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신냉전 한일전_김수민 시사평론가

공식 관리자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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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한일전

김수민 / 시사평론가

 

“아베가 볼턴을 움직여 훼방을 놓았다!” 2019년 2월 28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나자 이런 댓글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길윤형 <한겨레>기자의 󰡔신냉전 한일전󰡕은 외교 구도를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일관계’로 토막 내지 않고, 문재인 정부 이후 이들 나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책의 전반부는 새로운 비전을 안고 출발하는 듯했던 한국·미국과 북한의 대화, 그 사이사이 북한의 의도를 깊이 의심하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끼워 넣으려 했던 일본의 동분서주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우선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와 북한 문제를 두고 부딪칠 수밖에 없던,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가 강경한 원칙론에 설 수밖에 없었다는 배경을 인정한다. “역사 문제에 대한 애끓는 정념은 아베 총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촛불의 염원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의 정상이 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31쪽) “남북 대화를 주도하고 북미 접근 유도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겠다는 홍남 출신 탈북민의 아들인 문 대통령의 ‘집념’”(73쪽).

하지만 아베가 미국을 ‘움직이는’ 동안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어떤 수습을 했는가. “2017년 이후 펼쳐진 한일 외교전에서 한국은 사실상 ‘패배’했다!”(책 뒷표지 문구) 2018년 10월 30일,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피고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일본이 동요하는 가운데서도 “청와대의 관심은 머지 않아 성사될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연내 답방’에 쏠려 있을 뿐이었다.”(181쪽) “일본 정부는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했지만, 한국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할 뿐이었다. 문 대통령의 제1 관심사인 김정은 위원장의 방남 일정 때문이었다.”(182쪽)

한일관계 개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빚어냈다. 이 선언의 7조는 북한 관련 내용에 할애되어 있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확고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이것이 2000년 남북공동선언의 밑바탕이었으며, 2002년 최초의 북일정상회담을 예고했다.

일본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폐기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바란다. 미국 등 서방이 동아시아 문제를 바라보는 창문이 일본이기도 하다.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이 사이에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서 독자적인 중심을 지키고 나아가 갈등을 완화하려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필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노딜 이전까지 동북아시아 ‘현상 유지’에 기운 일본의 방향 전환을 유도하지 못했고, 수출규제를 걸어오는 일본에 대해 ‘한일전’을 외치며 한일관계 악화를 부채질했다. 보복 성격으로 내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한미관계에도 경색을 불러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를 모두 악화시킨 정부가 되었다. 북한은 끝내 2022년 3월 24일 ICBM을 발사하며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11월로 되돌렸다. 한국 외교는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잘못했을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2019년 11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번복 선언까지 치밀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이 책은 문 정부 외교를 복기하는 가장 훌륭한 교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정부는 한일 외교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제시한 해법을 그 단초 삼아 읽어가 보자. 첫째, 저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원고들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을 뿐, 배상금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을 대상으로 강제집행 절차를 시작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고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전시하 여성에 대한 씻을 수 없는 국가 범죄라는 굽힘 없는 원칙만 유지하면 된다.”(358쪽)

둘째, 강제동원 문자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 대법원 판결과 일본의 ‘65년 체제 유지’(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논리)가 충돌하면 ‘단교에 버금가는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피고 기업의 사과’를 입구로 해서, 배상금을 한국 정부가 일단은 ‘대지급’하고, 양국이 재단을 설립해 후속 조치를 하자고 제안한다.

셋째, ‘안보협력’에서는 일본에게 선제적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3개국 안보협력 그 자체는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이익이 되는 만큼 무작정 꺼릴 것은 아니”(363쪽)지만, 일본이 역사 문제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는 후보 시절 "한일관계 개선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는 적절하다. 그러나 그 이후 정부가 왜 한일관계 개선에 실패했는지 살펴본다면, 당선인도 옷깃을 여미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친일 정부라는 의구심을 받다가 임기 막판에 독도를 방문하는 모험주의를 범했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일본과 역사 투쟁을 벌였고, 12.28 합의에 이르렀지만 국내 여론의 반발을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지층의 반일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거꾸로 한일관계 악화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최악수를 뒀다.

김대중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이끌어냈던 비결은 이를 당시의 민주화-사회개혁 에너지가 받쳐주고 있었던 데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경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받고 있고, 국민 절반이 이미 그에게 기대를 거둔 상태다. 여기서 추진하는 한일타협은 정치적 반대층의 비토에 직면할 수 있다. 그의 극성 지지층이 지핀 ‘반중 선동’도 그 반대편의 ‘반일 선동’과 적대적으로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국내정치에서부터 극한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적어도 외교안보에서는 야당과 부단히 대화하고 인사 기용과 자문 범위를 폭넓게 구축함으로써 통합적인 노선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