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①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

2019-04-17
조회수 1977

북한에서 두 번 째로 힘이 센 사람은 존재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김영철은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남북대화와 북미 핵 협상으로 선회하면서 북한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 바로 김영철이기 때문이다.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를 연재하며

앞으로 인물이라는 창을 통해 북한 정치를 이해하는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호에는 첫 번째로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을 다룬다. 앞으로 이어질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 1부의 집필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
  2. 김정은 시대의 2인자 최룡해
  3. 혜성처럼 나타난 총리 김재룡
  4. 김정은의 최측근 김여정
  5. 뚝심 있는 외무상 리용호
  6. 막후의 실력자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용원


***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 ①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

글쓴이 ㅣ이대근 경향신문 논설고문


폼페이오 상대는 왜 익명의 ‘고위인사’였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미 수뇌 회담의 결과를 리행하기 위하여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마이크 폼페오 미합중국 국무장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 고위 인사 사이의 후속 협상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북미 양국 정상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회담을 마치고 나서 북한이 발표한 북미 공동성명의 뒷부분이다. 이 공동성명을 접한 많은 전문가, 언론은 그동안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장관의 협상 파트너로 북핵 협상을 해온 북한 김영철 조선로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협상 대표로 미국은 폼페이오를 적시한 것과 달리 북한은 김영철 이름을 뺀 채 ‘고위 인사’라고만 한 점을 근거로 그렇게 추정한 것이다. 미국이 강경파라고 소문난 김영철 대신 리용호 외무상을 협상 상대로 원했다거나, 외무상 대 국무장관으로 협상 채널을 맞추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이유로 리용호가 김영철을 대체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한 것이다.


2018년 5월 31일 뉴욕에서 폼페이오(Mike Pompeo)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 출처_미국 국무부


그러나 교체는 없었다. 교체설은 북한 체제를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 김정은은 수령이다. 수령이란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말한다. “인민 대중의 근본 리익과 요구는 오직 로동 계급의 수령만이 체현하고 대변할 수 있다. 로동 계급의 수령은 인민 대중의 리익과 의사의 유일한 체현자, 대표자이며 따라서 인민의 최고 뇌수, 혁명의 최고 뇌수이다”(박일범 1983, 41). 북한에서 결정은 수령만이 내릴 수 있으며, 그 외 나머지는 결정을 이행하는 수족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정당화한 것이 북한 사회 유기체론인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이에 따르면, 개별적 인간의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수령을 중심으로 통일 단결하면 영원한 생명인 사회정치적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수령은 인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창조주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수령 앞에서는 모두 한 명의 전사일 뿐

특정 간부가 아무리 고위직이라 해도 그 것은 수령이 임의로 부여한 ‘분공’(分工)에 지나지 않는다. 간부들은 제각각 높고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수령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한 명의 전사일 뿐이다. 북한의 실질적 최고 규범인 ‘당의 유일적 령도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에 유독 개별적 간부가 세도를 부리거나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 행태를 금기시하는 조항이 많은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10대 원칙 4조 7항은 이렇다. “당의 방침과 지시를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와 엄격히 구별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에 대하여서는 당의 방침과 지시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 보고 원칙적으로 대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발언 내용을 결론이요, 지시요 하면서 조직적으로 전달하거나 집체적으로 토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간부들이 자율적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수령의 지위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북한에 2인자가 없는 이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한 때 2인자의 위세를 과시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처형을 피할 수 없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간부의 지위와 역할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그들의 생명 또한 언제든 박탈될 수 있다. 수령의 존엄 앞에서는 그 누구든 깃털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간부는 자신의 소속이 당, 국가기구, 근로 단체 어디든 수령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일을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당, 정권 기관, 근로 단체들은 모두 수령이 개척한 혁명 위업을 완성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주체의 사상, 리론, 방법의 심화 발전 5』, 1984, 125).


이와 같은 수령 체제에서 수령이 서명한 역사적 문서에 간부의 이름을 수령과 동등하게 명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협상을 누구에게 맡길지는 전적으로 수령의 의사에 달려 있는 문제이고, 그 의사는 또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특정 인물을 못 박아 놓는 것은 수령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 그걸 알 리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고위 간부로서는 18년 만에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을 두고 “북한에서 두 번째로 힘이 센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세계 앞에 화려하게 부상한 김영철

북한에서 두 번째로 힘이 센 사람은 존재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김영철은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남북 대화와 북미 핵 협상으로 선회하면서 북한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 바로 김영철이기 때문이다. 북한 선수단의 참여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2018년 평창 올림픽 때 북측 대표로 폐막식에 참석한 그는 남한으로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어 같은 해 6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는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 통전부장으로서 남북 관계에 관한 북한의 최고 책임자인 그가 대미 관계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북핵 협상까지 맡은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상대국 정보기관장의 파트너도 겸했다. 그 때문에 그는 홀로 남측의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미국의 국무장관, 중앙정보국장(CIA)을 상대했다. 2019년 1월 18일 두 번째로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는 본 비숍(Vaughn F. Bishop) 중앙정보국 부국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일인다역이다.


북한에서 남북 정상 회담과 북미 정상 회담에 모두 배석하고, 백악관을 두 번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인물은 오직 김영철뿐이다. 북한의 미래가 걸려 있는, 북한의 두 핵심 과제 즉 북미 관계, 남북 관계를 모두 한 사람이 책임진다는 점에서 적어도 김정은이 신임하는 한, 그는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인물이자 북한을 대표하는 얼굴임에 틀림없다.


당-정-군 고위직 겸직한 김영철의 위상

2018년 4월 2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 기준, 그의 당내 서열은 14위다. 그는 당직으로 정치국 정치위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이 당 통일전선부장이 됐다는 사실이 2019년 4월 25일 알려지기 전까지는 당 통일전선부장도 겸하고 있었다. 정부직으로는 국가 최고 지도 기관인 국무위원회의 위원, 입법부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이기도 하다. 당, 정부, 군 모두에 걸쳐 고위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 권력 구조의 한 특징으로, 소수의 권력 엘리트가 겸직을 통해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2011~2015년 최상층 엘리트들은 최소 2개에서 최대 8개의 직책을 겸직했으며, 최상층 엘리트의 55~62%는 각 5~7개의 직책을 겸직했다(오경섭·김갑식 2015, 152). 당연히 겸직이 많고 고위직일수록 권력의 크기도 크다. 제7차 당대회 때 정치위원 14명 중 8명은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정치위원 10명은 당 중앙군사위원을 각각 겸직했다. 김영철도 이 독점적 권력 집단에 속하는, 많지 않은 당 핵심 간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겸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당직이다. 북한은, 당이 곧 국가인 ‘당-국가 체제’다. 그것이 바로 ‘당적 지도’라는 권한을 통해 당이 정부와 입법부를 지배하고, 당 간부가 정부와 입법부를 겸직하는 근거가 된다.


당이 모두를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의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명시한다. 헌법상 국가기구로는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최고 정책적 지도 기관인 국무위원회,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전반적 국가관리 기관인 내각, 그리고 검찰소, 재판소가 있다. 이 모든 기관이 당의 지도를 받는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당 규약에 명문화되어 있다. 당 규약 전문이다. “조선로동당은 근로 인민 대중의 모든 정치조직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형태의 정치조직이며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회의 령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 조선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 10대 원칙 9조 3항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혁명 투쟁과 건설 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모든 기관들과 일군들은 당에 철저히 의거하고 당의 지도 밑에 모든 사업을 조직 집행해야 나가야 한다.”라고 명문화했다. 이런 북한에서 당연히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간 3권 분립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분립은 당의 통일 단결을 해치고 당의 영도를 거부하는 반당적 행위로 북한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만경대 학원, 김일성군사대학 나온 군 엘리트

김영철은 1946년 량강도에서 태어나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다. 만경대혁명학원은 북한의 최고 교육기관이자, 세습 체제의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인큐베이터이며 최고 엘리트 산실이다. 2015년 최상층 권력 엘리트 45명 중에서 만경대학원 출신은 10명(22.2%)이었다. 김정일 시대 들어서는 더 늘었다. 2010년 8월 비서국 구성원 5명 중 4명(80%), 2010년 9월 정치국 위원 및 후보 위원 32명 중 13명(41%)이었다(오경섭·김갑식 2015, 139). 항일 운동을 하다 희생된 자녀들을 위해 1947년 설립한 ‘평양 혁명자 유자녀 학원’이 모태다. 북한은 1946년 만주 지역에 흩어져 방랑 생활을 하던 항일 혁명 유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해 여러 차례 대표단을 파견한 바 있다. 북한은 학원 입학 대상자를 점차 확대, 한국전쟁 전사자, 대남 침투 요원 및 고위 간부의 자녀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만경대학원은 북한 체제의 지배계급을 배출하는 특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표>권력 엘리트 출신 대학
출처: 오경섭·김갑식(2015, 140)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등 11년제인 만경대학원에서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군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평소에도 군복을 입으며, 2년간 군사교육도 받는다. 수영장, 물놀이장 등 일반 학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최고 시설도 갖추고 있다.


모두 배신을 모르는 엘리트 집단으로 키우기 위한 투자의 일환이다. 국가가 유자녀, 간부의 자식들에게 최고 교육을 제공, 이들을 체제의 중심 세력으로 키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들 스스로 세습 체제의 수호자로 나서며, 결국 백두 혈통(김일성 가계)과 공동운명체가 된다. 2017년 창립 70주년 행사 때 한 학생이 다짐했다. “오직 백두 혈통만을 결사 옹위하는 만경대의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가 되겠습니다.”


남북대화 경력 풍부한 노련한 협상가

김영철은 이 학원에 이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왔다. 정치 군관을 양성하는 엘리트 군사 학교가 김일성정치대학이라면, 일반 군관을 위한 최고 군사 학교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이다. 2015년 최상층 권력 엘리트 45명의 출신 대학을 보면, 김일성군사종합대학·김일성정치대학을 합쳐 14명(38.9%)으로 가장 많았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은 그 다음으로 많았다(오경섭·김갑식 2015, 140). 북한에서 만경대학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거쳤다는 것은 그가 머지않아 군 지휘관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김영철은 16살 때인 1962년 인민군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에서 근무했으며, 22살 때인 1968년 인민군 소좌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 호 납치 사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맡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가 회담 일꾼, 즉 남북회담 전문가이자 대남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는 8차례에 걸쳐 조선인민군 소장, 인민무력부 부국장의 자격으로 남북 고위 당국자 회담 예비 접촉 북측 대표를 지냈다.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역시 8차례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를 역임했다. 1992년 3월부터 8월까지는 7차례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지냈다.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 의전 경호 실무자 접촉 북측 수석대표로, 2007년에는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 북측 참석자로 나오기도 했다.


순발력 있지만, 과시욕도 있는 인물

그와 상대한 우리 측 회담 관계자들은 경륜과 순발력을 갖췄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나 협상술에는 부족함이 있는 인물, 대남 콤플렉스와 과시욕이 있는 인물로 기억했다. 김영철은 자주 바뀌는 남측 협상 상대에게 “공부 좀 하고 오시오.”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이영종 2018).


드디어 그는 2009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 총국장이 된다. 정찰총국은 조선노동당 소속의 작전부(침투 공작원 호송·안내 담당)와 당 35호실(해외·대남 정보 수집 담당), 인민 무력부 산하의 정찰국을 통폐한 조직이다. 이는 60년간 조선노동당이 관장하던 대남 공작 업무가 군부인 인민무력부 관할로 이관된 것을 의미한다. 정찰총국은 해외정보국·작전국·정찰국 등 3개 부서로 이루어져 있고, 전방 5개 군단에 각 500~600명 규모의 정찰 대대를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찍힌 강경파

그가 정찰총국장으로 있을 때인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천안함 공격이 정찰총국의 소행인지 객관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북한은 당연히 폭침 자체를 부인하고, 남측 국방부도 공식적으로 공격 주체를 정찰총국으로 지목한 적이 없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의 은밀성 때문에 황해도 사곶에 있는 북한 해군 8전대 사령부보다 정찰총국이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발 전후에 특이 동향이 없었다는 점도 그 근거로 자주 거론된다.


이 때문에 그는 남한에서 ‘폭침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남한에서 그를 언급할 때 ‘주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주범론’은 사실 여부를 떠나 현실이 된 것이다. 2018년 2월 25일 평창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 북측 대표로 참석한 그를 본 기자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게 된 상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때 묵묵부답이었던 그는 2018년 4월 2일 평양 북한 예술단 공연 때는 남측 기자단에게 “내가 남측에서 천안함 주범으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자못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적인가, 대화 상대인가?

그를 주범으로 제대로 대접해 준 쪽은 보수 야당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그가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자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면 긴급체포, 사살 시킬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의원들은 그의 방남을 물리적으로 막겠다며 통일대교에서 농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집권 때인 4년 전만 해도 박근혜 정부는 그를 ‘주범’으로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김영철이 2014년 10월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을 때였다. 그는 여전히 정찰총국장이었다. 새누리당은 “남북이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환영 논평을 냈다. 천안함 폭침 이후 남북 군사 회담 전까지 김영철은 당연히 새누리당의 환영을 받을 언행을 하지 않았다. 김영철은 2013년 “누르면 발사하게 돼 있고 불바다로 타 번지게 돼 있습니다.”라고 협박했다. 2015년에는 “놈들의 무모한 도발은 기필코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의 정체성을 ‘주범’으로만 한정한다면 사실 그와의 대화는 물론 북측과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 그는 수령의 지시를 이행한 일개 전사에 불과하며 그 외 누구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따지면 주범은 김정은이다. 김영철은 잘해 봐야 종범이다. 유럽은 과거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된 지역이다. 유럽 국가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주범이고 주적이다. 그럼에도 지금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이라는 단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김영철의 운명은?

7년간의 정찰총국장직을 마친 2016년 그는 김양건의 사망으로 공석이던 통전부장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후 3년간 김정일의 신임을 받은 그는 인생의 절정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대체로 김정은 시대 권력 핵심 엘리트들은 좋은 시절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김정은의 신임 기간은 대체로 짧은 편이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그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주목되는 상황에서 2019년 4월 10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장면이 공개됐다. 가장 중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신분 변동이 없으리라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같은 해 4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의 첫 러시아 방문 때 수행단에서 빠진 데다, 최근 북한의 주요 정치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통전부장 자리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오직 수령만이 알 것이다. <끝>


참고문헌

● 박일범. 1983. “지도와 대중의 결합은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하기 위한 근본 담보.” 『사회과학』 1호, 평양.

● 『주체의 사상, 리론, 방법의 심화 발전 5: 주체의 령도 방법의 계승 발전』. 평양: 사회과학 출판사, 1984.

● 오경섭·김갑식. 2015. “권력 엘리트의 지속성과 변화.” 『김정은 정권의 정치체제:수령제, 당·정·군 관계, 권력 엘리트의 지속성과 변화』. 서울: 통일연구원.

●  이영종. 2018.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중앙일보』(06/06).


이대근 ㅣ경향신문 논설고문

1984년 경향신문사에 들어간 뒤 정치부 기자, 국제부장, 정치 국제 에디터, 논설위원, 편집국장, 논설 주간을 거쳐 현재 논설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국내 정치, 외교 안보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경향신문에 <이대근 칼럼>을 쓴다. 200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 선군 정치를 주제로 한 “조선 인민군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대학원 대학교 겸임 교수. 저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 이대근 기자의 정치 읽기(2009),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