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조직과 공동체에서 냉소보다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김승진(번역가)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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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공동체에서 냉소보다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앨버트. 허시먼



- 김승진 번역가


미국 경제학자(주1) 앨버트 O. 허시먼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가 지난 해 출간 50주년을 맞았다. 1970년에도 공전의 히트였지만 50년이 지나서도 얇은 책에 담긴 내용의 무게와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원제이자 핵심 개념인 “이탈, 항의, 충성심”(Exit, Voice, and Loyalty)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지금도 소비자 시장, 노동조합, 정당정치,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서 수없이 인용되고 있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은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이다.(주2) 우선, 전제가 있다. 어느 조직이건 불가피하게 퇴보 요인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잘 설계된 조직이라도 늘 일관되게 순기능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직이 퇴보해 사회적으로 역기능을 일으킬 때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회복시킬 수 있을까?



퇴보하는 조직은 이해 당사자의 행위를 매개로 회복 압력을 받는다.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떠나는 것, 즉 ‘이탈’이고, 다른 하나는 남아서 목소리를 내는 것, 즉 ‘항의’다. 시장 압력이 이탈 메커니즘에 해당하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경제학의 영역이었다. 의사 표시를 조직화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항의 메커니즘이며 이것은 정치학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두 메커니즘은 별도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이 다른 쪽을 강화하기도 하고 무력화하기도 하면서 상호작용한다.


허시먼은 당대의 경제학이 이탈 방식에만 치우쳐 분석과 처방 모두에서 적합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탈 논리(시장 논리)에 따르면,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가 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기로 할 경우 해당 기업은 매출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문제점을 시정하거나 아니면 도태되어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시장은 질 낮은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없는 상태로 회복된다. 전적으로 이탈의 논리만 고려한다면, 퇴보에 대해 회복력을 높이는 방법은 이탈의 옵션이 많아지도록 ‘경쟁’을 더 도입하는 것이 된다. 독점 시장에서는 이탈 옵션이 없으므로 압력이 발생하지 않아서(주3) 회복력 측면에서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 스펙트럼의 반대 쪽 끝인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퇴보가 즉각적으로 시정되어 가장 높은 수준의 회복력이 달성된다. 현실에 완전경쟁은 존재하지 않지만 경쟁을 더 도입해 독점-완전경쟁 스펙트럼에서 완전경쟁 쪽으로 더 이동하도록 할 수는 있다.


이렇게 깔끔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독점-경쟁이 꼭 일직선의 스펙트럼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독점기업의 품질이 떨어졌을 때 경쟁이 도입되면 회복 압력을 순치시켜 ‘게으른 독점’과 ‘경쟁’이 공존하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항의할 법한 소비자들이 이탈해 압력이 효과적으로 제거될 수 있어서다. 또 경쟁하는 기업들의 품질이 함께 떨어질 경우 이탈하는 고객을 서로서로 흡수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더 나은 제품으로 옮겨가는’ 동안 경쟁은 사실상 담합으로 기능해 회복을 지연시키게 된다. 이러한 동학은 이탈의 압력만이 아니라 항의의 압력도, 그리고 그 둘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설명이 가능하다.



‘경쟁을 더 도입하자’가 무조건적인 해법일 수 없듯이 ‘이탈과 항의를 배합하자’도, 그 밖의 어떤 일반론적인 제안도 무조건적인 해법일 수 없다. 해법은 언제나 구체적인 맥락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살펴보아야 할 핵심은 존재하는 압력 장치에 대한 해당 조직의 민감도다. “이탈 장치를 갖춘 조직이 이탈에 실제로 민감한 경우”나 “항의 장치를 갖춘 조직이 구성원의 불만 표출을 실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바람직하다. 반면 조직이 갖고 있는 반응 장치에 그 조직이 반응하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조직이 퇴보하면 구성원은 이탈하기 쉽지만 조직 자체는 구성원의 이탈보다 항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이 경우에는 이탈에 대한 조직의 민감도를 높이거나 구성원이 이탈을 결정하기 전에 항의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항의를 촉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때로는 ‘충성심’이 그 역할을 한다. 외부에 대안이 있어도 충성도 높은 사람들은 곧바로 이탈하지 않고 먼저 항의를 통해 조직의 회복을 기하려 할 것이다. 즉 충성심은 항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할 법한 사람들을 조직 안에 붙잡아 두어서 조직이 항의를 통한 회복 역량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 이탈, 항의, 충성심은 모두 고관여 행위자의 행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무관심해서 이탈하지 않는 것은 충성심이 아니며 항의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견디는 종류의 충성심도 회복 기제로서의 충성심이 아니다. 퇴보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은 고관여 행위의 압력을 무력화해 김을 빼거나 저관여를 유도하려 할 것이다. 가령 독점 조직이 경쟁 조직의 진입을 용인해 골치 아픈 항의자의 이탈을 유도할 수도 있고, 정치 조직이 반대자에게 ‘선의의 내부 비판자’ 역할을 부여해, 항의를 조직의 한 켠에 순치된 형태로 제도화해 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탈과 항의의 상호작용은 ‘퇴보를 시정하려는 집단’과 ‘퇴보를 유지하려는 집단’의 세력 관계와 전략의 맥락에서도 살펴야 한다.


이 책은 ‘회복 가능한 퇴보’에 대해 조직의 회복력을 높일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언급했듯이, ‘보편 법칙’ 같은 해법은 없으며 각 상황은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구조적 요인’만 고려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이탈을 택하는가 항의를 택하는가는 구조적 요인만이 아니라 행위자가 목소리를 표출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한지, 항의의 목소리를 그 과정에서 창안되어 갈 제도들이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러한 가능성을 행위자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Photo by Tarik Haiga on Unsplash  >


그래서 허시먼은 항의보다 이탈이 더 강조되는 경향을 다시 한 번 지적한다. 경제학이 이탈 옵션에만 치중해 현실 적합성을 잃는 문제 외에,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항의의 유의미성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탈이 현 상태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구분’만을 필요로 한다면 항의는 ‘계속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예술’이다. 그런데 행위자의 인식에서 항의의 비용은 과대평가되고 항의의 잠재력(항의의 과정에서 현재의 장애물들을 창조적으로 극복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은 과소평가되기 쉽고, 따라서 “이탈 방식이라는 대안이 존재하는 경우 항의 방식의 발전은 위축되는 경향을 띠게 되며” 이는 다시 항의의 기술이 더 쇠락하고 사람들이 항의의 잠재력을 더 회의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허시먼은 출간 4년 뒤에 쓴 글(주4)에서 이 책은 ‘실증적인’ 연구서이기도 했지만 ‘규범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이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그렇지 않아 보일 때도 항의 옵션이 존재할 수 있고 생각보다 훨씬 강력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탈로 치우치려는 경향에 맞서) 항의의 옵션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적 인센티브를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국가이든 회복력 강한 조직이 되려면 항의의 기술이 쇠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익숙해지도록,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목소리가 없도록, 가능성의 이유를 보기보다 회의의 이유를 먼저 보게끔 냉소가 제도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끝>.


주1. ‘미국 경제학자’라는 표현은 다소 오도의 소지가 있다. 허시먼(1915~2012)은 독일 유대인 집안에서 오토 알베르트 히르슈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나치가 부상하자 프랑스로 피해 알베르 에르망이라는 프랑스인으로 행세하며 유대인의 탈출을 돕는 지하 활동을 하다가, 본인도 리투아니아 (가짜) 여권을 가지고 미국으로 탈출해 앨버트 O. 허시먼이 되었다. 누이들과 어머니는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아내 새러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가족이 러시아를 탈출해 프랑스로,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꽤 나중까지 허시먼 부부는 집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했다(제레미 애덜먼, 󰡔앨버트 허시먼󰡕, 부키, 2020). 또한 미국 학계에서 허시먼은 경제학과에 소속된 교수였지만 결코 경제학과에‘만’ 소속된 학자는 아니었다. 이 책도 ‘경제학 책’이라기보다 ‘경제학-정치학-사회심리학’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적용 범위가 넓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연구 대상에 접근하기 위해 허시먼이 제시한 분석 틀 자체가 경제학, 정치학, 사회심리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레미 애덜만에 따르면 허시먼은 1960년대 말에 안식년을 스탠퍼드 대학 행동과학센터에서 보냈는데 이때 다양한 사회심리학 연구들을 접했다(같은 책).


주2. 이 책의 부제목이기도 하다.


주3. 어차피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지 못하니 항의는 압력이 되지 못한다.


주4. Hirschman, Albert O. 1974. "Exit, Voice, and Loyalty: Further Reflections and a Survey of Recent Contributions,” Social Science Information 1: 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