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방식
이대원 / 서울시 전 노사협력팀장
1. 나는 지난 5년간 서울시 노사협력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계기가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정부가 시행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직접 받은 후, 회사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나 같은 사람도 지원금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첫 번째였다. 보편적 지급 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계층(특고, 프리랜서 등)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주어지는 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찜찜한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 후 나는 2020년 5월 ‘서울시 특고, 프리랜서 긴급생활지원금’ 사업을 직접 계획, 수행하면서 이런 고민들은 더욱 깊어졌다. 행정의 영역에서 지원금은 그 대상(수급자), 조건(소득감소 정도), 금액(현금의 액수)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통장이 유리지갑이라고 표현하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의 경우, 통계청이나 국세청의 데이터를 통해 그 대상과 소득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특고, 프리랜서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사업 설계에만 2달 가까이 걸렸다. 서울시가 투여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도 제한적이고 실제 지급과정에서 필요한 행정절차 또한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정액의 현금’이라는 기본소득의 간편함과 단순함이 바로 등장한다. 행정이 정책의 고민을 멈추고 싶을 때, 기본소득론은 그 심플함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책에서는 국가)에서 바라보는 ‘기본소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계획 수립과 지급 전 과정에서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가 명확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예산 집행의 엄밀함에 대한 시비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기본소득론은 즉자적인 이해와 구조의 단순함으로 인해 행정이 고민의 끈을 놓는다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인 듯하다. 이 점이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늘 패배(저자의 표현이다)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행정과 공무원은 겉보기와 다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속 수행하고 있다. 행정의 무능함이 기본소득을 막는 것이 아니라 행정의 복잡함과 엄밀함이 기본소득의 큰 벽인 셈이다.
선별적인 지급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비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 일을 하다보면 행정비용이 필요이상의 낭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비용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위기 시기 또 행정이 구사하는 임시고용의 한 형태였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행정은 계속 변해간다. 잊지마시라. 공무원은 결코 철밥통이 아니다. 시간이 말해주듯이 코로나19 과정에서 다양한 지원정책 속에서 행정비용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행정비용과 보편적 지급 사이의 논쟁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론은 역시나 패배한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의미가 있다.
2. 8월의 책으로 선정된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은 기본소득의 과거(1부), 현재(2부), 미래(3부)를 시간의 수평축을 이동하면서 이야기한다. 세 번의 산업혁명은 당해 시기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의 극복과정이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스스로의 치유(?)과정으로서의 복지국가 탄생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본소득론은 과거에 패배(1부)했고, 지금도 패배(2부)하고 있고, 미래도 패배(3부)한 것처럼 보인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비판적이 주장으로 보이겠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간다면 저자는 현대의 복지국가가 출현하고 진화해 온 과정에는 ‘기본소득(론)’의 정신이 사이사이마다 스며들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기본소득론이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 이론적으로는 좀 더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애정도 진하게 느껴진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기본소득의 역사적 변천사(1부)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2022년 현재 기본소득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2부)를 좀 더 현실감 있게 볼 수 있으며, 앞으로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를 떠나 경제적/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3부)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 진보활동가들에게 조금은 막연한 기본소득에 대해 시간적(역사), 공간적(서구와 한국)으로 퍼즐을 맞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음알음 듣고 배운 내용이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술방식 역시 매우 직관적이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3.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주기적으로 위기가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위기’는 삶의 ‘기본’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강하게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위기가 사회 구성원에게 가하는 다양한 충격을 누가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이다. 이게 ‘기본소득’의 정신이고 저자가 말하는 국가의 역할이다.
‘기본’이 필요하다는 것과 사회복지/보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론논쟁 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기본 방식, 즉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도 완성이나 완벽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특정한 이론이나 정책이 우리네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사기다. 그래서 저자는 ‘기본’을 넘어서 삶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방식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상상을 위한 기본적 토대를 이 책이 보여줄 것이다. 일독을 강추한다.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방식
이대원 / 서울시 전 노사협력팀장
1. 나는 지난 5년간 서울시 노사협력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계기가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정부가 시행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직접 받은 후, 회사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나 같은 사람도 지원금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첫 번째였다. 보편적 지급 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계층(특고, 프리랜서 등)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주어지는 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찜찜한 느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 후 나는 2020년 5월 ‘서울시 특고, 프리랜서 긴급생활지원금’ 사업을 직접 계획, 수행하면서 이런 고민들은 더욱 깊어졌다. 행정의 영역에서 지원금은 그 대상(수급자), 조건(소득감소 정도), 금액(현금의 액수)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통장이 유리지갑이라고 표현하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의 경우, 통계청이나 국세청의 데이터를 통해 그 대상과 소득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특고, 프리랜서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사업 설계에만 2달 가까이 걸렸다. 서울시가 투여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도 제한적이고 실제 지급과정에서 필요한 행정절차 또한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정액의 현금’이라는 기본소득의 간편함과 단순함이 바로 등장한다. 행정이 정책의 고민을 멈추고 싶을 때, 기본소득론은 그 심플함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책에서는 국가)에서 바라보는 ‘기본소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계획 수립과 지급 전 과정에서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가 명확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예산 집행의 엄밀함에 대한 시비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기본소득론은 즉자적인 이해와 구조의 단순함으로 인해 행정이 고민의 끈을 놓는다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인 듯하다. 이 점이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늘 패배(저자의 표현이다)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행정과 공무원은 겉보기와 다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계속 수행하고 있다. 행정의 무능함이 기본소득을 막는 것이 아니라 행정의 복잡함과 엄밀함이 기본소득의 큰 벽인 셈이다.
선별적인 지급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비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제 일을 하다보면 행정비용이 필요이상의 낭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행정비용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위기 시기 또 행정이 구사하는 임시고용의 한 형태였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행정은 계속 변해간다. 잊지마시라. 공무원은 결코 철밥통이 아니다. 시간이 말해주듯이 코로나19 과정에서 다양한 지원정책 속에서 행정비용은 계속해서 감소했다. 행정비용과 보편적 지급 사이의 논쟁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론은 역시나 패배한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의미가 있다.
2. 8월의 책으로 선정된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은 기본소득의 과거(1부), 현재(2부), 미래(3부)를 시간의 수평축을 이동하면서 이야기한다. 세 번의 산업혁명은 당해 시기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의 극복과정이기도 했지만 자본주의 스스로의 치유(?)과정으로서의 복지국가 탄생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본소득론은 과거에 패배(1부)했고, 지금도 패배(2부)하고 있고, 미래도 패배(3부)한 것처럼 보인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비판적이 주장으로 보이겠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간다면 저자는 현대의 복지국가가 출현하고 진화해 온 과정에는 ‘기본소득(론)’의 정신이 사이사이마다 스며들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기본소득론이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 이론적으로는 좀 더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애정도 진하게 느껴진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기본소득의 역사적 변천사(1부)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2022년 현재 기본소득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2부)를 좀 더 현실감 있게 볼 수 있으며, 앞으로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를 떠나 경제적/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3부)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 진보활동가들에게 조금은 막연한 기본소득에 대해 시간적(역사), 공간적(서구와 한국)으로 퍼즐을 맞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음알음 듣고 배운 내용이 정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술방식 역시 매우 직관적이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3.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주기적으로 위기가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위기’는 삶의 ‘기본’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강하게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위기가 사회 구성원에게 가하는 다양한 충격을 누가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이다. 이게 ‘기본소득’의 정신이고 저자가 말하는 국가의 역할이다.
‘기본’이 필요하다는 것과 사회복지/보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론논쟁 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기본 방식, 즉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도 완성이나 완벽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특정한 이론이나 정책이 우리네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사기다. 그래서 저자는 ‘기본’을 넘어서 삶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다양한 방식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상상을 위한 기본적 토대를 이 책이 보여줄 것이다. 일독을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