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재발견>
학교가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착각 : 학교의 재발견
김남식,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이 사람이 사회에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학교가 없다고 생각해보면, 어떠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은 머리 아프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는 이러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구매’였던 것이다. 이 제도가 없다면 모든 부모는 자식들을 길러내는 데 자신들의 능력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렇다면 어떻게 될까? 전통에 의존하거나, 어머니들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부모의 학력수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 않을까? 학교가 아무리 못미더워도 국가가 세금으로 지식과 시민성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학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미국적인 맥락에서 사회불평등의 원인을 학교 내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학교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학교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취학 전 아동과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러한 교육을 바라보는 사회학자의 시선에 공감하면서, 학교의 본래 기능을 넘어서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중요한 불평등 완화 기능이 공감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저자도 지적한 일부 학교개혁주의자들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인식에서도 이러한 기대들이 학교에 대한 환상과 동시에 불신을 길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우리는 교사가 자신이 맡은 모든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돌보아주기를 원한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거나, 다양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더해 불평등함이 확대되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임무다. 우리는 학교가 공공성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까지 눈감아주자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내부의 문제들을 시정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옮긴이도 이후 저자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저자가 밝혔듯 이러한 개선 노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향한 막연하고 과도한 기대와 오해에 대한 반응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개혁 관련 여러 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면, 사회의 노동문제, 이를 기반으로 한 입시의 문제가 한참 꼬여 있는데 학교에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풀도록 기대를 하는 것은, 한 사람을 밧줄에 묶어놓고 문제를 풀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학교가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기본적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이런 맥락에서 교육과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독자마다 그 개혁의 방향성은 다를 수 있겠으나, 그 방향성과 관계없이 학교에만 불평등이나 사회문제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학교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릴 때도 이를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공감하고 싶다. 학교도 사회의 일부분이다. 사회의 각 부문과 연결되어 있으며, 학교는 그 부문들과 역동적으로 얽혀있다.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제대로 포착해낼 수 있을 때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교육과 불평등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 문제의식을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단순명료한 해결책은 명확한 가이드를 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가릴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가령, 불평등문제의 원인을 학교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한 표적만을 설정하고 해결하자는 주장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 단순명료함 속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포착하고 나아가 그것만 해결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는지를 계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이 답답하고 어쩌면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어느 사회문제든 그 해결과정은 어느 하나를 탓하는 과정이기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들을 조합하고 적절히 실행하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끝>.
<학교의 재발견>
학교가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착각 : 학교의 재발견
김남식,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 이 사람이 사회에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학교가 없다고 생각해보면, 어떠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은 머리 아프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를 만들었다. 학교는 이러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구매’였던 것이다. 이 제도가 없다면 모든 부모는 자식들을 길러내는 데 자신들의 능력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렇다면 어떻게 될까? 전통에 의존하거나, 어머니들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부모의 학력수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지 않을까? 학교가 아무리 못미더워도 국가가 세금으로 지식과 시민성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학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미국적인 맥락에서 사회불평등의 원인을 학교 내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학교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학교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취학 전 아동과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러한 교육을 바라보는 사회학자의 시선에 공감하면서, 학교의 본래 기능을 넘어서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중요한 불평등 완화 기능이 공감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저자도 지적한 일부 학교개혁주의자들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인식에서도 이러한 기대들이 학교에 대한 환상과 동시에 불신을 길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우리는 교사가 자신이 맡은 모든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돌보아주기를 원한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거나, 다양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더해 불평등함이 확대되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임무다. 우리는 학교가 공공성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까지 눈감아주자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내부의 문제들을 시정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옮긴이도 이후 저자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저자가 밝혔듯 이러한 개선 노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향한 막연하고 과도한 기대와 오해에 대한 반응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개혁 관련 여러 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면, 사회의 노동문제, 이를 기반으로 한 입시의 문제가 한참 꼬여 있는데 학교에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풀도록 기대를 하는 것은, 한 사람을 밧줄에 묶어놓고 문제를 풀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학교가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기본적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이런 맥락에서 교육과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다. 독자마다 그 개혁의 방향성은 다를 수 있겠으나, 그 방향성과 관계없이 학교에만 불평등이나 사회문제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학교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릴 때도 이를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공감하고 싶다. 학교도 사회의 일부분이다. 사회의 각 부문과 연결되어 있으며, 학교는 그 부문들과 역동적으로 얽혀있다.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제대로 포착해낼 수 있을 때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교육과 불평등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 문제의식을 확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단순명료한 해결책은 명확한 가이드를 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가릴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가령, 불평등문제의 원인을 학교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한 표적만을 설정하고 해결하자는 주장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 단순명료함 속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포착하고 나아가 그것만 해결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는지를 계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이 답답하고 어쩌면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어느 사회문제든 그 해결과정은 어느 하나를 탓하는 과정이기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들을 조합하고 적절히 실행하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