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한국정치에도 "강한정당"이 필요하다_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장

공식 관리자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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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정당>

 

한국정치에도 “강한정당”이 필요하다

조성주 / 정치발전소 이사장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기존 민주주의 정치의 규범을 훌쩍 넘어서는 혐오발언과 행동, 노골적으로 약자들을 배제하는 행태들이 가져온 사회의 분열과 혼란. 포퓰리즘의 부상 등은 그 사건이 가져온 부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그 트럼프의 출현이라는 충격이 늘 부정적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우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승리’를 선언한 이후 큰 도전 없이 어느새 나태해져 가고 있던 정치학, 민주주의 이론, 사회학 등 각계 분야에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큰 ‘긴장’을 주었다는 것이다.

 

‘역사적 승리’를 선언했고 더 이상 큰 흔들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인류의 가장 성공한 발명품이라는 “민주주의”가 사실은 ‘규범’이라는 허약한 토대 위에 서있었다는 분석(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스티븐 레빗츠키, 대니얼 지블렛 지음 / 어크로스)에서부터 “포퓰리즘”이 사실은 매우 민주주의적 현상의 하나라는 이야기(포퓰리즘 - 카스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지음 / 교유서가)도 제기되었다. 한편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쟁들이 격해지는 현상을 두고 다양한 정치심리학적 분석(바른마음 - 조너선 화이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도 우리가 놓쳤던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유명한 마이클 센델은 이 현상의 이면에 진보적 엘리트들의 무능과 ‘노동시장’에 대한 무심함이 있다고 일갈(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센델 지음 / 와이즈베리)하기도 했다.

 

사실 조금 거칠게 단순화시키면 2016년 트럼프의 출현 이후 전개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의 핵심은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해야 한다”는 것일 수 있다. 토크빌이 일찌감치 “민주주의에 의해 파멸하기보다는 민주주의에 양보함으로서 그 야생본능을 길들이는 것이 낫다”고 탁월하게 통찰했듯이 사실 “민주주의”가 쇠퇴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에 위기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를 우리는 현명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하기는 바로 오늘 소개할 <마키아벨리의 편지> 4월의 선정도서인 <책임정당 /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 이안 사피로 지음 / 후마니타스)의 부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 논의들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못했던 지점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는데 그것은 바로 “정당”과 “선거제도”이다.

 

사실 현실정치에서 정당과 선거제도는 무엇보다도 큰 액터(Actor)이자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당과 선거제도는 이론의 영역에서 면밀히 분석된 경험이 많지 않다. 현실정치를 하는 정치가들이나 정당관료들이 소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참조할 책이 그만큼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의 민주주의 위기담론을 다루는 책들과는 조금 다르게 정당이 약해지면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했고 그 과정들이 자연스레 선거제도 개혁, 정당개혁들과 맞물리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측면은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의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 메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 후마니타스”에서의 분석과 궤를 비슷하게 한다. 그러나 이 책, <책임정당>의 장점은 그것을 미국 민주주의에 한정하지 않고 영국, 프랑스, 독일, 동유럽, 중남미, 아시아 등에서 최근 정당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정치적 변화를 다양한 맥락과 사례를 동원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핵심 주장은 ‘강한정당’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과 비례대표제와 다당제보다는 두 개의 크고 강한정당이 안정적으로 시민 다수를 포괄하는 ‘양당제’가 더 좋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큰 반론과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한국정치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들에게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정작 한국의 정치는 큰 양당의 독점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문제의 개선이나 시민 다수를 포괄하는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고 또 실제 그렇게 현실에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거대한 두 양당으로 대변되지 못하는 ‘불만의 정치’가 주된 주제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저자들이 주장하는 ‘강하고 큰 두 정당’에 한국의 두 정당(민주당 계열, 국민의힘 계열)이 해당하는 가도 토론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주요 양당은 어쩌면 크기는 하지만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정당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위투표자를 겨냥하는 포괄정당 보다는 오히려 핵심(강성)지지층에게만 호소하는 ‘단일이슈정당’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찬가지로 같은 대통령제에 큰 양당이 있는 한국과 미국이지만 정작 미국은 저자들도 지적하듯이 ‘미국이 미국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약한 정당이 존재한다면 한국은 조건이 다르다. 대통령제 역시 같은 제도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의회가 명백히 우위에 있는 조건에서 대통령제가 운영되는 미국과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며 대통령과 핵심관계자들로 구성된 측근세력이 열광적 지지자를 모으고 그들을 통해 정당내부와 의회를 위협해서 끌고 가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분명히 다르기도 하다. 이렇게 반론과 질문들이 솟아나올 때 자연스럽게 저자들이 한국정치에 대한 분석도 포함시켜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쉽게도 저자들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그친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자체로 많은 질문들을 하게 만들고 또 논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책이다. 혼자 조용히 완독하고 감탄하는 책이 아니라 읽는 도중에 무수히 많은 질문이 샘솟고 주변의 동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며 싸우게 만드는 책이다. 어쩌면 저자들의 의도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또 외면도 커지고 있는 시절이다. 저자가 ‘최악’이라고 지적하는 몇몇 사례들보다 우리 한국정치의 오늘이 더 나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그러나 이런 시절일수록 우리는 더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그것만이 어렵고 두려운 시절을 침착하게 걸어갈 담대함을 기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