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우리가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을 비추는 거울

이가현(페미티스트 활동가)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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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을 비추는 거울


- 이가현 페미니스트 활동가


저자는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1988년생 지아 톨렌티노이다. 나는 아주 최근에서야 밀레니얼 세대의 정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1992년생인 나는 저자와 같은 세대로 묶일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성장했다. 그것도 인터넷 문화의 중심에서 배우고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주류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는 <트릭 미러>에서, 주류에서도 똑똑하고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여성으로서 살아온 자신을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면서 바로 지금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밀레니얼 세대는 이 세상의 흐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묘사한다.

 


근 몇 년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트위터에 해시태그를 올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합니다’ 한 마디를 올리는 작은 행동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리라 믿으면서도,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변화를 만들어 왔다. 다른 한편, <트릭 미러>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트위터에 올리는 말 한마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인기를 끌기 위해 과도하고 논리 비약적인 말로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 그와 더불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점차 개인으로서 세상에 적응하고 자립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자 윤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가령 ‘나는 내 파이를 구하러 왔을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와 같은 감성이 퍼지면서 무슨 주식을 사고 어떤 앱테크로 한 푼 두 푼 모아야 하는지 등의 온갖 저축 팁들이 공유되는 것,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 곧 페미니즘으로 연결된다는 믿음도 보인다. 밀레니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주식투자에 뛰어들지만 자신의 주식투자가 다른 어떤 노동자들의 몫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 된다. 그렇게 자신이 세상과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조금씩 갉아먹는 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점점 더 불안정하고 취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일기장에서의 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해석하거나 과대평가 하고 있다. (...)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조금 더 정직해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83쪽의 이 문장은 요즘 내 생각과 맞닿아 있다. ‘세상은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시대의 윤리는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진 사람들조차 자신이 만들어 낸 소셜미디어의 공간 안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만 하는 이 상황을 조금 더 개인적인 동기에서 말해주고 있기에 공감이 되었다. 지금처럼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기 전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만한 행동만을 골라서 하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 뭔가를 숨기고 자책하는 삶이 일상적이었고,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을 오랫동안 견뎌왔기 때문일까? 저자가 <트릭 미러>를 쓰는 과정은 무엇이 ‘정직’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오랫동안 저자 스스로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마주하려는 의지를 담아내는 과정 같아서 좀 더 공감되었다.

 


<트릭 미러>에서 묘사하는 밀레니얼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신체와 개성을 활용해 돈을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자본주의에 더 멋지게 적응할 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멋지게 자기관리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외모 자원을 계속해서 획득하고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가 원하는 방식대로 쉬지 않고 노동할 수 있는 ‘건강하고 활력 있는’ 몸을 촉진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유튜버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들조차 ‘팩트 체크’나 ‘뒷광고 의혹’을 견디면서 위태위태하게 그 자리를 유지한다. 누구나 이런 불안함과 취약성을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울>은 ‘살 준비가 되었으면 그냥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생의 목표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삶의 매 순간을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즐기라고 말한다. 내 주변인들 대부분이 <소울>을 감명 깊게 봤다고들 한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너무나 잔잔하고 소소해서 사회를 바꿀 만큼 강력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는 아직 어려울 것 같다.

 

저자는 “모든 상호관계 속 인간은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공연을 하고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고 말했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말을 인용하는데, 이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트릭 미러>가 자본주의가 허용하지 않는 방식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극복하는 개인들의 수행을 이야기했다면 주디스 버틀러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는 이 취약성을 어떻게 연대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이 지점을 염두에 두고 두 책을 함께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두 책 모두 언급하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 또한 추천할 만하다.

 

밀레니얼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문제들을 <트릭 미러>는 정확히 짚는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나는 책을 읽으면서 허를 찔리는 것 같았다. 세대의 이름은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인들이 명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사자가 들었을 때 거부감이나 반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트릭 미러>는 다르다. 이건 ‘우리 이야기’가 맞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인터넷과 영향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 어느 정도 괴리가 있긴 하지만,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밀레니얼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읽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