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 정치가다움에 관하여_정치적 말의 힘 발간에 부쳐

2023-02-09
조회수 621

정치가다움에 관하여

정치적 말의 힘 발간에 부쳐

 

1) <정치적 말의 힘>은 정치와 말이라는 두 주제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중심은 말보다는 정치에 있다. 말의 문제로 정치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 정치가 가진 비상한 힘을 말의 문제로 표현해보는 것,이것이 핵심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또 무엇이고, 그 속에서 정치가의 역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러분들이 이 주제로 꽤 중요한 자리에서 강연이나 연설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는가. 좋은 정치가라면 이 지점에서 특별한 인식을 가졌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인식의 힘‘,’개념의 힘‘이 실제로 변화를 만든다.

 

2) 오랜 정치철학의 가르침을 ’철학의 방법‘이 아닌 ’정치의 방법‘으로 말하고 연설할 수 있어야 정치가다. 연설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철학자나 정치학자보다도 정치가가 더 위대한 시민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핵심은 뭘까? 냉소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거다. ‘정치란 가능성의 기예(art of possibility)다’라고 하는 오랜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거다. 인간의 정치란,모든 가능성이 막혀 있는 순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예비해놓고 있는 놀라운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된다.

 

3) 강조하고 또 강조하건대,정치란 특별한 인간 활동이다,정치는 경제 논리나 법리 등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그 자체로 독립적 기반을 갖는다. 정치의 자율성,정치의 우선성을 옹호하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우리의 과업이다. 민주주의자들로부터도 사회주의자로부터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 없는 민주주의 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이다. 정치 없는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다. 정치를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려는 신자유주의에도 저항해야 한다. 유물론적 세계관을 앞세워 정치를 토대의 반영이나 역사법칙에 지배받는 상부구조로 보는 것에 굴종하면 안 된다. 정치는 정치다.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 인간 활동이다. 정치는 민심에도 대항해야하고,시민 여론을 신성화하는 태도와도 거리를 두어야 제 역할을 한다. 정치가는 시민이 믿고 따를 지도자이지, 여론 추종자가 아니다.

 

4) 정치를 부여잡음으로써 인간은 자연적 자유를 상실했지만,대신 시민적 자유를 얻었다. 그 덕분에 시민됨을 뜻하는 문명(civilization)을 갖게 되었고,자연의 법칙이나 신의 왕국에는 없는 개성 있는 이야기(story)를 모아 역사(history)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신을 기쁘게 할 세상,정의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가 그 일을 했는가,행정이나 법률가가 그 일을 했는가.『플루타르크 영응전』에서 보듯,그 일은 정치가라고 불리는 시민 지도자들이 해낸 일이다.

 

5) 민주주의보다 정치가,정치보다 인간이 더 넓은 세계다. 민주주의자든 정치가든 인간이 못 됐다면 상종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은 거꾸로 이해될 때 제대로 된 의미를 갖는다. 즉,민주주의자도 정치적 이성을 존중해야 하고 정치가의 실천이성 또한 좋은 인간론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말이다. 정치론 없는 민주주의 론은 편협하다. 인간론 없는 정치론은 세상을 널리 구제할 수 없다. 정치론은 인간론에 토대를 둘 때 강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주제로 시작된다. 인간은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목적, 즉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나 신념을 갖는 유일한 피조물이고,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서 정치의 역할을 부여잡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 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토머스 홉스가『리바이어던』에서 보여주려 노력했듯, 정치 없는 삶은 “궁핍하고 외롭고 냄새나고 게다가 짧기까지” 한,죽음의 그림자를 벗을 수 없다. 누구도 정치가 작동할 수 없는, 무국가 식민상태나 난민의 삶,무정부 상태에서의 시민 간 내전의 삶을 권할 수는 없다. 정치의 역할 없이 균형 잡힌 사회, 좋은 질서가 작동하는 사회(wel卜ordered society)를 만들 수 없다.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을 구현하기 어렵다. 정치는 좋은 사회, 좋은 삶을 위해 인류가 찾아내고 발전시킨 가장 도덕적이고 최고로 윤리적인 공동 행동이다.

 

6)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책『법의 정신』을 가리켜, 법리나 법체계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고찰하는 것에서 시작”한 책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면,나로서는 정부가 있는 삶을 살게 해준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는 피통치자가 원하는 정부를 가질 수 있는 체제를 공학정 내지 “평등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둔 체제로 정의했다. 그 속에서 통치할 수 있으려면,요즘 언어로 말하면 정부를 잘 운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법의 정신』은 다루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좋은 인간(political good man)”을 소망한다. 종교 윤리나 일반적인 사회윤리와는 다른,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의 “정치적 덕성 (political virtue)”을 갖춘 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저 좋은 인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더해 정치적으로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 그에 맞는 정치적 덕성과 능력, 책임성을 가져야 좋은 정부를 이끌 수 있다. 그래야 시민들 또한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7) 몽테스키외의 이론은 인류 최초로 세습 군주와 귀족이 없는 공화정을 ‘헌법의 설계’를 통해 만든 미국에서 실현되었다. 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제임스 매디슨은 이를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에게 정부를 맡길 수 없다.”라는 전제에서 이루어 진 일 로 설명했다. 정부는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통치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그 내부로부터 견제되어야 한다. 정부는 정부로되, 피치자들로 부터 적법한 동의를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 뒤에도 정부의 자의적 권력 행사가 그 내부로부터 제한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을 만드는 기능과 법을 집행하고 적용하는 기능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헌법제정회의’에서 말과 글로 이루어졌다. 4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상호 제안과 토론,조정과 타협을 거쳐 사회를 규율하는 공권력의 체계를

글로 담아낸 것이 헌법이다. 인류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던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들의 정부를 만들 수 있었기에 미국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 의 한 장(章)을 채울 수 있었고,미국인들은 정부가 있는 삶에 감사할 수 있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혁명 이후 자신들만의 정부를 만드는 데 실패했더라면,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8)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다. 말은 감각과 경험을 추론 가능한 지식으로 만든다. 추론은 비교와 가치 판단을 가능케 함으로써 집단의 행동을 조율하고 자연의 변덕에 대항할 수 있는 논리 와 규범을 갖게 했다. 그것이 가져온 변화는 놀라웠다. 인간은 말보다 빠를 수 없지만 말을 기르고 말을 탈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자동차보다 빠르고 오래 달릴수 없었지만,자동차를 만들 고 탈 수 있었다. 인간은 신이 될 수는 없었지만, 말로써 신을 창조할 수 있었다. 영원할 수는 없지만, 신조차 질투하지 않을 수 없는 유한하면서도 또 무한한 존재가 되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말은 창조자의 말로 통해 표현된 인간존재 의 가장 위대한 본질을 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은 말로 될 수 있으며,그 말을 가치 있게 하는 것에서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인간에게는 말과 말씀이 신이었다.

 

9) 정치는 말로 이루어지는 인간 행위이지만, 그 말이 다루는 수단과 도구 때문에 가장 위험한 행위다. 그것은 강제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강제는 강제로되 그것이 적법한 절차를 밟으면 모두에게 구속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무섭고도 유익한 강제다. 말은 설득을 목표로 하되 설득된 말,동의를 획득한 말이 발휘하는 강제력은 그렇지 않은 강제력보다 한없이 강력하다. 제국의 제왕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수천,수만 배 더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은 말이 안 된다. 선출된 시민 지도자가 제왕에 가까워지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대통령도 민주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제후국이나 왕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현대 국가나 정부는 말할 수 없이 강력한 인간 조직이다. 국가나 정부란 무엇인가? 적법한 강제력을 독점한 인간 조직이다. 동의된 폭

력, 합법적 폭력, 이것을 잘 다룰 때와 못 다룰 때의 결과는 반딧불과 번개만큼이나 크다. 이 주제를 말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평학와 자유,평등을 진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처벌과 복수의식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10) 합법적 강제를 다루는 일을 하기에,정치는 웃음을 잃지 않는 세계여야 한다. 정치가들이 흥분하는 것,얼굴 붉히는 것, 함부로 말하는 것만큼 지켜보기 피로운것은 없다. 그들은 시민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 그 권위는 정치 없는 인간 삶이 가져올 갈등과 혼란을 줄이라고 부여된 것이다.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를 증폭시켜 드러내서는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을 정치가 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는 웃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떻게든 좀 더 나은 변화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하는 밝은 사람이며,그가 있어서 좀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함부로 하고 동료시민 들 이 서로를 함부로 대하도록 선동하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질리게 하는 정치가에게는 불행이 자리한다.

 

11) 정치는 가르쳐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모든 정치철학이 한결같이 이를 말한다. 대신 정치가에게 권한 것은 모방이다. 앞선 선례를 모방하라,모두 그 것을 말했다. 하지만 정치철학자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방 다음에 있다. 즉,정치가는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서 모방 되는 대상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모방한 누군가를 남긴다. 내 습성을 닮은 아이를 남 길 수도 있고, 동료나 후배 그리고 다음 세대가 닮기를 바라는 모범으로 남을 수도 있다. 모방은 인간 세계의 보편적인 교육 방법이기도 하고,정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선례가 되어야 한다. 모범이 되는 사람,

모방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정치가다. 일이 잘 안되는 이유를 열 가지 핑계처럼 말하기보다,바필 수 있고 좋아질 수 있음을 말하는 ‘변학의 정치’를 더 많이 말할 수 있어야 정치가다.

 

12) 인간 삶의 변천(vicissitude)을 생각하면서 ‘반성적 성찰의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 마음이 늘 평안할 수 없고 모두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 정치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정치는 한 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따라서 모든 문제나 갈등이 사라진 완전한 정치를 지향할 수는 없다. 완전함을 꿈꾸는 사람의 표정과 말에는 세상이 자기 말처럼 안 되는 것에 대한 냉소만 가득하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말하니 현실에 성실하기보다 현실에 없는 것을 개탄하고 냉소하는 자들이다. 왜 그래야 하겠는가. 정치가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가능성을 위해 앞장서고 조력하고 참여하는 것에 열정을 다해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뿐 아니라,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아야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 낼 수 있고, 정치가로서의 삶도 가치 있을 수 있다.

 

13) 정치가라면 기득권, 기성질서, 개혁, 혁신 등의 용어의 사용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아웃사이더,즉 정치 밖 외부자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정치가가 되었다는 것은, 체제 내부에 참여해 일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정치해야 민주주의가 기대되는 변화를 들게 된다 . 체제 밖의 반정치언어는 체제 내 부를 기득권으로 몰아붙이기 쉽다. 그에 굴종하면 적법하게 선출된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개혁과 반개혁으로 단순학하는 언어 사용법 역시 의미 없는 우월감의 발로 일 때가 많다. 반정치적 여론에 소구하고 아첨하고 일러 대는 정치로 이어질 때도 많다. 정치는 체제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을 뜻하고,체제 내부에서 적법하게 세상을 변화 시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체제 운영자,정부 운영자, 통치 담당자가 아닌 길을 찬미하는 이가 정치가일 수는 없다.

 

14) 우리처럼 법 많이 바꾸고 제도 많이 바꾸는 민주주의가 있을까 싶다. 그러면 법과 제도는 존중될 수 없다. 꼭 필요한 법과 제도가 있는데, 이를 만들고 도입하는 것만 어렵게 만든다. 있는 법과 제도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 일이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그 끝에서 새로운 법과 제도를 용이하게 도입할 수 있다는 게 정치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이미 숙성된 변학를 마무리해주고 확정해 주는 역할을 해야지,법과 제도를 바꿔 쉽게 일하려고 하면 부작용만 커진다.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길을 내라고 권위를 주었는데, 그 일을 못 해내는 것을 남의 탓,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습관이 되면 안 된다. 그러면 왜 정치가에게 일을 맡겼겠는가,제도 디자이너에게 세상을 맡기거나,누가 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하면 정치 없는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다. 설계된 시스템에 따르면 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의 소명을 말하는 강의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1백년 전 막스 베버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합리적 규칙과 제도적 이성에 따르는 인간 활동은 관료의 지배를 뜻한다. 반면 합리성으로만 포착될 수 없는 인간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지도력을 가진 자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를 정치가하고 부르며 그가 발휘하는 실천이성에 기초를 두고 통치자의 역할을 맡긴다. 과거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민중지도자(demagogue)로 불렸던 그 일을 오늘날에는 정당 지도자(party leader)가 맡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가 있어야 하고, 이제 그 일은 “정당이 정부가 되는 민주주의”로 구현되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이런 정치론을 처음 말했던 사회학자였다.

 

15) 흥분하지 않고도 이견을 말하고, 상대를 모욕하지 않고도 반대 토론을 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에 맞는 내면의 힘도 길러야 한다. “반성하라”,“사과하라” 같이 타인의 내면을 헤집는 표현을 절제해야 한다. “절대”, “당장” 같은 극 강어를 즐겨 동원하는 정치인은 무능력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을 다루는 일이 정치이니, 명령은 살아있게 그러나 억압과 지배는 아닌 방법을 익혀야 한다. 침착하고 다정한 시민성이 북돋아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다른 시민에게 칼날이 되고 흉기가 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정 치를 맡겨야 한다.

 

16) 정치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더 풍부해져야 한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인식이 협동과 연대의 힘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도 남아 있는 빈공간은 각자의 개성적 매력이나 인격의 힘으로 채우고 감당하게 해야 한다. 다만,웃음을 잃은 정치가는 안 된다. 동료 시민과 동료 정치인을 옷게 만들 수 없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정치가는 그래야 한다. 좋은 사람을 닮으려 노력하되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서 모방이 될 힘 있는 개성을 만들어라. 남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도 오래 기억될 일이 되겠지만, 그 길은 비참하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17) 붕괴,해체론의 언어 대신 생성론, 대안론, 형성론의 언어를 더 많이 말하라. 전자는 사나운 말과 사나운 표정을 요하는 일이요,후자는 협동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에 밝고 학기애애한 길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인생이란 신비한 여행이다. 한바탕의 꿈이고,돌아갈 곳이 있는 소풍이다. 죽을 만큼 힘든 게 있으면,다시 힘을 낼 말한 이유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원가를 악착같이 남겨라. 말과 글이면 좋겠지만,안 되면 기억될 표정이라도, 분위기라도 남들에게 기억될 모범이 되라. 이 행성에 다녀간 이유는 내가 떠난 뒤에도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일을 하는 정치가 모두에게 일의 보람과 삶의 기쁨이 함께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