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민의 보좌관 일기] 8. 두 개의 진보정당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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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두 개의 진보정당

당이 둘로 나뉘었다. 나의 보좌관 생활이 처음의 예상과 달리 4년의 파견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분당’ 때문이다. 17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 “민주노동당은 화려한 무대의 막을 내렸다. 물론 당명은 2011년까지 유지된다. 의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 일부가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새로이 창당한 가운데1) 치러진 18대 총선 결과 민주노동당의 의석은 전대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5석에 그쳤다. 진보신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한다. 분당의 여파는 컸다. 척척박사들이 일시에 사라졌으며 한 사업장 안에서도 홍해가 갈리듯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가 둘로 나뉘었다. 그도 저도 보기 싫다는 사람은 더 많았다. 정당의 기반이 붕괴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폐허를 정리하고 다시 살아갈 궁리를 해야 했다. 나는 정당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경력자’였다. 부담감에 어깨가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1) 2007년 권영길 의원은 당내 다수 정파인 자주파의 지지를 기반으로 심상정, 노회찬 후보를 누르고 민주노동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됨.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권 후보는 3.0% 득표율(71만 2121표)을 기록함. 이는 2002년 본인의 득표율 3.9%보다 낮아진 것임. 대선 이후 2008년 2월 8일 임시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내놓은 혁신안이 부결되자 평등파는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창당함.


18대 국회에서 함께 일하게 된 곽정숙 의원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이었다. 민주노동당은 2006년 정당사상 최초로 비례 국회의원의 10%, 모든 선출직·임명직 당직의 5%를 장애인으로 배정하는 장애인 할당제를 도입했다.2)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두 정당 모두 이 규정을 지켰다. 민주노동당은 여성장애인에 이어 비례대표 2번은 비정규직 노동자 몫으로 할당하고, 3번에서 6번까지는 전략공천을 한다. 이때 처음으로 이른바 ‘외부 영입’이 이뤄지는데,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한 곽정숙3)과 환경미화원 출신으로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홍희덕을 각각 1번, 2번 후보가 되었다. 비례대표라는 상징을 통해 정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선택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표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정당은 대표하는 사람을 통해 기반을 강화하고, 정치가들은 대표가 되고자 하는 경쟁을 통해 실력을 높여야 한다. 혼돈의 시대에 질서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좋은 대표가 정당을 튼튼히 만들 수 있다. 좋은 대표를 통해 정치의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2) 쿠키뉴스, “민노,정당사상 최초 장애인할당제 도입” 2006.07.24.

3) 오마이뉴스, “비례대표 1번 제안, 한마디로 거절했다” 2015.07.30


안타깝게도,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박김영희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0.06%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득표율 3%가 되어야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는데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득표율은 2.94%에 머물렀다. 장애여성공감 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한 박김영희 후보는 분당 되기 전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가 추천하려던 ‘내정자’였다. 만약 18대 국회에서 여성장애인 국회의원이 당선된다면, 그건 박김영희 대표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믿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격이 충분한 분이었다. 진보신당 후보가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두 명의 여성장애인 국회의원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다. 순진한 바람이었다. 현실은 차가웠다. 진보정당이 둘로 나뉜 후과는 컸다.


진보정당의 분당은 ‘차가운 이성’을 갖게 했다. 2008년 분당 직전,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진보의 정수는 변화”“소리 나지 않는 혁신은 있을 수 없다”며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혁신을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하며 "이는 민노당 조직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4)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혁신안은 당대회에서 부결되었다. 당내 최대 다수였던 정파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독점적 결정권 행사는 변화를 바라는 이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소수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소수가 다수가 될 가능성은 그보다 더 낮았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힘이 약한 다수가 힘이 강한 소수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대로 민주주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없다면 다수는 소수에게 억압적 지배자가 된다. 정치적 실패와 오류는 많은 경우 민주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민주적이어서 발생한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다수의 결정이라 해도 언제나 진리인 것은 아니다. 다수는 선동에 취약하고 여론에 쉽게 편승한다. 다수의 판단이라 해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잘 관리하는 데서 성패가 갈린다. 첫 번째 분당에서 배운 점이다.

4) 프레시안, 심상정, '일심회' 관련자 출당 조치 시사, 2008.01.14.


말이 나온 김에 두 번째 분당까지 짚고 넘어가자. 2008년 갈라졌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2011년 다시 만난다. 국민참여당까지 함께 한 ‘진보대연합’이 이뤄졌다. 새로운 정당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3석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숨 쉴 틈도 없이 곧장 ‘나락’에 떨어진다. 첫 번째 분당과는 성격도, 강도도 달랐다. 첫 번째 분당의 교훈이 ‘차가운 이성’이었다면, 두 번째는 ‘이성’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문제였다. 이번에는 ‘패권적’ 세력이 문제였다. 이들은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위법·편법적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정당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집단이 권력(욕)을 갖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현실에서 보았다. 권력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나오는 호크룩스 ‘로켓’과 비슷하다. 권력은 절제해서 사용해야 하고, 권력의 사용은 통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위임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한다. ‘선거’는 권력이 무한질주 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7대 국회에 청운의 꿈을 품고 국회에 들어왔으나 나의 첫사랑 민주노동당은 분당 되었고 의석은 반 토막 난 가운데 18대 국회를 맞이했으며, 정신 차리고 새 출발을 해보려 했으나 폭력을 동반한 두 번째 분당이라는 폭탄에 만신창이가 되어 19대 국회에 이르렀다. 정당은 ‘대표성’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다수의 의견이라 해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권력은 절제되어야 하며 민주주의는 잘 갈고 닦아 망가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나는 늘 정치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면의 고통을 홀로 견뎌야 하는 일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지치지 않고 타협해야 하며 불멸의 기득권과 다퉈야 한다. 비난은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정치를 할까 말까 한다면, 지금이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열정을 쏟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당신의 편이 되겠다. 이 마음으로 보좌관을 하고 있다. (채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진보정당사 

국민승리21(1997년~1999년 11월 15일)

민주노동당(2000년 1월 30일 ~ 2011년 12월 5일)

진보신당(2008년 3월 16일 창당)

통합진보당 (2011년 12월 6일 ~ 2014년 12월 19일 해산)

진보정의당(2012년 10월 18일 ~ 2013년 7월 21일)

정의당(2013년 7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