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 '포스트 아베'는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은?

조성주(정치발전소 상임이사)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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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베는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은?


-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왼쪽 위 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가 요시히데,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오부치 유코, 고이즈미 신지로>


필자는 일본의 진보적인 청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에게 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일본의 청년들은 민주당, 공산당 등 야당이 아니라 자민당, 그리고 아베 총리에게 투표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예상 정답은 ‘일본의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또는 ‘일본의 청년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은 예상과는 다르다. 실제로 일본 청년층 투표율이 한국과 비교해서 현저히 낮은 것은 아니며, 2009년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될 당시 일본의 청년 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그 청년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민당만이 일본의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청년들에게 자민당은 보수일까?’


사실 필자가 가졌던, 그리고 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법한 의문의 밑바닥에는 어떤 ‘전제’가 깔려있다. 첫 번째는 ‘청년층은 정치에 있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민당은 보수, 나아가 극우가 다수이고 일본의 야당은 진보적이다’라는 전제다. 그러나 첫 번째 전제가 ‘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두 번째 전제, ‘자민당은 보수, 나아가 극우가 다수다’라는 것도 ‘참’일까? 


사실 앞서 말한 이런저런 무의식적인 전제들은 어쩌면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한일관계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실제 일본 자민당은 청년실업 등 청년의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평화헌법 수호’에 전력을 다하는 민주당, 공산당 등 일본의 야당들보다 적극적이며 나름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기도 한다. 이는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복지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민당은 이미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 角栄) 전 총리 시절부터 ‘복지원년’을 선포하고 사회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역사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나아가 극우)인 자민당이 일본 내부에서는 서민중심, 복지확대 등의 정책기조로 진보적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가 사임의사를 밝혔다.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 치닫기도 했고, 역대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웃나라 총리다보니 한국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흥미를 떠나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동아시아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의 정치변화는 한국에게 중요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이 책  "일본의 내일"(自民?―?値とリスクのマトリクス)(생각의 힘)은 ‘포스트 아베’로 이야기 되는 9명의 유력한 자민당 정치인들을, 가치관, 정책방향,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요한 아젠다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자민당 내에서의 영향력, 장점과 약점 등도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 달여 정도의 시간 내에 ‘포스트 아베’가 누가 될 것인가가 결정되는 지금 시점에 적절한 ‘시의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일본정치에 대한 책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역사문제, 외교안보 문제를 중심으로 일본의 정치인들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일본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정치인들의 말과 글을 통해 보는 그들의 지향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책의 번역본이다. 이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법한 무의식적인 ‘전제’가 깔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정치의 좌표축을 가로축 ‘가치문제’로 자유주의와 권위주의로 나누고, 세로축 ‘위기 문제’로 설정하여 ‘사회안전망 강화’와 ‘위기의 개인화’로 분류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분류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관방장관은 ‘귄위주의자’에 ‘신자유주의자’로 분류가 되지만, 같은 자민당 정권의 ‘노다 세이코(野田 聖子)’, ‘가토 가쓰노부(加藤 勝信)’, ‘오부치 유코(小渕 優子)’ 등 유력 정치인들은 명확히 다른 자유주의 성향의, 포용적 사회안전망 강화 지향의 정치인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분류는 역사 및 외교안보 문제에 민감한 한국의 독자들 입장에서는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일본시민들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이것이 더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실제 투표장에서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분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정치와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역시 이런 분류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역사나 외교문제는 매우 중요해서 이를 떼놓고 국가 간 문제를 바라볼 수 는 없지만 해당 국가의 방향과 사회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정치를 조금 더 내부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는 극우냐 아니냐 정도로 단순하게 분류되던 방식을 뛰어넘어(최근 ‘펀쿨섹좌’(고이즈미 신지로 小泉 進次郎) 정도는 조금 다른 걸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일본 정치인들의 성장배경, 가치관, 주요 정책 아젠다 등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매력이 있다.


시의성과 신선한 관점, 알기 쉬운 분류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 까지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명확한 정치관과 정책아젠다 등으로 차별성을 찾기 힘든 한국정치인들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스트 아베’만이 아니라 ‘포스트 포스트 아베’ 또한 이 책에서 언급한 9명 중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독을 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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