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노동있는 자유주의(?)는 가능한가?-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대런 애쓰모글로우

공식 관리자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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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노동있는 자유주의(?)는 가능한가?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대런 애쓰모글로우 지음 /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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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최근 현대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분석 중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민주주의의 위기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보는 해석들이 많이 제기되었다. 물론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의 ‘패트릭 드닌’처럼 자유주의 스스로의 성공이 결국 오늘의 위기를 가져왔다면서 자유주의의 근간을 강력하게 공격하는 보수주의적 입장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처럼 다소 중도적 입장에서 ‘정체성 정치’가 민주주의와 가지는 친화성을 분석하고 여전히 자유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오늘 소개할 ‘대런 애쓰모글로우’의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앞선 비판들과는 또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거칠게 정리하면 프랜시스 후쿠야마보다 조금 더 진보적인 입장에서 서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면 20세기 중후반 영미의 자유주의 정치를 시대에 맞게 혁신시키려는 시도라는 인상도 든다. 


저자의 글쓰기는 이번에도 전작인 『좁은 회랑』이나 『권력과 진보』처럼 핵심적인 주장을 먼저 제기하고 그에 대한 근거들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딜레마를 다루면서 진보와 보수 양쪽의 극단적 경향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특이할 것은 비슷하게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정체성 정치’가 왜 출현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힘으로 작동하는지에 집중했다면 대런 애쓰모글로우는 ‘탈산업사회’의 도래, 알고리즘과 AI, 노동의 변화 등으로 대표되는 시대변화의 지점들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의 딜레마가 더 극명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결론에서는 자연스레 공동체에 대한 강조, 그리고 국민 공통의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점에서는 다시 후쿠야마와 만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자동화, 탈산업사회, 제조업의 축소 등이 어떻게 자유주의의 위기와 연결되었는가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매우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자유주의 위기를 다룬 책들과 차별성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이 한국사회에 가지는 의미 역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최근 5.18광주항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AI와 알고리즘, 소셜미디어가 자유주의와 충돌하는 지점들에 대한 부분도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과 조우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노동계층 자유주의’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노동있는 민주주의’라고 표현되던 것과의 차이점들에 대해서는 아직은 불분명하다. 이는 ‘노동있는 민주주의’가 노동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권리의 보장. 즉, voice가 보장되고 또 그것이 충분히 반영되는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최상위 대학졸업 후 고소득 일자리를 독점한 기득권 엘리트만이 아닌 평범한 노동계층이 주도하는 자유주의가 기능해야 ‘자유민주주의’가 안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 가까워 보인다. 저자는 나아가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친화적 AI의 개발, 공동체의 중요성, 이민문제에 대한 현명한 접근 등을 통해 자유주의가 처한 딜레마를 노동계층에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 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인 ‘노동계층 자유주의’의 핵심 분석 틀인 대졸자 노동시장에 대해서 한국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고민이다. 대런 애쓰모글로우는 미국의 대졸자 노동시장를 최상위 대졸자와 ‘대중대졸자’로 나누고 두 집단이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면서도 문화적으로는 비슷하다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대졸자를 최상위 대졸자, 대중대졸자, 하층대졸자 이렇게 분류하고 저자가 노동계층 자유주의의 한 축으로 고민하는 미국의 ‘고졸노동자’에 해당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하층대졸자’(주로 지방사립대 졸업자들)가 아닐까?라는 추측도 조심스레 해본다.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에서 자유주의를 배척하는 경향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 역사와 경험은 강하다보니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서 자유주의의 딜레마와 그로 인한 백래시가 더 빈번해지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날카로운 갈등이 사회에서 반복되며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는 결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서 세밀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자유주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이 책이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라는 의미는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일하는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한편 저자가 핵심적으로 비판하는 탈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한 노동계층의 위기라는 문제는 한국사회에 오히려 더 빠르고 깊게 작동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노동계층 자유주의’는 한국에서 ‘일하는 시민의 자유주의’로 재해석되어 리버럴적 경향의 정치세력에게도 꽤 괜찮은 대안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