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갈등을 국회 안으로

‘첫 번째’에 관한 기억은 언제나 강렬하다. 더 나은 경험을 하더라도 미숙했던 처음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나의 첫 번째 법안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안>이다.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발의한 현애자 의원실 1호 법안이다.
2001년, 설날 연휴였다. 노부부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리프트에 올랐다. 막내네 집에서 둘째네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역사가 있는 2층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와이어가 끊어졌다. 7미터 아래로 그대로 추락해 할머니는 숨지고 할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우리가 올라가마” 마지막까지 자식들을 위했던 노부부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1) 리프트가 낡아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 오이도역은 개통한 지 6개월여밖에 안 된 곳이었다. 리프트 자체의 안전성 문제였다. 1988년 패럴림픽을 앞두고 장애인 이동 편의 증진을 명분으로 도입된 휠체어 리프트는 오이도역 사고 이전에도, 사고 이후에도 숱한 인명사고를 냈다.
1) MBC뉴스데스크, 2001-01-23, “자식보러 왔다가 노부부 참변”

오이도역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째서 장애인은 외출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분노의 마음은 조직이 되었다. ‘오이도역 장애인수직리프트 추락 참사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싶다” 구호가 거리에 퍼졌다. 그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출범했다. 서울역 선로를 막고, 이순신 동상에 현수막을 걸고, 굵은 쇠사슬로 서로의 목과 휠체어를 묶고, 싸우고 또 싸웠다. 바람은 하나, 단지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법안을 발의하게 된다. 2001년 6월부터 받은 서명 55만 4천여 건도 2004년 12월 22일에 이르러 비로소 국회에 전달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은 그런 해였다.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자 행정부도 법안을 제출한다. 하지만 정부안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이동권의 핵심인 저상버스 도입을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는데 머물러 형식적 입법이라는 반발을 샀다. 장애인단체와 함께 준비한 우리 의원실 법안은 저상버스 의무 도입이 핵심이었다.
법안 발의까지는 ‘의지’만으로 가능했는데 문제는 통과였다. 민주노동당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힘을 더 크게 모아야 했다. 그래서 구성한 것이 《장애인이동보장법 제정 추진 국회의원모임》이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무소속 등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데 동의한 의원들이 50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 모임은 법안 통과에 큰 힘이 되었다. 2004년 12월 29일, 마침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재적 182명, 찬성 182명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한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해 통과시킨 ‘첫 번째’ 법안이다.
이 법의 주인공은 사망사고를 개인의 불행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힘을 모으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국회를 통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당사자들이다. 실제 《장애인이동권연대》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 입법추진 공동대책위원회》는 천막농성, 단식농성, 버스 타기, 백만인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진행했다. 우리의 역할은 사회적 갈등을 국회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싸움의 공간을 거리에서 국회로 이동시켰다. 땀과 눈물과 분노와 간절하고 절박한 바람이 담긴 3년의 투쟁을 입법으로 연결했다.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법안은 정당의 역할에 대한 증명이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면, 또는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여겨지면 당사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된다. 선거와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지면 투쟁은 더 과격해지고 언어는 더 거칠어진다. 정치는 가장 평화로운 갈등 해결 방법이다. 입법은 가장 안정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다. 나의 첫 번째 법안이 남긴 교훈이다.
이 법이 제정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2023년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은 38.9%에 그치고 있다. 서울(66.7%)을 제외하면 50%를 넘긴 지역이 하나도 없다. 울산은 14.6%, 인천은 18.8%에 불과하다.2) 저상버스 도입은 의무 조항이지만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나마 시내버스는 낫다. 2024년 8월 기준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한 고속·시외버스는 1대도 없다. 2019년 4개 구간 10대 고속버스가 시범 운행을 했으나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운행이 중지되었다.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 2023년도 말 법정 운행 대수 도입률은 100.5%다. 수치로만 보면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3) 그런데 평균 3시간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 중증보행장애인 150명당 1대(이상)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 이하 지역은 100명당 1대만 있으면 된다. 광역철도는 현행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2) 국토교통통계누리, 저상버스 도입현황, 2025,.3.27 검색
3)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2024.8.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전부개정법률안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모든’ 장애인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하다. 개선을 요구하면 행정부는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 ‘검토 중이다’라고 답변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동권’ 보장에 관한 법안을 제정했지만, 사회는 여전히 단단한 벽과 오르지 못할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은 2013년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이하 BF)’ 구현을 의무로 하는 「여객운송법」을 통과시켰다.4) BF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접근·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환경을 말한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들도 100% 실현해야 하고, 만약 경제적·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정해진 기간 안에 100% 실현할 수 없는 지자체는 그 이유를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실제로 구현했다. 독일의 버스는 모두 저상버스이고, 오래된 역사가 많은 지하철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이동편의시설을 모두 갖추었다. 이제 시각장애인의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처럼 ‘지켜지는 법’을 만들고 싶다.
4) “교통약자 이동편의 정보관리시스템 구축 ISP 수립 최종보고서”, 2023년, 국토교통부. p.90.
법은 통과가 아니라 시행으로 완성된다. 언젠가 스페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본 모든 시내버스는 저상버스였고 정류장에 설 때마다 바닥을 낮춰 경사판을 내렸다. 휠체어 이용자나 유모차가 없어도 그랬다. 저상버스의 경사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모두가 편안했다. 법과 제도의 강제를 기꺼이 수용하는 사회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법은 자랑스러운 것이었지만, 통과에서 멈춰버렸다.
‘첫 번째’에 관한 기억은 언제나 강렬하다. 더 나은 경험을 하더라도 미숙했던 처음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나의 첫 번째 법안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안>이다.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발의한 현애자 의원실 1호 법안이다.
2001년, 설날 연휴였다. 노부부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리프트에 올랐다. 막내네 집에서 둘째네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역사가 있는 2층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와이어가 끊어졌다. 7미터 아래로 그대로 추락해 할머니는 숨지고 할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우리가 올라가마” 마지막까지 자식들을 위했던 노부부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1) 리프트가 낡아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 오이도역은 개통한 지 6개월여밖에 안 된 곳이었다. 리프트 자체의 안전성 문제였다. 1988년 패럴림픽을 앞두고 장애인 이동 편의 증진을 명분으로 도입된 휠체어 리프트는 오이도역 사고 이전에도, 사고 이후에도 숱한 인명사고를 냈다.
1) MBC뉴스데스크, 2001-01-23, “자식보러 왔다가 노부부 참변”
오이도역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째서 장애인은 외출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분노의 마음은 조직이 되었다. ‘오이도역 장애인수직리프트 추락 참사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싶다” 구호가 거리에 퍼졌다. 그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출범했다. 서울역 선로를 막고, 이순신 동상에 현수막을 걸고, 굵은 쇠사슬로 서로의 목과 휠체어를 묶고, 싸우고 또 싸웠다. 바람은 하나, 단지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법안을 발의하게 된다. 2001년 6월부터 받은 서명 55만 4천여 건도 2004년 12월 22일에 이르러 비로소 국회에 전달되었다. 민주노동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은 그런 해였다.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자 행정부도 법안을 제출한다. 하지만 정부안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이동권의 핵심인 저상버스 도입을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는데 머물러 형식적 입법이라는 반발을 샀다. 장애인단체와 함께 준비한 우리 의원실 법안은 저상버스 의무 도입이 핵심이었다.
법안 발의까지는 ‘의지’만으로 가능했는데 문제는 통과였다. 민주노동당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힘을 더 크게 모아야 했다. 그래서 구성한 것이 《장애인이동보장법 제정 추진 국회의원모임》이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무소속 등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데 동의한 의원들이 50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 모임은 법안 통과에 큰 힘이 되었다. 2004년 12월 29일, 마침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재적 182명, 찬성 182명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한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해 통과시킨 ‘첫 번째’ 법안이다.
이 법의 주인공은 사망사고를 개인의 불행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힘을 모으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국회를 통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당사자들이다. 실제 《장애인이동권연대》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 입법추진 공동대책위원회》는 천막농성, 단식농성, 버스 타기, 백만인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진행했다. 우리의 역할은 사회적 갈등을 국회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싸움의 공간을 거리에서 국회로 이동시켰다. 땀과 눈물과 분노와 간절하고 절박한 바람이 담긴 3년의 투쟁을 입법으로 연결했다.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법안은 정당의 역할에 대한 증명이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면, 또는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여겨지면 당사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된다. 선거와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지면 투쟁은 더 과격해지고 언어는 더 거칠어진다. 정치는 가장 평화로운 갈등 해결 방법이다. 입법은 가장 안정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다. 나의 첫 번째 법안이 남긴 교훈이다.
이 법이 제정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2023년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은 38.9%에 그치고 있다. 서울(66.7%)을 제외하면 50%를 넘긴 지역이 하나도 없다. 울산은 14.6%, 인천은 18.8%에 불과하다.2) 저상버스 도입은 의무 조항이지만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조치가 없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나마 시내버스는 낫다. 2024년 8월 기준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한 고속·시외버스는 1대도 없다. 2019년 4개 구간 10대 고속버스가 시범 운행을 했으나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운행이 중지되었다.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 2023년도 말 법정 운행 대수 도입률은 100.5%다. 수치로만 보면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3) 그런데 평균 3시간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 중증보행장애인 150명당 1대(이상)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 이하 지역은 100명당 1대만 있으면 된다. 광역철도는 현행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2) 국토교통통계누리, 저상버스 도입현황, 2025,.3.27 검색
3)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2024.8.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전부개정법률안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모든’ 장애인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하다. 개선을 요구하면 행정부는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 ‘검토 중이다’라고 답변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동권’ 보장에 관한 법안을 제정했지만, 사회는 여전히 단단한 벽과 오르지 못할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은 2013년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이하 BF)’ 구현을 의무로 하는 「여객운송법」을 통과시켰다.4) BF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접근·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환경을 말한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소도시들도 100% 실현해야 하고, 만약 경제적·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정해진 기간 안에 100% 실현할 수 없는 지자체는 그 이유를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실제로 구현했다. 독일의 버스는 모두 저상버스이고, 오래된 역사가 많은 지하철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이동편의시설을 모두 갖추었다. 이제 시각장애인의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처럼 ‘지켜지는 법’을 만들고 싶다.
4) “교통약자 이동편의 정보관리시스템 구축 ISP 수립 최종보고서”, 2023년, 국토교통부. p.90.
법은 통과가 아니라 시행으로 완성된다. 언젠가 스페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본 모든 시내버스는 저상버스였고 정류장에 설 때마다 바닥을 낮춰 경사판을 내렸다. 휠체어 이용자나 유모차가 없어도 그랬다. 저상버스의 경사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모두가 편안했다. 법과 제도의 강제를 기꺼이 수용하는 사회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법은 자랑스러운 것이었지만, 통과에서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