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김병철Ⅰ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정치발전소 이사
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
선거철이 다가오면 자신의 정당에 ‘표’를 많이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각 캠프에서 인기가 많다. 지역에 오래 거주하여 주민들에게 신망 받는 터줏대감부터 부자 동네의 아파트 입주자 대표, 기업들의 연합회 회장, 대학교 동문회 등 다양한 조직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힘을 쏟는다. 더욱 적극적인 행동으론 조직의 대표자를 직접 정치인으로 배출시킨다.
표를 모으고,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수많은 단체 중 빠트릴 수 없는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현재 한국의 전체 노조원 숫자가 200만여 명이니 정당의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다. 전직 노동조합 위원장, 간부 출신이 의원 배지를 단 경우도 꽤 많다. 1980년대에 노동자와 친구가 되기 위해 현장으로 내려갔던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까지 포함하면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개입하는 노력만큼 노동의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는지 답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된 일터,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의 중심에 서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저임금, 산업재해, 노동법 밖의 노동, 실업자 등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터에 대해 서술한다. 그러나 단순히 현장 고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불안정 노동의 목소리가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전체 경제활동인구 2800여만 명 중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제도 정치는 당장 표가 되는 노동조합과 이해관계를 맺는 것에 그치는 현실을 짚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공론장의 중요성
무엇보다 책의 제목에 문제의식이 압축되어 있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체는 분명 위기인데 정면으로 맞서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대표하는 데 효과적인 체제다. 어떤 갈등이 대표되려면 우선 제대로 알려질 필요가 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신에, ‘공론 장’에 진짜 이야기를 더 많이 올려야 하는 이유다.”(23쪽)
이 책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을 넘어서는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수 진영이 주장하는 귀족노조 프레임과,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자본 타도’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전투적이어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다른 한편 기업별 노조에 속한 고임금 노동자 일부의 처우 개선에만 머무는 노-사 담합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에 노동시장 내 경제적 불평등은 협상 권력의 불균형이 낳은 결과물이다. 갈등을 대표하기 위한 효과적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로 뻗어 나가지 못해 특정 경제 인구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에 저자는 과소 대표되고 있는 노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불쌍하고 가여운’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노동운동과 정치의 역할을 담담히 묻고 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실체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기 시작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과거 자영업자 단체가 ‘최저임금 1만 원’에 지지 의견을 표하면서 노동계에 우호적이기도 했으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역전되어 당사자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노동계는 반대로 자영업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뼈아픈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지불 능력 부족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법적 지위로는 대기업과 똑같은 사장님이지만 일하는 실제 모습은 여타 저임금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어쩌면 더욱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보호해 줄 노동법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늬만 사장님일 뿐 본사의 지시를 받으며 ‘종속적’ 상태에 놓인 자영업자들에겐 왜 결사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인지, 노동법이 규정하는 고용 관계로부터 밀려난 노동이 갈수록 늘어 가고 있는데 현재의 제도는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 다양한 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단호히 답을 내리지도 않는다. 확실한 답을 고집하는 입장만으론 노동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는 신호를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준다.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정규직 청년, 호봉제 사수를 위해 직무급 전환을 피하고 싶은 중년 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가져와 갈등의 구조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깨닫게 된다. 단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더욱 주목하자는 뻔한 결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노동은 결코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없으므로 노-노 갈등을 뼈아프지만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 선-악 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기 위한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남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고민의 지점들이 바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실체다.
투쟁과 타협 사이에서 늘 고뇌하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노동운동가다. 1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왔던 나 역시 갈등을 직면하는 것은 매순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처한 딜레마를 회피하지 않고 해답을 찾아 나가는 노력만이 노동운동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지금 꼭 필요한 문제의식을 던져 준 책의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김병철Ⅰ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정치발전소 이사
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
선거철이 다가오면 자신의 정당에 ‘표’를 많이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각 캠프에서 인기가 많다. 지역에 오래 거주하여 주민들에게 신망 받는 터줏대감부터 부자 동네의 아파트 입주자 대표, 기업들의 연합회 회장, 대학교 동문회 등 다양한 조직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힘을 쏟는다. 더욱 적극적인 행동으론 조직의 대표자를 직접 정치인으로 배출시킨다.
표를 모으고,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수많은 단체 중 빠트릴 수 없는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현재 한국의 전체 노조원 숫자가 200만여 명이니 정당의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다. 전직 노동조합 위원장, 간부 출신이 의원 배지를 단 경우도 꽤 많다. 1980년대에 노동자와 친구가 되기 위해 현장으로 내려갔던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까지 포함하면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개입하는 노력만큼 노동의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는지 답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된 일터,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의 중심에 서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저임금, 산업재해, 노동법 밖의 노동, 실업자 등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터에 대해 서술한다. 그러나 단순히 현장 고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불안정 노동의 목소리가 어떻게 가려지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전체 경제활동인구 2800여만 명 중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제도 정치는 당장 표가 되는 노동조합과 이해관계를 맺는 것에 그치는 현실을 짚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공론장의 중요성
무엇보다 책의 제목에 문제의식이 압축되어 있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체는 분명 위기인데 정면으로 맞서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대표하는 데 효과적인 체제다. 어떤 갈등이 대표되려면 우선 제대로 알려질 필요가 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신에, ‘공론 장’에 진짜 이야기를 더 많이 올려야 하는 이유다.”(23쪽)
이 책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을 넘어서는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수 진영이 주장하는 귀족노조 프레임과,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자본 타도’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전투적이어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다른 한편 기업별 노조에 속한 고임금 노동자 일부의 처우 개선에만 머무는 노-사 담합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에 노동시장 내 경제적 불평등은 협상 권력의 불균형이 낳은 결과물이다. 갈등을 대표하기 위한 효과적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로 뻗어 나가지 못해 특정 경제 인구가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에 저자는 과소 대표되고 있는 노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불쌍하고 가여운’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노동운동과 정치의 역할을 담담히 묻고 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실체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기 시작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과거 자영업자 단체가 ‘최저임금 1만 원’에 지지 의견을 표하면서 노동계에 우호적이기도 했으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역전되어 당사자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노동계는 반대로 자영업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총체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뼈아픈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지불 능력 부족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법적 지위로는 대기업과 똑같은 사장님이지만 일하는 실제 모습은 여타 저임금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어쩌면 더욱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보호해 줄 노동법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늬만 사장님일 뿐 본사의 지시를 받으며 ‘종속적’ 상태에 놓인 자영업자들에겐 왜 결사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인지, 노동법이 규정하는 고용 관계로부터 밀려난 노동이 갈수록 늘어 가고 있는데 현재의 제도는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 다양한 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단호히 답을 내리지도 않는다. 확실한 답을 고집하는 입장만으론 노동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는 신호를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준다.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정규직 청년, 호봉제 사수를 위해 직무급 전환을 피하고 싶은 중년 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가져와 갈등의 구조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깨닫게 된다. 단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더욱 주목하자는 뻔한 결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노동은 결코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없으므로 노-노 갈등을 뼈아프지만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 선-악 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기 위한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남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고민의 지점들이 바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실체다.
투쟁과 타협 사이에서 늘 고뇌하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노동운동가다. 1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왔던 나 역시 갈등을 직면하는 것은 매순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처한 딜레마를 회피하지 않고 해답을 찾아 나가는 노력만이 노동운동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지금 꼭 필요한 문제의식을 던져 준 책의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