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정치의 현장 | ④ 인사청문회를 ‘청문’한다.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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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에 대한 정당들의 입장은 정당 간 차이가 아니라 오로지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의 대립은 시민의 대결로 이어진다.

고위 공직자 적격성 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의 의미는 사라지고, 지지자와 반대자만 존재하는 유사 내전 상황으로 돌입하게 된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의회의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제도가 반정치의 온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의회 정치의 현장」을 연재하며

“국회에 대한 불신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뭔가요?” 누가 물으면 “국회에 대한 불신이라는 말을 안 쓰면 됩니다.”라고 답한다. 우리 사회에서 국회만큼 욕을 많이 먹는 곳도 없을 것이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건만 칭찬은 가뭄에 콩 나듯 듣고, 비난은 장마철 콩나물 자라듯 듣는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쉽게 비난하며, 그것이 정의롭고 공익적인 일이라고 착각한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어 입법부의 권한을 줄였을 때 나타날 사회적 결과는 어떤 것일까? 강자들의 권한은 더 강해지고, 약자들의 권리는 더 줄어들 것이다. 입법부가 가진 모든 권한은 시민의 대리자로서 부여받은 것이다.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입법부가 위임받은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의회정치 현장에서 본, 살아 있는 정치를 전하려 한다. 국회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국회는 오늘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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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정치의 현장 ④
인사청문회를 ‘청문’한다.

글쓴이 ㅣ 박선민 보좌관


여당과 야당만 있는 정치

A. 청와대의 사전 검증 부실에 따른 결과: 참여정부에서는 전체 후보자 중 8.4%만이 임명 동의안 부결이나 지명 철회, 청문회 전·후로 사퇴, 청문 보고서 미채택을 하였으나 이명박 정부는 26.2%, 박근혜 정부는 30.4%로 대폭 증가(박남춘 2014, 15).1)


B. 33.3%.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 청문 보고서가 미채택된 비율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15.2%)의 2배가 넘는 수치로 인사청문회가 본연의 기능을 잃고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A)는 2014년 7월 열린 유인태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주최의 토론회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 과연 제도 탓인가?”에서 참여정부 인사 수석 출신인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발제한 내용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인사 청문 보고서 미채택률이 높은 것은 청와대의 사전 검증 부실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B)의 언급은 2019년 6월 『국회보』에 개재된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글의 일부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청문 보고서 미채택률이 높은 것은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 대해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발언이 정반대다. 두 발언의 시간차 5년 동안 바뀐 것은 민주당이 집권 정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C. 국민들 사이에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 능력 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후보자의 흠집 내기가 극에 달해서 그 결과 인격 파괴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에 여야를 떠나 수많은 인재들이 인격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았고 심지어는 가정이 파괴되기까지 했습니다. (중략) 야당 위원님들은 정책 능력 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흠집 내기에 전력투구하였습니다. 자주 일방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후보자에게 답변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그 반증입니다.


D. 현행 청문회는 도덕성에 치중한 나머지 직무 적합성 검증의 부재, 후보자 및 가족들의 개인 사생활 침해, 지나치게 짧은 청문회 기간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E. 인사청문회를 통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단순한 ‘신상 털기’가 아니다. 언론의 검증을 ‘신상 털기’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신상 털기’라는 표현은 공적인 인물에 대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며 공직을 담당할 후보자를 언론이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촉박한 청문회 기간, 부실한 검증 자료 제출 등으로 인사청문회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여건에서 공직자의 적합도를 검증하는 데 언론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중략) 문제는 언론의 철저한 검증 보도가 아니라 문제 사안을 사전에 걸러 내지 못한 인사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결국 ‘신상 털기’란 비판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 실패와 인사 시스템의 붕괴를 언론 탓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C)와 (D)는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흠집 내기를 일삼고 있다고 한다. 후보자와 가족의 사생활 침해도 언급하고 있다. (E)는 철저한 도덕성 검증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며, 이를 신상 털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전 검증 실패와 인사 시스템 붕괴를 언론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각각 어느 정당 의원의 발언일까?


(C)는 나성린 의원(한나라당)이 2009년 9월 ‘국무총리 정운찬 임명 동의안 처리를 위한 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D)는 권성동 의원(한나라당)이 2011년 2월 대정부 질의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E)는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2014년 『관훈저널』에 쓴 기고문이다(박남춘 2014b).


언급한 내용만 보면 어느 정당 소속 의원의 발언인지 구분이 안 간다. 2019년,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 이 발언은 그대로 상대를 향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당’ 의원들은 청문회의 도덕성 검증이 과도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야당’ 의원은 신상 털기가 아니라 공적 검증이라고 주장한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정당들의 입장은 정당 간 차이가 아니라 오로지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의 대립은 시민의 대결로 이어진다. 시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화해 불가능한 적대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고위 공직자 적격성 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의 의미는 사라지고, 지지자와 반대자만 존재하는 ‘유사 내전’ 상황으로 돌입하게 된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의회의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제도가 반정치의 온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여당과 야당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여당일 때는 야당 시절을 잊고, 야당이 되어서는 여당일 때를 망각하면서, 끝없이 상대를 적대시한다면 좋은 정치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박상훈 2018, 167).



인사청문회는 악마의 절차?

인사청문회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임명된 고위 공직자의 불법·편법 사실이 연이어 드러나는 등 자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도입이 제안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공약한 뒤 2000년 6월, 16대 국회에 이르러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첫 인사청문회는 같은 달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대상으로 열렸다.


<사진 설명> 2000년 6월 26일 개최된 헌정사상 첫번째 인사청문회.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서리가 청문위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출처_영상기록관.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3년 1월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통해, 이른바 ‘4대 권력 기관장’이라 불렸던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을 청문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어 모든 국무위원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인사 청문 대상자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2006년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처음으로 실시된다.2)


노 대통령은 “(인사 청문) 제도의 도입은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고 인사에 있어서 공정성과 객관성, 절차의 신중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며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정도를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도 같이 일하기 곤란하다.”고 했다(<오마이뉴스> 2005/04/06). 노 대통령은 이 혹독한 시험대의 첫 대상자로 유시민 장관을 올렸다.


유 장관은 나의 첫 인사청문회 대상자이기도 했다. 당시 유 장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못지않게 뜨거웠다. 유 장관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어 다른 장관 후보자들보다 이틀 뒤에야 내정자로 발표될 수 있었다. 평소 거침없는 발언이 족쇄가 된 것이다. ‘1・2 개각 파동’으로까지 불리는 갈등 상황에서 유 장관은 열린우리당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넘치는 의욕에 비해 역량이 부족한 젊은 정치인에게 있을 수 있는 오류로 너그럽게 이해하고 관용해’ 달라고 부탁했다(<노컷뉴스> 2006/01/09). 유 장관이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여당의 반대 기류는 누그러졌지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며 한 달 가량 등원하지 않았다.


마침내 열리게 된 인사청문회 날, 회의장에는 숨쉬기도 힘들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유 후보자는 2대 8 가르마로 머리를 얌전히 넘기고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서를 하던 날,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본 회의장에 들어서 복장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만큼 자유로웠던 그가 아닌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짧은 웃음이 스쳐 갔다. 인사청문회는 그의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진지했다. 오후 8시까지 온종일 계속되었고, 다음날 오전에도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내가 속한 의원실도 불타오르는 사명감으로 그의 모든 것(?)을 살폈다. 안타깝게도(?)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부적절한 주식 투자, 탈세, 논문 표절 등 이른바 ‘도덕성’ 측면에서 문제 삼을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져 있어 책을 많이 판 줄 알았는데 재산도 많지 않았다. 흔한 암 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그에게 혀를 내둘렀다. 정책 질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준비한 질의는 ‘의료 영리화’에 대한 입장, ‘성평등 의식’ 등이었다.


결론적으로, 유시민 후보자의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보험료 때문이었다.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자격이 변동된 즉시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납부했어야 하는데 1년 뒤에야 신고한 것은 복지부 장관으로 부적격 사유라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었다. 정확한 제도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격 변동자의 98%가 후보자와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그의 사과와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사흘 뒤, 대통령은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다(<오마이뉴스> 2014/07/10).


유 장관의 사례는 인사청문회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후보자의 자질과 무관하게 야당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인사청문회를 활용한다는 의견과,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인사청문회가 무의미하니 국무위원에 대해서도 국회의 동의권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이런 논란은 인사청문회마다 반복된다.



제도 개선보다 정치의 공간을 넓혀야

현재 인사 청문 대상은 국무위원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그리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합동참모의장, 한국은행 총재, 특별 감찰관, 한국방송공사 사장 등 63인이다.


근거대상자주관국회 역할
2000.6.23
인사청문회법 제정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13인인사청문회 특위국회 동의 필요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인사청문회 특위국회 선출
2003.2.4. 개정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2005.7.29. 개정대통령과 대법관이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6인, 국무위원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2007.12.14. 개정합동참모의장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2008.2.29. 개정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2012.3.21. 개정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총재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2014.5.28. 개정특별 감찰관, 한국방송공사 사장소관 상임위원회국회 동의 필요 없음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은 국회의원 13인으로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여 인사 청문을 실시한다. 헌법에 따라 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대상자는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인사 청문을 실시하고, 적격 여부에 대한 의견을 담아 경과 보고서를 채택하는데(여야 간 합의를 못하면 경과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대통령이 수용할 의무는 없다.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은 이후 정국 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사법부 고위 공직자에 비해서 국무총리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더 까다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 후보자는 전체의 20%에 달하는 반면, 인사 청문 제도가 실시된 이래 낙마한 대법관 후보자는 1명, 헌법재판소장은 2명,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1명뿐이었고, 대법원장 후보자는 단 1명도 낙마하지 않았다(전진영 2017).


미국의 경우는 반대이다. 미국은 법률에 의해 설치된 공직 중 헌법에 별도의 규정이 없는 경우는 모두 상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대상이 되는 직위는 1,141개에 달한다. 그런데 미국은 각료보다 사법부에 대한 인준이 더 엄격하다. 대통령이 임명한 각료에 대한 인준 거부 비율은 2% 미만이며 1900년대 이후 장관 후보자 인준을 거부한 것은 1925년, 1959년, 1989년 세 차례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연방 대법관 후보자는 1789년부터 2008년까지 158명 중 36명이 인준을 받지 못했다. 인준 거부 비율이 22.8%에 달한다. 연방 대법관은 종신직이고, 행정부의 정책 수행을 견제하거나 대통령과 의회 간 분쟁 조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철저히 검증한다는 것이다(전진영 2017, 17). 미국은 상원에서 인준이 거부되면 대통령은 2주 안에 다른 후보자를 지명해야 한다. 상원의 인준을 받아 임명된 고위 공직자는 대통령이 임의로 파면할 수 없으며 파면 시에도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원은 인준을 신중히 할 수밖에 없으며 대통령도 인준을 통과할 인물을 선택하게 된다(김창준 2017, 4-5).


<사진 설명>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에 대한 상원 인준 청문회(confirmation hearing) 장면. 출처_위키 미디어.


대통령과 야당의 경쟁의 장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 인사청문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다’는 극단적 무용론도 있지만, 대체로 제도 개선의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지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 여론재판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거론되던 인물들이 인사 청문 요청서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잇따라 낙마하자 나온 발언이었다. 새누리당도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제도”라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회 인사 청문회 제도를 정비해 결과적으로 기준을 완화하자는 의견이다. 후자의 방안 중 하나는 후보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청문회를 이원화하자는 것이다. 1차는 비공개로 해 도덕성을 검증하고, 2차는 공개로 해 업무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하자고 한다.


현행법으로도 신상 보호는 가능하다. <인사청문회법> 제14조에 따라 국가 기밀에 관한 사항,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한 경우, 기업 및 개인의 정보 누설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은 비공개로 할 수 있다. 제15조 공직 후보자 등의 보호 조항에 따라 후보자, 증인, 참고인 스스로 비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제16조에 따라 변호사, 변리사, 의사, 약사, 종교의 직에 있었던 경우 등 업무와 연관된 비밀과 국가 기밀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제도가 미비해서 ‘신상 보호’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운영에 달려 있다. 정치적 타협의 영역이다.


제도 개선은 반대급부에서 필요하다. 증인 또는 감정인은 허위 진술을 할 경우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 반면, 인사 청문 공직 후보자는 고의로 허위 진술을 해도 처벌할 수 없다.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증인과 감정인은 처벌하는데, “공직 후보자인 본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할 것을 맹서합니다.”라고 선서한 후보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면 답변을 포함하여 후보자 허위 진술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형사적 제재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이는 소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형사책임보다 정치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도 개선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정치적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은 행정부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입법부와 협력하여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되려면 입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은 이를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거부권은 힘이 있지만,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조정과 타협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인사 검증은 찬성과 반대 양자택일이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가 협력의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악마의 절차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할 권한이 입법부에 있으므로 정부는 인사권 행사에 더욱 신중하게 된다. 임명에 실패하면 정치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자신이 충분한 능력과 도덕성,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좋은 기회다. 국정 운영의 방향을 놓고 후보자와 여야가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인사청문회는 본래 이런 것이다.



인력 충원의 통로, 정당

고위 공직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인사청문회는 사실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유쾌한 업무는 아니다. 다른 이의 삶을 의심의 눈으로 들여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인사 청문 요청서가 오면서 시작된다. 인사 청문 요청서에는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병역 신고 사항, <공직자윤리법>에 의한 재산 신고 사항, 최근 5년간의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사항, 범죄 경력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된다.3) 공식 자료가 오면 재산 내역, 주소지 변동 상황을 살핀다. 후보자의 논문, 저서, 언론 인터뷰, 칼럼, 관련 기사도 모두 확인한다. 자료를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도덕성 검증은 생활 전체에 녹아있는 삶의 태도를 확인하는 절차다. 외형적으로는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병역기피 등이 공직자로서 문제가 되는 삶의 태도다.4)


한번은 우울증으로 공익 근무 요원으로 복무했던, 후보자의 자녀가 병역기피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었다. 정신적 사유는 당시 일부 고위층이 사용하던 편리한 병역 면탈 방법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복무 기간 중 작성한 일지 전체를 제출받아 제대로 근무했는지 확인부터 했는데, 후보자 측에서 연락이 왔다. 자녀의 증상이 악화될까 염려된다며 이 문제는 다루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고민에 빠졌다. 본인 또는 직계가족의 병역기피는 고위 공직자의 명백한 결격사유다. 검증을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정말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언급해도 될까? 도덕성 검증은 사생활과의 경계선에 있기에 질의를 준비하는 사람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만약 무언가 비열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옳기 위한 수단으로 윤리를 이용하는 것이 갖다 준 결과’라고 했다(베버 2013, 205). 인사청문회를 할 때면 다시금 떠올리는 말이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죄과를 따지는 데 몰두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서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외국 국적자인 자녀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것에 대해 질의한 적이 있다. 진 장관의 자녀는 한국 국적을 포기해서 건강보험 자격이 없는데, 2004년과 2006년에 총 8차례에 걸쳐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받은 건강보험 혜택은 9만 원에 불과했다. 1회 방문에 1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이는 고의적으로 혜택을 누렸다기보다 건강보험 무자격자임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한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지적을 해야만 했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바로 사과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지적된 내용은 우리의 질의와 대동소이했다. 장관 수행을 못할 정도의 결격사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고, 인사 청문 보고서 채택은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고위 공직자의 자격 기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는 허용되고, 어떤 경우는 안 될까? 도덕과 정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객관적 기준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전제는, 애초에 완벽한 인사 검증을 할 수는 없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사 검증은 완전무결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보편적 시민들의 ‘평균적 결함’을 기준으로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 과정일 뿐이다. 이런 인사 검증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된 낯선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명인이라 하여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모습과 실제 삶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실제 생활이 이미지와 다른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정치발전소에서 주관한 ‘유럽 민주주의 기행’의 일환으로 2015년 독일 기민당(Christlich-Demokratische Union : CDU)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민당의 정치인 충원 구조에 대한 질문에 “어릴 때부터 당에서 활동하면 네트워킹이 생긴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동안 이런 식으로 정당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와 정당의 리더가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교수, 변호사, 전문 직종이 정치가가 되는 것은 미국에서는 자유롭지만 독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인은 정책을 다루는 사람으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당 모임에 참여하고 활동을 해야 정당 리더로 선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정당의 청소년 조직 출신 인물이 지방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치 지도자는 당 안에서 성장하는 구조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어느 날 갑자기’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도 정치를 하려는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때 정치에 입문한다고 한다. 스웨덴은 좌파 정당에서부터 우파 정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당이 청년 조직과 정치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질적인 정치인 충원의 통로가 된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정당의 청년 조직에 있다가 지방 정치를 거쳐 중앙 정치로 진출하여 국회의원, 장관, 총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정당 안에서 시간이 걸려 성장하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다 알게 된다. 이들의 실력과 업무 수행 능력은 성장 과정에서 검증된다. 고위 공직자 적격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미지에 가려지지 않고 명성에 휩쓸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정당이 인력 충원의 통로가 되면 좋은 점은, 스스로 인사 검증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정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영광과 부에 이르도록 하는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조심성 있게, 어떤 사람은 저돌적으로, 어떤 사람은 난폭하게,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어떤 사람은 참을성 있게,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행동한다.’고 했다(마키아벨리 2014, 336-337). 목적에 다다르는 길은 여러 방식이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정치가의 본질적 습성이다. 더 큰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더 높은 직위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미래의 자신에게 누가 될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사적)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더 큰 (정치적)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미래를 위해 절제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는 모든 문제에 최고의 판단을 할 만큼 충분히 현명하지는 않다. 그래서 제도로서의 ‘인사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당들은 자신들이 집권했을 경우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정당의 정체성에 입각하여,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실현한 사람이 정당 안에 있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성은 통치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정당이 집단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박상훈 2018, 308). 책임 있는 정당정부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정당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실천해 온 사람.

정당 안에서 당원들에 의해 신망 받아 온 사람.

정당 안에서 정치를 배우고, 당과 함께 성장해 온 사람.

다음 정부는 이런 사람을 준비하기 바란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하고 싶다.

<끝>


주석

1) ◦참여정부 청문회 대상 공직 후보자 71명 중 부결, 지명 철회 사퇴(청문회 전, 후) 3명(4.2%), 미채택 후 임명 3명(4.2%), 합계 6명(8.5%).

◦이명박 정부 청문회 대상 공직 후보자 103명 중 부결, 지명 철회 사퇴(청문회 전, 후) 10명(9.7%), 미채택 후 임명 17명(16.5%), 합계 27명(26.2%).

◦박근혜 정부 청문회 대상 공직 후보자 46명 중 부결, 지명 철회 사퇴(청문회 전, 후) 7명(15.2%), 미채택 후 임명 7명(15.2%), 합계 14명(30.4%).

단, 2014년 6월 30일 기준, 중선관위 상임위원은 통계에서 제외.

2) 첫 번째 대상은 이종석(통일부), 김우식(과학기술부), 이상수(노동부), 정세균(산업자원부), 유시민(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관 후보자였다.

3) <인사청문회법>

제5조(임명 동의안 등의 첨부 서류) ① 국회에 제출하는 임명 동의안 등에는 요청 사유서 또는 의장의 추천서와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여야 한다.

1.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2. 공직자등의병역사항신고및공개에관한법률의 규정에 의한 병역 신고 사항

3. 공직자윤리법 제10조의2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재산 신고 사항

4. 최근 5년간의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사항

5. 범죄 경력에 관한 사항

4) 문재인 정부는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 전입 등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제시했음.


참고문헌

● 김창준. 2017. “미국과 한국의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 비교.” 안민석 의원실 주최 토론회 <미국 인사청문회>(6월 22일).

● 마키아벨리, 니콜로. 2014.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박남춘. 2014a. “박근혜 정부 인사참사 과연 제도 탓인가?” 유인태 의원실 주최 토론회(7월 16일).

● 박남춘. 2014b. “공직과 국회에서 본 언론의 인사검증 보도.” 『관훈저널』 132호(가을호).

● 박상훈. 2018. 청와대정부. 후마니타스.

● 베버, 막스. 2013.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후마니타스.

● 전진영. 2017. “국회 인사 청문 제도의 쟁점과 개선 방향.” 안민석 의원실 주최 토론회 <미국 인사청문회>(6월 22일).

● 전진영. 2017.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운영을 둘러싼 쟁점”(07/13). 국회입법조사처.

● “노 대통령 ‘국회 청문회 못 버티면 같이 일하기 곤란’.” <오마이뉴스>(2005/04/06)

● “유시민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에게 보낸 편지 전문.” <노컷뉴스>(2006/01/09)

● “인사청문회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이중 잣대.” <오마이뉴스>(2014/07/10)


박선민  l 보좌관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했던 2004년 이래 줄곧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진보정당 최장수 보좌관이자 유일한 여성 보좌관이다. 정치가 좋아져야 약자들의 권리도 보장된다는 믿음을 버팀목 삼아 단단한 널빤지에 못을 박는 심정으로 일하는데, 때때로 망치를 집어던지고 싶어 한다. 다행히 왼손이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유머 있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느냐’를 ‘좋은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는 말을 즐겨 쓴다. 『복지국가 여행기: 스웨덴을 가다(2012), 불편할 준비(공저, 2018)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