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일기] 서문, 2024년 12월 3일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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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발전소의 오랜 회원이자 이사를 역임했던 박선민 보좌관이 <박선민의 보좌관 일기>를 연재한다. 국회는 민주주의정치에서 주권의 첫 번째 공간이며 시민들과 사회의 갈등의 최전선이다. 그 최전선에서 매일매일을 고군분투하는 보좌진들의 삶과 고민, 정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어떤 것인지 이보다 더 잘 말해줄 이는 없다고 확신한다. 즐겁게 때로는 뜨겁게 함께 읽기 위해 연재를 싣는다. - 정치발전소

 

박선민 (17~22대 국회 보좌관)

2004년부터 현재까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을 국회에서 보냈다. 이쯤이면 정치에 통달해야 할 것 같은데, 여전히 어렵고 두렵다. 젊었을 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러던가 말던가”를 입에 달고 산다. 범례로, 그러던가 말던가 할 일 한다, 그러던가 말던가 법안 낸다, 그러던가 말던가 밥 먹는다, 그러던가 말던가 퇴근한다 등이 있다.

 


서문, 2024년 12월 3일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모처럼 정시에 퇴근하여 시장에서 붕어빵과 콩나물과 두부를 샀다. 매콤한 콩나물 제육볶음과 두부조림에 갓 지은 옥수수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건조되길 기다리며 느긋이 텔레비전을 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왔다. 처음엔 시사프로그램의 자료화면인 줄 알았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의원님 메시지였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실제 상황이었다. 비.상.계.엄.

 

맨 먼저 든 생각은 국회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국회로! 국회의원들이 구금되거나 체포되기 전에 신속히 모여야 한다. 비상 의총을 소집해야 한다. 의원님도 같은 생각이셨다. ‘지금 국회로 갑니다.’ 의원님 메시지가 왔다.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신고 나갈 준비를 하며 손은 바쁘게 <헌법>을 검색했다. 계엄해제 규정부터 확인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헌법 제77조다.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해제 요구가 가능하고, 국회가 요구하면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 의무규정이다. 휴, 다행이다. 해제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계엄법>을 살펴봤다. 계엄 선포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무효 아닌가. 국회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던, 찾아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계엄법>을 난생 처음 읽었다. 제2조제5항,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4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通告)하여야 한다.” 국회에 통고를 했는지, 언제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경비계엄 중에 굳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선포한다고 되어 있다. 적과의 교전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 잊고 살았던,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공포가 몰려왔다. 전쟁만 아니면 수습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만 아니면.

 

<헌법>

제77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계엄법>

제2조(계엄의 종류와 선포 등) ①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구분한다.

②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

③ 경비계엄은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

④ 대통령은 계엄의 종류, 시행지역 또는 계엄사령관을 변경할 수 있다.

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⑥ 국방부장관 또는 행정안전부장관은 제2항 또는 제3항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

 

제4조(계엄 선포의 통고) 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通告)하여야 한다.

 

빠르게 움직였지만, 국회에 도착하니 이미 봉쇄되었다. 의원회관 쪽 출입문은 열려있다더니 아니었다. 열린 문을 찾아 국회를 한 바퀴 돌았다. 경찰들이 모든 출입문을 막고 있었다. 본청에서 제일 가까운 출입문에서 들어가려 시도했다. 직원인데 왜 못 들어가냐고 강하게 항의했더니 머뭇대던 경찰들이 길을 터주려 한다. 갑자기 안쪽에 있던 상관으로 보이는 이가 뚫리지 말라고, 막아야 한다고 소리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국회 신분증 소지자는 출입이 가능했는데 방금 지침이 바뀌어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명령대로 할 뿐이라고 했다. 지시를 누가 했는지, 책임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묵묵부답이다.

 

문으로 걸어 들어가긴 어려워 보였다. 담벼락을 따라 움직였다. 국회도서관 쪽 경찰이 느슨하게 배치된 곳에서 담을 넘었다. 담을 넘는 건 생각보다 쉬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도 넘을 수 있었다. 젊은 날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문 근처에 오니 출입 통제가 풀렸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잠깐 기다리라고 말을 해주던가. 하지만 열렸던 정문은 얼마 안 가 다시 통제되었다. 명령이 엇갈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잠시 출입이 허용된 덕에 많은 인원이 국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날 국회 정문을 ‘잠시’ 열었던 명령권자는 훈장 줘야 한다고, 혼자 주장해 본다.

 

본청으로 갔다. 로텐더홀에서 의결 정족수가 차길 기다렸다. 군부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설마 했는데 국회 운동장에 헬기가 착륙했다. 특전사였다. 진짜 계엄이었다. 본청에 있던 보좌진과 당직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문을 막았다.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계엄해제 안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안건을 의결할 때까지 군인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해서는 안 되었다. 새벽 1시 2분, ‘계엄해제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한고비 넘어섰다. 박수와 환호가 절로 나왔다. 이제야 화가 났다. 군인들이 바로 나간 것도 아니다. 이로부터 계엄군이 국회 경내에서 완전히 퇴각할 때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해제 공고는 느리고도 느려 새벽 5시 40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본청 로텐더홀 로비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동이 트고 나서도 집에 갈 수가 없었다. 2차 계엄의 공포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군의 움직임을 계속 살폈다.

 

오래 곱씹었다. 계엄이라니, 계엄군이라니. 계엄이 선포될 것은 물론, 국회에 계엄군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현실을 압도했다. 왜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우리의 정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지난 20년 무엇을 위해 일해왔던 것인지,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고 싶었던 꿈은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내가 안일했던 것일까? 우리가 나태했던 것일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