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_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공식 관리자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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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날들이 계속되면서 문든 ‘나’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들이고, 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의 범위가 꽤 넓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 마스크를 하지 않은 대상을 만나는 일은 저녁 즈음 산책 나온 강아지들뿐이다. 가만히 앉아 동물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곧 말을 할 것만 같기도 하다. 안녕, 반가워. 나는 산책을 나왔어. 눈망울을 굴리면서 귀를 뒤로 젖히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존재에게서도 표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표정을 잃어버린 시대에 표정이란 무엇일까. 의사소통이란 무엇일까.


‘적자생존’이라는 말 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말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역시 유사하다. 저자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켜 왔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하는 유대와 협력이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큰 의미를 둔다고 한다. 그래서 ‘신뢰’(trust)를 다룬 많은 연구들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뢰를 구축(trust building)하기 위한 사전 과정으로 대면 대화(face-to-face)의 중요성이다. 이는 협력(collaborative action)의 중요한 사전 과정이기도 하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신뢰가 쌓이고, 공동의 이해를 형성하고 협력하는 순환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은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과, 교감하고 공감하기 위한 능력을 꾸준히 발달시켜 왔고, 이해하고자 했으며, 협력하기 위한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저자가 차근차근 하나씩 제시하는 유전적 과정의 증거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한 것이 승리 한다’는 오해를 씻게 된다. ‘적자’(適者)란 적합한 생물을 의미하는 것이지 강한 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책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300쪽)이라고. 이 책은 신뢰, 호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사회자본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또한 저자는 “민주주의는 우리의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한 이 어두운 면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255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임을 확인하고자 할 때, 공통점을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만을 중심에 둘 때 나타날 수 있는 배제와 혐오, 비인간화는 필연적(?)일 수 있으나 이를 최소화하는 장치로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우리 지혜의 산물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 결과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그리고 다정함이 가진 위대함이 아닐까.


짧은 순간일 수 있지만 누군가의 호의와 친절을 받았던 기억은 꽤 오래 남는다. 특별히 도덕적이거나 훌륭하고 고귀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평범한 우리 모두가 갖는 연민과 공감과 소통과 호의가, 연약해 보이지만 길고 단단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반짝이는 순간이 되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쏟아지는 뉴스를 본다. 혐오는 단순히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넘어 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뉴스의 홍수 속에서 인류애를 상실하게 될 것 만 같다. 상호 소통과 다정함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을 읽으며 끝없이 반박하고 싶었다. 나의 다정함이, 나의 선의가 추행이 되어 돌아오거나 호구가 되었던 경험은 적지 않은 시간 쌓여 왔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다정함과 공감과 협력과 연대가 몇 번이나 서로를 구원해 주었음을. 우리는 그러한 존재다.


그리고 이 다정함이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생명까지 확장되기를. 지구에게도 다정하기를. 우리의 협력이, 연대가 고통받는 자연에게까지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