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전쟁? 결국 시민의 힘에 달려 있다.
별샛별 / 외교·안보 뉴스레터 델타월딩 디렉터
탑건과 와호장룡으로 대변되던 미중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싸움의 전선도 응당 달라진다. 이제는 붉은 배터리와 푸른 반도체다. 전장의 범위가 무역에서 한층 넓어져 첨단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은 기술전쟁의 양상을 7가지 게임체인저로 분류한 후 구체적인 숫자로 풀이한다는 점이다. 지도만 그려지지 않았을 뿐, 짐작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 양국의 전세를 판단하기에 유용한 근거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들의 기술전쟁이 왜,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한번에 정리하고 싶다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그림은 이렇다. 전장의 최전선에는 반도체・인공지능AI・5G가 자리 잡고 있다. 5G는 중국,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미국이 앞서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그런데 어떤 전쟁이든 공격보다 방어를 해야 하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두 번째 전장이 수출통제와 글로벌 공급망 배제다.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국가들을 규합해 중국이 전선을 더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막아선다. 중국의 추격이 추월이 되지 못하도록, 그동안 미국이 구축한 동맹국의 힘을 빌려 ‘비대칭적 경쟁 전략’을 펼친다. 중국은 ‘속도전’으로 맞붙는다. 관문을 막는 속도보다 더 앞질러 성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강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배터리의 주 원료인 희토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비록 미국이 앞서지만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소재-배터리-전기차 생태계를 구현할 토양이 구축되어 있다. 원료의 무기화를 히든카드로 던지며 중국은 세 번째 전장을 형성한다.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맞서지만 2020년 기준, 미국의 국가별 배터리 수입 비중은 단연코 중국이 1위, 43.4%다.
하지만 미국 역시 만만치 않은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다. 어떤 국가도 달러 없이 무역과 금융시장에 뛰어들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는 국가들에게 각종 경제・금융제재로 응징했고 바로 이 지짐에서 네 번째 전장이 형성된다. 다만 그동안의 제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으며, 중국의 시장 규모가 과거 불량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그 승패를 가늠하긴 어렵다. 오히려 중국이 금융 디지털화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면서 ‘디지털 위안화’로 달러 패권 체제를 뒤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렇게 물러설 미국이 아니다. 문을 막지 못한다면 판을 뒤흔들어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국의 디지털 경제가 가능한 생태계를 차단하는 다섯 번째 전장을 준비한다. 즉, 네트워크전이다. 사이버 전쟁은 국가의 전통적 영역인 군사・안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상대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해킹이나 금융기관과 석유・전력・통신 등 핵심 기반시설을 교란・공격하는 것만이 아니라 통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인 우주 패권전으로까지도 이어진다. 더 큰 위험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마저 뒤흔든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심리전은 섬광이 번쩍이는 물리적 침공이나 파괴 없이도 사회를 빠른 속도로 혼란에 빠트리며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흐려 버린다.
이제 칼날은 ‘진짜’ 군사무기로 향한다. 할 수 있는 경쟁을 모두 소환하며 끝없는 창과 방패의 무한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전장이자 수순은 경제와 기술 생태계의 분리, ‘디커플링’이다. 다만 모든 것을 분리하는 건 불가능한 상상이다. 미중 양국은 상호 경제의존도가 너무 높기에 안보와 직결되는 일부 공급망을 디커플링하는 수순에서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양국의 경쟁이 충돌로 바뀌지 않도록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두 강대국에 끼여 있는 국가들은 작은 변화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방어에 사력을 다하는 미국이 디커플링의 범위를 얼마나 폭넓게 혹은 좁게 설정하는지, 그리고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양국의 기술전쟁은 스쳐 지나가는 장맛비로 그칠 수도 있지만 지구를 집어삼킬 거센 쓰나미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짜 무서운 건 ‘모른다’는 데에 있다. 가볍게 다루며 소홀히 할 수도 없지만, 사태를 너무 엄중히 여겼다간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IMF가 발표한 시나리오 모델을 갖고 와 수치로 보여준다.
IMF 시나리오 모델에 따르면 미중 간 기술 디커플링이 발생했을 때 미국과 중국의 GDP가 각각 3%p, 4%p 가량 감소한다. 디커플링의 범위가 좀 더 확장돼 OECD-중국 간에 이뤄질 때 GDP 감소폭은 미국은 1%p인 반면 중국은 8%p에 이른다. 미국으로선 홀로 전쟁에 참여햐는 것보다 동맹국 및 우호국이 참여할 때에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크게 중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미중 간이든, OECD-중국 간이든 기술 디커플링이 이뤄지면 GDP는 각각 6%p, 5%p 가량 줄어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의 완벽한 사례가 한국이다. 감소폭도 다른 동맹국에 비해 가장 크다. 일본의 피해 규모는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한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굳이 한 문장을 덧붙이지 않아도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명료해진다. 요즘 유행처럼 몰아치는 ‘경제 안보’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제와 안보를 디커플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저자는 140년 전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황준헌)의 일화를 들며 글을 끝맺는다. 당시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에게 그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것을 권했다. 줄타기 외교를 통해 힘의 균형을 만들라는 조언이었다. 당시엔 조선의 국력이 너무 허약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자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말한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지난 5월 바이든은 일본보다 앞서 한국을 방문했고,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삼성 반도체 공장이었다. 미국이 기술협력을 요청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이제 질문은 독자들에게 던져진다. 열강들의 힘겨루기 싸움에 끼인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는 우리가 좁게는 한반도, 넓게는 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꿈꾸고 그리는지에 따라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책략’은 정부 단독으로 불가하다. 결국 “시민사회가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이 책을 통해 10년, 20년 뒤 한국의 비전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건강한 담론의 힘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미중 기술전쟁? 결국 시민의 힘에 달려 있다.
별샛별 / 외교·안보 뉴스레터 델타월딩 디렉터
탑건과 와호장룡으로 대변되던 미중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싸움의 전선도 응당 달라진다. 이제는 붉은 배터리와 푸른 반도체다. 전장의 범위가 무역에서 한층 넓어져 첨단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은 기술전쟁의 양상을 7가지 게임체인저로 분류한 후 구체적인 숫자로 풀이한다는 점이다. 지도만 그려지지 않았을 뿐, 짐작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 양국의 전세를 판단하기에 유용한 근거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들의 기술전쟁이 왜,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한번에 정리하고 싶다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그림은 이렇다. 전장의 최전선에는 반도체・인공지능AI・5G가 자리 잡고 있다. 5G는 중국,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미국이 앞서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그런데 어떤 전쟁이든 공격보다 방어를 해야 하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두 번째 전장이 수출통제와 글로벌 공급망 배제다.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국가들을 규합해 중국이 전선을 더이상 확장하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막아선다. 중국의 추격이 추월이 되지 못하도록, 그동안 미국이 구축한 동맹국의 힘을 빌려 ‘비대칭적 경쟁 전략’을 펼친다. 중국은 ‘속도전’으로 맞붙는다. 관문을 막는 속도보다 더 앞질러 성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강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배터리의 주 원료인 희토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비록 미국이 앞서지만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소재-배터리-전기차 생태계를 구현할 토양이 구축되어 있다. 원료의 무기화를 히든카드로 던지며 중국은 세 번째 전장을 형성한다.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맞서지만 2020년 기준, 미국의 국가별 배터리 수입 비중은 단연코 중국이 1위, 43.4%다.
하지만 미국 역시 만만치 않은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다. 어떤 국가도 달러 없이 무역과 금융시장에 뛰어들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는 국가들에게 각종 경제・금융제재로 응징했고 바로 이 지짐에서 네 번째 전장이 형성된다. 다만 그동안의 제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으며, 중국의 시장 규모가 과거 불량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그 승패를 가늠하긴 어렵다. 오히려 중국이 금융 디지털화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면서 ‘디지털 위안화’로 달러 패권 체제를 뒤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렇게 물러설 미국이 아니다. 문을 막지 못한다면 판을 뒤흔들어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국의 디지털 경제가 가능한 생태계를 차단하는 다섯 번째 전장을 준비한다. 즉, 네트워크전이다. 사이버 전쟁은 국가의 전통적 영역인 군사・안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상대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해킹이나 금융기관과 석유・전력・통신 등 핵심 기반시설을 교란・공격하는 것만이 아니라 통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인 우주 패권전으로까지도 이어진다. 더 큰 위험은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마저 뒤흔든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심리전은 섬광이 번쩍이는 물리적 침공이나 파괴 없이도 사회를 빠른 속도로 혼란에 빠트리며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흐려 버린다.
이제 칼날은 ‘진짜’ 군사무기로 향한다. 할 수 있는 경쟁을 모두 소환하며 끝없는 창과 방패의 무한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전장이자 수순은 경제와 기술 생태계의 분리, ‘디커플링’이다. 다만 모든 것을 분리하는 건 불가능한 상상이다. 미중 양국은 상호 경제의존도가 너무 높기에 안보와 직결되는 일부 공급망을 디커플링하는 수순에서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양국의 경쟁이 충돌로 바뀌지 않도록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두 강대국에 끼여 있는 국가들은 작은 변화 하나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방어에 사력을 다하는 미국이 디커플링의 범위를 얼마나 폭넓게 혹은 좁게 설정하는지, 그리고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양국의 기술전쟁은 스쳐 지나가는 장맛비로 그칠 수도 있지만 지구를 집어삼킬 거센 쓰나미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진짜 무서운 건 ‘모른다’는 데에 있다. 가볍게 다루며 소홀히 할 수도 없지만, 사태를 너무 엄중히 여겼다간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IMF가 발표한 시나리오 모델을 갖고 와 수치로 보여준다.
IMF 시나리오 모델에 따르면 미중 간 기술 디커플링이 발생했을 때 미국과 중국의 GDP가 각각 3%p, 4%p 가량 감소한다. 디커플링의 범위가 좀 더 확장돼 OECD-중국 간에 이뤄질 때 GDP 감소폭은 미국은 1%p인 반면 중국은 8%p에 이른다. 미국으로선 홀로 전쟁에 참여햐는 것보다 동맹국 및 우호국이 참여할 때에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크게 중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미중 간이든, OECD-중국 간이든 기술 디커플링이 이뤄지면 GDP는 각각 6%p, 5%p 가량 줄어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의 완벽한 사례가 한국이다. 감소폭도 다른 동맹국에 비해 가장 크다. 일본의 피해 규모는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한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굳이 한 문장을 덧붙이지 않아도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명료해진다. 요즘 유행처럼 몰아치는 ‘경제 안보’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제와 안보를 디커플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저자는 140년 전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황준헌)의 일화를 들며 글을 끝맺는다. 당시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에게 그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것을 권했다. 줄타기 외교를 통해 힘의 균형을 만들라는 조언이었다. 당시엔 조선의 국력이 너무 허약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자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말한다. 그동안 미국은 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지난 5월 바이든은 일본보다 앞서 한국을 방문했고,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삼성 반도체 공장이었다. 미국이 기술협력을 요청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이제 질문은 독자들에게 던져진다. 열강들의 힘겨루기 싸움에 끼인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는 우리가 좁게는 한반도, 넓게는 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꿈꾸고 그리는지에 따라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책략’은 정부 단독으로 불가하다. 결국 “시민사회가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이 책을 통해 10년, 20년 뒤 한국의 비전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건강한 담론의 힘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