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_ 사람에게 액세스하는 사회를 위해

공식 관리자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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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엑세스하는 사회를 위해

 

문근영, 녹색당 ICT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

 

조경숙 작가의 ‘엑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는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은 IT업계 전반의 얘기를 나열한 책이다. 이 책은 업계 내의 사람들이 얼마나 처절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지적 여성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테크 업계와 서비스의 이면’이라는 부제가 달려있기는 하지만 일부 젠더 관련 목차를 제외하며 IT업계에서 오래 일을 해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슈들을 기술하고 있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IT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IT기기를 숨을 마실 때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다루듯이 사용한다. 대부분의 회사가 IT시스템에 기반하여 업무가 돌아간다. 그래서 오랫동안 인류가 이렇게 살아왔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50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무슨 얘기냐면 그 시작부터 함께한 사람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나처럼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IT업계는 매우 젊은 곳이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왜 이 책에서 언급되는 불합리하고 잘못된 처우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

 

예전에는 IT업계에서 개발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업계 또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심지어 3D업종이라 부를 만큼 피하고 싶은 내용도 있다는 것을 비단 이러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사람들의 첫 마디가 있다.

 

“돈 잘 벌겠네요”

 

사람들은 이 업계에도 다양한 영역,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고 그들의 업무 환경과 급여 수준, 처우는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개발자’ 대신 ‘개발진’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러면 어디까지를 개발진으로 볼 것인가? 예를 들어, 이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유지보수 노동자는 개발진인가? 아닌가?

 

지난 세계 녹색당 총회에서 나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사람들이 첨단이라고 생각하는 AI서비스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책에도 이 내용이 잠시 언급된다. 나는 IT산업의 구조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토건 산업 구조를 봐. 우리는 무형의 건축물을 만든다는 점만 다를 뿐, 나머지는 똑같아.” 그러면 IT업계에서 이루어지는 관행과 사람들을 고용하고 버리는 방식 등등에 대해서 대부분 빠르게 이해한다.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사무실에 앉아 설계도를 그리는 사람은 전체 노동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현장 노동자가 그 과정에 있다. 또한 아파트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가는 공간이므로 건축 이후의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업무를 하는 다양한 종사자들이 존재한다. IT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대형 테크 기업들에도 노조가 생기고 IT업계 내에서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자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업계 내부는 물론 밖에서도 개별 노동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IT관련하여 각종 미디어와 SNS의 피드에 오르고 내리는 주요한 얘기는 기술 자체에 대한 설명과 그 기술이 가져오는 세상의 변화이다. 그러나 그 어떤 기술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없이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다.

 

토건산업의 경우 수직계열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대기업 종사자와 협력업체 직원의 처우가 같지 않은 것처럼, IT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도 제각각이다. 또한 각종 스타트업 회사들의 창업 멤버들은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회사를 만들게 되므로 당연히 그 안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이는 그들이 탐욕스러운 경영자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무지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안정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기 전까지 신규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는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다. 시장은 모두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을 투자한 이들은 언제든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므로 이러한 회사일수록 인사에 대해서 여유를 갖고 대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회사 경영의 노하우와 경험들이 전수가 되기에는 업계 전체가 너무 역사가 짧다. 결국 짧은 기간에 성과를 이뤄내야만 하는 압박을 가진 경영자와 그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정신없이 업무 플로우를 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IT서비스 개발 현장의 모습이다.

 

일명 ‘전산실’ 등으로 불리는 운영 및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곳의 현실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의 재무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출을 내지 못하는 비용이다. 모든 기업은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이 부문을 유지하려고 한다. 단지 회사의 규모에 따라 여기에 쓰는 비용의 단위만 달라질 뿐이다. 그렇기에 이 부문에서 일을 하는 IT노동자는 신규 서비스를 개발할 때만큼의 업무 강도와 압박을 느끼지는 않지만, 대신 기업 내 다른 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인다. 또한 회사가 어려워질 때면 늘 인원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는 것도 이 부서다.

 

나는 늘 ‘기술’ 그 자체가 아닌, 해당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 사람들이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만 비로소 IT현장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잡힐 것이며, IT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도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경숙 작가의 ‘엑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책은 반가웠다. 책 제목은 IT업계 또한 존재하는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지어졌겠지만, 독자들에게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IT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에 엑세스(access)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