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복지국가

‘복지국가를 만들자’는데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착하게 살자’와 비슷한 말 같다. 그런데 복지국가 모습은 다양하다. 공공부조가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사회보험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사회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도 있다. 복지국가 모델은 나라마다 정치적 이행경로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도 정치적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복지체제는 서구의 복지국가와 조금 다른 경로로 발달해왔다. 서구의 복지체제는 일반적으로 국가, 시장, 가족으로 구성되는데, 한국은 여기에 원조가 추가된다. 원조에 의존한 복지는 애초에 시혜적이었고,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기능했기에 고도로 발전하기 어려웠다. 원조 이후 경제성장을 주도한 군사정부는 맨 먼저 참전 군인과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다음으로 ‘생활보호법’을 제정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체제가 형성되면서 ‘노동계층’은 주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서구의 복지국가와 가장 큰 차이였다.
1960년대 복지정책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잔여적 서비스에 머물렀으며 민간이 담당했다. ‘노동력의 재생산’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복지정책은 국가 개입을 최소화했다. 사실상 정책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이 절대 목표였다. 경제성장 목표에 도움이 되는 범위 안에서만 사회복지 제도가 필요했다. 1964년 4대 보험 중 산재보험이 제일 먼저 도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500인 이상 대규모 광업 및 제조업부터 적용했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면 자본은 ‘손실’이 발생하고, 국가 경제와 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그다음의 필요는 건강보험(의료보험)이었다.
권위주의 정부가 이룬 고도의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가져왔다. 재분배는 본디 노동계급의 강력한 요구로 획득되는 정치적 결과물인데, 권위주의 정부의 성장정책은 노동 억압을 기반으로 했기에 계급적 요구가 반영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는 경제성장의 낙수효과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때 증세를 통해 복지제도를 도입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세출과 세입축소를 동시에 추진해 복지국가와 정반대의 길로 가버렸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이와 같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세금을 덜 낼 수 있도록 소득세 공제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제개혁을 요구한 것은 야당(현 민주당)과 노동계다. 노태우 정부는 분배의 공평성을 위해서는 세금감면이 아니라 공적 복지확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화 흐름에 밀린(?) 노태우 정부는 결국 요구대로 ‘감세’하는 세제개혁을 단행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이 가능해졌는데, 노동자들이 교섭할 정도의 힘을 가진 곳은 주로 대기업이었다. 노동자에게 임금인상과 기업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물적 기초를 갖춘 곳도 대기업이었다. 기업별로 교섭이 이뤄지면서 대기업들은 고임금과 함께 기업 내 복지를 확대했고, 대기업 노동자들은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필요를 덜 느끼게 되었다. 복지제도의 역진적 구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함께 형성되었다.
‘선성장 후분배’를 내세운 개발국가 복지체제는 1990년에 이르러 멈춘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빈곤율은 더 이상 완화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격차는 더욱 커졌다. 한국 복지체제는 삼중구조로 분화되었다. 공적 사회보험의 혜택을 모두 받고, 민간보험·사적연금 등을 통해 개인적 보장까지 더해 받는 첫 번째 집단, 사적 보장 없이 최소한의 사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두 번째 집단, 공공부조 외에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세 번째 집단이다. ‘고용상태’가 ‘어떤 집단’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과거의 고용상태가 노후의 빈곤을 좌우했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할 때, 이전에는 어떤 제도를 개선하자, 어떤 제도를 강화하자고 말했다. 주로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였다. 20대 국회에 이르러 윤소하 의원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로 했다. 사회복지 영역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공히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해왔는데, 사회서비스 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서비스의 양은 늘리되,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는 도외시했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내기 딱 좋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단기간은 그럴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한결같기는 어렵다.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하지만, 서비스를 받는 사람보다 ‘일하는 사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빠른 길로 뛰어가기 보다 모두가 갈 수 있는 길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한 의정활동 사례를 소개한다.
① 독거노인생활관리사
극심한 무더위는 노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폭염 특보가 발령되면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 조치를 내린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게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하거나 전화 통화로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원래 주 1회 직접 방문, 주 2회 전화를 통한 안전 확인과 현황조사, 복지 서비스 연계, 치매 등록자에 대한 투약 확인 및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하루 5시간, 주 5일 근무하는 단시간 근로자인데 전국에 약 8천 명이 있고, 담당하는 독거노인은 약 140만 명에 이른다(2016년). 생활관리사들은 복지부 지침에 따라 폭염 기간 중 휴일·공휴일 상관없이 매일 안부를 확인하고 결과를 보고했다. 2016년 폭염 특보 발효일수는 전체 평균 38.1일, 휴일·공휴일은 13.5일이었다. 이만큼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초과 근로 시 통상임금의 100분의 50이상, 즉 1.5배를 가산 지급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기까지 한 번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 적이 없었다. 생활관리사들에게 물었더니 ‘그런 게 있어요?’ 답이 돌아왔다.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괜히 문제 삼았다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복지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장관은 노동법 위반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해 연말, 초과근무수당 일부가 생활관리사들에게 지급되었다. 갑자기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감사 문자가 왔다. 다음 해부터는 초과근무수당이 본예산에 편성되었다. 사회복지영역에서 당연시되었던 공짜 노동 하나를 없앴다.
②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바우처 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장애인 이용자가 쓸 수 있는 시간과 단가가 정해져 있다. 2018년 서비스 단가는 시간당 10,760원이었는데, 인건비와 운영비가 포함된 것이다. 이 금액이 지원센터로 간다. 복지부는 최저 인건비 보장을 위해 서비스 단가의 75% 이상을 반드시 인건비로 쓰라고 정했다. 그런데 75%는커녕 100%를 받아도 월수입은 70만 원 정도였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수가가 너무 낮아서 발생한 문제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질의했고, 두 부처 장관들로부터 노동법 위반이며, 보건복지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연하다고? 이전까지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센터와 종사자 간의 문제라고 했다.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서비스 수가 현실화, 이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의원실에서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수가 현실화를 위한 TF’를 꾸렸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 이용자, 중개기관 센터장까지 이해 관계자 모두 참여하도록 했다. 입장 차가 컸지만, 낮은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2016년 8월 4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가 현실화 촉구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9,000원이었던 수가를 최소 1만 원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조합을 대리해 정부와 교섭한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해 수가 인상은 240원에 그쳐 1만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상임위,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대정부 질의, 예산, 결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의제를 다뤘다. 2019년 수가는 12,760원으로 2018년 10,760원에 비해 2,200원이 인상되었다. 2016년에 240원이 인상된 것과 비교하면, 3년 만에 거의 10배에 가까운 금액이 오른 것이다. 겨우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맞춘 것뿐이지만 뿌듯했다.
③ 노인일자리 전담인력
2017년 노인일자리 수행기관 시니어클럽을 만났다. ‘노인일자리 전담인력’은 노인일자리 참여인원 모집, 선발, 교육, 행정업무 등 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노인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고용도 늘어났다. 2012년 1,458명이었던 전담인력은 2017년 2,534명으로 약 1천 명 이상 늘어났다. 그런데 임금이 낮다. 최저임금보다는 몇 천 원 더 많은 수준이다. 고용 기간은 11개월로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한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꼼수였다. 또, 같은 일을 하지만, ‘시도에 근무하는 전담인력’과 ‘노인일자리 수행기관의 전담인력’은 고용 기간과 임금에서 차이가 났다. 우선 고용 기간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현행 11개월을 12개월로 늘려야 한다. 이는 예산 문제이기에 예산 증액을 위한 활동을 했다. 고용 기간은 1개월 늘어나지만, 퇴직금을 포함하면 총 2개월분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로 쓸 수 없는 정치 활동을 통해 예산을 확보했다. 임금 인상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정상적’ 일자리로 만든 성과를 남겼다.
④ 방문교육지도사
다문화 가족은 2007년 14만 명에서 2016년 32만 명으로, 다문화 가족의 자녀는 같은 기간 4만4천 명에서 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다문화 가족 자녀가 대폭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족 방문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하지만 방문교육을 전담하는 방문교육지도사 수는 2013년 2,918명에서 2018년 1,823명으로 1천 명 넘게 줄었다. 수요는 늘었는데, 지도사가 줄어들자 서비스를 받으려는 대기인원이 폭증해 2017년 기준 누적 8천 명에 이르렀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지도사들의 계약 기간은 10개월이다. 10개월 일하면 계약을 해지했다가 2개월 후 재계약한다. 물론 재계약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9개월 이상 상시·지속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이들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없었다. 주 16시간 근무, 시급은 1만2천 원이다. 언뜻 보면 높은 시급으로 보이지만 근무시간은 집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만 인정된다. 이동시간, 일지를 작성하는 시간, 회의 시간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다문화 가정은 주로 농촌 지역에 많아 이동 거리가 멀고, 1시간 수업을 위해 왕복 3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10년 동안 시급은 그대로였고, 명절, 주휴수당도 없었다. 이 문제를 2018년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뤘다. 일단 방문교육서비스 기간만이라도 10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소요 예산은 약 35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예산 증액을 위해 예결위 위원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설득했고, 결국 예산을 반영시켰다. 예산이 통과되자 윤소하 의원 핸드폰에 지도사들이 보낸 감사 문자가 쏟아졌다. 이런 문자 폭탄이라면 받을 만하지 않을까?
⑤ 요양보호사
“일한 지 5년 되었는데 한 번도 급여명세서를 받아본 적이 없다.”
“60시간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59.5시간으로 계약했다.”
“한 기관에서 3년 이상 일하면 장기근속장려금을 받을 수 있지만, 가족이나 기관장 눈 밖에 나면 바로 해고를 당하는 처지라 장기근무 자체가 어렵다.”
“현행 요양시설 종사자 배치 기준은 환자 2.5명당 1인이지만 실제로는 혼자 10명의 어르신을 돌본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요양보호사들과 간담회를 했다. 주로 50대 이상 여성들이라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고, 방문서비스 특성상 서로 마주칠 일이 없어 조직화는커녕 정보 교류도 어려운 직종이다. 국회의원이 찾아온다니 그나마 모일 수 있었다. 노인장기요양제도 시행 12년 차, 어르신들의 삶의 질은 개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 순회 간담회를 마치고, 요구를 모아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5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는 의정활동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5대 과제>
1. 장기근속장려금을 경력수당으로 전환!
2. 급여명세서 지급 의무화 (기관 평가에 노동권 내용 포함)
3. 근로기준법에 미달하는 제도 개선
4. 요양시설 종사자 배치 기준 개선
5. 인건비 지급 비율 매월, 개인별 적용
‘복지국가를 만들자’는데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착하게 살자’와 비슷한 말 같다. 그런데 복지국가 모습은 다양하다. 공공부조가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사회보험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고, 사회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도 있다. 복지국가 모델은 나라마다 정치적 이행경로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도 정치적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복지체제는 서구의 복지국가와 조금 다른 경로로 발달해왔다. 서구의 복지체제는 일반적으로 국가, 시장, 가족으로 구성되는데, 한국은 여기에 원조가 추가된다. 원조에 의존한 복지는 애초에 시혜적이었고,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기능했기에 고도로 발전하기 어려웠다. 원조 이후 경제성장을 주도한 군사정부는 맨 먼저 참전 군인과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다음으로 ‘생활보호법’을 제정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체제가 형성되면서 ‘노동계층’은 주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서구의 복지국가와 가장 큰 차이였다.
1960년대 복지정책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잔여적 서비스에 머물렀으며 민간이 담당했다. ‘노동력의 재생산’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복지정책은 국가 개입을 최소화했다. 사실상 정책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이 절대 목표였다. 경제성장 목표에 도움이 되는 범위 안에서만 사회복지 제도가 필요했다. 1964년 4대 보험 중 산재보험이 제일 먼저 도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500인 이상 대규모 광업 및 제조업부터 적용했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면 자본은 ‘손실’이 발생하고, 국가 경제와 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그다음의 필요는 건강보험(의료보험)이었다.
권위주의 정부가 이룬 고도의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가져왔다. 재분배는 본디 노동계급의 강력한 요구로 획득되는 정치적 결과물인데, 권위주의 정부의 성장정책은 노동 억압을 기반으로 했기에 계급적 요구가 반영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는 경제성장의 낙수효과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때 증세를 통해 복지제도를 도입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세출과 세입축소를 동시에 추진해 복지국가와 정반대의 길로 가버렸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이와 같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세금을 덜 낼 수 있도록 소득세 공제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제개혁을 요구한 것은 야당(현 민주당)과 노동계다. 노태우 정부는 분배의 공평성을 위해서는 세금감면이 아니라 공적 복지확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화 흐름에 밀린(?) 노태우 정부는 결국 요구대로 ‘감세’하는 세제개혁을 단행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이 가능해졌는데, 노동자들이 교섭할 정도의 힘을 가진 곳은 주로 대기업이었다. 노동자에게 임금인상과 기업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물적 기초를 갖춘 곳도 대기업이었다. 기업별로 교섭이 이뤄지면서 대기업들은 고임금과 함께 기업 내 복지를 확대했고, 대기업 노동자들은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필요를 덜 느끼게 되었다. 복지제도의 역진적 구조는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함께 형성되었다.
‘선성장 후분배’를 내세운 개발국가 복지체제는 1990년에 이르러 멈춘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빈곤율은 더 이상 완화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격차는 더욱 커졌다. 한국 복지체제는 삼중구조로 분화되었다. 공적 사회보험의 혜택을 모두 받고, 민간보험·사적연금 등을 통해 개인적 보장까지 더해 받는 첫 번째 집단, 사적 보장 없이 최소한의 사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두 번째 집단, 공공부조 외에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세 번째 집단이다. ‘고용상태’가 ‘어떤 집단’인지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과거의 고용상태가 노후의 빈곤을 좌우했다.
우리가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할 때, 이전에는 어떤 제도를 개선하자, 어떤 제도를 강화하자고 말했다. 주로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였다. 20대 국회에 이르러 윤소하 의원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로 했다. 사회복지 영역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공히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해왔는데, 사회서비스 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서비스의 양은 늘리되,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는 도외시했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내기 딱 좋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단기간은 그럴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한결같기는 어렵다.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하지만, 서비스를 받는 사람보다 ‘일하는 사람’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빠른 길로 뛰어가기 보다 모두가 갈 수 있는 길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한 의정활동 사례를 소개한다.
① 독거노인생활관리사
극심한 무더위는 노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폭염 특보가 발령되면 독거노인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 조치를 내린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게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하거나 전화 통화로 매일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원래 주 1회 직접 방문, 주 2회 전화를 통한 안전 확인과 현황조사, 복지 서비스 연계, 치매 등록자에 대한 투약 확인 및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하루 5시간, 주 5일 근무하는 단시간 근로자인데 전국에 약 8천 명이 있고, 담당하는 독거노인은 약 140만 명에 이른다(2016년). 생활관리사들은 복지부 지침에 따라 폭염 기간 중 휴일·공휴일 상관없이 매일 안부를 확인하고 결과를 보고했다. 2016년 폭염 특보 발효일수는 전체 평균 38.1일, 휴일·공휴일은 13.5일이었다. 이만큼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초과 근로 시 통상임금의 100분의 50이상, 즉 1.5배를 가산 지급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기까지 한 번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 적이 없었다. 생활관리사들에게 물었더니 ‘그런 게 있어요?’ 답이 돌아왔다.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괜히 문제 삼았다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복지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장관은 노동법 위반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해 연말, 초과근무수당 일부가 생활관리사들에게 지급되었다. 갑자기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감사 문자가 왔다. 다음 해부터는 초과근무수당이 본예산에 편성되었다. 사회복지영역에서 당연시되었던 공짜 노동 하나를 없앴다.
②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바우처 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장애인 이용자가 쓸 수 있는 시간과 단가가 정해져 있다. 2018년 서비스 단가는 시간당 10,760원이었는데, 인건비와 운영비가 포함된 것이다. 이 금액이 지원센터로 간다. 복지부는 최저 인건비 보장을 위해 서비스 단가의 75% 이상을 반드시 인건비로 쓰라고 정했다. 그런데 75%는커녕 100%를 받아도 월수입은 70만 원 정도였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수가가 너무 낮아서 발생한 문제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질의했고, 두 부처 장관들로부터 노동법 위반이며, 보건복지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연하다고? 이전까지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센터와 종사자 간의 문제라고 했다.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서비스 수가 현실화, 이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의원실에서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수가 현실화를 위한 TF’를 꾸렸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 이용자, 중개기관 센터장까지 이해 관계자 모두 참여하도록 했다. 입장 차가 컸지만, 낮은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2016년 8월 4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가 현실화 촉구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9,000원이었던 수가를 최소 1만 원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조합을 대리해 정부와 교섭한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해 수가 인상은 240원에 그쳐 1만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상임위,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대정부 질의, 예산, 결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의제를 다뤘다. 2019년 수가는 12,760원으로 2018년 10,760원에 비해 2,200원이 인상되었다. 2016년에 240원이 인상된 것과 비교하면, 3년 만에 거의 10배에 가까운 금액이 오른 것이다. 겨우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맞춘 것뿐이지만 뿌듯했다.
③ 노인일자리 전담인력
2017년 노인일자리 수행기관 시니어클럽을 만났다. ‘노인일자리 전담인력’은 노인일자리 참여인원 모집, 선발, 교육, 행정업무 등 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노인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고용도 늘어났다. 2012년 1,458명이었던 전담인력은 2017년 2,534명으로 약 1천 명 이상 늘어났다. 그런데 임금이 낮다. 최저임금보다는 몇 천 원 더 많은 수준이다. 고용 기간은 11개월로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한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꼼수였다. 또, 같은 일을 하지만, ‘시도에 근무하는 전담인력’과 ‘노인일자리 수행기관의 전담인력’은 고용 기간과 임금에서 차이가 났다. 우선 고용 기간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현행 11개월을 12개월로 늘려야 한다. 이는 예산 문제이기에 예산 증액을 위한 활동을 했다. 고용 기간은 1개월 늘어나지만, 퇴직금을 포함하면 총 2개월분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로 쓸 수 없는 정치 활동을 통해 예산을 확보했다. 임금 인상까지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정상적’ 일자리로 만든 성과를 남겼다.
④ 방문교육지도사
다문화 가족은 2007년 14만 명에서 2016년 32만 명으로, 다문화 가족의 자녀는 같은 기간 4만4천 명에서 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다문화 가족 자녀가 대폭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족 방문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하지만 방문교육을 전담하는 방문교육지도사 수는 2013년 2,918명에서 2018년 1,823명으로 1천 명 넘게 줄었다. 수요는 늘었는데, 지도사가 줄어들자 서비스를 받으려는 대기인원이 폭증해 2017년 기준 누적 8천 명에 이르렀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지도사들의 계약 기간은 10개월이다. 10개월 일하면 계약을 해지했다가 2개월 후 재계약한다. 물론 재계약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9개월 이상 상시·지속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이들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없었다. 주 16시간 근무, 시급은 1만2천 원이다. 언뜻 보면 높은 시급으로 보이지만 근무시간은 집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만 인정된다. 이동시간, 일지를 작성하는 시간, 회의 시간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다문화 가정은 주로 농촌 지역에 많아 이동 거리가 멀고, 1시간 수업을 위해 왕복 3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10년 동안 시급은 그대로였고, 명절, 주휴수당도 없었다. 이 문제를 2018년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뤘다. 일단 방문교육서비스 기간만이라도 10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소요 예산은 약 35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예산 증액을 위해 예결위 위원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설득했고, 결국 예산을 반영시켰다. 예산이 통과되자 윤소하 의원 핸드폰에 지도사들이 보낸 감사 문자가 쏟아졌다. 이런 문자 폭탄이라면 받을 만하지 않을까?
⑤ 요양보호사
“일한 지 5년 되었는데 한 번도 급여명세서를 받아본 적이 없다.”
“60시간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59.5시간으로 계약했다.”
“한 기관에서 3년 이상 일하면 장기근속장려금을 받을 수 있지만, 가족이나 기관장 눈 밖에 나면 바로 해고를 당하는 처지라 장기근무 자체가 어렵다.”
“현행 요양시설 종사자 배치 기준은 환자 2.5명당 1인이지만 실제로는 혼자 10명의 어르신을 돌본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요양보호사들과 간담회를 했다. 주로 50대 이상 여성들이라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고, 방문서비스 특성상 서로 마주칠 일이 없어 조직화는커녕 정보 교류도 어려운 직종이다. 국회의원이 찾아온다니 그나마 모일 수 있었다. 노인장기요양제도 시행 12년 차, 어르신들의 삶의 질은 개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 순회 간담회를 마치고, 요구를 모아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5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는 의정활동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5대 과제>
1. 장기근속장려금을 경력수당으로 전환!
2. 급여명세서 지급 의무화 (기관 평가에 노동권 내용 포함)
3. 근로기준법에 미달하는 제도 개선
4. 요양시설 종사자 배치 기준 개선
5. 인건비 지급 비율 매월, 개인별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