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운동은 누구의 것인가?

권오재(정치발전소 이사)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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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누구의 것인가


권오재Ⅰ정치발전소 이사, 국회의원 보좌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책이 나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운동이 그 운동이 아니다. 시민단체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내게도 이럴진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운동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에서는 거리감과 생경함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주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운동이 왜,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자신을 예외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이지 활동가들이 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효과적으로 활동하기는 어렵다. 당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하라.(71쪽)


마이클 왈저가 25개의 주제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는 지침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과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거나, 동떨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려 깊음과 신중함, 신뢰와 존중으로 ‘변화를 시도’했다는 자기만족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2.

운동은 관료와 정치인들이 보지 못하는 제도와 정책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조직되고 강한 목소리에 묻혀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 내는 데 많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입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다. 이 책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시민단체, 노조 등에서 특정 법안에 대해 국회의원실에 설문을 통해 지지를 확인하고,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 찬성/반대 칸을 만들어 놓고 선택하라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한 마디로 O․X 퀴즈인 셈이다. 이 단순명료함이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유용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찬성과 반대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목소리를 낼 공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생략된다. 왈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와 사회를 비롯한 이 세상 전체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종종 의도적으로 모른 체하며, 그들이 바라는 변화와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승리 사이에 놓인 모든 장애물도 무시한다.(63쪽)


너는 누구의 편이냐를 묻기에 앞서, 시간이 걸리고 품이 들더라도 O와 X 사이에 존재하는 네모, 세모, 마름모 등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듣고 대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한 이유는, 운동이란 정해진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넓혀 가는 과정 그 자체를 통해 생명력을 얻어 가기 때문이다.

목표하는 100%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 목표를 설정하고 완벽하게 달성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은 ‘인민’ 가운데 일부만 대표할 뿐이며 그들이 실제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을 기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오랫동안 열심히 활동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현재의 정치 활동으로, 내일이나 다음달에 ‘모든 권력이 인민에게’넘어오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조언한다(213쪽).

그러나 우리 사회의 운동이 100이 아닌 90, 80, 50을 달성했을 때 스스로의 성과로도 인정하지 않거나, 이를 위해 노력한 정치 세력과 시민사회를 운동의 배신자나 기득권에 굴복한 유약한 사람들로 비난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스스로 운동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무시하는 일이다.

조금의 진전이라도 참여하고 지지한 시민들에게 운동의 성과로 공유하고, 더 많은 성취를 위한 계기로 삼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세력을 운동에 동참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원칙과 목표는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유연한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타협’, ‘연대’, ‘협력’이라는 단어를 반복하고 있다. 변화의 당위만이 강조되는 운동에서 실제의 변화를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3.

함께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낯선 이데올로기적 용어들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 구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교하게 구성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152쪽)


무엇보다 운동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몇몇만 아는 말들과 이론으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라 일부의 동아리로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가는 ‘번역가’여야 한다.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미래의 말들을,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상근자로 일할 때 운동권이 아닌 ‘비선수 출신’인 나는 회의 중 못 알아듣는 단어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전망’이라는 단어였다. 나의 선배와 동료들은 끊임없이 ‘조직과 개인의 전망’을 세우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전망’을 풍경을 보는 데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활동가들이 모였던 워크숍에서 취기가 오른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모든 노래 가사에 ‘민중’, ‘노동’, ‘해방’, ‘민주’와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노래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보랏빛 향기’를 불러 분위기를 흐렸던 기억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운동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경험과 일상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4. 

다시 ‘지금, 여기’라는 운동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자. 운동이 저변을 넓히고, 작고 큰 변화들을 실제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살아 움직이는 활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얻어야 하고, 신뢰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열려 있을 때 찾아온다.

운동의 방법과 태도를 알려주는 이 책과 함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운동이 과연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이다. 노동운동은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가, 여성운동은 나의 엄마와 누나의 삶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오래된 질문이지만) 시민운동에 시민이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성의 있게 응답하려는 시도가 시작될 때 저자가 말하는 신중하고 절제되고 겸손한 태도와, 변화를 이루기 위한 열려 있는 운동들이 다시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게 될 것이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가 국내 최초로 비전문가도 연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쉬운 요약’을 싣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당 학술지의 편집위원장은 이를 설명하는 글에서 “과학이 시민을 떠날 때, 흔히 이는 무기로 둔갑한다.”라고 밝히면서 “연구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다.

<운동은 이렇게>를 통해 ‘운동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성찰이 풍성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운동이 일부의 무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씩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유용하고도 친숙한 도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