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샛노란 돌봄(새파란 돌봄 서평리뷰)_유의선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공식 관리자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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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돌봄

 

유의선 /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암으로 투병 중이던 시어머니가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치유원도 참지 못해 집에 누우셨다. 나는 단체 상근 일을 그만두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시어머니를 돌보러 갔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사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조기현 작가의 󰡔새파란 돌봄󰡕은 7명의 돌봄 제공 당사자의 이야기다. 당사자들도 작가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민에 빠지지 않고 객관화’하려고 상황을 중심으로 최대한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서른하나의 나의 이야기처럼. 구구절절 그 어려움을 세세하게 나열하지 않아도, 그 상황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한데, 그 자연스러운 감정조차 걷어 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새파란 돌봄󰡕이 아니다. 저자는 내게 묻는다. 왜 당신이었냐고. 시어머니의 남편도 아들도 딸도 아닌 며느리가 그 돌봄을 감당해야 했냐고. 왜 나였을까. 여성이어서? (딸도 있다.) 가장 약자여서? (그때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돌봄을 선택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또 작가는 내게 묻는다. 왜 당신은 하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나요? 그리고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 역시 돌봄 노동인 건 왜인가요? 그야 환자를 돌보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니 일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내가 먹고살 돈은 내가 마련해야 했으니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고, 마침 내가 일하던 단체에서 취업 알선을 하는데, 어린아이가 둘 있는 이사할 집이라고 모두 피하는 집의 가사 도우미(이때는 ‘파출부’라고 불렀다) 일을 시작했을 뿐이고. 그런 선택들이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뿐이고. 작가가 또 묻는다. 왜 집에서? 요양원도 아니고 간병인도 없이? 지원을 받을 생각은 안했나요? 음…… 시아버지가 보훈 대상자였고, 나도 단체에서 생계비 지원 등을 상담하는 역할도 했었으니 정보가 부족했던 건 아닌 것 같고, 일단 돌봄을 자처한 내가 있으니, 내가 나가떨어지기 전까지는 버텨 보겠다 생각했던 것 같고. 작가가 마지막 질문인 듯 던진다. 그 시절, 당신은 불행했나요? 그건 아니다. 시어머니가 불행하다고는 생각했다. 저자의 말처럼 “돌봄이 곧 불행이라면 우리 삶의 조건 자체가 불행인 셈이다. 문제는 돌봄을 불행으로 만드는 맥락이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 세 명이 모였다. 모두 동갑내기 1인 가구다. 젊은 상주와 검은 정장을 한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우리가 죽을 때쯤이면 장례 문화도 많이 바뀔 거야. 일단 문상객을 맞을 상주가 없잖아.” 퍽이나 동감했으나 죽은 뒤를 걱정하기엔 훨씬 더 험난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올 부모님과(물론 부모님이 거부하실 수도 있다) 나를 돌볼 사람은 없다는 상황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파란 돌봄󰡕의 저자는 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돌봄은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인 동시에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되는 돌봄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돌봄 책임 제도를 만들고 돌봄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에도 솔깃해 한다. 비공식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일자리 보장제 등을 통해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만들어 보는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다. 병무청처럼 돌봄청을 두는 건 어떨까? 결국 돌봄이 길이 되려면 지역에서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하니, 우리 모두 ‘돌봄 수혜자’라는 사실부터 인정해 보자! 저자는 가족 구성권의 문제, 주거권과 일자리의 문제, 지역과 공동체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들을 ‘돌봄’을 중심으로 제기하고 제안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만이라면 미래의 나의 돌봄의 해결책은 너무 거대하고, 곧 제공해야 하는 돌봄에 대해서는 “돌봄이 필요한 이와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를 잃지 않기” 정도에 머무르게 되니 곤란하다. 여기에서 그친다면 󰡔새파란 돌봄󰡕이 아니다.

작가는 가장 현실적인 것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제시한다. 아픈 사람과 돌봄자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노인장기요양 인정조사표’를 다시 만드는 것, 돌봄자를 위한 상시적인 심리 지원을 만드는 것, 영 케어러가 학업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돌봄 결석 제도를 만들거나 수업의 보충 및 다양한 정보 제공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야 할 것, 정신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확대를 통한 다양한 활동의 보장, 통계청 등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돌봄의 경제적 가치를 이미 진행되는 현금 지원과 연계시키는 일 등등.

저자는 돌봄의 ‘다른 세계’와 현실의 ‘실질적 변화’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다. 이를 위해 계속 질문하고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사람들의 팔을 잡아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좋은 질문’이 필요할지 모른다. ‘좋은 답’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좋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삶을 살아갈 수는 있다.”

 

󰡔새파란 돌봄󰡕을 통해 나는 서른하나의 나를 애도할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도 애도가 필요하다’는 말에 마음의 둑이 하나 무너졌다. 󰡔새파란 돌봄󰡕 속 일곱 당사자들의 상황은 하늘이 노래지는 샛노란 돌봄으로 출발했으나, 스스로를 애도하고 함께함으로써 일곱 빛깔 무지개의 돌봄으로 변했을 것이다. 이렇게 훈훈하게 글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한마디 더 보태야겠다. 우리는 모두 돌봄자이자 돌봄의 수혜자여야 한다. 나도 그렇고 7명의 당사자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