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정당 만들기’를 고민하는 '녹색당' 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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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당 만들기’를 고민하는 '녹색당' 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 ‘당내 민주주의’에 관하여


- 박지혜 정치평론가 


*이 글은 필자가 '21.06.19 마포녹색당에서 열린 '마포 녹색 정치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수강생들이 제기했던 '당내 민주주의'와 관련한 질문들에 대해 강의 종료 후 추가로 보충설명을 위해 작성한 글이며 필자가 다소 긴 전문을 한번에 싣기를 원하여 글의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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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활동가 여러분께

 

지난 강의에서 정당 운영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저와 일부 수강생 분들 사이에 큰 견해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의안에서 밝힌 “민주주의는 정당 ‘내부’가 아니라 정당 ‘사이’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 왜 그렇게 강한 반대를 표하셨는지, 녹색당 당헌 전문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에는 녹색당이 “풀뿌리당원들이 중심이 되는 정당,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마을이 되찾는 지역분권적인 정당, 직접민주주의와 추첨제 등 다양한 민주적 원리들이 살아 숨 쉬는 정당, 내부에서부터 평등이 실현되는 정당, 여성․청년․장애인․이주민․소수자 등 기존정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당, 문턱이 낮은 정당을 지향”한다고 나와 있더군요. 당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견해를 당원들이 주최한 강의에서 피력했으니, 반론이 없는 것이 더 이상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녹색당에 대해 그리고 녹색당이 지향하는 환경과 인간 존중 가치에 대해 잘 모릅니다. 20여년 전 대학 교양강의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처음 들었던 게 기억나고, 지금은 잦은 미세먼지로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어떻게 해야 환경 보호에 좀 더 도움이 될까 가끔 고민하는 그런 수준에 불과합니다.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라며, 아마 여러분들이 관심과 지지를 구하려는 많은 시민들도 저 정도의 인식 수준에 있음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 기존 정당과 ‘확연히 다른’ 가치 실현을 위해 당을 결성하고 활동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중요한 이유는 시민들의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표출․대표하는 데 있으며, 그렇게 ‘서로 다른’ 가치․이익을 둘러싼 경쟁과 협력을 통해서만 민주주의가 본연의 의미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현재 기성 정당들 간에 차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혹은 그들이 녹색 가치를 대표하지 못하는 그 정도만큼, 녹색당이 한국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바도 커진다고 믿습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다루기 전에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봐 제가 비판적으로 말했던 교과서 속 민주주의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지나갈게요. 질의․답변 시간에 한 질의자께서 민주주의 이해를 둘러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공유할 만한(누구나 동의할 만한) 민주주의 개념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 등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의도는 이해합니다만, 저는 교과서 속 민주주의 설명이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거나 부분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견해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몇 해 전 우연히 고등학교 정치 관련 교과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룰 수는 없겠네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특이하다거나 대단히 급진적인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저 여러분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환경과 윤리’, ‘성(性)과 윤리’ 내용에 만족하지 못하는 만큼 저도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대한 교과서의 설명이 불만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Photo by Marija Zaric on Unsplash >


1.

그럼 지난 강의에서 시간이 없어 제대로 설명 드리지 못한 당내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사실 이 문제가 제가 보기에는 상식과 편견과 이론이 뒤섞여 생각만큼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인 듯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쉽고 분명한 이해를 위해 먼저 이 주제의 키워드가 되는 민주주의와 정당에 대해 설명 드리고, 그 다음 당내 민주주의가 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지 말씀드릴게요.

 

민주주의는 흔히 ‘인민의 지배 내지 통치’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왕도 귀족도 엘리트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국가의 주인, 주권자라는 것 말고는 알려주는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복잡한 정의를 말씀드리면, 민주주의란 “하나의 공동체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그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자격․지위를 갖고 참여하는 결정방식 또는 이에 기반한 통치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 공동체가 국가든 뭐든, 공동체를 운영 내지 통치하는 데 있어 모든 구성원을 ‘정치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성원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즉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공동체에서 정책․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1인 1표의 투표로 하면 되지, 그게 평등하니까.” “다수결도 결국 평등의 원리를 따른 거지, 그런데 소수 의견은 어떡하지?” “아, 그전에 모두가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권리도 보장해야겠네, 그런데 모두가 한 마디씩 하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지?” “결정할 사안에 대해 사람들마다 생각도 다른데다 이해 수준도 다를 텐데, 민주주의라고 이걸 그냥 투표에 부쳐도 되나?”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통치하려면 어떤 정책 결정의 원칙․원리가 필요할까요? 적어도 아래 다섯 가지 원칙 내지 기준을 따르고 어느 정도 충족해야만 민주적 결정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효과적인 참여(effective participation): 공동체가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모든 구성원은 그 정책에 관한 자기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평등하고 효과적인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2. 투표의 평등(voting equality):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고 효과적인 투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고, 모든 표는 똑같이 1인 1표로 계산되어야 한다.

3. 계몽된 이해(enlightened understanding): 누구나 이해할 만한 시간 제약 하에서, 모든 구성원은 논의 중인 사안의 여러 대안들이 각각 어떤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지 알 수 있는 평등하고 효과적인 기회를 가져야 한다.

4. 의제의 통제(control of the agenda): 구성원들은 ‘어떤’ 사안을 ‘어떻게’ 의제에(안건으로) 올릴 것인지를 결정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5. 성인의 포함(inclusion of adults): 위의 원칙은 국가 공동체의 모든 성인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민주주의라도 성인 모두에게 위의 원칙들을 보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그럴 듯하게 정식화해서 말했는데, 1과 2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반면 3, 4, 5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3은 여러 정책 대안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기회가 필요하다는 내용인데, 쉽게 말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책에 관한 질의, 토의, 숙의 기회를 보장하는 요건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어요. 현명한 소수의 결정이 무지한 다수의 결정보다 낫다는 주장도 이 조건 덕분에 수월하게 반박할 수 있죠. 4는 1, 2, 3이 충족되더라도 특정 소수가 투표에 부칠 안건을 제한해 자기 이익을 관철할 기회를 배제하기 위한 원칙입니다. 달리 설명하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안만 의제(안건)로 올라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이해하고 투표하는 건 무의미할 뿐 아니라 (의제에 오르지 않은) 더 중요한 사안과 관련된 특정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결과를 가져오니 막아야 한다는 뜻이죠. 마지막 5는 국가 공동체를 염두에 둔 기준인데, 그보다 작은 공동체라도 사실 누구를 그 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생각만큼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정당이라는 공동체만 봐도 당원 기준을 무엇으로 할지, 중요한 정책 결정이나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당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건을 둬야 하는지, 지지자에게는 또 어떤 권한을 줘야 할지, 당 안팎으로 상당한 견해차가 나타나곤 하죠.

 

이렇게 설명 드리면,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꽤 정교하고 복잡하구나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또 이런 원칙대로라면, 한 백 명, 이백 명 정도 모임에서는 그래도 그림이 그려지는데, 백만, 천만, 억 단위에서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당혹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나아가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신 분이라면, 과연 이런 원칙이 현실 정치에서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닌지 걱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느낌, 당혹감, 우려와 의문에 대해 답변 드리자면, 실제 현실 속의 민주주의가 위에서 밝힌 원칙을 완벽히 실현한 경우는 드물며, 다만 이 원칙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판단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생각을 도와주는 기준 정도로 받아들이셔도 좋겠습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위와 같은 원리․원칙의 실현 가능성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수천만 혹은 수억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동체, 즉 한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원리․원칙만 밝히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할 제도 논의를 빠뜨리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허무함만 남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리면, 어떤 한 나라가 민주주의를 한다고 인정하려면 적어도 다음 6가지 제도가 꼭 필요합니다.

 

1. 선출되는 대표(elected officials): 정부 정책의 결정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시민이 선출한 대표가 갖는다.

2. 자유롭고 공정하고 빈번한 선거(free, fair, and frequent election): 대표는 강제나 강압은 최소한에 그치고, 가능한 한 불편부당하며, 임기가 너무 길지 않도록 빈번하게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

3.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 시민들은 대표, 정부, 체제, 사회경제 질서, 지배적 이데올로기 등의 광범위한 정치 사안에 대해, 처벌에 대한 위협 없이 자기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갖는다.

4. 대안적 정보공급원(alternative sources of information): 시민들은 다른 시민, 전문가, 신문, 잡지, 방송 등 독립적이고 선택가능한 정보공급원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들 대안적 정보공급원은 정부 또는 대중의 정치적 신념․태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단일 집단의 통제 하에 있어서는 안 되며,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5. 결사의 자유(associational autonomy): 민주적 정치 제도의 효과적인 작동에 필요한 권리를 비롯한 여러 권리의 실현을 위해, 시민들은 정당․이익집단 같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조직 내지 결사체를 결성할 권리를 갖는다.

6. 포용적 시민권(inclusive citizenship): 한 나라에 상시적으로 거주하고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하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위에서 밝힌 다섯 가지 제도 작동에 필요한 권리들을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민주주의에 필요한 제도를 정리하면,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인지 아닌지, 규모가 큰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다들 알고 계시는 내용일 텐데,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들 제도가 위에서 밝힌 원리로부터 나왔다는 점입니다.

 

2.

이제 ‘5. 결사의 자유’에서 언급된 정당이 왜 민주주의에서 ‘특별히’ 중요한지, 정당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 드릴게요. 정당은 여러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직 획득’을 목표로 선거 경쟁에 참여해 국가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모임 내지 조직입니다. 물론 이익집단이나 운동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정책 결정에도 관여하죠. 하지만 정당만이 유일하게 공직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이 특징으로 인해 정당은 민주주의 정치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녹색운동이 아닌 녹색당을 결성한 이유도 운동만으로는 지향하는 바를 실행하는 데 한계가 크다고 보셨기 때문이겠지요.

 

< 정당의 기능과 효과 >


분 류

활동 공간

기 능

효 과

표 출

시민사회

시민 선호의 표출·집약·조율,

정치엘리트 충원․훈련

사회 통합,

정치적 야심의 관리(엘리트 정치사회화)

(선 거)

후보 선출, 이슈 구조화(공약 경쟁),

유권자 동원

유권자 선택지 단순화, 정당일체감 형성,

정치 교육(시민 정치사회화)

대 표

의회․정부

정부(의회 다수파) 구성, 반대·이견 조직

정책 조율·결정·감독

정부 활동 책임성 보장,

관료 통제


위 표는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담당하는 기능과 그로부터 기대되는 효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정당은 크게 보아 시민들의 요구와 바람을 표출하고, 그런 요구․바람을 의회와 정부에서 대표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민사회 영역에서 정당은 수많은 시민들의 다양한 이익과 가치, 선호를 드러내고, 집약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하죠. 사실 어떻게 보면 정당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책이란 것도 이런 표출․집약․조율을 위한 기제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내세우는 녹색 이념과 정책 덕분에 시민들은 그와 관련된 자신들의 (잠재적) 선호를 밝힐 수 있고, 그 다양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는) 여러 선호들을 집약․조율할 수 있는 거죠.

 

이로부터 기대되는 효과가 사회 통합이라고 했는데,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다수 시민들이 중요한 요구를 제기함에도 정당이 이에 응답하지 않을 때, 시민들은 정당과 정치를 외면하고 각자도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애써 잊고 지낼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은 공동체 구성원(시민)으로서의 지위나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공동체의 결속력도 점점 더 약화되고 말겠죠. 또한 수많은 시민들이 제각기 자기 의견을 밝히는데 그렇게 많은 의견이 몇 개의 정당 대안으로 수렴되지 못하면, 마치 다들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바벨탑의 저주와 같은 혼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럴 때도 시민들은 그 바벨탑의 노동자들처럼 뿔뿔이 흩어져 각자가 자기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겠죠.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으로 모이고 정당의 후보가 되고 선거 경쟁에서 나서 승리하면 공직을 맡게 된다고 할 때, 정당이 자기 이념에 맞는 경력과 실력을 갖춘 정치엘리트를 충원하고 훈련하고 관리하는 기능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정당의 이런 기능 덕분에 자칫 폭력적, 억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배 욕구도 민주적 경쟁의 원리에 따라 순화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정당의 기능은 선거 시기 더욱 집약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우선 일정한 지지를 보유한 정당들이 자기 후보를 뽑아 선거에 내세우는 일은 유권자가 선택할 대안의 수를 크게 줄여줍니다. 이런 후보와 함께 제시되는 정책은 당해 선거에서 어떤 이슈가 더 중요하고 어떤 이슈가 덜 중요한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며 유권자의 정당․후보 선택을 쉽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후보와 운동원, 이슈와 정책, 그 외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선전선동 및 인적․물적 네트워크 활동은 정당과 유권자의 일체감을 형성․강화하며 시민을 위한 정치 교육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마지막으로 의회․정부 영역에서도 정당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우선 정당은 원내 다수파를 형성해 입법과 정책결정을 용이하게 합니다. 이에 대해 원내 소수파 정당은 다수파가 주도한 법률과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에 맞설 대안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반대 역할을 담당하죠. 물론 의석 분포나 이슈의 성격에 따라 원내 정당들 간 의견 조율과 협력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할에 따라 원내 정당들이 (대통령과 함께) 상호 경쟁과 갈등을 벌이면, 유권자는 정부 실적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다음 선거에서 책임 정당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경쟁 과정은 의도한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를 둘러싼 경쟁도 포함하기에, 실제 정책 집행을 담당하는 관료에 대한 통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해줍니다.

 

가끔 정당을 우습게 보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후진 정당이라도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처럼 큽니다. 정당이 없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보통 광역과 기초 단위의 단체장, 지역구 의원, 비례대표 의원으로 이루어진 6명의 공직자를 선출합니다. 지금은 당의 후보라는 여과 기능이 있어 무소속까지 포함해도 공직마다 대략 5명 안팎의 후보가 나서지만, 당이 없다면 후보 수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적게 잡아 공직별로 10명씩만 나온다고 계산해도 모두 60명입니다. 이렇게 후보와 그들의 운동원까지 수백, 수천 명이 선거운동을 벌이는데 그들을 구분해주는 당이 없다면, 유권자는 누가 누구인지는 고사하고 누가 어느 공직의 후보로 나왔는지도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의회 내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300명이 1년 동안 각자 하나의 안건만 제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정당이 없다면, 이들 300개의 안건에 대해 의원들이 각각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일일이 다 확인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확인하고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 과정이 말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세제 하나만 놓고 봐도 의원마다 과세 대상부터 세율까지 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하고, 어떤 대안이 더 좋은지에 대해 서로 간에 또는 이해당사자 집단이나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하고, 지역구로 가서 시민들 의견을 구하거나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그런 의회 안팎의 의견 수렴을 거쳐 다수 지지를 얻을 만한 몇 개의 대안들을 만들고, 어떤 대안도 다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최신 디지털 매체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안건 하나 처리하는데 최소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테고, 그러면 1년에 처리할 수 있는 안건은 기껏해야 25건에 불과합니다.

 

<Photo by Element5 Digital>


정당이 위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당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표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좋은 후보를 내세우려 하고, 더 많은 유권자와 만나 의견을 들으려 하고, 원내에 들어가서는 자기 정책을 실현하려 하고, 그런 정책이 취지에 맞게 실현될 수 있도록 관료들을 지도․감독하려 노력하는 거죠. 물론 정당이 이와 같은 방식의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도 기업처럼 경쟁뿐만 아니라 담합도 할 수 있고, 위에서 밝힌 기능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다른 방식의 경쟁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시민들이 정당에 불만을 갖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을 텐데, 이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른 기회에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중요한 이유는 위에서 밝힌 민주주의 원칙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데 정당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도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데 있어 정당은 없어서는 안 될 조직이자 제도입니다. 지지자와 일반 시민의 요구와 바람을 수렴하고 조직하는 정당이 없다면,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 같은 ‘효과적인 정치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사회적 강자의 목소리에 묻히거나 혼란스런 소동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표의 평등’은 선거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로 보장되지만, 더 많은 표를 얻고자 경쟁하는 정당만이 그 한 표 한 표의 동등한 가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공동체의 운영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몽된 이해’도 둘 이상의 정당이 서로 다른 가치와 정책을 놓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관련 사실과 정보, 이론과 전망을 제시할 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정당은 그들 간 경쟁 과정에서 어떤 사안이 더 중요하고 어떤 사안이 덜 중요한지 이슈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당에 속한 대표들은 정부나 의회에서 그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법률과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의제의 통제’에 기여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나라와 같이 규모가 큰 공동체에서 시민들이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그 세부 사항까지 다 알고 이해하면서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 주권의 힘은 그들이 얼마나 자주 정책결정에 참여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중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정당은 공동체 전체에 중요한 대안을 정의해 시민들 앞에 제시하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평결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당이 있어야만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부응하는 주권자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누리며 그 위용을 떨칠 수 있습니다.

 

3.

이제 이 글의 중심 주제에 해당하는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당내 민주주의란 당의 정책․의사 결정에서도 앞에서 소개한 민주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언뜻 보면, 한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듯이 당내에서도 그대로 하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그래서 당내 민주주의는 실현하기도 어렵거니와 한다고 해도 기대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 드릴게요.

 

위의 정당 역할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건 둘 이상의 정당이 시민들에게 서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조직 내로 가져오면 무척이나 당혹스런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1만 당원의 녹색당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당내에 적어도 둘 이상의 정당 같은 것, 이를테면 파벌이나 의견 그룹이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여기서 그치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그 특정 파벌을 이루는 최소 5천명 이상의 당원들 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도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파벌 내에 또 둘 이상의 하위 파벌이 서로 다른 대안을 갖고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아마도 제대로 당내 민주주의를 하려면 거의 완벽하게 의견이 같은 아주 작은 당내 소모임에 이를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안 속의 대안 속의 대안을 정의하고 경쟁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요?

 

강의안에서 저는 당내 민주주의 주장이 ‘구성의 오류’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나무의 특성만 보고서는 숲의 특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인데, 전체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그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하위 단위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하고, 단위 조직은 그 조직의 역할과 목적에 맞는 조직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럼 정당의 목적과 역할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무엇보다 공직 획득을 위한 선거 승리가 가장 중요한 목표겠고, 그 선거 승리를 위한 경쟁 과정에서 일관된 이념과 정책으로 대안을 정의해 지지자와 일반 시민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겠죠. 그리고 이런 목적․역할을 위해서는 당의 응집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적전 분열은 필패를 의미하고, 패배한 정당의 역할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당내 민주주의를 그렇게 너무 엄격히 적용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당원 투표 같은 당내 민주주의 절차가 당의 응집성을 강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느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두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결성에 대한 당원 투표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 당원 투표와 그 번복입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랬던 민주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더 많은 의석 확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고, 결국 당원 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으로 위성정당 창당을 결정했죠. 당원 30.6%가 참여했고, 74.1%의 찬성률을 나타냈습니다. 이걸 당내 민주주의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을까요? 대략 30% 참여에 75% 찬성이면, 23%의 당원이 위성정당 창당을 인정했다는 것도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거니와, 그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활동가와 당원들 사이에 어떤 진지한 대화나 논의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종류의 결정 방식을 ‘일반/국민 투표제적 민주주의’(plebiscitary democracy)라고 하는데, 사실 말이 민주주의지 당 지도부의 의사 관철을 위한 위로부터의 동원 내지 사이비 민주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한 번만 예외적으로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4월 보궐선거 준비에서도 민주당은 자당 공직자의 잘못으로 초래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 개정을 전당원 투표로 관철해 자당 후보 추천을 강행했죠. 그리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에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전당원 투표로 철회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 정당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볼 수 있는데, 대개는 당 대표가 당내 의원 그룹이나 중견 활동가 집단의 강한 반대 의견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이와 같은 당원 투표를 활용한다고 하는군요. 이들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아는 당내 민주주의 내지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이 사실은 그닥 민주적이지 않다는 거죠.

 

이런 사례가 당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 당 입장에서는 그나마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당의 선거 승리를 얻은 경우가 있고, 단기적이라도 당의 응집성을 유지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녹색당의 지난 당원 투표와 그 결정 번복은, 위의 사례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민주적 정당성도 부족할 뿐 아니라 당의 일관성을 잃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져왔습니다.

 

앞의 민주당 사례와 같이 녹색당의 당원 투표는 당 지도부의 비례대표연합정당 참여 결정에 대한 인준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안을 당원 투표로, 압도적 찬성으로 결정하고 나니 그것이 가져올 사태의 책임을 모든 당원이 나눠 갖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례연합정당과 관련한 당 지도부의 결정이 연합 상대의 태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전략적 일관성을 상실하고 그럼으로써 선거 준비에 큰 차질을 낳았다면, 당 지도부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도부는 그런 결정을 내리고 그에 책임지라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더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고,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하는 거죠. 이것은 굳이 당내 민주주의를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리더십에나 적용되는 조직 운영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녹색당은 그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 덕분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새로운 대안적 리더십을 모색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진정한’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가 아닌 추첨으로 누구나 대의원을 맡을 수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선거는 ‘뛰어난’ 사람을 뽑아 그의 지도를 따를 수밖에 없는 반면, 추첨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그랬듯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갖고 당무를 수행토록 하는, 정치적 평등을 구현한 제도라는 거죠. 그렇다면 묻고 싶어요. 대의원 말고, 그보다 더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진 당무위원이나 전국위원, 대표는 왜 추첨으로 선출하지 않으시나요? 이런 당직도 추첨으로 뽑는 게 당내 민주주의의 이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아닐까요? 네,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바로 그 이유, 방금 말씀드렸듯이 대표나 당무․전국위원은 더 중요한 권한과 책임을 갖기에 그만큼 더 많은 정치적 능력 내지 소양이 필요하고, 따라서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을 뽑기 위해 선거를 치르는 거죠. 이건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들도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전쟁이나 국고를 관리하는 공직은 모두 선거로 뽑았죠.

 

그런데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해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법률이나 정책은 추첨으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모든 시민이 법안이나 정책안을 만들어 그런 대안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추첨으로 선택하자고 제안하지 않았죠. 이런 의사결정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고 자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신 법률이나 정책은 시민의회에서 다양한 대안들을 논의하는 과정, 아마도 대개는 뛰어난 연사들이 각자의 대안을 갖고 논쟁과 설득을 벌이고 시민들은 그들의 주장을 듣고 판단해 투표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쳤죠. 이렇게 보면 아테네 민주주의의 추첨 방식은 사실 행정 권력의 배분이지 정치 권력의 배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로서는 녹색당원 여러분들이 대의원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의원에게 기대하는 바가 일반 당원들의 의사를 취합해 대의원대회에 전달하는 단순한 역할에 머문다면, 그들을 추첨으로 뽑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대의원들이 이런 역할을 넘어 아래로부터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조직하고 더 나은 대안을 위해 서로를 설득하며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타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추첨 방식은 큰 한계를 가질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여러분이 실천하고 기대하는 당내 민주주의가 그 원리를 충실히 따르면 실현 가능하지 않고 현재의 실천 수준과 방식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정당은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소우주(microcosm)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바꿔 말해, 정당이 민주적 가치를 갖는 이유는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고 중요한 대안을 제시해 더 많은 지지를 얻고자 경쟁함으로써 다수의 동의에 의한 통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유권자는 여러분이 당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보고 지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시한 대안적 가치와 이념, 정책,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를 보고 지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런 주장이 정당은 독재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 대표나 대의원을 뽑을 때면 활발한 의견 개진과 토론 속에서 선거를 치르면 좋겠죠. (물론 합의 추대가 더 좋을 때도 많습니다.) 평시에도 당 대표나 당직자, 대의원들은 당원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해야겠죠. 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내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충실한 고수가 앞서 말씀드린 당의 원래 목적과 역할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당을 운영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로서는 그 답은 여러분이 당 안팎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당 주요 정책의 신속한 결정과 추진력이 중요하다면, 리더와 지도부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직 구조가 좋습니다. 거꾸로 리더의 독단과 전횡이 우려스럽다면 집단지도체제나 합의적 결정방식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역량 있는 활동가를 양성해 그들이 당의 조직 기반을 강화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권한과 책임과 자원을 주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리더 그룹과 평당원 간의 지위와 권한의 차이를 줄이고 의사결정의 영역과 기회를 늘리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당내 갈등과 분열을 확대하고 당의 결정을 더디게 만들며 결정의 책임을 분산시켜 민주주의에서 정당에게 요구되는 응집력, 일관성, 책임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생각보다 길었던 글을 끝낼 때가 되었네요. 개략적이나마 민주주의 원리와 제도에 대해 말씀드렸고,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수행하는 역할을 소개했으며, 왜 당내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충실한 고수가 당원에게도 지지자에게도 민주주의에도 좋지 않은지 설명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정치이론가, 마이클 왈저의 정의에 관한 책 맨 앞에 나오는 첫 단락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되는 평등은 배반할 수밖에 없는 이상이다. 대의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은 평등을 위한 운동을 조직해 권력과 지위와 영향력을 배분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이상을 배반하거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 여기 모든 회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무국장이 있다. 여기 기자들을 탁월한 솜씨로 다루는 언론 담당관이 있다. 여기 지부를 순회하며 조직 기반을 구축하는 인기 있고 에너지 넘치는 연설가가 있다. 이들은 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피한 사람들이며, 확실히 평등한 동료․동지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신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편지를 위해 참고한 ‘교과서’>

Dahl., Robert A. 2020/2000. O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로버트 달(장동진 외 역), 『민주주의』, 동명사, 2018.]

Schattschneider, E. E. 1975/1960. The Semisovereign People: A Realist's View of Democracy in America. Cengage Learning. [앨머 에릭 샤츠슈나이더(현재호․박수형 역).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2008.]

Walzer, Michael. 1983. Spheres of Justice: A Defense of Pluralism and Equality. Basic Books. [마이클 왈저(정원섭 외 역), 『정의와 다원적 평등』, 철학과현실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