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편지 Book Review] 스티븐 스미스 <정치철학>

박선민 보좌관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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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의 고유 주제는 정치 행동이다



한동안 이 책을 읽으려고 일찍 귀가했다. 책보다 재미없는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집에 와 씻고, 밥을 차려 먹고, 청소와 설거지를 마치고, 늦은 밤 깨끗해진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치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루소와 홉스와 토크빌이 ‘정치철학이란 말이지’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시간이다. “저녁이면 귀가해 공부에 들어갑니다. 문 앞에서 나는 진흙이 묻어 온통 더러워진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관복으로 갈아입는다오. 옷을 잘 가다듬은 다음 옛 선현들의 궁정으로 들어가면, 그분들은 나를 융숭하게 맞아들이지요. (…)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빠져듭니다.”라던 500년 전의 마키아벨리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기분이다. 혼자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라니, 저자인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사의 권위자 스티븐 스미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생각해보자. 현실 정치는 서로 멱살잡이를 할 지경인데 대체 ‘안티고네’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폭력이 줄어든 만큼 의도치 않았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당은 오로지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보이지 않으며, 혐오발언과 극단적 주장, 소수의 광적 지지자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를 선호하고, 협의보다 대결, 협력보다 공격을 일삼는다. 우리의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민주주의는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안티고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그리스 희곡 『안티고네』의 줄거리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테베의 왕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테베의 배신자인 오빠의 시체를 땅에 묻어준다. 크레온은 법에 불복종한 안티고네를 생매장하라고 명령하는데,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본 크레온 왕의 아들이 아버지의 잔인함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고, 아들의 죽음을 본 크레온의 아내도 자살하고 만다. 비극이다.

     

저자는 말한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충돌은 선과 악의 단순한 충돌 이상이다. 그것은 서로가 타당하면서도 상충하는 사회적 도덕률, 저마다 똑같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도덕률 사이의 갈등이다. 『안티고네』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름에 대해 옮음을 내세우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당한 주장을 또 다른 주장과 겨루게 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서로 경쟁하는 두 도덕률 사이의 갈등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본질이다.”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수 없기에 비극이었던, ‘국가와 가족’으로 대비된 고대 그리스의 갈등은 현대에 와서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계급,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이념처럼 거대한 규모의 갈등은 물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이 갈등이다. 갈등이 사라진 세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은 “갈등의 세계 속을 방황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정치의 핵심이 바로 이 ‘갈등’이다. 또, 어느 한쪽이 옳을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체제가 민주주의다. 그러니 ‘상충하는 도덕률’과 ’정치에서의 갈등과 그 역할‘을 다룬 안티고네로 정치철학을 시작하는 것은, 다른 시작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타당하지 않은가. 만약 안티고네가 자신의 의지를 접고, 왕의 명령에 복종했다면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갈등은 인간의 자유에서 나온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최선의 노력은 갈등을 절약하고, 갈등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시작이 좋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재미없고 진지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다리고 있다. 곧 능글맞은 현실주의자, 정치가들의 벗 마키아벨리가 나오니 참자.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열기를 참을 수 없다면 부엌에서 나가라”는 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영광과 보상만을 기대하는 정치가는 곧 부엌에서 나가게 될 것이다. 정치적 삶은 부엌의 열기를 견디는 일이다. 마키아벨리가 악의 얼굴을 한 ‘지킬박사’라면 홉스는 순수하고 착한 ‘하이드 씨’였다는 게 저자의 비유인데, 결국 두 사람이 ‘하나’라는 게 중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닦은 터 위에 홉스가 집을 지었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 집의 주인은 독점적 권력을 가지고 빗자루부터 생쥐까지 통제한다. 구성원들은 집의 부분이며 인공적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데, 집 안에 머물면 적어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집의 주인은 이들이다.

     

근대 국가는 자유사상, 평등사상과 함께 발전했다. 홉스는 물론, 로크, 루소 모두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단, 자연 상태에서) 이들의 모든 고민을 한데 모으면 토크빌이 나온다. 정치철학자 중에 가장 고민이 많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토크빌을 꼽겠다. 저자는 민주주의에 관해 쓰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꼽았다. 그가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데서 그쳤다면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다수의 횡포를 어떻게 막을지, 행정의 중앙 집중화를 어떻게 견제할지,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그의 의심과 고뇌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이는 체제의 기본적 운영 원리가 되었다. 

     


토크빌은 정치가가 배의 선장과 같다고 했다. 선장은 불지 않는 바람을 불게 할 수도, 배의 모양을 세모나 네모로 바꿀 수도 없지만, 외부 조건에 의지하여 배의 운명을 통제한다. 인간은 ‘한계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이고, 민주주의는 ‘한계 안에서 발전해 가는 체제’다. 물론 토크빌은 ‘온화한 전제정치’를 걱정했다. 그러면 좋은 해결책을 내놓을 일이지, ‘도전’만 남겼다. 저자는 “토크빌은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미래의 민주적 정치가들이 만들어낼 언어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 언어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당신은 <정치철학>을 왜 읽으려고 하는가? 아, 마키아벨리 구독자라서. 당신은 정치가인가? 철학가인가? 정치하는 사람인가? 정치적인 사고를 하고 싶은 사람인가? 당신에게 정치철학은 왜 필요한가?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가 하는 말이 오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정치고전을 읽는 것은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받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처럼 “정치철학의 고유 주제는 정치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