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의 정치가
1.
적지 않은 수의 초선 국회의원들이 존경받을만한 정치가로 성장하기보다는 혐오와 조롱조 언어를 앞세워 여론과 권력에 ‘아첨하는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삼 ‘정치가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베버가 책으로 펴낸 강연 원고(“직업이자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이 문제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제격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정치학에서 리더십에 대한 연구의 빈약함은 악명 높다. 제도, 이념, 정책과 같은 일종의 ‘비인격적 주제’에 대한 연구는 많다. 그에 비해 정치의 세계를 이끌고 주도하는 정치가, 그 인격적 특성과 역할 특히 그 ‘책임성’의 문제를 수준 있게 다룬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 해도 피상적이다. 정치가는 누구인가. 정치가는 주권(sovereignty)을 위임받아 통치(government)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공적 권력자’다.
주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중에게 복종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의 원천이다. 법이 구속력을 갖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법이 주권의 명령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군주정에서라면 주권자는 왕이고 법이 갖는 영향력은 왕의 명령에서 발원한다. 민주정의 주권은 시민(정확히 말하면 개인 시민이 아닌 전체 시민)에게서 발원한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민회 그리고 현대 국민국가에서는 총선이나 대선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민 전체 총회’에서 다수 의견을 형성해 그로부터 법을 만들고(입법), 집행하고(행정), 적용(사법)할 수 있는 적법한 공적 기구들을 구성, 운영하는 방식으로 시민 주권은 실천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는 물론 통치의 역할을 맡은 지도자의 인격적 요소가 갖는 역할은 크고 중요하다. 대통령이나 여야 정치인들 개개인의 말과 행동, 그들의 약속과 실제 역할을 둘러싼 논란을 빼고 정치의 문제는 진술조차 될 수 없다. 정치가야말로 인간을 둘러싼 인간의 정치 문제이자, 그 가운데 누구의 군림과 지배를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해당 사회 인간들의 고뇌와 실천을 담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2.
정치사상의 전통을 만든 두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가운데 정치가의 역할 모델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플라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보다는 정치의 체계나 구조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정치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정치학’ 혹은 ‘정치체제 비교론’의 아버지로 이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체제를 균형 있게 이끌 실천 덕목 몇 가지를 아리스토텔레스도 강조는 했지만, 정치가의 인격적 형상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는 플라톤만큼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배로 비유하곤 했다. 통치라는 뜻의 ‘government’는 배를 운전하는 일(to steer)을 뜻하는 그리스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바, 이에 따르면 통치의 책임을 맡은 정치가란 ‘조타수에서부터 갑판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의 체계를 잘 지휘해 목적하는 항구로 안전하게 이끄는 선장의 역할’에 가깝다. 다른 곳에서 플라톤은 정치가의 능력을 ‘대리석이라는 질료 안에서 아름다운 형상을 발견해 구현해낼 안목을 가진 조각가’로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플라톤에게서 정치가란 지금의 현실보다 나은 삶의 전망을 이끄는 공동체의 ‘캡틴(captain)’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지도자의 역할이 결코 순탄하고 안전할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의 정치가의 모습을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말한 바 있다. 예컨대 ‘갑판원에게 핍박당하는 선장’ 혹은 ‘참된 진리가 있는 이성의 세계에 머무는 안온한 삶을 버리고, 동굴 속의 비이성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동료 시민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실천가’의 모습으로 그렸다. 신화와 자연철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능력에 기초해 최선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은 플라톤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모든 논의는 – 그를 비판하든 옹호하든 – 플라톤의 언어와 개념을 무시하거나 피해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되었다.
3.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정치가의 역할 모델에 대한 논의를 대표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마키아벨리와 루소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사에서 정치가론의 새로운 전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체계를 붕괴시킨 토머스 홉스는 왜 꼽지 않는지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홉스는 근대 주권 국가/정부의 등장을 이론화하는 문제에 집중했을 뿐 정치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으로 비유된, 절대적 주권을 갖게 된 ‘근대적 통치체의 등장’을 다루면서, 기껏해야 ‘통치자의 오만’을 경고한 것이 고작이었다고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전통을 연 존 로크의 정치사상은 어떨까. 그의 정치사상은 더욱더 정치가론의 위축을 낳았다. 그는 주권과 통치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기본권을 강조했다. 재산권을 포함해 정치 밖의 시민권에 자연법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정치가의 역할은 물론 정치의 영역 자체를 최소화했다. ‘최소 정부론’와 그에 짝을 이루는 ‘시민사회 우선론’으로 요약될 수 있는 ‘비정치적 민주주의론’ 내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정당적 시민정치론’은 로크에게서 발원한 조류라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4.
마키아벨리는 그 이전의 정치론을 지배했던 종교와 운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런 절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가의 실천론을 과감하게 펼쳤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방법으로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개척하길 바랐다. 플라톤이 이성적 지식의 범위 안에서 영혼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채 이상적 정치가의 비전을 세웠다면, 마키아벨리는 이상주의적 정치론의 한계를 과감하게 파괴해 버리고도 새로운 정치가론을 세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플라톤적 의미의 최선 국가는 선한 인간과 선한 시민, 선한 정치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선한 인간을 신의 세계로 추방해버리면서, 자신은 선한 수만은 없는 동료 인간들과 함께 영혼의 구원보다 조국의 위대함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선한 정치가가 아니라 선하지 않음은 물론 잔인함과 악함도 때로 필요할 때가 있음을 자각하는 정치가가 필요한 이유를 말했다.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정치가, 운명의 힘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비르투(주체적 역량)’와 권력 의지를 통해 변화를 성취하는 정치가의 길을 정당화했다. 종교와 도덕론에 굴복하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인간적 정치론에서 그려내고 있는 정치가의 모습이, 그러나 허무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권력 정치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마키아벨리가 그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전환기의 지도자, 나아가서는 권력의 실제를 잘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능숙한 지배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악한 정치를 권고한 ‘악의 교사’가 아니라, 악함이 실존하는 실제의 인간 현실에서 선한 질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지극히 실천적으로 고민함으로써 매우 인상적인 정치가의 비전을 우리에게 남겼다.
5.
장 자크 루소에게서 근대 정치가론의 전통을 찾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와는 다른 차원에서 루소는 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의 모델로서 ‘헌법 설계자’나 ‘정체 설계자’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아테네 민주정보다는 스파르타와 로마의 공화정에서 더 깊은 영감을 얻어 현대 공화정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연) 그는 ‘질서 잡힌 사회’(well-ordered society)를 만들어 ‘시민적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열망했다. 그런 그에게 이상적인 정치가의 형상은 입법자(legislator 혹은 law-giver)에 가까웠다.
그는 아테네 민주정에서처럼 시민이 직접 법을 만들고 직접 정치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법은 일반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소수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통치는 소수가 맡는 것,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 여겼다. 그런 그에게 좋은 시민은 좋은 법과 좋은 통치의 산물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루소는 플라톤의 ‘철인왕’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폴란드 헌법과 코르시카 헌법의 초안을 의뢰받아 ‘헌법/정체 설계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달리 말해 플라톤이 시라쿠사 왕국을 이상 국가로 만드는 일에 외부 자문가로서 참여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루소도 한 것이다.
새로운 시민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체제 설계자라는 역할이야말로 18시기 말 미국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는 물론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크게 공명된 ‘공화주의 정치가 모델’이 아닐 수 없었다. 현대 정치사에서 건국자와 입법자의 비전은 마키아벨리와 함께 루소의 정치가론 없이는 조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6.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치사상의 전통에서 막스 베버 이전의 정치가론은 현실의 제약 조건에 굴하지 않는, 혹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자의 역할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전의 정치 지도자의 모습이 건국자, 개혁자, 변혁가 혹은 미래의 구원자, 나아가서는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대안체제의 기획자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실제 현실의 조건과 구조적 제약 속에서 혹은 그런 구조나 조건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 정치가의 역할을 이해하기보다는, ‘체제 밖 – 역사 밖 – 구조 밖 – 조건 밖의 초월적 존재’로 정치가나 지도자를 다루는 한계가 있었다. 베버는 달랐다.
베버는 제도화되고 일상화된 조건에서 정치가의 역할과 인격적 모습을 형상화하려 했다. 이는 그 이전의 정치사상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주제였다. 베버는 늘 실제의 정치 현실에 대한 ‘설명적 서술’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뒤 다양한 경쟁적 대안을 유형화하고, 그 가운데 객관적 조건과 제약 속에서 실행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베버의 정치가론은 특정의 가치에 맞는 선택을 절대시하는 이념적 접근과 달랐다. 이 점에서 현대 급진적 사유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정치 이론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마르크스에서 정치가는 누구인가. 그에게 정치가란 ‘구조의 담지자’ 내지 ‘계급의 대행자’에 가깝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정치가로서의 ‘에토스’(개성 내지 인격성)가 갖는 이론적 위치는 지극히 애매한데, 최대로 유추해낸다 해도 그것은 정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전위적 활동가’ 정도다. 더욱이 혁명 이후, 즉 정치가 필요치 않게 된 세상에서 정치가의 역할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혁명 이후 기대와는 달리 세습과 신분의 체제로 퇴락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한계라 할 수 있는 ‘정치가론의 부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했을까. 그것이 어땠길래 한 번의 강연 내용이 지금껏 정치의 고전으로 읽혀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읽히게 될 현대 정치가론의 전형이 될 수 있었을까. 이제 그 내용 안으로 들어가 문제를 살펴보자.
7.
베버 강연 당시 독일의 상황은 한마디로 민주화 직후 시기다. 그런데 그에게서 현실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조직체로 등장한 국가 관료제의 문제와 무관하게 조망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베버 강연의 앞부분은 국가와 행정 관료제에 대한 긴 설명으로 시작된다. 덧붙여 현실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대규모 기업조직의 문제와 상관없이 그려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시대는 정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다른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뎟붙여 현대 민주주의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대중의 등장을 동반했다. 공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교육받은 계층에게만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그 이전의 사고방식이 더는 지속될 수 없는, 대중 민주주의의 도래가 그것이다.
강력한 국가 관료제와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대규모 대중운동을 통해 이제 막 민주화된 독일 사회는 어떤 정치가를 필요로 했는가. 이는 베버 논의의 중심 주제인데, 이를 위해 베버는 우선 영국과 미국처럼 독일에 앞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시작한 나라들의 경험을 불러온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중간 부분이 영국과 미국을 사례로 정당 정치에 대한 긴 분석으로 채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고는 앞선 두 나라의 경험을 비교의 준거로 삼아 독일의 정치 상황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베버가 던진 질문은 이랬다. 강한 관료 - 약한 의회 - 소심한 부르주아, 그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양극화된 요구를 쏟아내고 있는 세력들의 난립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당시의 독일 현실에서 정치가라면 대체 어떤 자질과 윤리성을 갖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실제 현실 속에서 문제에 접근하려 했기에 베버는 “여러분의 요청으로 이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틀림없이 내 강의는 여러분을 여러모로 실망시키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연에서 언급된 최초의 인물은 누구일까. 트로츠키다. 강연의 서두에서 “한때 트로츠키는 .... ‘모든 국가는 폭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처럼 러시아 혁명가를 불러들여 베버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상에 맞는 ‘윤리적 국가’를 기대했던 청중들을 정치의 현실로 이끌려는 일종의 ‘수사학적 기법’이었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폭력체’다.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장 급진적인 트로츠키조차도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다. 제아무리 민주주의에서라도 국가란 폭력과 정당성 사이에서 기능하는 권력체인바, 정치란 결국 그런 “권력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투 노력 혹은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투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논의를 정리하고는, 이런 정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 그 대답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옮음을 ‘신념 윤리’로 내세우고 자신의 진정성을 이해해달라고 강변하면서 이를 오해하는 타인과 세상에 대해 푸념만 늘어놓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가들은 신념도 견지하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공허한 내면을 채우고자 정치의 소명을 스스로 버리는 허망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베버는 보았다. 그러면 결국 독일 민주주의의 미래는 상황을 통제할 능력을 잃은 진보파를 대신해 새로운 반동 세력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베버는 예상했다. 그래서 강의를 마치면서 그때 다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10년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때는 이미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거라는 두려운 생각을, 나는 갖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때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리고 솔직히 나 자신도―바라고 희망했던 것들 가운데 실제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그때 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을까? 비분강개해 있을까 아니면 속물근성에 빠져 세상사와 자신의 직업을 그냥 그대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면 현실도피에 빠져들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경우든 나는 그런 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감당할 능력이 없고,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으며, 일상적 존재로서도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결론 내리게 될 것이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8.
베버는 민주주의를 이념이나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특정의 정치형태나 정부 형태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주권을 갖는 체제, 혹은 정치가가 아니라 시민이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체제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여긴다. 그렇게 해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아테네 직접민주주의는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다. 하지만 베버는 고대 아테네에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재현될 수 없음을 반복해서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연합과 자치로 실현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앞서 지적했듯) 관료제를 통해 국가가 운영되고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체제가 작동하는바, 이처럼 이미 거대한 조직체가 선재하는 조건 속에서 시민이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규모 조직체는 시민 개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 하지만 없앨 수 없고 국가 이전 혹은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것은 모두 베버가 ‘합리화’라고 부른, 대규모 사회나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비인격적 지식’의 구현체들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통해서도 이 변화는 되돌이킬 수 없다. 혁명 이후 사회에서도 제도화와 일상화는 필요한바, 이때 사회를 대규모로 조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합리화의 힘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서도 국가 관료제의 문제, 대규모 경제체제를 조율해야 하는 방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국가에서 시민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해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국가 관료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적 힘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정치의 힘을 강력하게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시민은 무정형적 개개인의 간헐적 연합이 아니라 정당과 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관료제의 거대한 힘을 선출직 시민 대표들이 지휘하는 문민 통치(civilian control)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해 민주주의란 시민 개개인의 자치 연대체가 아니라, 조직된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가와 정당이 정부를 번갈아 운영하는 체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에게서 현대 민주주의는 1) 국가 관료제 2) 자본주의 3) 정당 정부로 구성된, 일종의 혼합체제다. 그래서 선출직 정치가와 그들의 집합체인 정당들의 역할이 좋아야 민주주의는 그 가치에 가까운 성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관료제는 합법적 권한과 절차, 규정이 지배한다. 인격적 요소의 역할은 최소화된다. 자본주의 시장체제도 마찬가지다. 경제 행위자들의 분산된 결정이 가격 메커니즘과 자유경쟁의 원리를 통해 자원의 할당과 분배가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중앙집권적 통제자의 역할 없이도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조율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비인격적 합리화가 지배하는 세계다. 그에 비해 민주정치에서는 인격적 요소에서 발원하는 리더십의 힘 내지 개성적 특징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베버는 민주정치에서 발원하는 권위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이를 ‘카리스마적 지배’로 유형화했다. 카리스마는 근대 이전의 ‘전통’과 근대 이후의 ‘합리성’과 같이 비인격적 힘의 제약을 거부할 수 있는 인격적 힘을 상징한다. 요컨대 베버는 (그 스스로 ‘이성의 철장 iron cage of reason’이라고 불렀던)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합리화가 결과하는 자유의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민주적 힘을 정치가에게서 찾으려 한 것이다.
9.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는 베버 이론의 핵심을 표현한다. 이는 대중 민주주의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 지도자나 리더로 인정받는 데는 대중의 지지가 필요치 않다. 그런 체제에서 중요한 것은 적통과 가문의 힘이기 때문이다. 혼인과 인척 관계가 중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민주정에서 정치가 혹은 지도자는 대중의 동의와 지지 없이 그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따라서 지도자 현상은 민주정의 가장 큰 특징이자 역동성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든 통치든 정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심 질료와 활동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압도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인치 대신 제도나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관료제나 법치의 원리에는 맞을지 몰라도 민주정치의 관점에서는 합당한 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가의 역할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대중과 지도자 사이의 인격적 믿음을 극대화시킨다. 그렇기에 베버는 “달리 선택은 없다...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 아니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다.”고 단언할 수 있었고, 만약 지도자가 없는 민주주의에서라면 그 결과는 자신을 위한 정치에 매달리는 도당이나 정치꾼 혹은 카리스마적 자질을 가질 수 없는 관료나 여론에 아첨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 보았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정치가의 역할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베버의 이론을 단연 독창적인 것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그는 민주주의를 ‘정치하는 일이 직업이자 생업이 되는 체제’로 정의한다. 민주정 이전 군주정과 귀족정에서 정치란 특정 혈통과 신분의 독점적 전유물이었다. 그때의 정치를 베버는 생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정도의 재산과 여가를 가진 집단이 부업으로 삼는 일로 정의했다. 민주화는 정치에 대한 접근권을 재산과 여가가 없는 계층에게도 확대하는 정치 변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소득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민주주의에서도 얼마든지 기존 신분 집단과 계급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정치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세비를 지급하는 체제이자 정치에 의존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 정치가들을 만드는 체제로 이해한 것이다.
수강하던 학생들에게 베버는 “정치가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질문한다. 정치가 깨끗해질까, 돈이 필요 없는 정치가 될까. 베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면 돈과 여가를 가진 시민집단이 정치를 지배하는 ‘금권정치’로 민주주의는 퇴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득의 여유가 없는 가난한 시민집단은 자신들의 대표를 정치에 파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버가 정치가의 역할 모델을 일상의 제도화된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 즉 민주주의란 정치하는 일이 직업이자, 생업 나아가 소명이 되는 체제의 특성에서 발원한다. 의원들의 세비나 활동비를 줄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치 담론은, 아마 베버의 입장에서는 귀족정이나 금권정을 옹호하는 일로 보일지 모른다.
10.
민주주의 하에서 지도자적 자질을 갖는 정치가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베버는 의회와 정당 그리고 선거를 들었다. 정치의 중심 공간이라 할 이 세계 밖의 여론이나 이익집단, 비정치적 시민단체에서 소명 있는 정치가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거리의 독재자”라고 보았다. 아마도 오늘날의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좌파 포퓰리즘이나 우파 포퓰리즘 내지 여론동원에 의존하는 ‘아마추어 관직 약탈자’에 가깝다.
베버는 의회 정치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정치 리더십 훈련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의회 정치는 정당이 중심 행위자가 되는 곳이다. 개인 명사들이 지배했던 민주화 이전의 의회 정치와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정당이 의회 정치의 중심이 된다. 또한 정당은 선거라는 공간의 지배자다. 대규모 시민 대중이 투표자로 참여하게 된 민주주의에서 정당 없이 선거 승리를 기약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당 지도자를 중심으로 규율을 갖춘 대중 정당이 만들어지는바, 베버는 이를 통해 인정을 받게 된 정당 지도자만이 현대 민주주의에 맞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는 곧 대규모 시민 대중의 출현을 가능케 한 보통선거권, 이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한 대중 정당, 그 내부에서 통일성을 부과하는 데 성공한 정당 조직, 의회 정치와 내각을 주도하는 당 지도부, 끝으로 지도부 내에서 이 모든 요소를 인격적으로 결합해 낸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이해된다. 이로써 엘리트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명사 정당은 끝나고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새로운 정당 조직 형태는 민주주의, 보통선거, 대중 동원 및 대중 조직의 필요성, 매우 엄격한 규율의 발전 그리고 지도부 내의 고도의 통일성이 낳은 결과이다. 명사들의 지배와 의원들의 주도적 역할은 막을 내렸다.”
지금 우리 정치는 베버의 기대와는 크게 어긋나 있다. 대부분의 정당은 개인 명사들의 허영심이 지배한다. 국회는 리더십의 훈련장이기보다 여론에 잘 보이려는 이른바 ‘여의도 렉카’들이 지배한다. 이념도, 신념도, 가치 지향도 알 수 없이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존경심을 갖게 하는 정치 지도자의 실종도 큰 문제다. 지도자는 없고 야심가만 있는 민주주의가 지금의 한국 정치에 가깝다. 다시 베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베버는 (소명이라는) 그 말이 갖고 있는 본래적 의미에서 역사상 소명을 가진 정치가는 두 유형이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가 고대 도시국가에서의 ‘데마고그’다. 다른 하나는 현대 의회 정치와 입헌주의 하에서 발전해 나온 ‘정당 리더’(party leader)다. 달리 말하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소명을 가진 정치가는 정당 리더 이외 다른 누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책임 정치를 말하며 그 요체를 정당이라 말하거나, 대통령 역시 특정 정당의 후보로서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로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장관과 내각에 대한 정의도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장관은 누가 되어야 할까? 해당 부서의 기술적인 문제라면 실-국장으로 이야기되는 상층 관료가 가장 정통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장관이 된다면 그것은 민주화 이전의 비스마르크적인 관료 정치가 되는 것일 뿐, 민주주의에서 장관의 역할은 다르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장관이란 정치적 권력관계의 대표자일 뿐이며, 그는 이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정치적 기준을 대변하고, 그에 따라 자기 휘하 전문 관료들의 제안을 검토해 그들에게 적절한 정치적 성격의 지시를 내리는 일을 업무로 삼고 있(는)” 존재들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에서 장관은 정무직 혹은 정당의 선출직 대표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각에 대한 설명도 유사한다.
애초 내각이란 입헌군주정하에서 국왕의 자문역으로서 의회에 나가 왕의 최고 통치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엄밀히 말해 왕의 사적 통치를 보좌하고 또 왕에게 책임지는 심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입헌주의와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내각과 행정부가 의회에 책임지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왕에게 책임지는 내각에서 의회에 책임지는 내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 조직의 발전 대신 시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참여에 낭만적 기대를 건 진보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본질은 “조직과 리더십에 적대적인 쁘띠부르주아적 소시민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 되면 정당 내부의 분열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고도 말했다.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정당이 되는 것, 명사 의원들의 허영심에 정당이 지배되는 것, 이익집단 대표들에 의해 비례대표 자리가 포획되는 것, 관료와 저널리스트들의 본능에 당이 지배당하는 것도 필연적이었다. 부르주아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민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베버는 “이런 경로를 따름으로써 우리의 모든 정당은 명사들의 길드로 변해버렸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말해 민주화를 주도했던 진보파들도 “몰락계급의 오명”을 공유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정당 조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소명을 가진 직업 정치가들이 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베버 생각의 요체였다.
11.
베버 강의의 후반부는 “이 (직업 정치가의) 길을 택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개인적인 자격 조건”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 즉 “어떤 종류의 인물이라야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일 권리를 갖는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곧 윤리적인 문제를 꺼내는 것”인 바 본격적으로 정치 윤리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선한 인간을 위한 윤리론을 연장해 정치 윤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마키아벨리 이후 정치사상의 기본 전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베버는 철저한 마키아벨리주의자다.
선한 인간은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선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체제의 종류에 따라 사회구성원의 좋은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의 백성 내지 신민의 역할과 민주정에서의 시민의 역할을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민주정 하에서도 위기나 전환기 시민의 역할 다르고 평상시의 시민의 역할 다르다. 노조원으로서의 시민의 역할, 자영업자로서의 시민의 역할, 당원으로서의 시민이 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정치가로서의 시민의 역할과 투표자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좋은 시민의 역할과 좋은 정치가의 역할 또한 구분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권력을 다룬다. 폭력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위험한 수단을 다루는 일에서 정치가가 자신의 옮음을 앞세우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은 “불모의 흥분 상태” 혹은 “비창조적 열망의 허비” 이상이 될 수 없다. ‘악과 싸우는 선’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악의 위세를 키우거나 사회를 분열과 적대로 몰아간다면 그런 정치의 역할은 유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베버는 진정성을 앞세우는 정치가 악의 번성을 가져온다면 정치가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좋은 의도나 대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무망한 선의를 앞세워 자신을 돋보이게 하면서 세상은 분열되어도 나 몰라라 하는 정치가를 경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과 가치를 양립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연결되는바, 베버는 그것의 실패를 객관성과 거리감의 상실 그리고 허영에 빠진 정치로 특징지었다. 객관성과 거리감의 상실은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의 부재” 혹은 ‘나는 나의 반대파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며 스스로 위선을 정당화하는 “객관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결국 허영만 남게 되는 바, 베버는 허영심을 가리켜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정치가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때로 자기 과시나 자아도취, 외관 꾸미기로 나타나는 데 이로부터 무책임이라는 정치적 죄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큰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그 권력의 원천인 민주적 정치과정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위한 정치로 퇴락할 가능성은 높다. 베버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보자.
“권력을 향한 야심은 그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흔히 ‘권력 본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정치가에게는 정상적인 자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정치 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두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이것과 동일시되는) 책임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허영심, 즉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는 정치가를 이 두 죄악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아주 강력한 힘이다. ‘충격 효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마고그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항상 배우가 되어 버릴 위험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성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이 만들어 낸 ‘인상’에만 연연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하고, 그의 무책임성은 그로 하여금 그 어떤 실질적인 목적도 없이 단지 권력 그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생각해 봐도 실감이 나는 지적이다. 선거에서 후보일 때와는 달리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그는 사회로부터 천상으로 올려진다. 그 주변은 1천 명이 넘는 비서들과 경호원 그리고 연간 2천억에 가까운 예산으로 채워질 뿐아니라 이들은 모두 대통령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대통령 권력이 커지는 것을 통해 권력감을 공유하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자신만을 위한 사적 통치의 가능성은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에서 발원하는 바 크다.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은 자신들을 위한 여론을 만들고 비판언론과 야당의 논리에 대응하려는 ‘대책반’으로 퇴락하기 쉽다. 연출된 권력, 좋은 인상을 위한 연기자 같은 심리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할 때도 많다. 지금처럼 강한 대통령 권력을 갖고는 그 어떤 통치자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허영심에 희생되는 일은 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비서)실이 갖는 그 임의 권력으로서의 영향력을 줄이고 정당과 의회, 내각과 같이 헌법과 법률적인 뒷받침이 큰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통령이 책임 있게 참여하지 않는 한 변화는 어려울 텐데, 베버를 통해 이 점을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12.
지난 민주화 30년 동안 여러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우리의 정당들과 그 정치인들은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당의 역할이 권력을 잡을 때 다르고 권력을 잃을 때 다르다면 여야는 결국 같은 종류의 정당이라는 뜻이 된다. 그것은 정당의 자기 정체성보다는 권력과의 거리감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가 아닐 수 없다. 베버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정치에 있어서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은 모든 정치 행위를 추동하는 힘 가운데 하나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거나 권력감에 도취되어 허영에 찬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보다 정치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게 하는 해로운 일은 없다. ‘권력정치가’는 강한 인상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행동은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이 점에서 ‘권력정치’에 대한 비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 [권력정치] 이념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내적으로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웅장하지만 내용은 없는 자태의 이면에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내면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인간 행위의 의미에 대한 극도로 빈약하고 얄팍한 오만의 산물로서 이런 오만은 모든 행위, 그러나 특히나 정치 행위가 진정으로 내포하고 있는 비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면서 베버는 권력을 갖게 된 정당과 그 정치인들이 권력의 쟁취라는 성공 앞에서 스스로의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다고 유동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이라 하더라도 이 성공에는 사실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질 것이다. 이는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혁이나 혁명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목적의 숭고함을 앞세우면서 방법과 수단에 대한 윤리성을 상실할 때가 많다. 스스로는 다른 혈통,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윤리적 하자 집단’으로 여기곤 한다. 베버는 그럴수록 현실의 정치는 사나워지고 적대는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마치 “궁극적 세계관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속으로 정치를 빠르게 퇴락시킨다. 따라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윤리의 문제가 도덕적으로 지극히 재난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무언가 ‘비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옳기’ 위한 수단으로 ‘윤리’를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정치는 인간의 현실과 평균적 한계를 고려한 속에서 그에 맞는 윤리적 기준을 갖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의도의 선함을 앞세우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 되고 또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와 긴장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공허한 도덕성을 강조하기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베버가 끊임 없이 강조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것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누구도 인간의 완전함을 전제할 권리가 없으며 누구도 옳음을 독점할 수 없다면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공적 대의와 정책적 수단의 선택을 결합하는 문제를 둘러싼 평화적 투쟁일 것이다. 좀 더 나은 변화를 실체적으로 도모하고, 이를 위해 반대파는 물론 “악마와도 손잡을 자신감”을 통해 개선의 공간과 가능성을 확대해가는 긴 노력이 필요한데, 베버는 이를 책임성의 윤리라 정의했다.
정치가가 견지할 윤리로서 책임성의 부재는 정치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를 갈등과 혼란에 빠뜨린다. 당연히 변화는 없고 누구의 말이 더 옳은지를 둘러싼 소동만 남게 된다. 인간이 천사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정치의 기능 없이 평화로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홉스가 강조했듯, 정치의 역할이 없는 사회, 즉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정신적 상처는 물론 심리적 내전 상태를 피할 수 없다. 정치가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옳음의 독점과 진정성을 강변하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더 분열시키고 적대와 균열을 더 심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파괴적인 일이다. 그들을 향해 베버는 이렇게 묻고 답한다.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으며 나는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고자 한다.’라고 외치고 다닌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그들의 신념 윤리를 지탱하고 있는 내적인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고 싶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 말하자면, 이들 중 열의 아홉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진정한 자각 없이 단지 낭만적 감흥에 도취해 있는 허풍선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인간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며 또 추호의 감동도 주지 못한다.”
베버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에 있다고 말한다. 입헌군주정의 덕목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에 있다면 민주정의 덕목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에 있다. 민주정에서 정치가는 세습적 권위의 소유자가 아니라 통치의 책임을 맡은 시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왕이라면 좋게 보이고 근엄하게 보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왕이 아니듯, 정치가도 귀족이 아니어야 한다. 정치가는 해당 공동체가 당면한 여러 과제와 관련해 실체적 변화와 개선을 도모하는 일에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다. ‘실체적 변화의 조직자’ 역할을 하는 정치가인가, 아니면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는 데 능한 ‘아첨하는 정치가’인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라면 실제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씨름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치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서서 늘 말하듯이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는 식이 될 수는 없다. ‘여론에 보여주는 정치’와 ‘실제로 변화를 만드는 정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베버는 실체적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주문했다. 작지만 꾸준한 개선을 중시했다. 민주주의는 말로 아첨하고 선의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변화를 조직하기 위해 일하는 정치가를 필요로 한다.
힘들더라도 상대와 마주해 일을 풀어 가는 정치가 중요하다. 그 속에서 ‘여야가 공유하는 공동의 공간’common ground을 개척하고 넓혀 가는 정치가 아니라, ‘여론에 대고 상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누구도 무엇이 확고하게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정치체제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을 절제하는 ‘건강한 회의주의’에 기초를 둔 다원주의 체제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시민의 의견을 나눠서 조직하는 정당들의 공적 토론이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히 하는 말이 아니다. 합의 가능한 의제마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위협한다. 갈등적인 쟁점마저도 합리적으로 조정 가능한 의제로 바꿔 갈 때 정치는 힘을 갖는다. 그럴 때만이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집’은 따뜻한 공동체적 온기를 품을 수 있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이끌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국회미래연구원에 올린 글입니다.
원본보기 : https://www.nafi.re.kr/new/think.do?mode=view&articleNo=6748&article.offset=0&articleLimit=10
막스 베버의 정치가
1.
적지 않은 수의 초선 국회의원들이 존경받을만한 정치가로 성장하기보다는 혐오와 조롱조 언어를 앞세워 여론과 권력에 ‘아첨하는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삼 ‘정치가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베버가 책으로 펴낸 강연 원고(“직업이자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이 문제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제격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정치학에서 리더십에 대한 연구의 빈약함은 악명 높다. 제도, 이념, 정책과 같은 일종의 ‘비인격적 주제’에 대한 연구는 많다. 그에 비해 정치의 세계를 이끌고 주도하는 정치가, 그 인격적 특성과 역할 특히 그 ‘책임성’의 문제를 수준 있게 다룬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 해도 피상적이다. 정치가는 누구인가. 정치가는 주권(sovereignty)을 위임받아 통치(government)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공적 권력자’다.
주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중에게 복종을 요청할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의 원천이다. 법이 구속력을 갖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법이 주권의 명령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군주정에서라면 주권자는 왕이고 법이 갖는 영향력은 왕의 명령에서 발원한다. 민주정의 주권은 시민(정확히 말하면 개인 시민이 아닌 전체 시민)에게서 발원한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민회 그리고 현대 국민국가에서는 총선이나 대선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민 전체 총회’에서 다수 의견을 형성해 그로부터 법을 만들고(입법), 집행하고(행정), 적용(사법)할 수 있는 적법한 공적 기구들을 구성, 운영하는 방식으로 시민 주권은 실천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는 물론 통치의 역할을 맡은 지도자의 인격적 요소가 갖는 역할은 크고 중요하다. 대통령이나 여야 정치인들 개개인의 말과 행동, 그들의 약속과 실제 역할을 둘러싼 논란을 빼고 정치의 문제는 진술조차 될 수 없다. 정치가야말로 인간을 둘러싼 인간의 정치 문제이자, 그 가운데 누구의 군림과 지배를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해당 사회 인간들의 고뇌와 실천을 담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2.
정치사상의 전통을 만든 두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가운데 정치가의 역할 모델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플라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보다는 정치의 체계나 구조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정치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정치학’ 혹은 ‘정치체제 비교론’의 아버지로 이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체제를 균형 있게 이끌 실천 덕목 몇 가지를 아리스토텔레스도 강조는 했지만, 정치가의 인격적 형상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는 플라톤만큼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배로 비유하곤 했다. 통치라는 뜻의 ‘government’는 배를 운전하는 일(to steer)을 뜻하는 그리스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바, 이에 따르면 통치의 책임을 맡은 정치가란 ‘조타수에서부터 갑판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의 체계를 잘 지휘해 목적하는 항구로 안전하게 이끄는 선장의 역할’에 가깝다. 다른 곳에서 플라톤은 정치가의 능력을 ‘대리석이라는 질료 안에서 아름다운 형상을 발견해 구현해낼 안목을 가진 조각가’로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플라톤에게서 정치가란 지금의 현실보다 나은 삶의 전망을 이끄는 공동체의 ‘캡틴(captain)’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지도자의 역할이 결코 순탄하고 안전할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의 정치가의 모습을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해 말한 바 있다. 예컨대 ‘갑판원에게 핍박당하는 선장’ 혹은 ‘참된 진리가 있는 이성의 세계에 머무는 안온한 삶을 버리고, 동굴 속의 비이성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모욕하는 동료 시민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실천가’의 모습으로 그렸다. 신화와 자연철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능력에 기초해 최선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은 플라톤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모든 논의는 – 그를 비판하든 옹호하든 – 플라톤의 언어와 개념을 무시하거나 피해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되었다.
3.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정치가의 역할 모델에 대한 논의를 대표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마키아벨리와 루소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사에서 정치가론의 새로운 전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체계를 붕괴시킨 토머스 홉스는 왜 꼽지 않는지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홉스는 근대 주권 국가/정부의 등장을 이론화하는 문제에 집중했을 뿐 정치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으로 비유된, 절대적 주권을 갖게 된 ‘근대적 통치체의 등장’을 다루면서, 기껏해야 ‘통치자의 오만’을 경고한 것이 고작이었다고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전통을 연 존 로크의 정치사상은 어떨까. 그의 정치사상은 더욱더 정치가론의 위축을 낳았다. 그는 주권과 통치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기본권을 강조했다. 재산권을 포함해 정치 밖의 시민권에 자연법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정치가의 역할은 물론 정치의 영역 자체를 최소화했다. ‘최소 정부론’와 그에 짝을 이루는 ‘시민사회 우선론’으로 요약될 수 있는 ‘비정치적 민주주의론’ 내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정당적 시민정치론’은 로크에게서 발원한 조류라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4.
마키아벨리는 그 이전의 정치론을 지배했던 종교와 운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런 절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가의 실천론을 과감하게 펼쳤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방법으로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개척하길 바랐다. 플라톤이 이성적 지식의 범위 안에서 영혼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채 이상적 정치가의 비전을 세웠다면, 마키아벨리는 이상주의적 정치론의 한계를 과감하게 파괴해 버리고도 새로운 정치가론을 세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플라톤적 의미의 최선 국가는 선한 인간과 선한 시민, 선한 정치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선한 인간을 신의 세계로 추방해버리면서, 자신은 선한 수만은 없는 동료 인간들과 함께 영혼의 구원보다 조국의 위대함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선한 정치가가 아니라 선하지 않음은 물론 잔인함과 악함도 때로 필요할 때가 있음을 자각하는 정치가가 필요한 이유를 말했다.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정치가, 운명의 힘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비르투(주체적 역량)’와 권력 의지를 통해 변화를 성취하는 정치가의 길을 정당화했다. 종교와 도덕론에 굴복하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인간적 정치론에서 그려내고 있는 정치가의 모습이, 그러나 허무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권력 정치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마키아벨리가 그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전환기의 지도자, 나아가서는 권력의 실제를 잘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능숙한 지배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악한 정치를 권고한 ‘악의 교사’가 아니라, 악함이 실존하는 실제의 인간 현실에서 선한 질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지극히 실천적으로 고민함으로써 매우 인상적인 정치가의 비전을 우리에게 남겼다.
5.
장 자크 루소에게서 근대 정치가론의 전통을 찾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와는 다른 차원에서 루소는 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가의 모델로서 ‘헌법 설계자’나 ‘정체 설계자’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아테네 민주정보다는 스파르타와 로마의 공화정에서 더 깊은 영감을 얻어 현대 공화정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연) 그는 ‘질서 잡힌 사회’(well-ordered society)를 만들어 ‘시민적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열망했다. 그런 그에게 이상적인 정치가의 형상은 입법자(legislator 혹은 law-giver)에 가까웠다.
그는 아테네 민주정에서처럼 시민이 직접 법을 만들고 직접 정치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법은 일반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소수에 의해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통치는 소수가 맡는 것,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 여겼다. 그런 그에게 좋은 시민은 좋은 법과 좋은 통치의 산물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루소는 플라톤의 ‘철인왕’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폴란드 헌법과 코르시카 헌법의 초안을 의뢰받아 ‘헌법/정체 설계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달리 말해 플라톤이 시라쿠사 왕국을 이상 국가로 만드는 일에 외부 자문가로서 참여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루소도 한 것이다.
새로운 시민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체제 설계자라는 역할이야말로 18시기 말 미국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는 물론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크게 공명된 ‘공화주의 정치가 모델’이 아닐 수 없었다. 현대 정치사에서 건국자와 입법자의 비전은 마키아벨리와 함께 루소의 정치가론 없이는 조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6.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치사상의 전통에서 막스 베버 이전의 정치가론은 현실의 제약 조건에 굴하지 않는, 혹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자의 역할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전의 정치 지도자의 모습이 건국자, 개혁자, 변혁가 혹은 미래의 구원자, 나아가서는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대안체제의 기획자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실제 현실의 조건과 구조적 제약 속에서 혹은 그런 구조나 조건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 정치가의 역할을 이해하기보다는, ‘체제 밖 – 역사 밖 – 구조 밖 – 조건 밖의 초월적 존재’로 정치가나 지도자를 다루는 한계가 있었다. 베버는 달랐다.
베버는 제도화되고 일상화된 조건에서 정치가의 역할과 인격적 모습을 형상화하려 했다. 이는 그 이전의 정치사상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주제였다. 베버는 늘 실제의 정치 현실에 대한 ‘설명적 서술’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뒤 다양한 경쟁적 대안을 유형화하고, 그 가운데 객관적 조건과 제약 속에서 실행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베버의 정치가론은 특정의 가치에 맞는 선택을 절대시하는 이념적 접근과 달랐다. 이 점에서 현대 급진적 사유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정치 이론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마르크스에서 정치가는 누구인가. 그에게 정치가란 ‘구조의 담지자’ 내지 ‘계급의 대행자’에 가깝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정치가로서의 ‘에토스’(개성 내지 인격성)가 갖는 이론적 위치는 지극히 애매한데, 최대로 유추해낸다 해도 그것은 정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전위적 활동가’ 정도다. 더욱이 혁명 이후, 즉 정치가 필요치 않게 된 세상에서 정치가의 역할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혁명 이후 기대와는 달리 세습과 신분의 체제로 퇴락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한계라 할 수 있는 ‘정치가론의 부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했을까. 그것이 어땠길래 한 번의 강연 내용이 지금껏 정치의 고전으로 읽혀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읽히게 될 현대 정치가론의 전형이 될 수 있었을까. 이제 그 내용 안으로 들어가 문제를 살펴보자.
7.
베버 강연 당시 독일의 상황은 한마디로 민주화 직후 시기다. 그런데 그에게서 현실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조직체로 등장한 국가 관료제의 문제와 무관하게 조망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베버 강연의 앞부분은 국가와 행정 관료제에 대한 긴 설명으로 시작된다. 덧붙여 현실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대규모 기업조직의 문제와 상관없이 그려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시대는 정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다른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뎟붙여 현대 민주주의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대중의 등장을 동반했다. 공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교육받은 계층에게만 시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그 이전의 사고방식이 더는 지속될 수 없는, 대중 민주주의의 도래가 그것이다.
강력한 국가 관료제와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대규모 대중운동을 통해 이제 막 민주화된 독일 사회는 어떤 정치가를 필요로 했는가. 이는 베버 논의의 중심 주제인데, 이를 위해 베버는 우선 영국과 미국처럼 독일에 앞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시작한 나라들의 경험을 불러온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중간 부분이 영국과 미국을 사례로 정당 정치에 대한 긴 분석으로 채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고는 앞선 두 나라의 경험을 비교의 준거로 삼아 독일의 정치 상황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베버가 던진 질문은 이랬다. 강한 관료 - 약한 의회 - 소심한 부르주아, 그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양극화된 요구를 쏟아내고 있는 세력들의 난립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당시의 독일 현실에서 정치가라면 대체 어떤 자질과 윤리성을 갖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실제 현실 속에서 문제에 접근하려 했기에 베버는 “여러분의 요청으로 이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틀림없이 내 강의는 여러분을 여러모로 실망시키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연에서 언급된 최초의 인물은 누구일까. 트로츠키다. 강연의 서두에서 “한때 트로츠키는 .... ‘모든 국가는 폭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처럼 러시아 혁명가를 불러들여 베버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상에 맞는 ‘윤리적 국가’를 기대했던 청중들을 정치의 현실로 이끌려는 일종의 ‘수사학적 기법’이었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폭력체’다.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장 급진적인 트로츠키조차도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다. 제아무리 민주주의에서라도 국가란 폭력과 정당성 사이에서 기능하는 권력체인바, 정치란 결국 그런 “권력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투 노력 혹은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투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논의를 정리하고는, 이런 정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 그 대답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옮음을 ‘신념 윤리’로 내세우고 자신의 진정성을 이해해달라고 강변하면서 이를 오해하는 타인과 세상에 대해 푸념만 늘어놓는 일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가들은 신념도 견지하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공허한 내면을 채우고자 정치의 소명을 스스로 버리는 허망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베버는 보았다. 그러면 결국 독일 민주주의의 미래는 상황을 통제할 능력을 잃은 진보파를 대신해 새로운 반동 세력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베버는 예상했다. 그래서 강의를 마치면서 그때 다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10년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때는 이미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거라는 두려운 생각을, 나는 갖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때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리고 솔직히 나 자신도―바라고 희망했던 것들 가운데 실제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는 그때 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을까? 비분강개해 있을까 아니면 속물근성에 빠져 세상사와 자신의 직업을 그냥 그대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면 현실도피에 빠져들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경우든 나는 그런 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감당할 능력이 없고,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감당해 낼 능력도 없었으며, 일상적 존재로서도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결론 내리게 될 것이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8.
베버는 민주주의를 이념이나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특정의 정치형태나 정부 형태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주권을 갖는 체제, 혹은 정치가가 아니라 시민이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체제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여긴다. 그렇게 해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아테네 직접민주주의는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다. 하지만 베버는 고대 아테네에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재현될 수 없음을 반복해서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연합과 자치로 실현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앞서 지적했듯) 관료제를 통해 국가가 운영되고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체제가 작동하는바, 이처럼 이미 거대한 조직체가 선재하는 조건 속에서 시민이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규모 조직체는 시민 개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 하지만 없앨 수 없고 국가 이전 혹은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것은 모두 베버가 ‘합리화’라고 부른, 대규모 사회나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비인격적 지식’의 구현체들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통해서도 이 변화는 되돌이킬 수 없다. 혁명 이후 사회에서도 제도화와 일상화는 필요한바, 이때 사회를 대규모로 조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합리화의 힘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서도 국가 관료제의 문제, 대규모 경제체제를 조율해야 하는 방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국가에서 시민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해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국가 관료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적 힘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정치의 힘을 강력하게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시민은 무정형적 개개인의 간헐적 연합이 아니라 정당과 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관료제의 거대한 힘을 선출직 시민 대표들이 지휘하는 문민 통치(civilian control)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해 민주주의란 시민 개개인의 자치 연대체가 아니라, 조직된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가와 정당이 정부를 번갈아 운영하는 체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에게서 현대 민주주의는 1) 국가 관료제 2) 자본주의 3) 정당 정부로 구성된, 일종의 혼합체제다. 그래서 선출직 정치가와 그들의 집합체인 정당들의 역할이 좋아야 민주주의는 그 가치에 가까운 성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관료제는 합법적 권한과 절차, 규정이 지배한다. 인격적 요소의 역할은 최소화된다. 자본주의 시장체제도 마찬가지다. 경제 행위자들의 분산된 결정이 가격 메커니즘과 자유경쟁의 원리를 통해 자원의 할당과 분배가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말해 중앙집권적 통제자의 역할 없이도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조율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비인격적 합리화가 지배하는 세계다. 그에 비해 민주정치에서는 인격적 요소에서 발원하는 리더십의 힘 내지 개성적 특징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베버는 민주정치에서 발원하는 권위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이를 ‘카리스마적 지배’로 유형화했다. 카리스마는 근대 이전의 ‘전통’과 근대 이후의 ‘합리성’과 같이 비인격적 힘의 제약을 거부할 수 있는 인격적 힘을 상징한다. 요컨대 베버는 (그 스스로 ‘이성의 철장 iron cage of reason’이라고 불렀던)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합리화가 결과하는 자유의 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민주적 힘을 정치가에게서 찾으려 한 것이다.
9.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는 베버 이론의 핵심을 표현한다. 이는 대중 민주주의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 지도자나 리더로 인정받는 데는 대중의 지지가 필요치 않다. 그런 체제에서 중요한 것은 적통과 가문의 힘이기 때문이다. 혼인과 인척 관계가 중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민주정에서 정치가 혹은 지도자는 대중의 동의와 지지 없이 그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따라서 지도자 현상은 민주정의 가장 큰 특징이자 역동성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든 통치든 정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심 질료와 활동에서 인간적인 요소가 압도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인치 대신 제도나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관료제나 법치의 원리에는 맞을지 몰라도 민주정치의 관점에서는 합당한 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가의 역할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대중과 지도자 사이의 인격적 믿음을 극대화시킨다. 그렇기에 베버는 “달리 선택은 없다...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 아니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다.”고 단언할 수 있었고, 만약 지도자가 없는 민주주의에서라면 그 결과는 자신을 위한 정치에 매달리는 도당이나 정치꾼 혹은 카리스마적 자질을 가질 수 없는 관료나 여론에 아첨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 보았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정치가의 역할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베버의 이론을 단연 독창적인 것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그는 민주주의를 ‘정치하는 일이 직업이자 생업이 되는 체제’로 정의한다. 민주정 이전 군주정과 귀족정에서 정치란 특정 혈통과 신분의 독점적 전유물이었다. 그때의 정치를 베버는 생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정도의 재산과 여가를 가진 집단이 부업으로 삼는 일로 정의했다. 민주화는 정치에 대한 접근권을 재산과 여가가 없는 계층에게도 확대하는 정치 변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소득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민주주의에서도 얼마든지 기존 신분 집단과 계급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정치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세비를 지급하는 체제이자 정치에 의존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 정치가들을 만드는 체제로 이해한 것이다.
수강하던 학생들에게 베버는 “정치가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질문한다. 정치가 깨끗해질까, 돈이 필요 없는 정치가 될까. 베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면 돈과 여가를 가진 시민집단이 정치를 지배하는 ‘금권정치’로 민주주의는 퇴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득의 여유가 없는 가난한 시민집단은 자신들의 대표를 정치에 파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버가 정치가의 역할 모델을 일상의 제도화된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 즉 민주주의란 정치하는 일이 직업이자, 생업 나아가 소명이 되는 체제의 특성에서 발원한다. 의원들의 세비나 활동비를 줄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치 담론은, 아마 베버의 입장에서는 귀족정이나 금권정을 옹호하는 일로 보일지 모른다.
10.
민주주의 하에서 지도자적 자질을 갖는 정치가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베버는 의회와 정당 그리고 선거를 들었다. 정치의 중심 공간이라 할 이 세계 밖의 여론이나 이익집단, 비정치적 시민단체에서 소명 있는 정치가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거리의 독재자”라고 보았다. 아마도 오늘날의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좌파 포퓰리즘이나 우파 포퓰리즘 내지 여론동원에 의존하는 ‘아마추어 관직 약탈자’에 가깝다.
베버는 의회 정치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정치 리더십 훈련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의회 정치는 정당이 중심 행위자가 되는 곳이다. 개인 명사들이 지배했던 민주화 이전의 의회 정치와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정당이 의회 정치의 중심이 된다. 또한 정당은 선거라는 공간의 지배자다. 대규모 시민 대중이 투표자로 참여하게 된 민주주의에서 정당 없이 선거 승리를 기약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당 지도자를 중심으로 규율을 갖춘 대중 정당이 만들어지는바, 베버는 이를 통해 인정을 받게 된 정당 지도자만이 현대 민주주의에 맞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는 곧 대규모 시민 대중의 출현을 가능케 한 보통선거권, 이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한 대중 정당, 그 내부에서 통일성을 부과하는 데 성공한 정당 조직, 의회 정치와 내각을 주도하는 당 지도부, 끝으로 지도부 내에서 이 모든 요소를 인격적으로 결합해 낸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이해된다. 이로써 엘리트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명사 정당은 끝나고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새로운 정당 조직 형태는 민주주의, 보통선거, 대중 동원 및 대중 조직의 필요성, 매우 엄격한 규율의 발전 그리고 지도부 내의 고도의 통일성이 낳은 결과이다. 명사들의 지배와 의원들의 주도적 역할은 막을 내렸다.”
지금 우리 정치는 베버의 기대와는 크게 어긋나 있다. 대부분의 정당은 개인 명사들의 허영심이 지배한다. 국회는 리더십의 훈련장이기보다 여론에 잘 보이려는 이른바 ‘여의도 렉카’들이 지배한다. 이념도, 신념도, 가치 지향도 알 수 없이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존경심을 갖게 하는 정치 지도자의 실종도 큰 문제다. 지도자는 없고 야심가만 있는 민주주의가 지금의 한국 정치에 가깝다. 다시 베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베버는 (소명이라는) 그 말이 갖고 있는 본래적 의미에서 역사상 소명을 가진 정치가는 두 유형이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가 고대 도시국가에서의 ‘데마고그’다. 다른 하나는 현대 의회 정치와 입헌주의 하에서 발전해 나온 ‘정당 리더’(party leader)다. 달리 말하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소명을 가진 정치가는 정당 리더 이외 다른 누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책임 정치를 말하며 그 요체를 정당이라 말하거나, 대통령 역시 특정 정당의 후보로서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로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장관과 내각에 대한 정의도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라면 장관은 누가 되어야 할까? 해당 부서의 기술적인 문제라면 실-국장으로 이야기되는 상층 관료가 가장 정통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장관이 된다면 그것은 민주화 이전의 비스마르크적인 관료 정치가 되는 것일 뿐, 민주주의에서 장관의 역할은 다르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장관이란 정치적 권력관계의 대표자일 뿐이며, 그는 이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정치적 기준을 대변하고, 그에 따라 자기 휘하 전문 관료들의 제안을 검토해 그들에게 적절한 정치적 성격의 지시를 내리는 일을 업무로 삼고 있(는)” 존재들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에서 장관은 정무직 혹은 정당의 선출직 대표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각에 대한 설명도 유사한다.
애초 내각이란 입헌군주정하에서 국왕의 자문역으로서 의회에 나가 왕의 최고 통치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엄밀히 말해 왕의 사적 통치를 보좌하고 또 왕에게 책임지는 심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입헌주의와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내각과 행정부가 의회에 책임지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왕에게 책임지는 내각에서 의회에 책임지는 내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 조직의 발전 대신 시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참여에 낭만적 기대를 건 진보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본질은 “조직과 리더십에 적대적인 쁘띠부르주아적 소시민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 되면 정당 내부의 분열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고도 말했다.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정당이 되는 것, 명사 의원들의 허영심에 정당이 지배되는 것, 이익집단 대표들에 의해 비례대표 자리가 포획되는 것, 관료와 저널리스트들의 본능에 당이 지배당하는 것도 필연적이었다. 부르주아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민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베버는 “이런 경로를 따름으로써 우리의 모든 정당은 명사들의 길드로 변해버렸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말해 민주화를 주도했던 진보파들도 “몰락계급의 오명”을 공유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정당 조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소명을 가진 직업 정치가들이 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베버 생각의 요체였다.
11.
베버 강의의 후반부는 “이 (직업 정치가의) 길을 택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개인적인 자격 조건”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 즉 “어떤 종류의 인물이라야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일 권리를 갖는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곧 윤리적인 문제를 꺼내는 것”인 바 본격적으로 정치 윤리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선한 인간을 위한 윤리론을 연장해 정치 윤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마키아벨리 이후 정치사상의 기본 전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베버는 철저한 마키아벨리주의자다.
선한 인간은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선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체제의 종류에 따라 사회구성원의 좋은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의 백성 내지 신민의 역할과 민주정에서의 시민의 역할을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민주정 하에서도 위기나 전환기 시민의 역할 다르고 평상시의 시민의 역할 다르다. 노조원으로서의 시민의 역할, 자영업자로서의 시민의 역할, 당원으로서의 시민이 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정치가로서의 시민의 역할과 투표자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좋은 시민의 역할과 좋은 정치가의 역할 또한 구분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권력을 다룬다. 폭력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위험한 수단을 다루는 일에서 정치가가 자신의 옮음을 앞세우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은 “불모의 흥분 상태” 혹은 “비창조적 열망의 허비” 이상이 될 수 없다. ‘악과 싸우는 선’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악의 위세를 키우거나 사회를 분열과 적대로 몰아간다면 그런 정치의 역할은 유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베버는 진정성을 앞세우는 정치가 악의 번성을 가져온다면 정치가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좋은 의도나 대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무망한 선의를 앞세워 자신을 돋보이게 하면서 세상은 분열되어도 나 몰라라 하는 정치가를 경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과 가치를 양립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연결되는바, 베버는 그것의 실패를 객관성과 거리감의 상실 그리고 허영에 빠진 정치로 특징지었다. 객관성과 거리감의 상실은 “현실을 받아들일 능력의 부재” 혹은 ‘나는 나의 반대파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며 스스로 위선을 정당화하는 “객관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결국 허영만 남게 되는 바, 베버는 허영심을 가리켜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정치가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때로 자기 과시나 자아도취, 외관 꾸미기로 나타나는 데 이로부터 무책임이라는 정치적 죄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큰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그 권력의 원천인 민주적 정치과정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를 위한 정치로 퇴락할 가능성은 높다. 베버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보자.
“권력을 향한 야심은 그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흔히 ‘권력 본능’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정치가에게는 정상적인 자질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전적으로 ‘대의’에 대한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정치 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두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이것과 동일시되는) 책임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허영심, 즉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는 정치가를 이 두 죄악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아주 강력한 힘이다. ‘충격 효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마고그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항상 배우가 되어 버릴 위험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성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이 만들어 낸 ‘인상’에만 연연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하고, 그의 무책임성은 그로 하여금 그 어떤 실질적인 목적도 없이 단지 권력 그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생각해 봐도 실감이 나는 지적이다. 선거에서 후보일 때와는 달리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그는 사회로부터 천상으로 올려진다. 그 주변은 1천 명이 넘는 비서들과 경호원 그리고 연간 2천억에 가까운 예산으로 채워질 뿐아니라 이들은 모두 대통령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대통령 권력이 커지는 것을 통해 권력감을 공유하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자신만을 위한 사적 통치의 가능성은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에서 발원하는 바 크다.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은 자신들을 위한 여론을 만들고 비판언론과 야당의 논리에 대응하려는 ‘대책반’으로 퇴락하기 쉽다. 연출된 권력, 좋은 인상을 위한 연기자 같은 심리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할 때도 많다. 지금처럼 강한 대통령 권력을 갖고는 그 어떤 통치자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허영심에 희생되는 일은 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비서)실이 갖는 그 임의 권력으로서의 영향력을 줄이고 정당과 의회, 내각과 같이 헌법과 법률적인 뒷받침이 큰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통령이 책임 있게 참여하지 않는 한 변화는 어려울 텐데, 베버를 통해 이 점을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12.
지난 민주화 30년 동안 여러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우리의 정당들과 그 정치인들은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당의 역할이 권력을 잡을 때 다르고 권력을 잃을 때 다르다면 여야는 결국 같은 종류의 정당이라는 뜻이 된다. 그것은 정당의 자기 정체성보다는 권력과의 거리감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가 아닐 수 없다. 베버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정치에 있어서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에 대한 야심은 모든 정치 행위를 추동하는 힘 가운데 하나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거나 권력감에 도취되어 허영에 찬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보다 정치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게 하는 해로운 일은 없다. ‘권력정치가’는 강한 인상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행동은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이 점에서 ‘권력정치’에 대한 비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 [권력정치] 이념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내적으로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웅장하지만 내용은 없는 자태의 이면에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내면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인간 행위의 의미에 대한 극도로 빈약하고 얄팍한 오만의 산물로서 이런 오만은 모든 행위, 그러나 특히나 정치 행위가 진정으로 내포하고 있는 비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면서 베버는 권력을 갖게 된 정당과 그 정치인들이 권력의 쟁취라는 성공 앞에서 스스로의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다고 유동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이라 하더라도 이 성공에는 사실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질 것이다. 이는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혁이나 혁명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목적의 숭고함을 앞세우면서 방법과 수단에 대한 윤리성을 상실할 때가 많다. 스스로는 다른 혈통,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윤리적 하자 집단’으로 여기곤 한다. 베버는 그럴수록 현실의 정치는 사나워지고 적대는 커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마치 “궁극적 세계관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속으로 정치를 빠르게 퇴락시킨다. 따라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윤리의 문제가 도덕적으로 지극히 재난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무언가 ‘비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옳기’ 위한 수단으로 ‘윤리’를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정치는 인간의 현실과 평균적 한계를 고려한 속에서 그에 맞는 윤리적 기준을 갖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의도의 선함을 앞세우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 되고 또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와 긴장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공허한 도덕성을 강조하기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베버가 끊임 없이 강조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것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누구도 인간의 완전함을 전제할 권리가 없으며 누구도 옳음을 독점할 수 없다면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공적 대의와 정책적 수단의 선택을 결합하는 문제를 둘러싼 평화적 투쟁일 것이다. 좀 더 나은 변화를 실체적으로 도모하고, 이를 위해 반대파는 물론 “악마와도 손잡을 자신감”을 통해 개선의 공간과 가능성을 확대해가는 긴 노력이 필요한데, 베버는 이를 책임성의 윤리라 정의했다.
정치가가 견지할 윤리로서 책임성의 부재는 정치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를 갈등과 혼란에 빠뜨린다. 당연히 변화는 없고 누구의 말이 더 옳은지를 둘러싼 소동만 남게 된다. 인간이 천사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정치의 기능 없이 평화로운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홉스가 강조했듯, 정치의 역할이 없는 사회, 즉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정신적 상처는 물론 심리적 내전 상태를 피할 수 없다. 정치가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옳음의 독점과 진정성을 강변하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더 분열시키고 적대와 균열을 더 심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파괴적인 일이다. 그들을 향해 베버는 이렇게 묻고 답한다.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으며 나는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뿌리 뽑고자 한다.’라고 외치고 다닌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그들의 신념 윤리를 지탱하고 있는 내적인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고 싶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 말하자면, 이들 중 열의 아홉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진정한 자각 없이 단지 낭만적 감흥에 도취해 있는 허풍선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인간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며 또 추호의 감동도 주지 못한다.”
베버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에 있다고 말한다. 입헌군주정의 덕목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에 있다면 민주정의 덕목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에 있다. 민주정에서 정치가는 세습적 권위의 소유자가 아니라 통치의 책임을 맡은 시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왕이라면 좋게 보이고 근엄하게 보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왕이 아니듯, 정치가도 귀족이 아니어야 한다. 정치가는 해당 공동체가 당면한 여러 과제와 관련해 실체적 변화와 개선을 도모하는 일에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다. ‘실체적 변화의 조직자’ 역할을 하는 정치가인가, 아니면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는 데 능한 ‘아첨하는 정치가’인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라면 실제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씨름하는 것이 중요하지, 마치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서서 늘 말하듯이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는 식이 될 수는 없다. ‘여론에 보여주는 정치’와 ‘실제로 변화를 만드는 정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베버는 실체적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주문했다. 작지만 꾸준한 개선을 중시했다. 민주주의는 말로 아첨하고 선의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변화를 조직하기 위해 일하는 정치가를 필요로 한다.
힘들더라도 상대와 마주해 일을 풀어 가는 정치가 중요하다. 그 속에서 ‘여야가 공유하는 공동의 공간’common ground을 개척하고 넓혀 가는 정치가 아니라, ‘여론에 대고 상대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누구도 무엇이 확고하게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정치체제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을 절제하는 ‘건강한 회의주의’에 기초를 둔 다원주의 체제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시민의 의견을 나눠서 조직하는 정당들의 공적 토론이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히 하는 말이 아니다. 합의 가능한 의제마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위협한다. 갈등적인 쟁점마저도 합리적으로 조정 가능한 의제로 바꿔 갈 때 정치는 힘을 갖는다. 그럴 때만이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집’은 따뜻한 공동체적 온기를 품을 수 있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이끌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국회미래연구원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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