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대한 불만의 거의 모든 것 - 대표 : 역사, 논리, 정치
조성주Ⅰ정치발전소 대표
정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좋다. 『대표 : 역사, 논리, 정치』(모니카 브리투 미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 지음/노시내 옮김/후마니타스)는 우리가 정치에 대해 갖는 불만의 거의 모든 근원인 ‘대표’의 거의 모든 부분을 탐색하는 책이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갖는 불만은 대부분 ‘대표’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의 ‘대표’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대표’로 선출하고 의회 또는 청와대로 보냈고, 그들이 시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여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표’들이 우리를 만족스럽게 대표하는 일은 별로 없다. 때로는 내가 지지하지도 뽑지도 않은 사람이 나를 대표한다며 발언하고 행위하기도 한다. 불만이 축적될수록 ‘이럴 바에는 내가 직접 나를 대표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도 한다. 혹은 ‘정치인들 말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면 안 되나?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더 잘 ‘대표’해 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치에서부터 일상에서까지 ‘대표한다’는 것의 모든 것을 전방위적으로 분석해 낸다. 책의 제목 그대로 대표 개념의 역사, 대표한다는 것의 논리, 그리고 정치에서의 대표 개념까지 종횡무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책의 미덕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아주 복잡하게 잘 짜인 미로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독자에게 조금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더듬어 탈출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독자들의 손을 잡고 다른 미로 속으로 ‘휙’하고 들어가 버린다. 잠시 한눈을 팔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다시 이전 장(chapter)의 입구로 돌아가 더듬거리며 미로를 탐색해야만 한다.
이 리뷰는 필자가 먼저 저자들의 손에 잡혀 때로는 내팽개쳐지며 미로를 탈출해 보고, 다음에 올 독자들에게 미로 탈출의 팁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들은 먼저 ‘대표’라는 개념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1번 미로와 2번 미로에서 저자들은 대표라는 개념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와는 별도로 법률・종교・연극 등의 비정치적 분야에서 사용되었고, 다시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혼합되어 갔는지를 탐색한다. 미로를 탈출할 때쯤 놀라운 주장에 접하게 되는데, ‘민주주의’가 ‘대표제’를 유용한 부속품으로 장착한 것이 아니라, ‘대표제 정부’라는 역사적이고 본질적일 수밖에 없는 토대에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강력한 단서를 달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홉스, 루소, 슘페터 등 정치 철학자들의 고민들을 섬세하게 진열하며 논의를 전개하는데, 길을 잃을 것 같다면 <마키아벨리의 편지> 6월의 선정 도서였던 스티븐 스미스의 『정치철학』(스티븐 스미스 지음/문학동네)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스티븐 스미스의 『정치철학』도 약간은 미로 같은 책이라는 것인데……, 일단 넘어가자.


3번 미로와 4번 미로에서는 ‘대표’의 ‘논리’를 탐색해 간다. ‘대리인’, ‘신탁’, ‘명령’, ‘동일시’ 등 개인을 대표하는 다양한 방식들의 논리를 통해서 각자의 현실에서 ‘대표’라는 행위가 작동할 때 어떤 특징과 허점을 지니는지 스캔한다. 마찬가지로 ‘이익집단’, ‘정체성 집단’, ‘지역’ 등 집단을 대표하는 과정에서의 논리들도 헤집는다. 여기서는 소문대로라면 거장 한나 피트킨의 『대표 개념』이라는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눈 딱 감고 쫓아가는 수밖에.
마지막 5번 6번 미로에서는 정치에서의 본격적인 ‘대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문제, 그리고 국가 단위를 넘어서 대표하는 국제 정치에 대해서 날카롭게 탐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앞선 미로들에 비해 수월하다 느낄 수 있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는 <마키아벨리의 편지> 8월의 가이드북에 잠시 소개했던 『대표민주주의 가이드 : 대표제를 통해 알아보는 민주주의의 본질』(하야카와 마코토 지음/이김출판사)이라는 책이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대표민주주의 가이드』는 사실 5장, 6장만이 아니라 아예 이 책 『대표 : 역사, 논리, 정치』를 읽기 전에 미리 읽어 두면(심지어 책의 두께가 얇기까지 하다!)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내비게이션까지는 아니어도 간단한 나침반 역할은 톡톡히 하는 책이니 꼭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게 저자들과 함께 복잡한 미로를 통과하고 나면, 저자들이 독자들을 위해 미리 마련해 놓은 작은 선물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의 정치부터 세계 정치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문제인 ‘미래를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부터 시작하여 역사와 논리, 수많은 결사체들과 집단들을 횡단하는 힘들고 긴 여정의 끝이 ‘현재’에 ‘미래’를 책임 있게 대표해 내는 문제에 대한 검토라고 하니, 아마 여기까지 도달한 독자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솔직히 이 책은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또는 누군가를 ‘대표’하려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실에서 ‘대표’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딜레마와 고민들을 예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난이도를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고민이 한층 깊어진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끝>.
정치에 대한 불만의 거의 모든 것 - 대표 : 역사, 논리, 정치
조성주Ⅰ정치발전소 대표
정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좋다. 『대표 : 역사, 논리, 정치』(모니카 브리투 미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 지음/노시내 옮김/후마니타스)는 우리가 정치에 대해 갖는 불만의 거의 모든 근원인 ‘대표’의 거의 모든 부분을 탐색하는 책이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갖는 불만은 대부분 ‘대표’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의 ‘대표’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대표’로 선출하고 의회 또는 청와대로 보냈고, 그들이 시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여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표’들이 우리를 만족스럽게 대표하는 일은 별로 없다. 때로는 내가 지지하지도 뽑지도 않은 사람이 나를 대표한다며 발언하고 행위하기도 한다. 불만이 축적될수록 ‘이럴 바에는 내가 직접 나를 대표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도 한다. 혹은 ‘정치인들 말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면 안 되나?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더 잘 ‘대표’해 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치에서부터 일상에서까지 ‘대표한다’는 것의 모든 것을 전방위적으로 분석해 낸다. 책의 제목 그대로 대표 개념의 역사, 대표한다는 것의 논리, 그리고 정치에서의 대표 개념까지 종횡무진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책의 미덕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아주 복잡하게 잘 짜인 미로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독자에게 조금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더듬어 탈출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독자들의 손을 잡고 다른 미로 속으로 ‘휙’하고 들어가 버린다. 잠시 한눈을 팔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다시 이전 장(chapter)의 입구로 돌아가 더듬거리며 미로를 탐색해야만 한다.
이 리뷰는 필자가 먼저 저자들의 손에 잡혀 때로는 내팽개쳐지며 미로를 탈출해 보고, 다음에 올 독자들에게 미로 탈출의 팁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들은 먼저 ‘대표’라는 개념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1번 미로와 2번 미로에서 저자들은 대표라는 개념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와는 별도로 법률・종교・연극 등의 비정치적 분야에서 사용되었고, 다시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혼합되어 갔는지를 탐색한다. 미로를 탈출할 때쯤 놀라운 주장에 접하게 되는데, ‘민주주의’가 ‘대표제’를 유용한 부속품으로 장착한 것이 아니라, ‘대표제 정부’라는 역사적이고 본질적일 수밖에 없는 토대에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강력한 단서를 달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홉스, 루소, 슘페터 등 정치 철학자들의 고민들을 섬세하게 진열하며 논의를 전개하는데, 길을 잃을 것 같다면 <마키아벨리의 편지> 6월의 선정 도서였던 스티븐 스미스의 『정치철학』(스티븐 스미스 지음/문학동네)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스티븐 스미스의 『정치철학』도 약간은 미로 같은 책이라는 것인데……, 일단 넘어가자.
3번 미로와 4번 미로에서는 ‘대표’의 ‘논리’를 탐색해 간다. ‘대리인’, ‘신탁’, ‘명령’, ‘동일시’ 등 개인을 대표하는 다양한 방식들의 논리를 통해서 각자의 현실에서 ‘대표’라는 행위가 작동할 때 어떤 특징과 허점을 지니는지 스캔한다. 마찬가지로 ‘이익집단’, ‘정체성 집단’, ‘지역’ 등 집단을 대표하는 과정에서의 논리들도 헤집는다. 여기서는 소문대로라면 거장 한나 피트킨의 『대표 개념』이라는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눈 딱 감고 쫓아가는 수밖에.
마지막 5번 6번 미로에서는 정치에서의 본격적인 ‘대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문제, 그리고 국가 단위를 넘어서 대표하는 국제 정치에 대해서 날카롭게 탐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앞선 미로들에 비해 수월하다 느낄 수 있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는 <마키아벨리의 편지> 8월의 가이드북에 잠시 소개했던 『대표민주주의 가이드 : 대표제를 통해 알아보는 민주주의의 본질』(하야카와 마코토 지음/이김출판사)이라는 책이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대표민주주의 가이드』는 사실 5장, 6장만이 아니라 아예 이 책 『대표 : 역사, 논리, 정치』를 읽기 전에 미리 읽어 두면(심지어 책의 두께가 얇기까지 하다!)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내비게이션까지는 아니어도 간단한 나침반 역할은 톡톡히 하는 책이니 꼭 참조하기 바란다.
이렇게 저자들과 함께 복잡한 미로를 통과하고 나면, 저자들이 독자들을 위해 미리 마련해 놓은 작은 선물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의 정치부터 세계 정치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문제인 ‘미래를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부터 시작하여 역사와 논리, 수많은 결사체들과 집단들을 횡단하는 힘들고 긴 여정의 끝이 ‘현재’에 ‘미래’를 책임 있게 대표해 내는 문제에 대한 검토라고 하니, 아마 여기까지 도달한 독자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솔직히 이 책은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또는 누군가를 ‘대표’하려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실에서 ‘대표’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딜레마와 고민들을 예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난이도를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고민이 한층 깊어진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