학생들은 7월 간담회에서도 노동·재분배 이슈가 양안 문제에 밀려 쉽게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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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대만 측의 질문이 집중됐던 분야는 한국의 민주주의였다. 이틀간 대만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등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다룬 영화가 심심찮게 언급된 바 있다. 대만 학생들은 한국의 활발한 집회·시위(데모) 문화,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리버럴 세대(386세대)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을 물었다. 대만 역시 9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해 일부 비판이 존재하지만, 이는 개별 행동에 대한 비판일 뿐 선배 세대로서 존경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독재 정권이 광범위한 대중 운동에 굴복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1987년 장징궈 총통의 계엄령 해제 이후 점진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현재의 한국 정치를 설명하기 위해선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정치 양극화, 세대 갈등, 2024년 비상계엄 사태가 언급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한국·대만의 상호 방문객이 300만 명을 돌파했다.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양국은 여전히 가깝지만 낯선 사이다. 양국의 상호 인식은 대부분 온라인을 통한 표면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전 간담회에서도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만 사회에서 ‘한국은 친중 국가’라는 식의 낙인찍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대만 학생들과 공유한 바 있다. 우리 역시 ‘친일 국가’, ‘혐한 감정’ 등 대만에 대한 피상적 이미지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만연한 상황이다.

 

올해 초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대만 정치·사회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모임원들이 마주했던 어려움도 비슷한 지점이었다.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정치 공동체로서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대만의 정치·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한국어 자료는 많지 않았다. 여러 회에 걸친 교류의 장은 ‘양안 문제’라는 프레임을 넘어 대만 사회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지난달 교토에서 만난 대만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대만공화국’과 ‘중화민국’(中華民國) 사이 정체성에 대해 각자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대만이 한 국가로 인정받길 원하지만, 중국 대륙을 지향하는 중화민국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견이 다른 것으로 이해됐다.

 


동아시아 3국 민주주의 연대의 가능성

그간 정치발전소에서는 동아시아 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 일본, 대만 3국 사이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계속해 왔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 패권의 약화로 대변되는 국제 질서 변동,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속에서 3국의 민주 공동체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워크숍은 동아시아의 ‘대안 질서’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한국·일본·대만 3자 협력이라는 아이디어를 대만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임진각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 측의 생각을 조심스레 꺼낼 수 있었다. 두 나라 사람들 모두 3국이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으나, 강대국 패권 질서의 대안이 될 ‘동아시아 연대’는 어떤 형태가 돼야 할지를 두고 열띤 논의가 벌어졌다. 전전(戦前) 일본이 시도한 위계적 제국 질서를 답습해서도, 미국 태평양 패권의 핵심 플랫폼이었던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동맹 체계의 한계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민족 국가의 한계를 넘어, 국가 연합에 앞서 3국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공동 사회를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지난달 일본 교토대학에서 만난 고마고메 다케시 교수는 국익 논리를 들어 중국의 대만 장악을 은근히 합리화하거나, 대만을 대중 견제 카드로 인식하는 일본 내 흐름에서 ‘내면의 제국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과거 강대국이 ‘나머지 세계’의 땅과 사람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분할하거나 반환하는 것을 합리화하던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대만을 상대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 - '내면의 제국주의 극복을 향하여-대만해협 유사를 둘러싼 단상'을 참고 문헌으로) 이다. 이에 더해 한국과 일본에선 자국의 평화가 동아시아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일국평화론적 민족주의 정서도 감지된다. 그러나 현재 국제 질서에서 3국의 안보는 상호 연결된 것이 현실이다. 강대국 정치 논리가 성행하는 세계에선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 역시 안정과 번영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3국 협력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근의 광주비엔날레 사건처럼 중국 정부의 압박과 개입은 시민사회 간 교류 자체를 봉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3국 협력이라는 큰 틀을 합의하더라도 과거사, 안전보장 등 구체적인 쟁점으로 파고들어 간다면 오랫동안 갈등해 온 쟁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일본·대만 시민사회가 소통과 협력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3국이 민주 공동체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해선 서로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기 때문이다. <끝>.



*정치발전소는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의 평화와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세미나와 교류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정치발전소 이메일 powerplantkr@gmail.com 으로 문의주시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