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의 정당 정치] 링컨의 헌정 리더십 - 스티븐 스미스(Steven B. Smith)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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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헌정 리더십 (Lincoln’s Constitutional Leadership) - 스티븐 스미스


- 번역 : 박지혜 정치평론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각 정당들의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뜨겁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받는 한국의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의 부분들을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을 뽑는 선거 는 그 자체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시민들에게 던지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전 세계 민주주의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제 앞에서 어떤 '리더십'이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 역시 제기될 수 있다. 정치발전소는 박지혜 정치평론가를 통해 민주주의에서 발현될 수 있는 '리더십'의 종류와 조건들에 대해서 좋은 시사점을 주는 스티븐 스미스(Steven B. Smith)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Lincoln's Constitutional Leadership",  (fall 2012)로 링크 : https://www.nationalaffairs.com/publications/detail/lincolns-constitutional-leadership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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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정의하기는 쉽다.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 내지 하나의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를 확인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리더(십)를 이해하고 평가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리더십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리더는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수 있고,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 통치체제에서는 통치 받는 사람들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다. 시민이 주권을 가지며,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통 사람들이 발휘하는 집단지성을 신뢰하는 체제에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래에서는 예일대학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스미스가 말하는 링컨의 ‘헌정 리더십’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 속에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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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위대한 리더라는 데 이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무엇이며,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링컨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건국의 원칙을 지키며 도덕적 위엄과 영웅적 면모로 미국을 이끈 정치인인가? 아니면 3권 분립을 훼손할 만큼 집행부 권력을 확대하며 독재자의 길로 나아가려 했던 표리부동의 인물인가?

위의 질문을 포함해 무엇이 뛰어난 정치 리더를 만드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링컨의 리더십 스타일과 다른 리더십 유형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비교를 통해 우리는 리더십과 관련한 매우 어려운 질문들 중 하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헌법에 기반한 민주주의에서 리더십은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Photo by Caleb Fisher on Unsplash>


리더십의 세 가지 유형

링컨의 특별하고도 탁월한 리더십은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제시된 바 있는 세 가지 리더십 모델과 비교할 만하다. 첫 번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난 리더십이고, 두 번째는 막스 베버가 제시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며, 세 번째는 계몽주의 사상에 근거한 진보적 리더십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서구 문헌에서 가장 유명한 리더십 매뉴얼이다. 이 책의 가르침은 흔히 ‘현실주의’로 이해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현실주의가 단지 현실에 대한 관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지 선한 사람이 되려하기보다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손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주장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의도한 바는, 리더라면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따금씩 일상의 도덕과 정의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군주는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을 때는 그렇게 하는 법을 알아야겠지만, 악을 행할 수밖에 없을 때는 그렇게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위대함의 조건이다.

성공적인 군주의 이미지는 자기 목적을 성취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이든 기꺼이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 수단에는 거짓말, 속임수, 잔혹함의 선별적 사용, 도덕적 기준의 포기 등이 포함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신념, 희망, 자비 같은 전통적이고 기독교적인 덕성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덕성을 곧이곧대로 실천한다면 패망으로 이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악의 교사로 이해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군주에게 바랐던 것은 영광, 명예, 명성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체제를 건설한 위대한 정치 리더들이 추구한 덕성이다. 이런 자질은 나라의 국력을 크게 강화하는 ‘거대한 정치’의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역할의 성공과 실패는 역사가 판단한다.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그가 평생을 두고 탐구했던 질문, “무엇이 권위를 가능케 하는가?”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가에 대해 베버가 찾은 답은 세 가지다. 하나는 늘 그래왔기 때문에 따른다는 ‘전통적 권위’이다. 다른 하나는 불편부당한 정부당국이 관장하는 합리적으로 확립된 규칙을 따르는 ‘법-합리적 권위’이다. 마지막은 예외적 인물의 비범하고도 특별한 자질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경우이다. 이것이 바로 카리스마적 권위이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진정한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말했다. 이 중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은 열정, 즉 대의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의 자질은,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 속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대의에 대한 헌신 내지 열정적 애착의 정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베버는 정치가 궁극적으로 신념에 바탕한 활동이며 헌신의 강도로 평가받는 일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 헌신의 진정성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가? 카리스마적 리더와 선동가 내지 사기꾼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베버는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리스마적 자질에 대한 논의는 진정성에 대한 요구를 넘어 리더의 통치 방식이나 원칙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없다.


진보적 리더십은 인간 문명이 대면한 모든 중요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이며 과학적 지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 리더십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기술적 역량에 관심을 두며, 통상의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는 정치가를 시사한다. 리더십에 대한 이런 견해는 지난 세기 사회과학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며, 안전하고 건강하며 번영하는 사회는 합리적 계획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같은 진보적 리더는 정치를 계속되는 진화적 변화에 종속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진보적 리더는 미국 독립 선언문에 있는 항구적 자연권 같은 것을 낡은 관념으로 간주하며, 변화하는 사회적 기준과 필요에 부응하는 ‘살아 있는 헌법’ 이론을 개발했다. 여기서 성공적인 리더는 단지 변화에 적응할 뿐 아니라 사회가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진보에 대한 저항은 보수적이고, 반동적이며, 심지어 시민의 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진보적 정치인의 이상은 정책 과학자, 계획자, 공학자이다. 그들에게 모든 정치 문제는 행정의 문제로 환원되며, 따라서 목적보다는 수단이 중요하다. 정치가 민주주의의 너저분한 과정으로부터 분리되어 과학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은 어디서나 정치적 진보파의 바람이 되었다. 또한 진보파는 여론과 대중적 감정의 변화를 해석할 수 있는 사회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이 리더십 모델에서도 답해지지 않은 문제가 있다. 변화나 진보는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진보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떤 확정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진보가 실제로 ‘진보적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보적 리더십 모델은 이런 질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들 각각의 리더십 모델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과제의 핵심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델은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이들 세 모델의 일정한 조합과 함께 그것을 넘어서는 네 번째 리더십 모델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헌정 리더십

헌정주의는 서구 정치사상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앵글로-아메리카 정치 전통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마그나 카르타, 인신보호 영장, 관용법에서부터 독립 선언문, 미국 헌법, 연방주의자 논설에 이르기까지 헌정/입헌 정부의 기본 원리들에 대한 합의는 느리지만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헌법은 기본적으로 권력 사용을 통제하는 장치이다. 헌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것은 형식, 즉 일정한 공식적 절차(법의 지배, 적법 절차, 배심 재판 등)를 존중하며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정한 공식적 절차를 따르며 이런 절차의 준수가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정 리더십’이란 용어는 일종의 역설을 의미한다. 리더십은 용맹함, 결단력, 행동, 심지어 혼자서도 기꺼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포괄한다. 반면 헌법은 형식과 규칙, 권력에 대한 견제, 행정부 주도권에 대한 제한을 부과한다. 이런 조건에서 리더는 어떻게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면서 동시에 헌법적 제약을 수용할 수 있을까? 링컨의 말로 표현하자면, “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위해 너무 강력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의 존속을 위해 너무 약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실제로 링컨의 통치술은 자유와 법의 이런 긴장을 이해하고 다루면서 나아가는 길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길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보존과 변화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일정한 변화의 수단을 갖지 못한 국가는 보존의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연하지 않은 헌법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헌정/입헌 정부에서 변화는 일정한 법적 형식의 고정성과 안정성이 우선함을 전제로 한다. 이런 형식이 허용 가능한 변화의 종류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변화보다 보존에 우위를 두는 것은 1838년 링컨이 29세에 불과했던 정치 초년병 시절, “우리 정치 제도의 영속성”이라는 연설의 명시적 주제였다. 여기서 링컨은 당시 미국에 널리 퍼져 있던 ‘군중 지배의 정신’이 갖는 위험을 다루었다. 당시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통치하던 민주주의 시대로 미국 정치에 새로운 종류의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었다. 링컨은 폭력적 군중과 거친 정의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적 무법성의 확산을 우려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법에 대한 무시가 이 나라에 점점 더 폭넓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법원의 냉철한 판단을 거칠고 광폭한 열정으로 대신하려는 성향, 사법 행정을 담당하는 이들에겐 사나운 군중보다 더 좋지 못한 이 성향을 이 나라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무법성의 갑작스런 부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링컨은 헌법과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존중의 쇠퇴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에게 이것은 건국 세대의 소멸과 헌정/입헌 정부라는 대의에 열정적 애착을 갖지 않은 새로운 시민의 부상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였다. 링컨은 건국 세대가 사라진 이후 어떻게 다시금 시민들에게 헌정/입헌 정부에 대한 애착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청중들에게 물었다.

이 문제가 어려운 까닭은 미국의 역사적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 역사의 변함없는 사실 때문이다. 그 사실이란 모든 세대는 그 나름의 야심과 능력을 갖춘 인간 유형을 만들어내며, 그들은 기존 헌정 체제를 유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명예와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링컨은 그 연설에서 이와 같은 전환적 정치 지도자 유형에 대해 뛰어난 성격 분석을 제시했다.

링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제도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이 그것을 건설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헌정 정치가의 과제는 위에서 말한 잠재적 리더 내지 정복자의 야심을 견제하고 억제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정치적 건설자의 과제와는 반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과제는 그 거대한 야심을 변화가 아닌 보존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기에 더욱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어려운 과제는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링컨이 보기에 <연방주의자 논설>의 저자들이 믿었던 3권 분립이나 견제와 균형 같은 제도적 원리로는 헌법과 법률을 전복하려는 선동가나 찬탈가의 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런 제도적 장치는 인간의 야심을 통제할 수 없다. 그들을 억제하는 것은 헌정 정치가의 과제이고, 그렇게 하려면 헌법과 법의 지배를 시민들의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정치적 종교’가 되게 해야 한다고 링컨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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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입헌 정부의 제1원리

그러나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존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정 리더는 변화보다 중요한 보존의 가치뿐 아니라 헌정 통치의 개념과 범주를 조직하는 중심 원리의 가치도 강조해야 한다. 이 제1원리에 대한 호소는 리더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며, 특히 그 원리가 혼란스럽거나 일관성을 잃어버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특히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원리는 무엇일까? 헌정/입헌 정부는 궁극적으로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가? 그것은 분할 정부인가, 권력 분립인가, 법의 지배인가, 사법부의 법률 심사인가, 재산권인가, 표현의 자유인가? 링컨의 답은 명확했다. 그것은 미국 헌정/입법 정부의 북극성과도 같은 평등의 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링컨에게 평등 개념은 하늘에서 떨어진 추상적인 아이디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 선언문의 구절 속에 구체화되어 있다. 링컨이 처음 정부에 진출했을 때, 평등 원리는 자기 이익을 위해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헌법 제정자들은 현명하게도 노예제 이슈를 다루지 않는 데 합의했다’고 믿는 보수적 헌법 해석자 모두로부터 공격받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링컨은 미국 역사의 궤적이 영웅적 위대함의 시대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열정과 무법성의 시기로 꾸준히 퇴화해 왔다고 생각했다.

링컨이 독립 선언문이나 평등의 원리를 언급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는 흑인 노예를 재산으로 인정한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에 대한 비판과 독립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고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에 관한 편지도 있다. 이런 말과 글에서 링컨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독립 선언문에 호소하며 주장했던 바는, 헌정 리더십은 국가라는 배를 띄우고 그럭저럭 난관을 헤쳐 나가는 실용적 능력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리더십은 배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짐을 싣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자기 통치와 자기 억제

보존을 목표로 하며 평등을 제1원리로 따르는 헌정/입헌 정부는 정의상 제한 정부이다. 정부는 통치의 수단과 관련해서도 제한될 수 있고, 통치의 목표와 관련해서도 제한될 수 있다. 헌정/입헌 정부는 이 둘 모두에서 제한적이다. 이 정부는 시민들 삶의 일부를 정치적 통제 범위 밖에 둔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는 개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존중한다. 이것들은 개인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영역에 속하며, 정부의 과제는 그런 권리의 자유로운 행사를 보장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억제를 실현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방법은 동의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동의는 정부가 통치 받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갖도록 함으로써 권력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헌정/입헌 정부는 책임 정부이기도 하다. 이 관념은 노예제 반대에서부터 대통령 취임에 이를 때까지 링컨의 사고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을 통치할 만큼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생각은 그에게 자명한 공리와 같은 것이었다.

링컨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헌법적 억제를 실현하는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다수의 투표가 다수파에게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주기적 선거의 원리는 대중적 다수파가 하려는 것에 대한 견제를 제공할 수 있다. 링컨은 첫 번째 취임 연설에서, “헌법적 견제와 제한을 통한 억제를 받는 동시에 대중적 견해와 정서의 의식적 변화에 맞춰 언제나 쉽게 변화하는 다수파가 자유로운 시민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주권자”라고 말했다.

링컨은 이런 헌법적 자기 억제의 원칙을 그의 대통령 권력에도 적용했다. 링컨이 전시 동안 그의 권력을 예외적인 방식으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인신 구속 영장을 유예했고, 반대파 언론을 폐쇄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선동가들을 체포했고, 입법이 아닌 행정 포고로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이들 모두는 헌법이 규정한 행정부 권한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링컨은 이와 같은 결정을 ‘군사적 필요’에 근거한 것으로 변호했다. 그는 이런 조처들이 연방을 구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시 총사령관으로서 그에게는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방어할” 권한이 있었다.

링컨은 자신의 예외적 행동을 필요에 따른 것으로 규정하며, 예외가 규칙이 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였다. 전쟁 중에 발표한 노예 해방 선언은 한편에서는 대통령 권한을 벗어난 것으로 비난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정한 노예 해방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링컨은 그 선언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동시에 연방의 대의를 지키고 전쟁을 조속히 종식하는 방편이라고 정당화했다. 달리 말해, 링컨은 마키아벨리적인 권력 사용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런 길로 나아가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심지어 정당한 대의에 기여하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링컨이 헌법적 자기 억제를 실천한 또 다른 사례는 선거의 원칙과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 임기의 마지막 해 여름까지도 링컨은 재선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당내에서조차 다른 후보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링컨은 전쟁의 긴급성을 핑계로 선거를 연기하지 않았다. 링컨은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다. “이 행정부가 재선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의무는 대통령 당선자와 협력하며 선거와 취임 사이의 시기 동안 연방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연방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근거에서 당선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헌정/입헌 정부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헌정/입헌 정부의 원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헌정 리더십은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헌정 리더십: 요약과 정리

헌정 리더십은 제한적 리더십이다. 마키아벨리적인 ‘현실 정치’ 관념과 달리, 헌정 리더는 승리에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하는 리더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영웅적 건설자이며,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헌정/입헌 정부를 유지하는 좀 더 평범하고 따분한 과업에는 적합하지 않다.

헌정 리더십은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와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리더를 카리스마를 갖춘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익숙하지만, 그건 베버가 말했던 것의 저속한 버전일 뿐이다. 베버는 근대 관료 국가의 부상으로 요약되는 정치 세계의 기계화와 관례화를 우려했다. 그는 근대 관료제를 “영혼 없는 전문가, 심정 없는 쾌락주의자”의 지배로 이해했다. 베버의 대안은 리더에게 예언가적 위용을 갖도록 함으로써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서의 카리스마적 권위였다. 그러나 헌정/입헌 공화국에서 시민 위에 올라서는 그런 리더의 자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헌정 리더십은 시민의 대변인이자 호민관을 자처하는 진보적 리더 모델과도 다르다. 진보적 리더는 견제와 균형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에게는 시민과 직접 소통하고 시민의 견해와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 모델에는 불확정성의 요소가 있다. 진보적 리더십의 목표는 시민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관심사는 여론의 가장 미세한 변화조차도 추적해내는 데 있다.

헌정 리더십은 이들 모두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리더십이다. 그것은 확립된 질서 내에서, 헌법과 법률의 제한을 받으며, 최소한의 폭력과 강제에 의존해 통치하는 방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