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좌파 정당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는가? | 『좌파의 변신: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저자 스테파니 L. 머지 인터뷰

김지현(정치발전소 번역모임)
2019-12-30
조회수 4292

한국 정당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민주당은 여전히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인가? 정의당은 노동하는 사람들을 잘 대표하고 있는가? 누가 봐도 부유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도 계속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가?

한국 정치를 바라보며 이런 질문들로 고민하던 차에 서구 좌파 정당이 어떻게 전통적인 자기 지지층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규명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 정당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번역해 볼까 생각했지만, 6백 쪽에 육박하는 분량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신 책의 핵심 내용을 담은 인터뷰를 번역해 소개한다.

한국 정당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민주당은 여전히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인가? 정의당은 노동하는 사람들을 잘 대표하고 있는가? 누가 봐도 부유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도 계속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가?

한국 정치를 바라보며 이런 질문들로 고민하던 차에 서구 좌파 정당이 어떻게 전통적인 자기 지지층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규명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 정당정치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번역해 볼까 생각했지만, 6백 쪽에 육박하는 분량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신 책의 핵심 내용을 담은 인터뷰를 번역해 소개한다.

저자 스테파니 머지(Stephanie L. Mudge)는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분교의 사회학과 교수이며, 좌파의 변신: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Leftism Reinvented: Western Parties from Socialism to Neoliberalism)는 그의 박사논문을 수정·보완해 출간한 책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체이스 버그레이브는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에서 영어와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자 정치 조직가이다.


*** 


서구 좌파 정당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는가?
『좌파의 변신: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저자 스테파니 L. 머지 인터뷰

인터뷰한 사람_체이스 버그레이브(Chase Burghgrave)


197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 정당들은 자유 시장, 민영화, 금융화 정책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보통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이 정치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자유를 약속했지만 기록적인 경제 불평등과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흔히 레이건이나 대처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세력의 승리를 지목한다. 그러나 사회학자 스테파니 L. 머지의 책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8년에 출간된 좌파의 변신: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에서 머지는 지난 세기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좌파 정당들을 살펴보며 당내 전문가들이 어떻게 좌파 정당으로 하여금 스핀 닥터(spin doctors)나 시장에 관심을 돌리도록 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좌파 정당은 노동계급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평범한 시민들은 권력의 장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정치 조직가 체이스 버그레이브가 이 책을 두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좀 더 역동적이고 평등한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머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핀(spin)
정치적 목적에 맞게 현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조작하는 활동. 일종의 정치 홍보 활동으로, 특정 사건에 대해 편향된 해석을 제공하거나 특정 조직이나 인물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전통적인 홍보·광고 사업에서도 사실의 이미지나 의미를 바꾸긴 하지만, 스핀은 부정직하고 기만적이며 고도로 조작적인 전술이 주를 이룬다. 스핀 닥터는 이와 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


Q. 
책 초반부에 좌파가 지난 세기 동안 실제로 두 번의 변신, 즉 사회주의에서 케인스주의로,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노선을 바꾸었다고 언급했다. 좌파 내부에서 일어난 두 번의 변화 모두를 짚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A. 
간단히 답하면, 첫 번째 변화 없이는 두 번째 변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게 답하자면, 사회주의, 내가 ‘경제학적 좌파’(economistic leftism)라고 부르는 케인스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허공에 떠다니는 정치 이념 같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제도적 틀에서 출현한 사상들이다.

케인스주의는 경제학계와 좌파 정당들 사이의 강력하고 전례 없이 새로운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이 관계는 1930~40년대 미국 민주당으로 하여금 케인스주의를 수용한 ‘좌파’ 정당으로 움직이게 했으며, 좌파 정당으로 하여금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이동하도록 이끈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두 사상 체계 모두 경제학계 주도로 정식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적 좌파나 신자유주의적 좌파가, 좌파 정당과 정치인들이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따른 결과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좌파 정당이 경제학계에 의존하게 되자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Q. 
책에서 네 개의 좌파 정당(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 스웨덴 사회민주당, 미국 민주당)을 비교했다. 이들 네 개 정당을 통해 좌파의 궤적을 탐구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게다가 미국 민주당은 한 번도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한 적이 없는데, 좌파가 사회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데 민주당을 포함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상당히 구체적인 역사적 이유가 있다. 먼저 20세기 동안 조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정당들을 다루고 싶었다. (독일 사민당의 경우는 조금 복잡한데, 나치 집권 시기에 정당 활동이 금지되면서 연속성이 잠시 끊겼지만 그 기간 동안 망명지에서 활동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포함했다.)


<사진 설명> 2019년 12월 초 열린 독일 사민당(SPD) 당대회. 출처_faz.net


또한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정당들을 포함하고 싶었다. 시기별로 다른데, 독일 사민당은 최초의 좌파 정당이자 1875년 창당 당시 대중 정당의 면모를 갖춘 가장 강력한 정당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포함해야 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그 이후 서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민주당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국 노동당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하면서 중요한 정당으로 부상했고 1990년대 ‘제3의 길’(third way) 정치의 국제화를 견인한 주역이었기 때문에 포함했다.

미국 민주당은 미국과 유럽의 역사가 매우 달라서 좀 까다로운 면이 있다. 미국 민주당은 관점에 따라 대중 정당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회주의 정당이나 이념 정당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1937년 불황기를 전후로 민주당을 선도했던 이른바 리버럴(liberal) 내지 뉴딜파(new deal faction) 세력이 케인스주의를 수용하면서 사민당이나 노동당과 비견할 만한 정당이 되었기 때문에 포함했다. 이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1990년대 민주당은 유럽 등지에 제3의 길 정치를 수출한 주요 전파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도 다른 좌파 정당과 함께 다룰 필요가 있었다.


대중 정당(mass party)
19세기 후반, 투표권 확대 과정에서 다수 대중의 정치 참여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건설된 정당. 투표권 확대 이전 소수의 지지에 의존하며 개별 의원들의 명성・지위・재산에 의존한 명사 정당과 달리, 대중 정당은 수의 힘에 의존한 조직 운영과 재정 관리, 교육 활동과 선거운동으로 노동자 계급과 중하층 서민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고자 했다. 대중 정당의 전형은 독일 사민당을 비롯한 유럽 좌파 정당으로 알려져 있으나, 미국 정당들 또한 건국 직후부터 급속한 투표권 확대 과정을 거치며 위와 같은 대중 정당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Q. 
좌파의 변화에 대한 분석의 중심에는 정당과, 당신이 ‘정당 전문가’(party experts)라고 부른 사람들이 있다. 지난 세기 서구 좌파의 궤적을 설명하는 데 정당 전문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우선 정의부터 해보자. 나는 ‘정당 전문가’를 매우 폭넓은 범위로 이해한다. 이들은 당내 혹은 당 주변에서 전략가, 연설문 작성가, 분석가로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즉 상황을 분석하고, 상황에 대한 정당과 정부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식 교육을 이수했는지 여부나 자격증・직책・직위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그들이 당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있다. 그러므로 정당 전문가는 컨설턴트든 언론인이든 경제학자든 정치인이든,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정당 전문가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민주주의 정치에서 논의되는 담론들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치와 관련된 것이고 표를 던질 만한 사안인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정당 전문가가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책에서 나는 좌파 정치의 경우 정당 전문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좌파 정당은 가난하고 힘없고 투표권조차 없는 사람들, 즉 정치 참여를 용이하게 해주는 시간・돈・인맥 등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의 진정한 대표자임을 표방해 왔기에 그들의 역할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좌파 정당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셈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책무이다.


Q. 
초기 좌파 정당 전문가들의 다수가 사회주의 모임이나 클럽, 좌파 신문이나 저널 출신이라고 밝힌 점이 놀라웠다. 이러한 배경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

A. 
맞다.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특히 더 놀랄 만한 일이다. 오늘날의 정치는 전문가들, 이를테면 컨설턴트, 전략가, 싱크 탱크 소속 정책 전문가, 논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는 언론인이나 신문 기자들이 가장 중요한 정당 전문가였다. 특히 좌파 정당에서 그랬다. 책에서 나는 이들을 ‘정당 이론가’(party theoreticians)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대개 당의 지원을 받는 저널이나 신문사에서 글을 쓰거나 편집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기 생계를 정당에 의존했다고 볼 수 있다.

정당 이론가들이 중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 언론인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가장 중요한 초기 사회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 다수도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이 시기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분석적 출발점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그들의 기원(그들이 어떻게 정당 전문가가 되었는지)과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즉 이후 그들이 왜 쇠락해서 지금 우리가 그런 인물들을 발견하는 데 놀라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정당 이론가들이 정당에 의존한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시각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다.

언론인들이 정치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이론이 상당 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중요한 논의의 근간이 될 수 있었을까. 마르크스 자신도 대학원 교육까지 받았지만, 언론인으로서 글을 쓴 경우가 많았다. 1800년대 중후반, 언론인들의 삶을 특징짓는 동지애, 협업, 교차 비판, 정치 참여가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상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이론이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 조류 중 하나라는 데 동의한다면, 정당에 의지하거나 정당과 관련된 언론인들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식인들에 속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와 관련해 정당 이론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거 언론인들이 가졌던 큰 영향력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놀랍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전문가’(experts)나 ‘전문 지식’(expertise)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으로 변해 왔고 정치적으로 정의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 교훈이 있다. 현대 정당들은 자격증・학력・기술 혹은 전문직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 전문가를 조직할(어떤 의미에서는 ‘육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 정당은 특정 종류의 기술, 지식 유형, 의사소통 방식을 공인할 수 있다. 물론 이를 배제하거나 주변화시킬 수도 있다.

좌파 정당이라면 이런 능력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 토론장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전문가・전략가・논객은 넘쳐 나는 반면, 화려한 스펙이 없더라도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경험해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좌파 정당이 정당 전문가를 육성할 자기 능력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좀 더 포용적이고 대표성 있는 정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Q. 
좌파 정당과 경제학계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A. 
책에서 나는 대공황과 전쟁 시기를 거치며 주류 경제학계와 좌파 정당 사이에 새로운 ‘상호의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큰 경제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경제적 사실들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당시에는 아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된 경제 통계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테면 실업의 규모와 원인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는 전문가들에 대한 정치적 수요가 매우 많았다.

또 다른 원인은 경제학 내에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규모도 작고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던) 경제학계는 빈곤, 노사 관계, 소득분배, 실업 같은 문제에 관심 있는 다수의 새로운 학생들을 끌어들였지만, 많은 경우 이 학생들은 경제학 교수들이 그런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일종의 세대 반란을 촉발시켰고, 새로운 종류의 경제학자들이 등장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 이유는 좌파 정당들이 서유럽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의 인물들을 충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당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선 운동과 함께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로 널리 알려진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이런 종류의 충원이 시작되었다.

브레인 트러스트
선거 후보나 공직자의 측근으로 정책이나 전략 등을 자문해 주는 전문가 집단. 공식적인 직책보다 개인적인 친분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특징이 있다. 이 말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책 자문을 위해 전문가 집단을 규합한 데서 처음 사용되었다. 루스벨트의 브레인 트러스트는 주로 법학 및 경제학 교수들로 구성되었으며, 뉴딜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요컨대 1920~30년대 좌파 정치의 관심사를 다루는 기술적으로 유능한 경제학자들이 만들어지던 바로 그 시기에 서구 좌파 정당들은 대학 및 경제학계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 효과는 엄청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호의존 관계를 통해 ‘케인스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관계가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정설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이 상호의존 관계는 좌파 정당들의 연합 구성, 선거 승리, 전후 경제 운용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는 좌파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은밀한 창구, 즉 정당보다는 경제학계를 활용하는 창구를 만들어 냈다.


Q.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 이론가들을 대체한 정당 전문가들은 당신이 ‘케인스주의 윤리’(Keynesian ethics)라고 말한 것을 갖고 있었다. 케인스주의 윤리란 무엇이며, 어디서 나온 것인가?

A. 
‘케인스주의 윤리’란 1960년대 좌파 정당의 주요 경제 전문가, 즉 내가 ‘경제학 이론가’(economist theoreticians)라고 말한 사람들이 경제학자와 정치, 그리고 양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케인스주의 윤리의 특징은 경제학자가 전략적으로 유용한 분석과 조언, 이를테면 좌파 정당이 연합을 형성하고, 조직 노동의 요구에 대처하며, 협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돕고, 재분배와 복지 정책을 뒷받침하며, 폭넓은 대중에 호소할 수 있는 조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좋은’ 경제학적 조언은 정치적으로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케인스주의 윤리는 경제학 이론가들이 처한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한쪽 발은 좌파 정당에, 다른 쪽 발은 경제학계에 두고 있었다. 달리 말해, 케인스주의 윤리는 뛰어난 경제학자인 ‘동시에’ 정치 전략가, 조언가, 임명직 공직자로서 활약했던 그들의 실제 경험을 담고 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케인스주의 윤리란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Q. 
1970년대, 학문으로서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위기에 빠지자 케인스주의 경제학 이론가들도 좌파 정당에서 물러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어떤 종류의 정당 전문가들이 그들을 대체했는가?

A. 
보통은 ‘스태그플레이션’, 즉 1960~70년대 실업률과 물가의 동시 상승이 통화주의 (특히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 이론을 입증하면서 케인스주의를 죽였다고들 말한다. 그렇게 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가 엉터리 이론이고,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도 엉터리 학자임을 증명하는 근거로 자리 잡았다.

통화주의(Monetarism)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대표로 하는 시카고학파의 경제 이론. 기본 입장은 자본주의적 시장기구의 자유 경쟁 원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케인스가 자유방임주의의 종언을 고하고 정부의 직접 개입을 제안한 데 반하여, 프리드먼은 정부 활동을,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을 유지하거나 시장이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만 국한시키고 나머지는 시장 경쟁의 원리에 맡겨 두면 시장 자체의 자동 조절 기능에 의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통화주의라는 명칭은 시장 경쟁을 위해 화폐 가치를 중시하며, 통화정책은 정책 당국의 자유재량이 아니라 엄격한 준칙을 따라야 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경제적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예를 들어, 기름 값이 갑자기 치솟으면, 기름 값이 올랐다는 사실을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해석에는 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책에서 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를 죽였다”는 서술은 그런 주장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때로는 정치적이고, 때로는 전문가적이며, 때로는 둘 다를 포함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관한 주장은 과학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 가운데 1970년대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죽었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대학 교수, 금융 전문가, 국제경제 전문가, 그리고 보수나 중도 보수 정당과 관련된 경제 이론가들이었다. 달리 말해, 그들은 좌파 정당과 관련된 경제학 이론가들이 아니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를 죽였다”는 서술에도 전문가적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정치에 관여하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상아탑’의 비판이었고, 따라서 충분히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그 주장이 확실하게 승리했고, ‘케인스주의 윤리’를 종식시킴으로써 경제학계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런 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좌파 정당은 누구에게 시선을 돌렸을까?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경제 전문가들, 세상과 정치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전문가들에게 의지했다. 책에서 나는 이 새로운 종류의 경제 전문가들을 ‘초국적 금융 지향 경제 전문가들’(Transnational, Finance-oriented Economists/이하 TFE)이라고 불렀다. 나는 TFE가 ‘신자유주의자’(neoliberals)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윤리’(neoliberal ethics)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기 소임이 (구체적으로 금융시장을 일컫기도 하는) 시장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록 그것이 좌파 정당 지지자들, 나아가 좌파 정당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것이라도 말이다.


Q. 
우파의 정치적 승리보다 좌파 정당의 신자유주의 수용이 신자유주의의 성장을 더 잘 설명한다고 보는가?

A. 
그렇다. 우파 정당은 힘없는 자들을 대표하거나 시장의 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체 한 적이 없다. 1980년대 우파가 자유 시장을 수용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거 결과의 관점에서 실제로 대중적 흐름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전체적으로 정치적 소외가 심화되고 투표율도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좌파 정당은 시장 논리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에 그들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이는 선거적 측면으로나 문화적 측면으로나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선거적 측면에서는 ‘세계화의 패배자들’(losers of globalization)이라 부를 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을 잃어버렸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비판이 주변화되었으며, 일부 ‘극렬’ 좌파의 주장으로 치부되었다.


Q. 
당신은 책에서 TFE와 좌파 정당 전략가, 정책 전문가의 성장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고 썼다. 왜 그런가?

A. 
TFE는 시장이 ‘저 너머’(out there)에 있는 힘-칼 폴라니가 달성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했던 자기 조절적 시장체제-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좌파 정당의 조언가들이었다. 그들은 시장이 바라는 일을 찾는 데 전문성을 갖고 있었고, 시장이 주도하는 성장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첫째, 시장, 특히 금융시장은 경제 참가자들이 그것을 만들고, 공공이나 정부의 감독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그것이 실패할 경우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때에만 ‘저 너머의 힘’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서구 좌파 정당들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TFE의 도움을 받으며 정확히 이런 사고방식하에서 시장을 위해 일했다. 둘째, 시장에 좋은 것이 가족, 지역사회, 청년, 노인, 임금노동자 또는 차별의 희생자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이 금융시장을 뜻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역사는 이들 두 가지 주장 모두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좌파 정당이, 지지자들의 경제적 관심 사안에 응답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도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할 때,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답은 스핀(spin)이었다. 그들은 정책의 내용보다 마케팅으로 지지를 얻고자 했다. 이는 내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일종의 기능주의적 주장이다. TFE는 지지자 대신 시장을 대표했고, 스핀으로 대표되는 전략적 전문 지식에 대한 새로운 필요를 창출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고, 좌파의 정치 연합은 해체되고 말았다.


Q. 
좌파 정당 내 TFE와 전략가들로 구성된 신세대 정당 전문가들이 선거를 주도했을 때 그 결과는 어땠는가?

A. 
한마디로 참담했다. 좌파 정치는 가상의 이념형적 ‘주류’(mainstream)나 ‘중위수’(median) 투표자가 아니라 현실 속의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좌파 정당이 시장・스핀・전략에 의존한 것은 지지자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본연의 의미에서 대표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유권자들은 마케팅과 내용물의 차이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 경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인다. 최근 역사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사진 설명>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당수. 영국 노동당은 최근 끝난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배했다. 출처_위키미디어


Q. 
당신은 책의 결론에서 서구 좌파 정당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좌파 정당과 그들이 대표해야 할 이들 사이의 중재자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 전문가들이라고 말한 것 같다. 기존의 TFE, 정치 전략가, 정책 전문가를 대체하는 정당 전문가는 어떤 사람들이어야 할까?

A. 
매우 큰 질문이다. 짧게 답하자면, 좌파 정치는 스핀을 필요 없게 만드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한다. 좌파 정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요구와 우려에 응답해야 하므로 직관적인 호소력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더라도 새로운 전문가가 좌파 정치의 병폐를 단번에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다음 좌파 정당 전문가는 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누구나 정당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좌파 정당은 우리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크게 넓혀 장기전을 치르는 데 자기 자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도 하고 싶다. 현대 금융 자본주의의 구조와 논리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은 좌파 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민주주의는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에 마르크스주의적 포인트를 주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1930년대나 1970년대 상황과 다른 오늘날의 구체적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지 않고 좌파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금융과 금융 자산 소유자들이 지배하는 복잡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세상의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현재의 경제 전문가들이 좌파 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높은 곳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용이 아니라 배제에 적합한 고도로 전문화된 언어를 구사하는 데, 이는 보통 사람들을 포용하기보다 배제하기 쉽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종류와 그런 질문에 답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앞에서 했던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좌파 정당은 비판적인 경제 분석을 함양하고 우리가 ‘경제학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데 자기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끝>

(번역: 김지현 with 정치발전소 번역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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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번역 모임

정치발전소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꾸린 정치 텍스트 번역 모임. ‘정치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고, 다른 나라 정치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청년 네 명이 모였다. 주로 해외 기사, 칼럼, 인터뷰, 소논문을 읽고 번역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와 비교해 봄으로써, 한국 정치를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개선해 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외의 좋은 글들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좋은 번역을 향한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노고를 통해 나온 번역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고 나아갈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