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
생존과 가치를 지킬 골든타임
이현민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최근 불어 닥친 한파 때문일까? 기후 위기라는 말이 자주 일상에 오르내린다. 이제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과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난 몇 년 간의 팬데믹 상황을 지나왔고,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 기후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재난 상황을 목격하며 기후 위기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 신호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인류의 대응 속도는 느리다 못해 느긋하고, 나이브해 보인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세계 여러 나라의 조치와 국제적 회의 및 협약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만, 대응의 구체성은 체감되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발자취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 해결과 소위 경제발전을 통한 성장과 부의 축적을 목표로 내달려왔다면, 그 관성이 쉬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되려 아이러니일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간 혹은 한 국가 내 산업을 둘러싼 악다구니 같은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며, 새로운 전환을 열어야 하는 것이 결코 만만찮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다가온 아니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버린 문제를 관성과 어려움을 핑계로 외면하거나 지체하기엔 그 시급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기후 우울증’에 빠졌다는 사람도, ‘기후 파시스트’라 불리 운다 한들 문제 해결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도, 쉬이 냉소하거나, 마냥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는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히 통렬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는 독일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세계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재단의 공동 설립자이며 하노버의 정치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디르크 로스만이 쓴 환경 소설이다. 소설은 기후 위기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자 그동안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던 미국, 러시아, 중국이 환경 동맹을 맺고, 탄소 중립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픽션을 가미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2025년, 인류의 위기 앞에선 G3 국가(미국, 러시아, 중국) 들은 위기 대응 협력을 위한 기후 동맹을 맺고 세 나라 간 패권을 위한 싸움의 종식과 핵무기 및 군비 감축 등을 합의한다. 또한 유엔(UN)과 나토(NATO)등의 탈퇴와 함께 세계 다른 국가들에도 기후 동맹의 강령을 준수할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이를 어길 시 군사적 제재 등을 포함한 강력한 통제 수칙을 발표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G3 강대국들의 조치는 평범한 일상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평화나 모든 국가의 간섭받지 않을 권리 등의 제약을 의미하기에, 곳곳에서 거부의 목소리와 저항을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자유롭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가난한 나라, 일부 개발도상국 그리고 기존 체제의 유지를 통해 이익을 바라는 사람 들이 각자의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소설은 여기에 세계 전쟁 음모와 이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투를 통해 스토리의 긴장감을 입힌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그리고 빌 게이츠와 같은 실존 인물 들을 등장시켜 소설의 사실성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소설을 통한 저자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 같은 강대국 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경쟁을 멈추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자연 앞에 더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저자의 의도대로 소설에 이끌려 가다 보면(비록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의식 흐름에 흠칫 놀라는 경험과 함께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이야 더 말하면 입이 아픈 얘기지만, 일부 강대국들에 의해 한 국가나 사회의 자주성 혹은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침해된다면? 민주주의와 인간의 자유가 억압된다면? 그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일종의 국제적, 정치적 ‘파시즘’과 같은 조치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 생존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앞에 두고 한가한 고민일 수 있다. 나 또한 개개인의 일상과 인류 전체 삶의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함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런 변화는 결국 소설 속 극단적 설정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강제와 억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보며 역설적으로 현실 변화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환경운동가 들의 고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우리의 대응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가 현재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들(이를테면 자유, 민주주의, 평화 등)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점점 커진다는 것. 그러니 작금의 기후 위기 대응은 개인의 자유를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생존을 이어 나갈 수 있을 때 말이다. <끝>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
생존과 가치를 지킬 골든타임
이현민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최근 불어 닥친 한파 때문일까? 기후 위기라는 말이 자주 일상에 오르내린다. 이제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과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난 몇 년 간의 팬데믹 상황을 지나왔고,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 기후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재난 상황을 목격하며 기후 위기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 신호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인류의 대응 속도는 느리다 못해 느긋하고, 나이브해 보인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세계 여러 나라의 조치와 국제적 회의 및 협약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만, 대응의 구체성은 체감되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발자취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 해결과 소위 경제발전을 통한 성장과 부의 축적을 목표로 내달려왔다면, 그 관성이 쉬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되려 아이러니일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간 혹은 한 국가 내 산업을 둘러싼 악다구니 같은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며, 새로운 전환을 열어야 하는 것이 결코 만만찮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다가온 아니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버린 문제를 관성과 어려움을 핑계로 외면하거나 지체하기엔 그 시급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기후 우울증’에 빠졌다는 사람도, ‘기후 파시스트’라 불리 운다 한들 문제 해결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도, 쉬이 냉소하거나, 마냥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는 기후 위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히 통렬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문어의 아홉 번째 다리』는 독일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세계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재단의 공동 설립자이며 하노버의 정치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디르크 로스만이 쓴 환경 소설이다. 소설은 기후 위기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자 그동안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던 미국, 러시아, 중국이 환경 동맹을 맺고, 탄소 중립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픽션을 가미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2025년, 인류의 위기 앞에선 G3 국가(미국, 러시아, 중국) 들은 위기 대응 협력을 위한 기후 동맹을 맺고 세 나라 간 패권을 위한 싸움의 종식과 핵무기 및 군비 감축 등을 합의한다. 또한 유엔(UN)과 나토(NATO)등의 탈퇴와 함께 세계 다른 국가들에도 기후 동맹의 강령을 준수할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이를 어길 시 군사적 제재 등을 포함한 강력한 통제 수칙을 발표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G3 강대국들의 조치는 평범한 일상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평화나 모든 국가의 간섭받지 않을 권리 등의 제약을 의미하기에, 곳곳에서 거부의 목소리와 저항을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자유롭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가난한 나라, 일부 개발도상국 그리고 기존 체제의 유지를 통해 이익을 바라는 사람 들이 각자의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소설은 여기에 세계 전쟁 음모와 이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투를 통해 스토리의 긴장감을 입힌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그리고 빌 게이츠와 같은 실존 인물 들을 등장시켜 소설의 사실성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소설을 통한 저자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 같은 강대국 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경쟁을 멈추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자연 앞에 더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저자의 의도대로 소설에 이끌려 가다 보면(비록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의식 흐름에 흠칫 놀라는 경험과 함께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이야 더 말하면 입이 아픈 얘기지만, 일부 강대국들에 의해 한 국가나 사회의 자주성 혹은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침해된다면? 민주주의와 인간의 자유가 억압된다면? 그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일종의 국제적, 정치적 ‘파시즘’과 같은 조치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 생존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앞에 두고 한가한 고민일 수 있다. 나 또한 개개인의 일상과 인류 전체 삶의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함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런 변화는 결국 소설 속 극단적 설정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강제와 억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보며 역설적으로 현실 변화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환경운동가 들의 고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명한 건 우리의 대응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가 현재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들(이를테면 자유, 민주주의, 평화 등)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점점 커진다는 것. 그러니 작금의 기후 위기 대응은 개인의 자유를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생존을 이어 나갈 수 있을 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