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외전>
산업, 변화 그리고 사람
강은주 (사)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
추억을 되새기는 나이라 하기엔 쑥스럽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빠르게 변했다. 그런 날 들이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홍콩 무협영화를 빌려보고, 부모의 LP와 턴테이블을 신기해하던 10대가 있었고, 단성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종로의 20대가 있었다. 서태지 신곡 발표를 목 빠지게 기다리며 티비 앞에 앉아 있었고,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 테이프를 만들었고, 일본 패션 잡지와 만화책을 돌려봤다. 그 시절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보던 우리는 ‘왜색 폭력 문화에 길든 10대’였다. 이제는 종류별로 OTT를 구독하고, 유튜브에서 아이돌의 안무 연습 영상을 찾아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으로 스몰토크를 나누는 40대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있다)
문화가 문화산업이 되고, 그 문화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기까지의 시간 들을 돌이키는 <한류외전>은 ‘그래 맞아, 그때 그랬어’ 혹은 ‘세상에, 이런 사정이 있었던 거야?’라는 말과 함께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빌보드에서 한국 가수가 1위를 했다는 뉴스가 들려온 것 같은 이들에게 기실 그것이 ‘갑자기’가 아니라고 설명해주는 <한류외전>은 매 책장마다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다.
이제 연예인들은 수출 산업역군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한류외전>은 그 ‘신기한 일’의 과거를 따라간다. 한류는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했는가. 30년 시간 동안의 촘촘한 기록들은 산업사의 기록으로 손색이 없다.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부제처럼 정부의 정책이 성공의 비결이 아님을, 누군가 설계하고 주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때로는 한국의 금융실명제가, 대만의 민주화가, 미국의 무역적자가 이 한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결정적 장면’들을 따라가는 일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그 어떤 순간에 운명처럼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고, 우연들이 겹치고, 정책의 방향이 결정되면서 여기까지 왔다니 한류는 이제 더욱 신기한 일이 되어버렸다.
티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 위성방송을 봤다는 방송국 피디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던 시절, 일본의 어떤 드라마, 어떤 음악에 대한 표절 개념조차 투미하던 시절을 지나 ‘K’라는 브랜드를 달았다. 산업의 명멸은 산업 내부의 요인들 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외부의 정치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는 것.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그리고 다른 산업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수많은 산업들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또 사라져갔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한국의 영화, 음악, 드라마가 ‘한류’ 혹은 ‘케이’라는 이름으로 달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질문이 이어지니 장면들이 더 새롭고 흥미롭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의 문화를 모방하고 혼합하여 성장하는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게 그 지위를 넘겨주지는 않을까. 그때도 또 기민하게 몸을 바꾸며 적응하고 선도할 수 있을까.
문화 ‘산업’의 역사를 따라가다 <한류외전>은 한류 문화 콘텐츠의 ‘저렴한 제작비’ 아래 낮은 인건비를 말한다. 사실 책장을 넘기며 내내 궁금했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말이다. 영화, 드라마, 게임, K팝. 모두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수출산업이라 말하지만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화면 뒤에는 사람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30년간의 변화와 노력, 운, 정책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영화산업에 관한 표준근로계약서’는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권고안으로 처음 시작되어 2013년 처음 활용되기 시작했다. 방송콘텐츠(드라마제작) 제작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는 우여곡절 끝에 2019년 만들어지기는 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고시로 제정된 각종 표준계약서들의 시기를 보면, 방송분야 표준계약서는 2021년,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는 2019년 제정되었다. 대중문화예술인(가수, 연기자) 표준 전속계약서는 2018년, 애니메이션 분야 표준계약서는 2019년, 만화 분야는 2021년, 대중문화예술인 방송출연 표준계약서는 2021년이다.
소비자, 즉 팬들도 갑질문제, 동물학대 장면, 스태프 노동착취 등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리적 소비’는 문화산업에도 적용된다. 언제부턴가 영상 속에는 안내 문구가 삽입되었다. 아동노동, 동물권에 관한 내용이다. 안내 문구는 해당 작품의 제작 과정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동물을 학대하며 만들지는 않는지 알리는 내용이다. 즉, 윤리적으로 생산된 작품임을 알리는 것이다. 산업이 생산해내는 생산물에 대한 윤리적 기준은 하나씩 증가해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티비에는 흡연 장면이 방송되지 못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불이 없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담배를 태우지 못한다. 이는 산업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그 영향력에 대한 책무라고 할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말이에요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반컵의 물을 남겨 세수를 하고,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를 거울로 보며 면도도 했구요. 그리고 살아남았어요.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건 생존의 문제인거에요. 솔로로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요?
최근 방송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연애도 전략이라는 연애 코치인 여성 캐릭터는 외모를 가꾸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예로 든 대사였는데, 이 대사는 외국 ‘한드’팬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되었다. 외국 팬들은 작가가 이런 대사를 썼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매우 무례하며, 충격적이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한국 제작진의 사과가 있었다
이 일은 한국 드라마(혹은 한류 콘텐츠)가 조심스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편적 사례이다. 한국 드라마의 장면들은 이미 해외에서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한국어 욕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콘텐츠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대한 고민은 산업의 성장만큼 이루어지고 있는가.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저자의 말대로 ‘혐오와 애국주의를 넘어’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것이 혹시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적 책임은 아닐까. 비한국어권에서 ‘오빠’가 고유명사가 되고, ‘한본어’가 유행하고, ‘하지마’가 쿨하게 일상에서 쓰이는 만큼은 말이다. 더불어 그 사회적 책무와 윤리적 생산에 ‘환경’도 포함되면 좋겠다. 탄소를 감축하는 일, 녹색 생산과 녹색 소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드라마 팬은 일회용 커피 컵을 들고 거리를 걷는 쿨한 등장인물이 조금 불편하다. <끝>.
<한류외전>
산업, 변화 그리고 사람
강은주 (사)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
추억을 되새기는 나이라 하기엔 쑥스럽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빠르게 변했다. 그런 날 들이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홍콩 무협영화를 빌려보고, 부모의 LP와 턴테이블을 신기해하던 10대가 있었고, 단성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종로의 20대가 있었다. 서태지 신곡 발표를 목 빠지게 기다리며 티비 앞에 앉아 있었고,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녹음 테이프를 만들었고, 일본 패션 잡지와 만화책을 돌려봤다. 그 시절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보던 우리는 ‘왜색 폭력 문화에 길든 10대’였다. 이제는 종류별로 OTT를 구독하고, 유튜브에서 아이돌의 안무 연습 영상을 찾아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으로 스몰토크를 나누는 40대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있다)
문화가 문화산업이 되고, 그 문화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기까지의 시간 들을 돌이키는 <한류외전>은 ‘그래 맞아, 그때 그랬어’ 혹은 ‘세상에, 이런 사정이 있었던 거야?’라는 말과 함께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빌보드에서 한국 가수가 1위를 했다는 뉴스가 들려온 것 같은 이들에게 기실 그것이 ‘갑자기’가 아니라고 설명해주는 <한류외전>은 매 책장마다 추억을 곱씹게 만들었다.
이제 연예인들은 수출 산업역군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한류외전>은 그 ‘신기한 일’의 과거를 따라간다. 한류는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했는가. 30년 시간 동안의 촘촘한 기록들은 산업사의 기록으로 손색이 없다.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부제처럼 정부의 정책이 성공의 비결이 아님을, 누군가 설계하고 주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때로는 한국의 금융실명제가, 대만의 민주화가, 미국의 무역적자가 이 한류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설명해주는 ‘결정적 장면’들을 따라가는 일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그 어떤 순간에 운명처럼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고, 우연들이 겹치고, 정책의 방향이 결정되면서 여기까지 왔다니 한류는 이제 더욱 신기한 일이 되어버렸다.
티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 위성방송을 봤다는 방송국 피디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던 시절, 일본의 어떤 드라마, 어떤 음악에 대한 표절 개념조차 투미하던 시절을 지나 ‘K’라는 브랜드를 달았다. 산업의 명멸은 산업 내부의 요인들 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외부의 정치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는 것.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그리고 다른 산업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수많은 산업들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또 사라져갔겠구나.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한국의 영화, 음악, 드라마가 ‘한류’ 혹은 ‘케이’라는 이름으로 달고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질문이 이어지니 장면들이 더 새롭고 흥미롭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의 문화를 모방하고 혼합하여 성장하는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게 그 지위를 넘겨주지는 않을까. 그때도 또 기민하게 몸을 바꾸며 적응하고 선도할 수 있을까.
문화 ‘산업’의 역사를 따라가다 <한류외전>은 한류 문화 콘텐츠의 ‘저렴한 제작비’ 아래 낮은 인건비를 말한다. 사실 책장을 넘기며 내내 궁금했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말이다. 영화, 드라마, 게임, K팝. 모두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수출산업이라 말하지만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화면 뒤에는 사람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30년간의 변화와 노력, 운, 정책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영화산업에 관한 표준근로계약서’는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권고안으로 처음 시작되어 2013년 처음 활용되기 시작했다. 방송콘텐츠(드라마제작) 제작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는 우여곡절 끝에 2019년 만들어지기는 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고시로 제정된 각종 표준계약서들의 시기를 보면, 방송분야 표준계약서는 2021년,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는 2019년 제정되었다. 대중문화예술인(가수, 연기자) 표준 전속계약서는 2018년, 애니메이션 분야 표준계약서는 2019년, 만화 분야는 2021년, 대중문화예술인 방송출연 표준계약서는 2021년이다.
소비자, 즉 팬들도 갑질문제, 동물학대 장면, 스태프 노동착취 등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리적 소비’는 문화산업에도 적용된다. 언제부턴가 영상 속에는 안내 문구가 삽입되었다. 아동노동, 동물권에 관한 내용이다. 안내 문구는 해당 작품의 제작 과정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동물을 학대하며 만들지는 않는지 알리는 내용이다. 즉, 윤리적으로 생산된 작품임을 알리는 것이다. 산업이 생산해내는 생산물에 대한 윤리적 기준은 하나씩 증가해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티비에는 흡연 장면이 방송되지 못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불이 없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담배를 태우지 못한다. 이는 산업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그 영향력에 대한 책무라고 할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말이에요 자신의 배설물 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반컵의 물을 남겨 세수를 하고,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를 거울로 보며 면도도 했구요. 그리고 살아남았어요.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건 생존의 문제인거에요. 솔로로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요?
최근 방송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연애도 전략이라는 연애 코치인 여성 캐릭터는 외모를 가꾸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예로 든 대사였는데, 이 대사는 외국 ‘한드’팬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되었다. 외국 팬들은 작가가 이런 대사를 썼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매우 무례하며, 충격적이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한국 제작진의 사과가 있었다
이 일은 한국 드라마(혹은 한류 콘텐츠)가 조심스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편적 사례이다. 한국 드라마의 장면들은 이미 해외에서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 한국어 욕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콘텐츠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대한 고민은 산업의 성장만큼 이루어지고 있는가.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저자의 말대로 ‘혐오와 애국주의를 넘어’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것이 혹시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적 책임은 아닐까. 비한국어권에서 ‘오빠’가 고유명사가 되고, ‘한본어’가 유행하고, ‘하지마’가 쿨하게 일상에서 쓰이는 만큼은 말이다. 더불어 그 사회적 책무와 윤리적 생산에 ‘환경’도 포함되면 좋겠다. 탄소를 감축하는 일, 녹색 생산과 녹색 소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드라마 팬은 일회용 커피 컵을 들고 거리를 걷는 쿨한 등장인물이 조금 불편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