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장을 모색하며: 고마고메 다케시(駒込武) 교수와의 대담 후기
정치발전소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

정치발전소에서는 올해 초부터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3국(한국, 일본, 대만)이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세미나로, 여섯 번의 독서 모임으로 시작한 뒤 일본과 대만 측 인원들과 교류하며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간세이가쿠인대학교의 요코타 노부코 교수, 월간지 『지평』의 구마가이 신이치로 대표를 만났고 7월에는 도쿄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대만인 학생 두 분과 ZOOM으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세미나 구성원들과 함께 대만근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교토대학의 고마고메 다케시 교수를 찾았다. 고마고메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교류회에는 교토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 네 사람도 함께 자리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시간 넘게 진행된 세미나였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내용이 논의된 자리였다.
한국 사회는 대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지만, 한국과 대만은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 국가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고, 이후 긴 기간의 독재와 이를 극복한 민주화의 역사가 있는 국가다.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대만이 한국의 핵심 우방국 중 하나로 꼽혔던 데에는 이러한 원인도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인과 대만인은 서로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고마고메 교수는 대담의 서두부터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표결, 국회 앞에서 진행된 시위 현장을 대만의 ‘민간 진실과 화해 촉진회’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다고 한다.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 동안 계엄이 선포되어 있었던 국가로, 대만인이 ‘계엄’이라는 말을 대하는 무게감은 일본인과는 분명 달랐다. 특히 이 단체는 계엄령 시기의 인권 탄압과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는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날 민간 진실과 화해 촉진회는 “한국의 의사결정은 민주주의 제도의 강함을 시험하는 것을 넘어, 민주화의 파도를 경험하고 있는 다른 국가에도 중요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적었다.
통일과 분단이라는 문제 역시 대만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대만의 공식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중국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중화민국 자체가 1912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가 1949년 내전에서 패배하며 타이완섬으로 넘어온 것이기 때문에, 중화민국의 지향점은 언제나 중국 대륙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압도적인 인구와 면적의 차이, 또 이제는 중국이 역전해버린 경제력의 문제를 고려하면 대만인이 받아들이는 통일의 의미는 한국인이 받아들이는 통일의 의미와는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현실 자체가 갖는 무게감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대만인 유학생들 역시 각자 분단과 통일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박사과정 학생 장링화(張伶華)는 한국의 분단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특히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한국 청년들의 통일 인식과 다르다는 점에 놀랐다고 전했다. 대만의 경우 통일과 분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해외 거주 화교들의 입장인 만큼, 그 역시 자연스럽게 해외 거주 한국계의 입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으로 보였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입장이 늘어난 것도 한국과 유사했다. 박사과정 학생 장차이웨이(張彩薇)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인 상황이 다른 만큼, 이 다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역시 박사과정 학생인 천신종(陳信仲)은 청년들 사이에서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이 90% 이상일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고마고메 교수는 현재 대만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로, 이들 역시 중국과 완전한 통일을 원하기보다는 강경한 독립 주장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수준일 것이라 말했다.
다만 통일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인이라는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국의 청년 세대와 달리, 대만인들은 ‘중국인’과 ‘대만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의 고민이 대단히 중요해 보였다. 천신종은 대만이 독립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중화민국으로서의 독립과 대만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은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대만의 국민들 중에는 중화민국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이들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타이완섬에서 거주하고 있던 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들이 ‘중화 제국’에 편입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고, 근대 국가의 지배를 받은 것은 오히려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였다. 애초에 타이완섬에 거주하던 이들은 북경어(표준중국어)와는 다른 대만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표준중국어가 보급된 것은 1949년 중화민국이 타이완섬에 넘어온 뒤의 일이다. 대만인들에게는 오히려 표준중국어보다 일본어 교육이 더 먼저 보급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때문에 ‘대만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장제스의 독재 정권이 일본의 식민 지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의미였을 수 있다. 한국에서 1945년의 광복이 한국인에 의한 지배로의 복귀였다면, 대만에서는 일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곧 다른 식민 지배로의 전환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중화민국’의 폐기와 ‘대만 공화국’의 성립이 이루어져야만이 진정한 대만으로서의 독립이 완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집권 정당인 민주진보당의 강령은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목표로 하고 있고, 통일을 지향하는 중국국민당 역시 명칭을 ‘대만공화국’이라 바꾸어야 한다는 청년 당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립 여론에 대한 중국 측의 압박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민진당 역시 독립보다는 ‘현상 유지’ 노선으로 선회하며 현재의 대만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담은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고마고메 교수는 일본의 일반적인 리버럴 진영과는 달리, 한국과 대만이 겪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은 단순히 안보 문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 시민의 권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에 동감했다. 특히 그는 일본 ‘본토(本土, 고마고메 교수는 이 ’본토‘에 오키나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의 시민들은 일본 본토가 평화롭다면 어쨌든 괜찮다는 일국평화주의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동아시아의 평화가 없다면 일본 본토의 평화도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동아시아 3국이 안보 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유념할 점이 두 가지 있다고 부연했다. 우선 안보 위협이라는 면이 극우 정권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마고메 교수는 대만과 한국에서는 독재정권을 타도하면서 만들어진 시민 공동체가 정치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극우 진영의 성장을 경계할 수 있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시민 공동체의 힘이 약하다고 짚었다. 일본이 탈제국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 입장에서 안보 면에서의 동아시아 3국 연대를 주장한다면, 이는 반공 포위망을 재구축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 개혁을 단지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민간 수준의 교류와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역시 고마고메 교수의 의견이었다.
또 한편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오키나와 문제였다. 현재 일본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오키나와의 군사 요새화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오키나와 주민들의 생활 환경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을 반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는 대만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오키나와인들이 대만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동아시아 3국이 중국의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한다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이것이 오키나와인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희생에 기대지 않으면서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고마고메 교수가 제안한 것은 국제기구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의 경우 UN 회원국이 아닌 데다가 ‘하나의 중국’ 원칙 등으로 인해 외교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UN에 대만이 직접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WHO를 비롯해 UN과 연관이 있는 단체에 참관국 형태로 대만이 참여하는 것에 일본이나 한국이 힘을 보태줄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고마고메 교수는 지난해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대국에 기대는 방식의 외교를 멈추자”고 발언한 것을 인용했다. 동아시아 3국의 연대를 넘어 ‘미들 파워’들의 연대가 확산된다면, 그 안에서 대만이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국제기구의 역할이 의심받고 있는 시대, 국제기구를 무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제기구의 역할을 최대한 강화하고 장악력을 넓혀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고마고메 교수는 동아시아 3국의 연대가 단순히 ‘반중’이나 ‘혐중’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남겼다. 중국의 인권 탄압이나 반민주적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중국 전체에 대한 ‘혐오’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의 ‘반중’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간과한다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왜곡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대만 민진당 소속으로 부총통까지 지냈던 정치인 뤼슈렌(呂秀蓮)은 한국의 한 극우 인터넷 미디어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당시 수감되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면까지 청원한 일이 있었다. 지향하는 것이 가치가 아니라 노선과 진영이 된다면 이러한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대만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 한때의 우방국, 중국과 마주해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 계엄과 민주화의 역사를 가진 땅. 아니면 그저 가까운 여행지. 혹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닮은 듯 다른 역사를 가진 대만, 혹은 중화민국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동아시아 민주주의 3국의 연대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갖는 고민을 공유하는 연대의 장이 없다면, 어느 한 국가의 민주와 자유도 쉽게 지켜낼 수 없는 어려운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지 모른다.
정치발전소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
정치발전소에서는 올해 초부터 「동아시아 국제정치 대안모색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3국(한국, 일본, 대만)이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세미나로, 여섯 번의 독서 모임으로 시작한 뒤 일본과 대만 측 인원들과 교류하며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간세이가쿠인대학교의 요코타 노부코 교수, 월간지 『지평』의 구마가이 신이치로 대표를 만났고 7월에는 도쿄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대만인 학생 두 분과 ZOOM으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세미나 구성원들과 함께 대만근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교토대학의 고마고메 다케시 교수를 찾았다. 고마고메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교류회에는 교토대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 네 사람도 함께 자리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시간 넘게 진행된 세미나였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내용이 논의된 자리였다.
한국 사회는 대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지만, 한국과 대만은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 국가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고, 이후 긴 기간의 독재와 이를 극복한 민주화의 역사가 있는 국가다.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대만이 한국의 핵심 우방국 중 하나로 꼽혔던 데에는 이러한 원인도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인과 대만인은 서로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고마고메 교수는 대담의 서두부터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표결, 국회 앞에서 진행된 시위 현장을 대만의 ‘민간 진실과 화해 촉진회’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다고 한다.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 동안 계엄이 선포되어 있었던 국가로, 대만인이 ‘계엄’이라는 말을 대하는 무게감은 일본인과는 분명 달랐다. 특히 이 단체는 계엄령 시기의 인권 탄압과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는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날 민간 진실과 화해 촉진회는 “한국의 의사결정은 민주주의 제도의 강함을 시험하는 것을 넘어, 민주화의 파도를 경험하고 있는 다른 국가에도 중요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적었다.
통일과 분단이라는 문제 역시 대만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대만의 공식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중국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중화민국 자체가 1912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가 1949년 내전에서 패배하며 타이완섬으로 넘어온 것이기 때문에, 중화민국의 지향점은 언제나 중국 대륙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압도적인 인구와 면적의 차이, 또 이제는 중국이 역전해버린 경제력의 문제를 고려하면 대만인이 받아들이는 통일의 의미는 한국인이 받아들이는 통일의 의미와는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현실 자체가 갖는 무게감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대만인 유학생들 역시 각자 분단과 통일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박사과정 학생 장링화(張伶華)는 한국의 분단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특히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한국 청년들의 통일 인식과 다르다는 점에 놀랐다고 전했다. 대만의 경우 통일과 분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해외 거주 화교들의 입장인 만큼, 그 역시 자연스럽게 해외 거주 한국계의 입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으로 보였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입장이 늘어난 것도 한국과 유사했다. 박사과정 학생 장차이웨이(張彩薇)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인 상황이 다른 만큼, 이 다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역시 박사과정 학생인 천신종(陳信仲)은 청년들 사이에서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이 90% 이상일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고마고메 교수는 현재 대만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로, 이들 역시 중국과 완전한 통일을 원하기보다는 강경한 독립 주장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수준일 것이라 말했다.
다만 통일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인이라는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국의 청년 세대와 달리, 대만인들은 ‘중국인’과 ‘대만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의 고민이 대단히 중요해 보였다. 천신종은 대만이 독립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중화민국으로서의 독립과 대만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은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대만의 국민들 중에는 중화민국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이들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타이완섬에서 거주하고 있던 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들이 ‘중화 제국’에 편입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고, 근대 국가의 지배를 받은 것은 오히려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였다. 애초에 타이완섬에 거주하던 이들은 북경어(표준중국어)와는 다른 대만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표준중국어가 보급된 것은 1949년 중화민국이 타이완섬에 넘어온 뒤의 일이다. 대만인들에게는 오히려 표준중국어보다 일본어 교육이 더 먼저 보급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때문에 ‘대만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장제스의 독재 정권이 일본의 식민 지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의미였을 수 있다. 한국에서 1945년의 광복이 한국인에 의한 지배로의 복귀였다면, 대만에서는 일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곧 다른 식민 지배로의 전환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중화민국’의 폐기와 ‘대만 공화국’의 성립이 이루어져야만이 진정한 대만으로서의 독립이 완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집권 정당인 민주진보당의 강령은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목표로 하고 있고, 통일을 지향하는 중국국민당 역시 명칭을 ‘대만공화국’이라 바꾸어야 한다는 청년 당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립 여론에 대한 중국 측의 압박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민진당 역시 독립보다는 ‘현상 유지’ 노선으로 선회하며 현재의 대만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담은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고마고메 교수는 일본의 일반적인 리버럴 진영과는 달리, 한국과 대만이 겪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은 단순히 안보 문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 시민의 권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에 동감했다. 특히 그는 일본 ‘본토(本土, 고마고메 교수는 이 ’본토‘에 오키나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의 시민들은 일본 본토가 평화롭다면 어쨌든 괜찮다는 일국평화주의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동아시아의 평화가 없다면 일본 본토의 평화도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동아시아 3국이 안보 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유념할 점이 두 가지 있다고 부연했다. 우선 안보 위협이라는 면이 극우 정권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마고메 교수는 대만과 한국에서는 독재정권을 타도하면서 만들어진 시민 공동체가 정치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극우 진영의 성장을 경계할 수 있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시민 공동체의 힘이 약하다고 짚었다. 일본이 탈제국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 입장에서 안보 면에서의 동아시아 3국 연대를 주장한다면, 이는 반공 포위망을 재구축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 개혁을 단지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민간 수준의 교류와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역시 고마고메 교수의 의견이었다.
또 한편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오키나와 문제였다. 현재 일본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오키나와의 군사 요새화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오키나와 주민들의 생활 환경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을 반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는 대만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오키나와인들이 대만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동아시아 3국이 중국의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한다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이것이 오키나와인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희생에 기대지 않으면서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고마고메 교수가 제안한 것은 국제기구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의 경우 UN 회원국이 아닌 데다가 ‘하나의 중국’ 원칙 등으로 인해 외교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UN에 대만이 직접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WHO를 비롯해 UN과 연관이 있는 단체에 참관국 형태로 대만이 참여하는 것에 일본이나 한국이 힘을 보태줄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고마고메 교수는 지난해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대국에 기대는 방식의 외교를 멈추자”고 발언한 것을 인용했다. 동아시아 3국의 연대를 넘어 ‘미들 파워’들의 연대가 확산된다면, 그 안에서 대만이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국제기구의 역할이 의심받고 있는 시대, 국제기구를 무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제기구의 역할을 최대한 강화하고 장악력을 넓혀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고마고메 교수는 동아시아 3국의 연대가 단순히 ‘반중’이나 ‘혐중’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남겼다. 중국의 인권 탄압이나 반민주적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중국 전체에 대한 ‘혐오’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의 ‘반중’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간과한다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왜곡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대만 민진당 소속으로 부총통까지 지냈던 정치인 뤼슈렌(呂秀蓮)은 한국의 한 극우 인터넷 미디어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당시 수감되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사면까지 청원한 일이 있었다. 지향하는 것이 가치가 아니라 노선과 진영이 된다면 이러한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대만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 한때의 우방국, 중국과 마주해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 계엄과 민주화의 역사를 가진 땅. 아니면 그저 가까운 여행지. 혹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닮은 듯 다른 역사를 가진 대만, 혹은 중화민국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동아시아 민주주의 3국의 연대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갖는 고민을 공유하는 연대의 장이 없다면, 어느 한 국가의 민주와 자유도 쉽게 지켜낼 수 없는 어려운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