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 팬덤정치2-팬덤, 특별한 시민의 출현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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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팬덤, 특별한 시민의 출현

‘적과 나의 싸움’으로 인식… 무례한 시민에 민주주의는 길을 잃는다


팬덤이 없으면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려운 시대다. 팬덤은 정치 여론을 지배하고 돈도 표도 만들어 낸다. 정치인들은 팬덤을 비판하기보다 팬덤에 아첨하는 정치를 한다. ‘개딸’과 ‘개아빠’가 시민의 역할, 지도자의 모델이 됐다. 그에 비례해 정치 언어는 저열해졌다. 서로 침 뱉고 모욕하는 정치다. 적을 만들고 적을 섬멸하는 게 정치의 목적처럼 됐다. 무례한 시민, 사나운 정치인의 세상이다. 정당 정치, 의회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민주주의가 됐다.

1 팬덤 지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팬덤 정치는 익명의 대중적 열정을 통해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일종의 ‘시민적 효능감’을 표출하는 행위다. 단순히 선호나 지지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절차나 과정을 무시해서라도 정치를 지배하고 주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압력 정치’다.

팬덤은 불만에 찬 시민 혹은 사실상 활동가들이다. 그들의 신념은 현상 유지보다는 현상 타파에 가깝다. 용납할 수 없는 적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들은 확신에 차 있다. 주저함이 없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할 때도 단호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의지대로 따르지 않는 정치가는 개혁에 반대하는 구악이요, 저주받아 마땅한 적폐 세력이 된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의 정당 혹은 그 정당을 지배하게 될 팬덤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만 인정한다. 다당제가 아니라 사실상 일당제를 지지하는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2 팬덤 정치는 조건적이다. 지지자들의 열정을 집약시키는 팬덤 지도자가 없다면 팬덤 지지도 없다. 인격화된 팬덤 지도자는 조직화돼 있지 않은 무정형적 집합행동을 가능케 하는 초점 요인이다. 조직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준다. 하지만 팬덤 지도자의 역할은 거기서 끝난다. 조건에 따라 팬덤의 동력은 빠르게 약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옮겨 가기도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친문(친문재인) 팬덤과 친박(친박근혜) 팬덤의 빠른 약화, 친명(친이재명) 팬덤과 친윤(친윤석열) 팬덤의 빠른 성장에서 보듯 팬덤은 지도자 개인에 고정된 현상이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특정한 인물에 대한 절대적 헌신과 의존을 특징으로 하는 ‘영도자 현상’과도 다르다. 반엘리트주의가 강한 포퓰리즘과도 다른 것이 팬덤 정치다. 이는 팬덤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세 집단의 유형을 나눠서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추종형 팬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팬덤 지도자를 신뢰하고 헌신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이들이 다수라면 팬덤 현상의 이동과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고, 팬덤 정치는 영도자 추종 현상에 가까워진다. 이들 역시 상황이 바뀌면 정치 효능감을 얻고자 새로운 팬덤 지도자를 찾긴 하지만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주저하며 옮겨 간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들은 팬덤 지도자 개인보다는 정당에 충성하는 집단이다.

두 번째 유형은 ‘편익 추구형 팬덤’이다. 이들은 팬덤 지도자의 성공을 통해 영향력을 추구한다. 주로 정치 영역에 있는 내부자인 이들은 사실상 팬덤 정치를 기획하고 움직이는 ‘팬덤 활동가’다. 이들에게 팬덤 정치란 일종의 합리적 투자행위이고 팬덤 지도자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팬덤 지도자가 힘을 잃거나 기대하던 편익을 얻을 수 없게 되면 가장 먼저 떠나 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유형이다. 이들은 팬덤 활동을 통해 정치 참여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 효능감 추구형 팬덤’이다. 이들을 행위에 나서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격 대상을 향한 적대감이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고 여기는 친일세력, 적폐세력, 빨갱이, 좌파, 반개혁세력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들은 정치 영역 밖에서 활동하고, 지위나 편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팬덤 지도자가 영향력을 유지할 때만 팬덤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다른 두 유형과 구분된다.

팬덤 정치의 가변성은 편익 추구형 팬덤 활동가들과 정치 효능감 추구형 팬덤 지지자들에게서 발원한다. 팬덤 현상이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지지 양상으로 나타나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유동성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것이 말해 주는 바는 이렇다. 팬덤 지도자와 팬덤 지지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조건에서만 강한 팬덤이 작동한다. 상호 욕구나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팬덤의 이동과 새 팬덤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3 팬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익명의 적극적 시민층이 폭넓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팬덤 지도자를 스스로 만들 능력이 있다. 이들은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고 사무실을 열고 활동가를 고용하고 회비를 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익명의 활동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참여와 의사 표출과 달리 규범과 문화적 제약을 깨고 무시해도 된다는 쾌감이 있다.

팬덤 시민은 새로운 유형의 적극적 시민이다. 그들은 빠른 민주주의를 원한다. 빠른 결과를 얻기 위해 서슴없이 행동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절차와 과정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들은 집단행동을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집단행동과는 달리 책임 있는 조직 주체나 지도부, 소재지가 있는 결사체를 만들 생각은 없다. 자신과 다른 상대 집단과 대화나 토론 같은 상호작용을 할 마음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할 뿐이다.

팬덤 시민들의 마음 상태는 혁명이 벌어질 때 나타나는 대중적 현상과 유사하다. 기존 체제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해, 영향력을 갖게 된 뒤에는 적대 세력 혹은 이적 세력을 분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권에 성공한 이후에는 야당과 당내 온건파를 적대시하는 열정이 이들을 지배한다. 집권에 실패해 야당이 되면 당내 온건파를 제압하기 위해 ‘투쟁야당’이라는 전통을 불러낸다. 이들은 ‘적(敵)과 아(我)의 싸움’으로 정치를 인식한다. 



4 오늘날 민주주의는 반(反)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이 시민 집단 때문에 위협받을 수 있다. 이들은 열렬한 민주주의자들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민주주의이기에 시민이 직접 자유롭게 주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동에 나선 이들은 민주주의자이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지배자이고자 한다.

문명이 도시에서 국가 그리고 이제는 세계화나 지구화를 통해 확대되고,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이 시민의 다수가 되고, 소통기술의 발전으로 모두가 인터넷 지식으로 무장한 초연결사회가 도래하고, 지구상의 절반 이상의 나라가 민주화가 되면서 이들의 자신감은 극대화됐다. 그들은 의견이 다른 동료 시민들에게 무례하다. 생각이 다른 정당이나 정치가를 공격할 때 절제가 없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쿠데타나 혁명보다는 “민주주의를 정당과 정치인한테서 구출해 사회나 국민, 시민에게 가져다주자”고 하는 사람들, 국민의 직접 정치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정치(정치인, 정당, 의회 등)의 자율적인 역할 없이 기술과 제도를 통해 민심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대중운동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그들은 조직화의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통 기술을 갖게 됐다. 지도자나 활동가의 수고 없이도 집단행동을 이끌 수 있다는 희열도 경험했다. 정당도 의회도 언론도 지식사회도 하다못해 기업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적대감과 분노다. 고발은 모두를 흥분시키고 초연결망을 따라 집단행동에 나서게 한다. 폭로와 좌표 찍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손쉬운 모금과 대규모 지지표 동원도 문제다. 언론도 정치인도 정당도 알아서 굴복하게 만든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5 인간은 이성보다는 열정, 합리성보다는 정념에 더 쉽게 영향을 받는 존재다. 개인보다 공중이 정념의 노예가 되기가 더 쉽다. 인간의 역사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정념을 제어할 합리적 이성의 작동은 힘들고 긴 과정의 산물이다. 해결해야 할 정책 사안이 떠올랐다 하더라도, 그 사안이 어떤 문제인지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인과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분류와 유형화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도 해 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도 다른 사안들보다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지도 따져 봐야 하고, 필요한 예산과 정책 수단도 살펴야 한다. 뛰어난 개인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선별하고 지식을 공유하고 대안을 조직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시민 조직 없이 이런 일은 감당하기 어렵다. 정당과 국회가 그런 시민 조직이다. 적법하게 권위를 인정받은 시민 기구다. 인류가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착각과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했다. 그런 정당과 국회가 힘을 잃으면 정치만 나빠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반 대중이 힘을 갖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 관료제와 사회경제적 강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가 해야 할 사회 보호와 갈등 관리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 피해자는 힘 약하고 목소리 작은 시민들이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만으로도 돈이 되고 표가 되는 환경에서 합리적 이성보다 공중의 정념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사안의 한 단면만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의 분노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인간의 성급함을 누구보다 잘 악용한다. 이들은 조급하다. 너무 분명한 대안이 있는데 왜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어떤 때는 정치인들의 음모나 특권의식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어떤 때는 관료들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때는 대의민주주의 때문이라며 직접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참여, 대중지성, 집단지성, 국민주권은 그들의 신조다. ‘통치받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통치하는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하기보다 정치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 정치적 실력이나 통치의 능력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들은 언제나 성급한 공격 행동에 나선다.

그들은 언제나 지나치다. 작은 조직, 작은 정당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하거나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외부에서 지시하고 명령하고 강요하는 데 익숙하다. 세상은 증오와 적대, 의심과 음모론으로 병들어 가는데,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잠시 멈춰 생각할 줄 모른다. 그들이 지금 팬덤 정치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모욕하는 정치, 침 뱉는 민주주의를 주도한다.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도 침착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길을 잃기 쉽다는 것을 팬덤 정치가 깨닫게 해 준다.


# 이 글은 서울신문 '박상훈의 호모폴리티쿠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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