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정당(参政党), 일본판 배외주의 극우정당의 출현인가?
- 생활인의 파시즘인가? 방어적 포퓰리즘인가?
2.8일 밤. 역대 가장 이른 국회해산 후 치뤄진 일본 중의원 총선의 결과가 나왔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다카이치 총리의 높은 인기에 기대어 자민당이 320여석, 유신회의 35석까지 합치면 자민당 연립정권이 350석이 넘는 역대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거전 급하게 합당을 한 중도개혁연합(입헌민주당 + 공명당)은 합계 50여석으로 절반 이상의 의석을 잃었다. 국민민주당 등 야당을 모두 합쳐도 100석이 되지 않는다. 일본 총선 결과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여타의 언론들이 모두 하고 있기에 정치발전소가 여기에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정치발전소 일본총선 취재단은 이번 선거를 일본에서 직접 보고 현지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지점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보려 한다. 하나는 일본판 배외주의 극우정당으로 알려져 있는 ‘참정당’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 진보진영이 처해있는 딜레마에 대한 것이다. 정치발전소 홈페이지에 두 편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며 관련한 영상콘텐츠 역시 제작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연재순서> 참정당, 정말 일본판 배외주의 극우정당의 출현인가? 다카이치 압승의 의미와 진보의 딜레마(예정) 영상 : 일본총선 영상스케치 및 해설(예정) |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영화 <퍼펙트데이즈>는 오랜 습관을 반복하며 살아내는 평범한 중년 일본인 주인공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하고 주변과 조용히 어울리며 또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취향을 소중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본인의 삶. 이 조용한 일본의 삶을 다룬 영화 <퍼펙트데이즈>는 과도한 경쟁과 갈등에 지친 한국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영화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퍼펙트데이즈> 주인공의 삶과 같은 조용한 일본이 요즘 시끄럽다. 큰 변화를 허용하지 않던 일본정치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로 대표되는 자민당의 도약, ‘이민반대’라는 배외주의를 걸고 단숨에 일본정치의 ‘문제아’로 등장한 신생정당인 ‘참정당’, 공명당과 입헌민주당의 다소 의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중도개혁연합’ 등 최근 큰 변화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동료시민이 전하는 파시즘인가?
지난 2월 8일에 치뤄진 일본 총선을 취재하러 가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유심히 보고 싶었던 정당은 바로 <참정당>이었다. <참정당>은 지난해 있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이민정책 반대’를 내걸고 단숨에 원내정당으로 진입한 신생정당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나타나는 난민반대, 이민반대와 유사한 공약을 걸고 일본정치에 큰 충격을 준 정당이기 때문에 한국에도 일본정치에 출현한 본격적인 <극우정당>으로 많이 소개되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이야기되었던 일본정치에 <극우정당>이 출현한 것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지, 그리고 실제 <참정당>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처럼 혐오에 기반한 극우정당, 파시즘의 표출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도착한 첫 날 가장 먼저 오사카 지역에 출마한 참정당 후보들의 지역유세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후보인 나카무라 유키는 전직 프로축구선수이며 현재는 연금생활을 하는 고령자를 모시고 살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본인을 소개한다. 예상과는 달리 매우 차분하게 일본의 평범한 생활인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집중한다. 물가인상, 오르지 않는 임금, 그럼에도 짊어져야 하는 사회보험료에 대한 부담, 고령자들의 경제생활의 어려움 등.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귀를 잡아당길 만한 호소력이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생활인들의 공감을 얻어낸 다음 본격적으로 ‘일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와 룰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을 하며 ‘일본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고 호소한다. 조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 꽤 무서운 이야기를 건넨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정당>의 슬로건은 ‘히토리 히토리가 니혼(ひとりひとりが日本)’ ‘한 명 한 명이 일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감성적 호소가 유세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정당들이 모두 내걸고 있는 소비세 폐지 외에는 <참정당>만의 독자적인 공약이나 정책은 거의 없었다.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자 평범한 자영업자라는 <참정당>의 지역구 후보인 나카무라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유세를 시작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하면서 자민당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다. 자민당의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만 정작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은 바로 자민당이며 거대정당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에 관심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조직표를 가지고 있는 거대정당, 대기업, 종교단체가 아닌 조직표 없이 국민만을 바라보는 <참정당>을 지지해달라며 한국에서도 익숙한 <거대정당 VS 소수정당>의 구도에서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대정당 비판에 집중하다가 유세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외국인들의 민박시설 운영 문제를 이야기 하며 이민정책 반대에 대해서 비판을 시작했다. 여기서 더 본격적인 외국인 혐오발언이 나올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일본이라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게 만들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그런 마음으로 출마했다는 감성적 호소로 넘어갔다. 역시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소비세 폐지’외에 별도의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참정당의 현역 의원이 지원유세를 함께 나온 후지타 유키 후보의 유세는 참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이 본격적으로 동원된 유세였다. 역시 전직 간호사 출신의 평범한 시민임을 강조하는 후지타 후보는 앞서 만나본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생활인임을 강조하며 유권자와 공감대를 만드는데에 집중한다. 지원유세를 나온 참정당의 현역 의원은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에 대한 비판에 먼저 이야기를 집중했다.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은 자민당이며 자민당은 일본경제를 다시 성장시킬 능력이 없다는 비판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민당은 주주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대기업만 성장시키는 불평등한 정책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사실 거의 진보정당의 유세 내용이라 해도 무방했다. 연설의 하이라이트에서는 이민대국을 만든 것도 자민당이라는 비판으로 본격적인 반이민정책을 이야기한다.(하지만 실제로 일본의 외국인노동자 비율은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민을 들여온 세계의 모든 나라는 붕괴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역의원까지 합류한 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정당 만의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급박하게 치루어지는 선거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참정당 자체가 타 정당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였으며 이후 <참정당>의 공보물과 홈페이지 등을 확인해보아도 정당으로서의 정책이나 비전 등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다.
‘인종주의’가 없는 ‘파시즘’인가?
참정당의 유세를 보면서 받은 첫 인상은 한국의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처럼 노골적인 ‘혐오발언’이나 자극적인 행태등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즈음 일본에서 나타났던 <재특회> 등이 주도했던 ‘혐한시위’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후보들 대부분이 본인이 평범한 생활인임을 가장 강조하고 특별히 자극적인 발언 등을 하지 않고 차분하게 생활인들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솔직히 유세 후반부의 반이민정책 이야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주장은 한국의 진보정당들의 유세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유세의 후반부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겪는 생활의 문제의 원인이 주로 외국인들에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명료한 배외주의적 주장을 연결한다. 어쩌면 이를 ‘생활인이 전하는 파시즘’ 또는 ‘평범한 동료시민이 전하는 파시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자들은 눈살 찌푸리게 하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혐오발언들 보다 이런 형식과 내용이 더 위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정당>을 일본정치에 출현한 ‘파시스트 정당’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기에 조금 망설여졌던 이유는 그들의 반이민 주장에서 ‘인종주의’적인 색채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 때문이었다. 오히려 한국의 일부 극우진영이 주도하는 “짱개1) 꺼져!”라는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서울 대림동의 반중국시위가 훨씬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세장에서 참정당의 선거운동원에게 당신들이 반대하는 그 외국인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중국인, 한국인, 이슬람? 그러나 <참정당> 선거운동원의 대답은 우리는 특정 외국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생활을 나쁘게 만드는 외국인들’을 반대한다는 선뜻 이해가지 않는 모호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후에 만난 일본의 진보적 시사월간지 <지평>의 구마가이 대표 역시 <참정당>에서 강한 ‘인종주의’적 요소를 찾기는 조금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만난 다른 전문가 역시 일본은 민족주의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구마가이 대표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극우세력이 ‘스킨헤드’나 ‘혐오발언’등 외적으로 확연히 구별이 되는 것에 반해 <참정당>은 오히려 생활인의 캐주얼함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이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출마한 참정당의 지역후보에는 ‘주부’, ‘회사원’, ‘간호사’ 등 생활인들이 많다. 한편 <지평>의 구마가이 대표를 비롯해 간사이가쿠인대학교의 토미타 코우지 교수 역시 <참정당>의 정책이나 정당으로서의 비젼 역시 아마추어적인 수준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구마가이 대표는 참정당의 ‘배외주의’가 기존 정치에서 이야기 되지 않던 금도를 넘어갔으며 이는 타 정당들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을 우려했다.
생활의 불안에 기초한 ‘방어적 포퓰리즘’인가?
그렇다면 <참정당>이 주장하는 외국인 때문에 ‘나빠지고 있는 일본인의 생활’, 그리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일본’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일본의 평범한 생활인들의 적지않은 유권자가 <참정당>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던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다시 떠올려 보자. 수십년을 반복해왔던 조용하고 규칙적인 일상과 환경. 당장 내일이라도 인공지능AI와 로봇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걱정을 토로하는 한국과 달리 여전히 느리게 변화하며 유지되는 일본인들만의 아날로그적 생활방식. 한국인들이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보며 힐링받는다고 했던 일본인들만의 생활방식과 환경. 바로 그것이 침범당한다고 또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떠할까? 그리고 그 조용한 일상을 침범하는 존재가 주로 외국인들이라고 한다면(사실여부를 떠나서) 일본시민들은 어떤 정치적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인가?
일본은 ‘보수적’인 나라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적’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보수라는 것이 아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을 반복하고 조금씩 맞춰가는 것이 더 지배적인 사회라는 의미다. 일본인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가지 않는다. 익숙한 국내여행을 훨씬 많이 간다. 여권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전체인구의 17%에 불과하니 약 40%에 달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일본사회의 보수성’(역시 이념적 의미의 보수가 아니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잘 보여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 ‘일본사회의 보수성’이 한 인간의 일상과 삶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것의 잔잔한 슬픔과 기쁨에 대한 모습이기도 하다. 바로 그 일상이 국제정세의 변화, 경제상황의 악화, 그리고 생활에서의 갈등 등으로 다양하게 침범당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불안과 불만을 느끼게 되었을 때 정치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평범한 생활인들의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포퓰리즘적 자극을 동원하여 불안과 불만을 대변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꽤 효과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참정당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일본사회의 보수성, 그리고 시민들이 느끼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불안 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참정당의 출현은 ‘파시즘’보다는 ‘방어적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높다. 실제 이들이 주장하는 ‘돌아가야 하는 일본’은 ‘규칙적이고 순수한 일본인의 삶’을 의미하고 이렇게 순수한 일본(일본인이 아니라 일본!)과 나머지를 대비시키는 것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포퓰리즘 연구자 카스 무데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중심이 얇기 때문에 다른 이데올로기와 접착이 용이한 특징이 있다. 그렇게 보자면 향후 참정당으로 대표되는 방어적 포퓰리즘이 더 과격한 주장들과 접목될 위험성도 있다. 실제 참정당 지지자들 중에는 다양한 반사회적 음모론자들도 굉장히 많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밝지만은 않은 참정당의 미래?
하지만 참정당이 정당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참정당 외에도 자민당, 유신회 등 타 정당들 모두 참정당이 처음 제기한 이민정책에 대해서 나름의 입장들을 모두 밝히고 있었다(확인된 시민적 불만에 대한 반응은 정당의 기본상식이기 때문에). 심지어 현장에서 취재한 무소속 후보 조차도 이민정책에 대해서 준비를 더 잘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내걸고 있었다. 이미 이민정책이 참정당만의 아젠다가 아니기에 앞으로 참정당이 차별성을 가지기 어려워 보였다. 한편 참정당은 타 정당과 경쟁할 만한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유세내용도 대부분 감성적 호소에 그치고 있었다. 선거가 반복되면 유권자는 냉정하다. 처음에는 참정당의 생활인 후보들이 신선하고 이민정책에 대한 입장들이 유권자들에게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별성 있는 정책이나 공약들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참정당이 지속적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때문에 간사이가쿠인 대학의 토미타 코우지 교수는 참정당은 이미 “오와콘(オワコン)”(終わったコンテンツ. 끝났다는 의미의 ‘오와리’와 ‘콘텐츠’의 ‘콘’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이미 끝난 콘텐츠라는 의미)이라고 냉정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이미 자민당의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선거에서 참정당에게 투표했던 지지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 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참정당만의 차별성이 이번 선거 이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유세현장에서 본 참정당의 후보들은 공세적이라기보다는 수세적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한국에서도 선거 막바지에 사용하고는 하는 마지막 호소인 “거대정당들의 독점을 막아달라!”는 소수정당들의 전형적인 읍소전략에 참정당 역시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선거결과 역시 참정당은 예상보다는 저조한 15석의 득표에 머물렀다.
하지만 선거결과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참정당에서 출마한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율이 만만치는 않다. 3자구도, 4자구도에서도 지역구에서 1만표 이상을 득표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정도면 공명당의 조직표와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할수도 있다. 실제 참정당이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지역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 ‘공산당을 참조하고 있다!’는 반농담도 나오는 현실임을 고려하면 참정당이 지역에서 조직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여부는 미래에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여기까지 읽고 그럼 고작(!)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2) 같은 문제 때문에 파시스트나 포퓰리즘이 출현한다는 말이냐?고 놀라서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버투어리즘’은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수십년을 유지되어왔던 조용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침해하는 불안은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군사력만이 아니라 경제력에서도 일본을 추월한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의 얼굴로. 수 십년간 도시락을 싸던 익숙한 아침을 당황하게 만드는 쌀값과 물가로도. 100년전 서로 전쟁을 치루었던 동북아시아의 경쟁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들어가는 국제뉴스의 장면으로도. 그리고 그렇게 ‘일본인의 삶과 생활의 흔들림’이라는 일상에서의 불만에 기초한 배외주의가 어쩌면 ‘중국간첩 수천명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에 기대고 있는 한국의 반중혐오보다는 적어도 더 정치적 파괴력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참정당이 만약 정책의 부재, 차별성 부족 등의 난제를 이겨내고 선거를 반복하며 높은 득표를 유지 한다면 이는 분명히 일본사회의 가장 위험한 신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부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비하하면서 부르는 욕설
2) 특정 도시나 지역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주민의 삶의 질이 악화되고, 환경·주거·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이 훼손되는 현상
- 생활인의 파시즘인가? 방어적 포퓰리즘인가?
2.8일 밤. 역대 가장 이른 국회해산 후 치뤄진 일본 중의원 총선의 결과가 나왔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다카이치 총리의 높은 인기에 기대어 자민당이 320여석, 유신회의 35석까지 합치면 자민당 연립정권이 350석이 넘는 역대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거전 급하게 합당을 한 중도개혁연합(입헌민주당 + 공명당)은 합계 50여석으로 절반 이상의 의석을 잃었다. 국민민주당 등 야당을 모두 합쳐도 100석이 되지 않는다. 일본 총선 결과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여타의 언론들이 모두 하고 있기에 정치발전소가 여기에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정치발전소 일본총선 취재단은 이번 선거를 일본에서 직접 보고 현지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지점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보려 한다. 하나는 일본판 배외주의 극우정당으로 알려져 있는 ‘참정당’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 진보진영이 처해있는 딜레마에 대한 것이다. 정치발전소 홈페이지에 두 편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며 관련한 영상콘텐츠 역시 제작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연재순서>
참정당, 정말 일본판 배외주의 극우정당의 출현인가?
다카이치 압승의 의미와 진보의 딜레마(예정)
영상 : 일본총선 영상스케치 및 해설(예정)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영화 <퍼펙트데이즈>는 오랜 습관을 반복하며 살아내는 평범한 중년 일본인 주인공의 일상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하고 주변과 조용히 어울리며 또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취향을 소중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본인의 삶. 이 조용한 일본의 삶을 다룬 영화 <퍼펙트데이즈>는 과도한 경쟁과 갈등에 지친 한국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영화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퍼펙트데이즈> 주인공의 삶과 같은 조용한 일본이 요즘 시끄럽다. 큰 변화를 허용하지 않던 일본정치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로 대표되는 자민당의 도약, ‘이민반대’라는 배외주의를 걸고 단숨에 일본정치의 ‘문제아’로 등장한 신생정당인 ‘참정당’, 공명당과 입헌민주당의 다소 의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중도개혁연합’ 등 최근 큰 변화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동료시민이 전하는 파시즘인가?
지난 2월 8일에 치뤄진 일본 총선을 취재하러 가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유심히 보고 싶었던 정당은 바로 <참정당>이었다. <참정당>은 지난해 있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이민정책 반대’를 내걸고 단숨에 원내정당으로 진입한 신생정당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나타나는 난민반대, 이민반대와 유사한 공약을 걸고 일본정치에 큰 충격을 준 정당이기 때문에 한국에도 일본정치에 출현한 본격적인 <극우정당>으로 많이 소개되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 이야기되었던 일본정치에 <극우정당>이 출현한 것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지, 그리고 실제 <참정당>이 한국에 소개되는 것처럼 혐오에 기반한 극우정당, 파시즘의 표출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도착한 첫 날 가장 먼저 오사카 지역에 출마한 참정당 후보들의 지역유세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후보인 나카무라 유키는 전직 프로축구선수이며 현재는 연금생활을 하는 고령자를 모시고 살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본인을 소개한다. 예상과는 달리 매우 차분하게 일본의 평범한 생활인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집중한다. 물가인상, 오르지 않는 임금, 그럼에도 짊어져야 하는 사회보험료에 대한 부담, 고령자들의 경제생활의 어려움 등.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귀를 잡아당길 만한 호소력이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생활인들의 공감을 얻어낸 다음 본격적으로 ‘일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와 룰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을 하며 ‘일본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고 호소한다. 조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 꽤 무서운 이야기를 건넨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정당>의 슬로건은 ‘히토리 히토리가 니혼(ひとりひとりが日本)’ ‘한 명 한 명이 일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감성적 호소가 유세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정당들이 모두 내걸고 있는 소비세 폐지 외에는 <참정당>만의 독자적인 공약이나 정책은 거의 없었다.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자 평범한 자영업자라는 <참정당>의 지역구 후보인 나카무라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유세를 시작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고 호소하면서 자민당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다. 자민당의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만 정작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은 바로 자민당이며 거대정당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에 관심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조직표를 가지고 있는 거대정당, 대기업, 종교단체가 아닌 조직표 없이 국민만을 바라보는 <참정당>을 지지해달라며 한국에서도 익숙한 <거대정당 VS 소수정당>의 구도에서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대정당 비판에 집중하다가 유세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외국인들의 민박시설 운영 문제를 이야기 하며 이민정책 반대에 대해서 비판을 시작했다. 여기서 더 본격적인 외국인 혐오발언이 나올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일본이라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게 만들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그런 마음으로 출마했다는 감성적 호소로 넘어갔다. 역시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소비세 폐지’외에 별도의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참정당의 현역 의원이 지원유세를 함께 나온 후지타 유키 후보의 유세는 참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이 본격적으로 동원된 유세였다. 역시 전직 간호사 출신의 평범한 시민임을 강조하는 후지타 후보는 앞서 만나본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생활인임을 강조하며 유권자와 공감대를 만드는데에 집중한다. 지원유세를 나온 참정당의 현역 의원은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에 대한 비판에 먼저 이야기를 집중했다.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것은 자민당이며 자민당은 일본경제를 다시 성장시킬 능력이 없다는 비판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민당은 주주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대기업만 성장시키는 불평등한 정책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사실 거의 진보정당의 유세 내용이라 해도 무방했다. 연설의 하이라이트에서는 이민대국을 만든 것도 자민당이라는 비판으로 본격적인 반이민정책을 이야기한다.(하지만 실제로 일본의 외국인노동자 비율은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민을 들여온 세계의 모든 나라는 붕괴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역의원까지 합류한 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정당 만의 공약이나 정책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급박하게 치루어지는 선거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참정당 자체가 타 정당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였으며 이후 <참정당>의 공보물과 홈페이지 등을 확인해보아도 정당으로서의 정책이나 비전 등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다.
‘인종주의’가 없는 ‘파시즘’인가?
참정당의 유세를 보면서 받은 첫 인상은 한국의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처럼 노골적인 ‘혐오발언’이나 자극적인 행태등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즈음 일본에서 나타났던 <재특회> 등이 주도했던 ‘혐한시위’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후보들 대부분이 본인이 평범한 생활인임을 가장 강조하고 특별히 자극적인 발언 등을 하지 않고 차분하게 생활인들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솔직히 유세 후반부의 반이민정책 이야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주장은 한국의 진보정당들의 유세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유세의 후반부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겪는 생활의 문제의 원인이 주로 외국인들에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이 사라지고 있다’는 명료한 배외주의적 주장을 연결한다. 어쩌면 이를 ‘생활인이 전하는 파시즘’ 또는 ‘평범한 동료시민이 전하는 파시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자들은 눈살 찌푸리게 하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혐오발언들 보다 이런 형식과 내용이 더 위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정당>을 일본정치에 출현한 ‘파시스트 정당’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기에 조금 망설여졌던 이유는 그들의 반이민 주장에서 ‘인종주의’적인 색채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 때문이었다. 오히려 한국의 일부 극우진영이 주도하는 “짱개1) 꺼져!”라는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서울 대림동의 반중국시위가 훨씬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세장에서 참정당의 선거운동원에게 당신들이 반대하는 그 외국인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중국인, 한국인, 이슬람? 그러나 <참정당> 선거운동원의 대답은 우리는 특정 외국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생활을 나쁘게 만드는 외국인들’을 반대한다는 선뜻 이해가지 않는 모호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후에 만난 일본의 진보적 시사월간지 <지평>의 구마가이 대표 역시 <참정당>에서 강한 ‘인종주의’적 요소를 찾기는 조금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만난 다른 전문가 역시 일본은 민족주의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구마가이 대표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극우세력이 ‘스킨헤드’나 ‘혐오발언’등 외적으로 확연히 구별이 되는 것에 반해 <참정당>은 오히려 생활인의 캐주얼함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이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출마한 참정당의 지역후보에는 ‘주부’, ‘회사원’, ‘간호사’ 등 생활인들이 많다. 한편 <지평>의 구마가이 대표를 비롯해 간사이가쿠인대학교의 토미타 코우지 교수 역시 <참정당>의 정책이나 정당으로서의 비젼 역시 아마추어적인 수준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구마가이 대표는 참정당의 ‘배외주의’가 기존 정치에서 이야기 되지 않던 금도를 넘어갔으며 이는 타 정당들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을 우려했다.
생활의 불안에 기초한 ‘방어적 포퓰리즘’인가?
그렇다면 <참정당>이 주장하는 외국인 때문에 ‘나빠지고 있는 일본인의 생활’, 그리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일본’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일본의 평범한 생활인들의 적지않은 유권자가 <참정당>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던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다시 떠올려 보자. 수십년을 반복해왔던 조용하고 규칙적인 일상과 환경. 당장 내일이라도 인공지능AI와 로봇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걱정을 토로하는 한국과 달리 여전히 느리게 변화하며 유지되는 일본인들만의 아날로그적 생활방식. 한국인들이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보며 힐링받는다고 했던 일본인들만의 생활방식과 환경. 바로 그것이 침범당한다고 또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떠할까? 그리고 그 조용한 일상을 침범하는 존재가 주로 외국인들이라고 한다면(사실여부를 떠나서) 일본시민들은 어떤 정치적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인가?
일본은 ‘보수적’인 나라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적’이라는 것은 이념적으로 보수라는 것이 아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을 반복하고 조금씩 맞춰가는 것이 더 지배적인 사회라는 의미다. 일본인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가지 않는다. 익숙한 국내여행을 훨씬 많이 간다. 여권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전체인구의 17%에 불과하니 약 40%에 달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일본사회의 보수성’(역시 이념적 의미의 보수가 아니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잘 보여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 ‘일본사회의 보수성’이 한 인간의 일상과 삶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나가는 것의 잔잔한 슬픔과 기쁨에 대한 모습이기도 하다. 바로 그 일상이 국제정세의 변화, 경제상황의 악화, 그리고 생활에서의 갈등 등으로 다양하게 침범당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불안과 불만을 느끼게 되었을 때 정치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평범한 생활인들의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포퓰리즘적 자극을 동원하여 불안과 불만을 대변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꽤 효과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참정당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일본사회의 보수성, 그리고 시민들이 느끼는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불안 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참정당의 출현은 ‘파시즘’보다는 ‘방어적 포퓰리즘’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높다. 실제 이들이 주장하는 ‘돌아가야 하는 일본’은 ‘규칙적이고 순수한 일본인의 삶’을 의미하고 이렇게 순수한 일본(일본인이 아니라 일본!)과 나머지를 대비시키는 것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포퓰리즘 연구자 카스 무데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중심이 얇기 때문에 다른 이데올로기와 접착이 용이한 특징이 있다. 그렇게 보자면 향후 참정당으로 대표되는 방어적 포퓰리즘이 더 과격한 주장들과 접목될 위험성도 있다. 실제 참정당 지지자들 중에는 다양한 반사회적 음모론자들도 굉장히 많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밝지만은 않은 참정당의 미래?
하지만 참정당이 정당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참정당 외에도 자민당, 유신회 등 타 정당들 모두 참정당이 처음 제기한 이민정책에 대해서 나름의 입장들을 모두 밝히고 있었다(확인된 시민적 불만에 대한 반응은 정당의 기본상식이기 때문에). 심지어 현장에서 취재한 무소속 후보 조차도 이민정책에 대해서 준비를 더 잘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내걸고 있었다. 이미 이민정책이 참정당만의 아젠다가 아니기에 앞으로 참정당이 차별성을 가지기 어려워 보였다. 한편 참정당은 타 정당과 경쟁할 만한 특별한 정책이나 공약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유세내용도 대부분 감성적 호소에 그치고 있었다. 선거가 반복되면 유권자는 냉정하다. 처음에는 참정당의 생활인 후보들이 신선하고 이민정책에 대한 입장들이 유권자들에게 새롭게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별성 있는 정책이나 공약들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참정당이 지속적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때문에 간사이가쿠인 대학의 토미타 코우지 교수는 참정당은 이미 “오와콘(オワコン)”(終わったコンテンツ. 끝났다는 의미의 ‘오와리’와 ‘콘텐츠’의 ‘콘’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이미 끝난 콘텐츠라는 의미)이라고 냉정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이미 자민당의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선거에서 참정당에게 투표했던 지지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 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참정당만의 차별성이 이번 선거 이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유세현장에서 본 참정당의 후보들은 공세적이라기보다는 수세적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한국에서도 선거 막바지에 사용하고는 하는 마지막 호소인 “거대정당들의 독점을 막아달라!”는 소수정당들의 전형적인 읍소전략에 참정당 역시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선거결과 역시 참정당은 예상보다는 저조한 15석의 득표에 머물렀다.
하지만 선거결과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참정당에서 출마한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율이 만만치는 않다. 3자구도, 4자구도에서도 지역구에서 1만표 이상을 득표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정도면 공명당의 조직표와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할수도 있다. 실제 참정당이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지역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 ‘공산당을 참조하고 있다!’는 반농담도 나오는 현실임을 고려하면 참정당이 지역에서 조직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여부는 미래에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여기까지 읽고 그럼 고작(!)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2) 같은 문제 때문에 파시스트나 포퓰리즘이 출현한다는 말이냐?고 놀라서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버투어리즘’은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수십년을 유지되어왔던 조용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침해하는 불안은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군사력만이 아니라 경제력에서도 일본을 추월한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의 얼굴로. 수 십년간 도시락을 싸던 익숙한 아침을 당황하게 만드는 쌀값과 물가로도. 100년전 서로 전쟁을 치루었던 동북아시아의 경쟁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들어가는 국제뉴스의 장면으로도. 그리고 그렇게 ‘일본인의 삶과 생활의 흔들림’이라는 일상에서의 불만에 기초한 배외주의가 어쩌면 ‘중국간첩 수천명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에 기대고 있는 한국의 반중혐오보다는 적어도 더 정치적 파괴력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참정당이 만약 정책의 부재, 차별성 부족 등의 난제를 이겨내고 선거를 반복하며 높은 득표를 유지 한다면 이는 분명히 일본사회의 가장 위험한 신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부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비하하면서 부르는 욕설
2) 특정 도시나 지역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주민의 삶의 질이 악화되고, 환경·주거·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이 훼손되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