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 속도에 집착할수록 민주주의는 불행하다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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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리게 일하기' 어려운 현실을 들겠다. 정치에서 이견을 말하는 것은 비난을 감수할 일이 되었다. 협의의 시간을 갖자는 것은 원칙의 후퇴로 공격받는다. 과거 권위주의 때는 이견을 억압하며 총력전을 주도한 것은 행정부 쪽이었다. 지금은 국회 쪽이 더 심하다. '절대', '당장'과 같은 센 언어가 즐겨 사용되는 곳도 국회다.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일방적 독주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체제인데,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국회가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를 이끌지 못하게 된 것은 역설이다.


권위주의는 무슨 일이든 빨리하는 장점이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일이든 빨리 못 하게 할 때 가치를 갖는다. 어느 민주주의 국가든 법안이 제출되어 통과될 때까지 평균 입법 소요 기간은 300일 가까이 걸린다. 권위주의는 통치자의 명령으로 일하지만, 민주주의는 합의를 통해 일한다. 숙려기간도 필요하고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적 요구도 들어야 하며, 여야 사이는 물론 행정부처와의 입장 차이도 조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약한 체제가 아니다.


전체주의와의 전쟁에서 처음에는 밀렸지만, 결국 승리한 쪽은 민주주의 국가들이었다. 스탈린 체제나 히틀러 통치하에서 산업의 성장 속도는 놀라웠지만, 비교의 기간을 조금만 길게 잡으면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경제가 더 자유롭고 풍요로웠다. 그 비밀은 다르고 느린 것의 다원적 가치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더 넓은 협력과 더 깊은 신뢰를 만들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자의 실력은 조급함과 독주를 제어할 때 발휘된다.


느리게 살 수 없으면 협동의 가치는 구현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의 존재를 고려하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행복할 수도 없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력 없이 매사에 조바심을 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시자가 정한 속도에 따라야 했고 때로 그 지나침에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자신이 정한 성과 계획을 맞추지 못할까 봐 자신을 못살게 굴어야 한다. 이를 속도전의 내면화라고 할까, 아니면 개인화라고 할까.


공사 중에 붕괴 사고가 난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현장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광주의 주택보급률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 그 가운데 아파트 비율은 전국 평균인 53%보다 훨씬 높은 66.8%로 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다. 과거처럼 안전을 희생해서라도 빠르게 아파트를 건설해야 할 긴박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들여 안전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 당사자들의 설명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공기(工期)를 맞춰야 했다는 것이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단다. 과거처럼 타율적 강제가 아니고도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 민주사회다.


2001년 시작해 2021년 끝난 아프간 전쟁에서 민간인 포함 17만2,000여 명이 사망했다. 같은 20년 동안 한국의 자살자는 24만여 명이나 되었다. 속초나 남원처럼 인구 8만 명 수준의 지방 도시 세 개가 사라질 규모다. 민주주의가 속도전을 동반하면, 전쟁 이상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주지 않는 사회 속 사람들의 말없는 절규치고는 참혹하다. 느려져야 다른 게 보인다.


*이 글은 한국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41210080003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