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집 다음에 오는 것들 -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임경지(전 이웃기웃 주거협동조합 이사장)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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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다음에 오는 것들 -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임경지Ⅰ전 이웃기웃 주거협동조합 이사장



첫 장(chapter)의 첫 장(張)을 넘긴 순간 이미 이 책은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파리가 내 사촌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부러워서 혼이 났다.


"프랑스에서는 매달 월세만 지급하면 큰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기에 집에 대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처음 공부를 시작한 집에서 공부를 다 마칠 때까지 살다 왔다." (책 16쪽)


작가는 7년 동안 프랑스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아이 둘을 포함해 가족과 함께 떠난 아시아 여성 유학생으로 월세로 한 집에서 7년간 살았다. 경계인으로 낯선 땅에서 사기 한 번 안 당했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작가가 7년 동안 한집에서 살 수 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프랑스의 주택 계약 기간이 6년이다. 이를 의무임대 기간, 의무적으로 임대(빌려주거나), 임차(빌리는)하는 기간이 6년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세입자는 집을 계약한 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6년은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계약에 대한 해지와 갱신이 자유롭다. 의무임대 기간이 6년이지만 세입자가 원한다면 계약 해지를 원하는 시점 2개월 전에 미리 계약 해지 의사를 표시하면 계약은 종료될 수 있다. 그리고 세입자가 또 연장을 원하면 임대인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거절할 수 없다(=계약갱신청구권).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의무임대 기간이 2년이다. 처음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긴 1981년 계약 기간은 본래 1년. 2년으로 늘어난 것은 1989년 12월 30일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020년 7월 30일 국회 의결, 다음 날 시행됐다. 지금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주택정책의 표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프랑스보다 더 강하게 정부와 공공기관(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각 지방공사)이 주택 공급과 (신)도시 조성에 개입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택도시기금은 인구 절반에 달하는 청약 통장 개수가 상징하는 것처럼 1백조 가까이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집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함과 동시에 조바심이 날까. 또 이사하여야 할 때만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동안 과거에 '내가 잘못 산 것은 아닐까'라며 자책하게 될까. 그리고 왜 매번 선거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집값만은 잡겠다."라고 공언한 정권 때 집값은 가장 많이 오를까. 


<Photo by Dan Meyers on Unsplash >



이 책은 이 질문의 답을 풀어가는 과정이고 작가의 통찰도 바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먼저 꼼꼼한 사례 조사와 풍부한 인터뷰로 독자의 상상력을 끌어낸다. 독자의 상상력이 임계치에 달할 즈음, 현상 이면의 역학 관계와 프랑스의 주택·도시 정책의 역사를 적절히 엮어냄으로써 정치적, 행정적 안목에서 독자에게 정책을 재구성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선언했다는 '우선 집부터(Housing First)'를 언급하며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우선 집부터'는 유럽, 미국 등지에서 홈리스 정책의 접근법으로 유명한다. 홈리스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정책보다 지역사회에 주거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력 중이다. 여전히 시설 중심의 복지를 택하는 아직 낯설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집과 다양한 복지서비스가 결합된 지원주택(supportive housing)이 시작되고 있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만으로 정책이 성공할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작가는 프랑스의 「도시의 연대 및 재생에 관한 법률」(2000. 12. 31.) 제정과 주택과 도시를 담당하는 부처의 이름이 '국토 및 지방자치단체 관계 결속부'라는 것도 놓치지 않고 소개한다. 이를 통해 똑같은 정책이라도 어떤 조건, 환경 그리고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에 따라 정책의 뿌리, 가지, 줄기, 과실이 전혀 다르게 맺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작가는 책의 시작과 끝에 샤를 푸리에(1768~1830)를 소개한다. 푸리에는 로버트 오언(자급자족 공업·농업과 공동식당), 에베네저 하워드(전원도시)와 함께 대표적인 이상주의 도시모델을 제시한 선구자다. 푸리에는 하나의 건물 안에 도시의 모든 기능을 담는 팔랑스떼르(Phalanstery) 모델을 선보였고 집단생활, 집단생산이 가능한 건축으로 협동을 촉진했다. 푸리에의 뜻을 이어 푸리에 커뮤니티로 불리는 파밀리스뗴르(Familistere)는 1886년 400가구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시도되었다. 


이상주의 도시모델은 경제적 불평등과 상관없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과 이러한 활동의 결과물을 고르게 이용할 기회를 지향한다. 따라서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우선 집부터’ 안정적으로 모두에게 있어야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집을 꼭 사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