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민의 보좌관 일기] 19.노동조합이 만든 정책 2/2

202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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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노동조합이 만든 정책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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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라는 심정으로 행정부에 ‘합의할 때까지’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말하자면 ‘끝장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2018년 2월의 일이다. 이때부터 한 달에 두 번 이상 회의를 진행했다. 결론이 날 때까지 멈추지 않기로 했다. 6월에 이르러 마침내 제정법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조문 작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돌고 돌아 합의에 이르렀지만, ‘넘어야 할 산’은 행정부만이 아니었다.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등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구하는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법안을 수정했다. 당초에 발의한 법안의 원안을 고집하지 않았다.


2018년 10월 새로운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발의했다. 특별법, 개정법에 이어 세 번째 법안 발의였다. 처음 발의했던 법안은 하루 전날 철회했다. 행정부와 이미 다 합의해서 마련한 수정안이었음에도 심사를 위해서는 또다시 5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2019년 3월 보건복지위원회 심사를 거쳐 4월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2011년 보건의료노조의 제안이 2019년 결실을 맺었다. 노동조합과 정치의 멋진 공조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8만 5천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조합원들은 간호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약사, 행정사무연구직, 시설관리, 영양사, 조리, 청소, 정신 보건전문요원, 기술 기능직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인력확충 운동을 전개했다. 법 제정 이후 2021년에는 <9.2 노정합의>를 통해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과 ‘직종별 인력 기준’ 마련의 포석을 깔았다. 정부 측의 합의 이행이 지연되자 2025년 7월 총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부와 실무 협의를 거쳐 파업은 철회했다) 보건의료노조의 노정 합의는 산별 교섭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이자 사회적 대화의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기업별 노동조합-기업별 교섭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임금협약 등이 노동자들의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최초의 산별노조답게 기업별 교섭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고, 노정 합의는 그 결과물 중 하나였다.1)


노동조합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조합원의 이익을 위한 것인데, 보건의료노조의 활동은 그와 동시에 사회에 공적 기여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결합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보건의료정책을 가장 잘 구현하는 실력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기능했다. 이들의 활동은 뿌리가 깊다. 2005년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이뤘으며, 2009년 ‘보호자 없는 병원 운동’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제도화되었다. 2010년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2014년 의료민영화 저지 운동, 2023년 ‘병원비보다 비싼 간병비’ 문제 제기 등 굵직한 의제를 주도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과 의료정책을 일치시켰고, 시민들의 요구를 노동조합의 이해관계에 녹여냈다. 보건의료노조는 공공 영역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활동을 보여줬다.


알수록 놀랍고, 볼수록 자랑스러운 보건의료노조는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정치적 진출을 시도했다. 정치적 변화기에 격랑 속에 뛰어든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 전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는 통합진보당을 창당한다. 새로운 통합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에 전략공천을 확대했고,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서기호 등이 외부 영입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명부는 당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명부(일반, 장애인, 여성), 개방형 전략명부(외부영입 인사), 청년비례 명부로 구성되었다. 홀수 번호는 여성이어야 했고, 진보정당이 정한 장애 할당도 유지했다. 따라서 번호 배정이 매우 복잡했는데, 1∼2번은 일반명부, 3번은 청년 할당, 4∼6번은 개방형 명부, 7번 장애 할당, 12번 전략명부, 14번 개방형 명부를 제외한 8∼16번은 당내명부, 17번 장애 할당, 18번 개방형 명부, 19∼20번 일반명부 등의 순서였다. 모든 순번의 홀수는 여성이었다. 투표 결과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1번 후보가 되었다. 일반명부 여성 중 최다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일반명부 여성 중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후보의 순번은 9번이 되었다. 규정상 청년, 장애 할당과 전략공천명부, 남성 일반명부 다음 번호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일반명부 여성 다득표자인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1번이 되었다. 당선권에서 멀었다. 산별노조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정당은 사실상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2)


설상가상 통합진보당은 경선 과정에서 유령당원, 대리투표 등 광범위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일반명부 후보자와 당선자는 사퇴하거나 이후 당 해산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했다. 외부에서 영입한 전략공천 후보자들만 ‘제명’ 절차를 거쳐 새로운 정당 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했다. 정당의 뿌리가 흔들리다 못해 송두리째 뽑혀버렸다. 비례대표 후보 선출이 정당을 대표할 사람이 아니라 정파 간 경쟁이 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다수를 점하고 있던 정파는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위법·편법적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다수의 결정이라는 민주적 원리를 악용했다. 외부영입 전략공천의 기준도 모호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정진후 후보는 외부 영입자였지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출신 나순자 후보는 일반명부였다. 전자의 조합원인 교직원들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당원 가입을 할 수 없었지만, 후자의 조합원들은 당원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원이 되어 열심히 뛰었던 조합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들의 대표가 사퇴하는 상황을 두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여파는 노동조합과 정당 모두에게 컸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상상한다. 이때 보건의료노조의 위원장이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되어 노동조합과 정당의 ‘배타적 지지’ 관계가 강고해졌다면, 그렇게 노동 정치의 새로운 기반을 형성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다르지 않았을까. 정당의 성패를 뒤바꿀 한순간을 택하라면 ‘하지 않았어야 하는 일’보다 ‘했어야 하는 일’을 택하겠다. 그것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 산별노조 위원장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 했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결의를 통해 배출한 노동조합의 실질적 대표자가 선출직 정치인이 되어 노동조합의 정책을 확장하는 안정적 구조를 만들었어야 한다. 농민, 장애인, 여성 모두 같은 구조를 만들었어야 한다. 그렇게 정당의 기반을 강화 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노동정치란 무엇인지, 노동조합의 정치적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 누구도 답하기 어려워졌지만, 아마도 보건의료노조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다. 국회 안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조끼가 보일 때마다 혼자 반가워하는 이유다.


<보좌관 일기>


아흔아홉 번 좌절해도, 한 번의 보람으로 일한다. 논의 8년 만에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소수정당 의원실에서 제정법 하나 통과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엉엉 울면서 1박 2일 동안 말할 수 있다. 이 법은 특히 힘들었다. 19대 때 발의했다 아무런 진전 없이 폐기되었고, 20대 때 특별법을 냈다가 제정법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 「의료법」과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냈다가, 논의 끝에 대안을 만들어 다시 제정법을 발의했다.


비교섭단체인 우리는 이 법안을 법안소위 안건으로 올리기도 쉽지 않아 요청하고, 요청하고, 또 요청하여(*100) 겨우 안건으로 상정시켰고, 이제 되나 했더니 갑자기 수석전문위원이 딴지를 걸고, 법안소위 위원 중 한 분이 반대하여 오늘 아침까지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를 넘어섰다. 이 법은 ‘보건의료인력 수급과 지원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보건의료인력과 의료기관종사자에 대해 지원’하도록 하는 법이다. 보건의료노동조합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법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의 피·땀·눈물이 베어있다. 

이 맛에 정치한다. 보람차다! 

(2019년 3월 28일)


 1) 출처 :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https://bogun.nodong.org/about/#start

2) 통합진보당 비례순서는 1번 윤금순(여성 명부), 2번 이석기(일반명부), 3번 김재연(청년비례 명부), 4, 5, 6번 각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개방형 명부), 7번 조윤숙(장애인명부), 8번 이영희(일반명부), 9번 오옥만(여성 명부), 10번 노항래(일반명부), 11번 나순자(여성 명부), 12번 유시민(전략명부), 13번 윤난실(여성 명부), 14번 서기호(개방형 명부), 15번 황선(여성 명부), 16번 문경식(일반명부), 17번 박영희(장애인명부), 18번 강종헌(개방형 명부), 19번 김수진(여성 명부), 20번 윤갑인재(일반명부) 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