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_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공식 관리자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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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

조성주 /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이상하리만치 천대(?)받는 이데올로기다. 한국 정치의 주류정당들은 ‘사민주의’ 자체에 관심이 없으며, 진보 정치를 비롯한 진보세력은 사민주의에 대해서 근본적인 불신이 있는 듯하다. 한국 정치의 주류정당들이 사민주의를 멀리하는 이유는 분단과 전쟁 등으로 인한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그만큼 이념적 지형이 좁은 한국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민주의’가 소위 구소련이나 북한, 중국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 노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사민주의가 민주주의 안에서 변화를 추구해나간다는, 이미 잘 알려진 현실에서도 불신은 잘 극복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오히려 ‘사민주의’가 지향하는 노선과 그 원리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진보적 노선이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정당들에서는 사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보다는 ‘복지국가’라는 정책적 노선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는 듯하다.

 

진보 정치에서 ‘사민주의’는 더 차가운 반응을 받는다. 한쪽에서는 ‘사민주의’는 현재의 ‘자본주의’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기에 이것을 지금에 와서 대안으로 제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민주의’의 성과가 있기는 하지만 70년대 이후의 부진,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그 역할이 퇴색되었고 최근에는 오히려 주류 사민주의 경향의 정당들의 부진한 정치 성과를 언급하며 생태, 반자본, 정체성정치 등 더 다양한 의제들을 포괄하는 다른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아직 한국 사회는 사민주의의 한계를 언급할 만큼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민주의 복지국가들의 불평등 수준과 사회통합의 수준은 여전히 한국사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부자인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유럽의 주요 사민주의 경향의 정당들이 잠시 좌우에서 등장한 포퓰리즘적 정치현상에 흔들리고 위기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곧 주류적 위치에 복귀하고 있다는 현실 역시 아직 사민주의의 패배나 한계를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 사민주의의 역사와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한 책인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는 지금 시점에서 꼭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는 20세기 초 다양한 사회주의 경향의 운동과 정치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회민주주의의 싹이 등장했고 결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회민주주의가 실질적인 승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를 유럽 각국의 운동과 정치, 정당들의 대응을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설명해낸다. 저자의 핵심 의도 중 하나는 20세기 전후 질서가 단순히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좌파적 열망의 패배와 자유주의자들의 승리가 아니라 양 노선 모두가 현실에서 패배하고 실질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다른 이데올로기가 전후 질서의 승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민주주의가 고전적 자유주의와 급진 좌파적 기획들과 다르게 현실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 책 『정치가 우선한다』를 단순히 사회민주주의의 실질적 승리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으로, 또는 사민주의 노선이 사회주의나 다른 자유주의 프로젝트와 다른 장점이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들로 증명하는 책으로만 놓기에는 아깝다. 오히려 한국의 진보 정치나 사회운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마치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나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처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위한 책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 이유는 이 책에서 셰리 버먼이 사민주의가 여러 가지 오해와 혼란 속에서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의 원인을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경제의 힘에 운명을 수동적으로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힘’을 믿고 운명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며 많은 사람은 20세기에 보여주었던 ‘정치의 힘’이 가지는 긍정적 효과를 떠올리기보다는 ‘정치의 힘’이 어떻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어둡고 음습한 욕망으로 빠져들게 만드는지를 떠올릴 것이다. 정치 그 자체가 의심받고 저주받는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과 어둠을 극복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안에서 ‘정치’를 통한 힘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여전히 ‘정치가 우선한다.’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