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아시아인이라는 이유_혐오의 피해자와 가해자_박현숙 작가

공식 관리자
2022-06-03
조회수 509

혐오의 피해자와 가해자

 

박현숙 / 작가

 

1.

먼 친척뻘 되는 고모의 남편은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친척들 사이에서는 ‘깜둥이서방’으로 불렸다.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깜둥이서방’은 미국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고 좋은 집과 차를 가진, 미국에서는 소위 성공한 중산층 계층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고모네가 한국에 1년 정도 장기 거주를 했다. 나는 그 ‘깜둥이고모부’가 몹시도 궁금했다. 그가 과연 ‘백인들처럼’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어 교과서를 들고 고모네 집에 가서 그 ‘깜둥이고모부’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이자 흑인이었다. ‘깜둥이고모부’는 아주 표준적인 ‘미국식 발음’으로 나에게 영어책을 읽어 주었고 몇 마디 회화도 가르쳐 줬다. 그날 이후 나는 ‘깜둥이’도 백인과 똑같이 영어를 아주 잘할 뿐더러 심지어 온화한 미소와 자상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약 20여년 뒤, 나는 중국인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친척들 사이에서는 ‘짱깨신랑’으로 불렸다. 심지어 친구 중 한 명은 아무 생각 없이 ‘짱깨남자와 살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짱깨사위’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지만 남들에게 소개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사위는 박사’라는 말부터 먼저 하곤 했다. 아이들이 자랐고, 다 큰 아이들은 한국에 갈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공공장소에서는 절대로 중국어를 말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는 아예 입을 꾹 다문다. 누나가 동생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XX야. 지하철에서 나에게 절대로 중국어로 말 걸지 마.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들 싫어한단 말이야. 알겠어?”

 

몇 년 전에 아이들과 산티아고 도보 여행을 갔을 때, 길거리에서 한 무리의 백인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손을 들어 ‘올라’(안녕)라고 인사하려는 찰나, 그 아이들이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건네 온 인사는 우리가 기대했던 인사법이 아니라, 두 손으로 눈꼬리를 찢는, 이른바 ‘아시아인 조롱’ 인사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연히 중국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꼬리를 찢는 동시에 ‘니 하오’라고 말하며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지나갔다. 그들의 ‘악의’를 눈치 챈 딸아이는 가는 길 내내 분을 삭이지 못하며 씩씩 댔다. 길에서 마주 친 한 홍콩인 여자는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에게 영어로만 말을 하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원래 중국 대륙에서 나고 자라 결혼 후 홍콩으로 이주를 한 오리지널 중국인이었지만, 중국인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꼈는지 절대로 중국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기분이 묘해지는 경험이었다.

 

2.

최근 애플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파친코>가 화제다. 재일교포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룬 내용인데, 그 드라마 후반부에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의 상황이 나온다.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토 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당시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언론 매체 등을 이용해 ‘일본에 거주중인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해 폭동을 일으켜 약탈과 방화를 계획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심지어 사악한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도 퍼져나가면서 일본인들은 죽창과 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무참하게 대량 학살했다. 1906년 4월 18일, 미국 샌프란스시코에서 강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재난으로 기록되었지만, 간토대지진과 마찬가지로 당시 가장 큰 희생양은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이었다. 재난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더럽고 불길한’ 중국인들에 대한 분노와 차별로 유인하며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이용했다. 히틀러의 인종청소 구상이 원래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가장 많이 참고하고 배웠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1938년 독일에서 벌어진 ‘수정의 밤’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에 착수하게 된다. 1938년 11월 9일, 파리에서 독일 외교관이 17살 유대인 소년에게 피살을 당하자, 이를 빌미로 독일의 친나치 조직들은 도끼와 쇠망치로 무장하고,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것처럼, 유대인 상점과 예배당을 공격하며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학살하고 제거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와 장애인, 집시 등 순수 아리안 혈통이 아닌 온갖 사회적 소수자들도 포함되었다. 그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을 넘어서 다른 소수집단을 대상으로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던 미국의 유명 종군 기자 어니 파일(Ernie Pyle)은 당시 “유럽에서 우리들은 적군이 아무리 공포스러워도 그들 역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시아 전장에서는 (서방 연합군이) 일본인은 사람이 아니라 마귀나 쥐 등 극도로 혐오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도 “일본인은 짐승이기 때문에 짐승으로 여겨야 한다.”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여러 차례 했었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이 아니라 ‘짐승들’에게 투하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는 이전에도 ‘흑인들과 중국인, 일본인 등 황인종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자주 말했었다. 그 역시 히틀러처럼 뼛속까지 철저한 인종주의자였다. 인종차별주의자 뿐만 아니라 각종 차별주의자들의 공통점은 ‘나와 그들, 우리와 그들은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와 우리는 순수하고 선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오염되고 불결하며,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잘못된 믿음과 확신이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 그런 믿음이 인식을 지배할 때 사회에는 각종 혐오와 차별, 배제가 정당화된다.

 

이 책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는 주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 혐오’ 현상의 역사적 맥락을 파헤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우리 안의 파시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깜둥이고모부’와 ‘짱깨신랑’, 눈꼬리가 찢어진 아시아인과, 한국 지하철 등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배우는’ 아이들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질병의 온상’이라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국 혐오’ 현상의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들의 보편적 ‘혐오 정신’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할 때 “우리는 언제든지 혐오를 하는 주체이자 혐오를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편견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종주의 및 다문화 연구자의 최고 권위자였던 로널드 다카키의 말을 빌리자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한번쯤 이 책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도대체 전염병, 지진, 경제 불황, 전쟁 등 재난은 왜 차별과 혐오를 야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