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노동조합이 만든 정책 1/2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주노동당가로 알려진 노래의 한 구절이다. 지금도 이 가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노동이 아름답게’라니 이 얼마나 고귀한 말인가. 고된 육체노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와 ‘안전한 근로 환경’이 필수다. 노동강도가 강할수록 ‘노동력’을 재생산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휴식, 즉 적절한 노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며 위험에 비례해 임금은 높이 책정되어야 한다. 또, 자의든 타의든 나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도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인간이 인간답고, 사회가 평등하고, 노동이 아름다운 사회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되지 않는, 태어난 환경에 따라 살아갈 삶 전체가 규정되지 않는, 아플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제공 받는 의료의 질이 달라지지 않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정당 차원의 노동조합의 배타적 지지는 잃었지만, 일하는 내내 노동조합과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계급정당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정치의 기반은 언제나 노동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간 추진한 많은 정책은 노동조합과 함께 한 것이자,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조합과 일하면서 정당의 기반을 복원하고 싶었고, 정책을 통해 노동조합과 정당이 동시에 튼튼해지길 바랐다.
그런 점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과 함께 추진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법 제정은 보건의료노조가 주도했고, 의원실은 입법부의 권한을 잘 사용했다. 이 법은 어떤 법일까?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전 위원장의 발언에 법안의 내용과 의미와 목적이 다 담겨 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정부가 병원 인력 실태를 조사하고, 안정적인 수급 대책을 세우고, 병원 인력 확충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 국민건강권 향상을 위해 정부가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중략)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 마구잡이로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을 막아내는 법입니다.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을 만들고, 간병비 부담을 해결하는 법입니다. 수도권, 대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해 의료 공백과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 창출 법입니다. 환자를 위해 일하는 우리가 건강하게 일하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따뜻한 법입니다.”
(2016년 4월,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 발언 중)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력은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법 제정 전에는 전체적인 인력 규모와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기관마다 고용형태와 직종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시적 필수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도 했고, 어떤 직종은 새롭게 생겨났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기관마다 제각각으로 운영되었기에 근무환경에 대한 파악도 쉽지 않았다. 어떤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나 부족한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보건의료기관의 인력 부족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병원 안에서 암묵적으로 사용되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단어,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후배 간호사를 혹독하게 대하는 악습을 말한다. 부족한 인력에 따른 과중한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이른바 ‘내리 갈굼’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태움은 ‘성격 나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임신마저 순서를 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임신순번제’, 관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직순번제’ 등도 모두 근본적으로 간호사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일이 힘드니 이직율이 높고, 이직자가 많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었다.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증가했지만, 의료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장롱 속 면허’가 3분의 1이나 되었다. 비단 간호사만이 아니었다.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과 처우는 환자의 안전과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에 직결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일하는 사람과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이 법이 처음 제안된 것은 2011년이다. 그해 4월 7일 <보건의 날>과 5월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병원 인력 확충을 위한 토론회가 연이어 국회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이주호 당시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미국의 간호사인력법(The Ratios, safe RN to patient staffing Ratio Law) )과 ‘환자보호법’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간호사인력법은 캘리포니아 간호사노조(CNA - California Nurses Association)와 전미간호사연대(NNU - National Nurses United)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들은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간호인력이 필수적이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한 한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As registered nurses, we must accept no substitutes when it comes to patient care)”라고 주장하며 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에 따라 병동 간호사 대 환자 비율 최소기준(1:5)이 마련되었고, 인력 기준도 만들어졌다. 기준이 만들어지자 의료 인력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고,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자 이직률이 낮아졌으며 의료현장을 떠났던 간호사들도 병원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자 환자와 가족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치료 실적이 상승했다.1) 모두 더 건강해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인력법 제정을 2012년 총선, 대선의 핵심의제로 만들기로 한다. 그리하여 2012년 7월, 19대 국회에서 박원석 의원이 처음으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발의한다. 최초의 법안은 보건의료노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에서는 다뤄지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된다. 2016년 8월, 20대 국회에서 윤소하 의원 등이 다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발의한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별도의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인권 보호, 근무환경 개선 등은 「의료법」 개정으로, 실태조사와 종합계획은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으로 하는 게 바람직 하다는 입장이었다. 의원실은 보건의료노조와 긴밀하게 협의했다. 특별법이든, 개정법이든 내용 반영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윤소하 의원실은 2017년 3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한다. 행정부의 의견을 수용했기에 법안은 금새 통과될 줄 알았는데, 긴 협의의 시작일 뿐이었다. 논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법안이 좌초될 것 같았다.
1) <보건의 날 기념 병원인력 해법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 주최 : 이애주 국회의원, 추미애 국회의원, 곽정숙 국회의원, 주관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국환자단체연합회(2011년 4월 7일) <제40회 국제 간호사의 날 기념-한ㆍ미 병원 현장과 간호사 업무, 노동조건 비교 국회 토론회> 주최 : 곽정숙 국회의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1년 5월 12일)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주노동당가로 알려진 노래의 한 구절이다. 지금도 이 가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노동이 아름답게’라니 이 얼마나 고귀한 말인가. 고된 육체노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와 ‘안전한 근로 환경’이 필수다. 노동강도가 강할수록 ‘노동력’을 재생산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휴식, 즉 적절한 노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며 위험에 비례해 임금은 높이 책정되어야 한다. 또, 자의든 타의든 나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도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인간이 인간답고, 사회가 평등하고, 노동이 아름다운 사회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되지 않는, 태어난 환경에 따라 살아갈 삶 전체가 규정되지 않는, 아플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제공 받는 의료의 질이 달라지지 않는,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비록 정당 차원의 노동조합의 배타적 지지는 잃었지만, 일하는 내내 노동조합과 관계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계급정당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정치의 기반은 언제나 노동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간 추진한 많은 정책은 노동조합과 함께 한 것이자, 함께 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조합과 일하면서 정당의 기반을 복원하고 싶었고, 정책을 통해 노동조합과 정당이 동시에 튼튼해지길 바랐다.
그런 점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과 함께 추진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법 제정은 보건의료노조가 주도했고, 의원실은 입법부의 권한을 잘 사용했다. 이 법은 어떤 법일까?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전 위원장의 발언에 법안의 내용과 의미와 목적이 다 담겨 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정부가 병원 인력 실태를 조사하고, 안정적인 수급 대책을 세우고, 병원 인력 확충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 국민건강권 향상을 위해 정부가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중략)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 마구잡이로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을 막아내는 법입니다.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을 만들고, 간병비 부담을 해결하는 법입니다. 수도권, 대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해 의료 공백과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 창출 법입니다. 환자를 위해 일하는 우리가 건강하게 일하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따뜻한 법입니다.”
(2016년 4월,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 발언 중)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력은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법 제정 전에는 전체적인 인력 규모와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기관마다 고용형태와 직종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시적 필수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도 했고, 어떤 직종은 새롭게 생겨났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기관마다 제각각으로 운영되었기에 근무환경에 대한 파악도 쉽지 않았다. 어떤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나 부족한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보건의료기관의 인력 부족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병원 안에서 암묵적으로 사용되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단어,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후배 간호사를 혹독하게 대하는 악습을 말한다. 부족한 인력에 따른 과중한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이른바 ‘내리 갈굼’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태움은 ‘성격 나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임신마저 순서를 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임신순번제’, 관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직순번제’ 등도 모두 근본적으로 간호사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일이 힘드니 이직율이 높고, 이직자가 많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었다.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증가했지만, 의료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장롱 속 면허’가 3분의 1이나 되었다. 비단 간호사만이 아니었다.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과 처우는 환자의 안전과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에 직결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일하는 사람과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이 법이 처음 제안된 것은 2011년이다. 그해 4월 7일 <보건의 날>과 5월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병원 인력 확충을 위한 토론회가 연이어 국회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이주호 당시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미국의 간호사인력법(The Ratios, safe RN to patient staffing Ratio Law) )과 ‘환자보호법’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간호사인력법은 캘리포니아 간호사노조(CNA - California Nurses Association)와 전미간호사연대(NNU - National Nurses United)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들은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간호인력이 필수적이다”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한 한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As registered nurses, we must accept no substitutes when it comes to patient care)”라고 주장하며 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에 따라 병동 간호사 대 환자 비율 최소기준(1:5)이 마련되었고, 인력 기준도 만들어졌다. 기준이 만들어지자 의료 인력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고,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자 이직률이 낮아졌으며 의료현장을 떠났던 간호사들도 병원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자 환자와 가족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치료 실적이 상승했다.1) 모두 더 건강해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인력법 제정을 2012년 총선, 대선의 핵심의제로 만들기로 한다. 그리하여 2012년 7월, 19대 국회에서 박원석 의원이 처음으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발의한다. 최초의 법안은 보건의료노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에서는 다뤄지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된다. 2016년 8월, 20대 국회에서 윤소하 의원 등이 다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발의한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별도의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인권 보호, 근무환경 개선 등은 「의료법」 개정으로, 실태조사와 종합계획은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으로 하는 게 바람직 하다는 입장이었다. 의원실은 보건의료노조와 긴밀하게 협의했다. 특별법이든, 개정법이든 내용 반영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윤소하 의원실은 2017년 3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한다. 행정부의 의견을 수용했기에 법안은 금새 통과될 줄 알았는데, 긴 협의의 시작일 뿐이었다. 논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법안이 좌초될 것 같았다.
1) <보건의 날 기념 병원인력 해법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 주최 : 이애주 국회의원, 추미애 국회의원, 곽정숙 국회의원, 주관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국환자단체연합회(2011년 4월 7일) <제40회 국제 간호사의 날 기념-한ㆍ미 병원 현장과 간호사 업무, 노동조건 비교 국회 토론회> 주최 : 곽정숙 국회의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1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