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여자가 취미로 풋살하는 이야기_유성애 아마추어 풋살러

공식 관리자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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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취미로 풋살하는 이야기


유성애Ⅰ아마추어 풋살러, <오마이뉴스> 기자

 

‘3년 넘게 정말 손만 쓰고 살았구나. 어쩜 이리 손만 썼을까….’


친구들과 주말마다 배우는 풋살에 재미를 붙일락 말락 할 때쯤 자주 하던 생각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축구, 남들이 하는 축구를 볼 때는 거참 볼 하나가 뭐라고 저걸 못 넣나, 그렇게 쉬워 보이더니 막상 해보니 내 발 밑에 놓인 공 하나 다루는 게 쉽지 않았다. 상대를 피해 공을 이리저리 드리블하는 건 고사하고, 내가 차는 공에 내 발이 걸려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 기성용이 SNS에 썼다던 그 말을 이제는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는 저자 김혼비 씨가 축구 시작 3개월일 때부터 2년차(라고 썼지만 만1년)를 맞을 때까지를 기록한 성장기다. ‘원 소셜 타임 당 투 혼자 타임’, 그만큼 혼자가 편하다던 그녀가 팀 스포츠인 축구를 하는 이야기는 엉망진창 좌충우돌일 것만 같지만 이 언니…… 축구에 정말 진심이다. 심지어는 책 목차도 인사이드킥(발 안쪽 면으로 차는 가장 기본 킥) 등 축구 용어들로 엮어 냈다. 환불을 고민하며 축구 양말 스티커를 떼지 않던 쌩초보가, 팀 승리 골의 어시스트를 하는 프로 축구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 편의 경기처럼 풀어낸다.


“책을 읽으며 네 번쯤 크게 웃었고 세 번쯤 눈물이 났다”는 소설가 정세랑의 말처럼, 책의 큰 미덕 중 하나는 재미있다는 거다. 정말로 활자를 읽다가 ‘빵 터지는’ 경험을 했다. 과거 한때 이 책이 재미있다는 추천을 뻥 안치고 10번 가까이 들었던 것 같지만,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던 그때의 나는 한창 읽던 도중 대출 기한이 다 돼 그대로 책을 반납했었다. 이번엔 사서 봤는데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시험 족보인 것 마냥 쏙쏙 이해가 됐고, 잘해 보겠다고 뛰다가 자책골을 넣고 망연자실해 하는 그녀를 보며 함께 마음이 아팠다. 알고 보면 더 재밌지만 모르고 봐도 즐거운 이 책. 읽다 보면 누구든 저자의 화려한 활자 드리블 실력에 감동하게 될 거란 얘기다.


약간 패륜이 아닌가 싶어 망설였는데, 어쩐지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저자가 속한 팀과 늘 정기적으로 연습을 하던 시니어 축구팀(60~80대 할아버지로 이뤄진 축구팀)의 팀원이 다음 주 갑자기 나오지 않고, 그 대신 부고 소식이 들려왔을 때였다. 공지로 올라온 ‘17번 할아버지’ 부고를 알게 된 저자는 처음엔 당혹스러워 했다가, 그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만을 기억해 내고는 얼굴조차 기억을 못 하는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당황 → 깨달음 → 가책 → 애도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며 웃다 보면 어느새 고민에 빠진다. 진심 어린 애도는 뭔지, 그간 제대로 애도해 왔는지 말이다.


축구나 풋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책을 읽는 게 좋을까? 그래도 나는 권하고 싶다. 읽고 나면 당신에게도 건강한 욕망이 꿈틀댈 것이기 때문이다. 예쁜 몸보다는 더 건강한 몸, 보기 좋은 머리보다는 운동하기 편한 헤어스타일을 원하게 됐다면서 저자는 말한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취했던 방식이라 누구 것인지도 잘 모르게 된 욕망에 앞서서, 내 것이라는 게 확실하고 뚜렷한 욕망을 새롭게 찾아가는 것, 이게 참 재밌다”(159쪽)라고 말이다. 그게 뭐든, 뭔가를 집요하게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런 뭔가를 꼭 찾고 싶어지게 만든다.


풋살에 대한 애정을 알린 뒤 주변인들로부터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냐’는 거다. 김혼비 씨는 축구가 좋아서라는데, 내 경우 실은 ‘축구를 하는 친구가 즐거워 보여서’였다. 축구 축구 축구 연애 축구의 비율로 인스타그램을 채운 친구를 보며 좋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시댁과의 갈등이 최정점을 찍고 난 어느 날 친구가 다니던 곳에, 친구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나 혼자 덜컥 등록한 게 시작이었다(작년 추석 직후^^). 결혼 생활이 어려워 마음고생이 심하던 때 시작한 풋살. 그래도 풋살을 하면 몸이 아파서 마음이 힘든 건 좀 잊히곤 했다. 10여 년 전 오른 발목을 크게 다친 탓에, 일요일 2시간 격하게 풋살을 배우고 나면 매번 발목이 붓고는 했으니까(대략 수요일까진 아팠던 것 같다).


저자가 책을 쓰기 시작한 시기가 시작 3개월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나 역시 이제 만 3개월을 꽉 채웠다. 그런 요즘의 질문은, ‘풋살이 어떤 운동인가(1개월)’ ‘이게 재밌는 건가(2개월)’ ‘아 나도 잘하고 싶다(3개월)’를 거쳐 ‘풋살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에 와 있다. 건강하게 오래, 즐기면서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안 그래도 사고 탓에 관절염이 빨리 올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주 사용 발을 오른발 말고 왼발로 바꿔 볼까? 젓가락질이 그렇듯 발목도 자꾸 쓰다 보면 강해져 더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는 새 이 책을 읽었고 또 잘하고 싶어져 버렸다. 흑…….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지금 속한 팀에서는 어쩐지 내가 나이로는 고령자 중 1인, 사람 몸으로 치면 이마 급이다. 그나마 정수리가 아니라서 다행인가 싶지만, 팔팔한 20대 초반 친구들과 뛰어다니다가 숨 가빠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왜인지 좀 숙연해지곤 하는 것이다. 축구에 진심인 축구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 혼비 씨는 여전히 축구를 하고 있을까. 그녀 곁의 다른 ‘언니들’도 여전히 뛰고 있을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언니들의 존재가 절실해진다. 아프지만 하고 싶고 하고 싶지만 아픈데요, 저 같은 사람도 이걸 계속 하는 게 맞을지, 초보 풋살러에게 따뜻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을 읽은 뒤 나는 위치 선정의 대가, 필라포 인자기를 롤 모델로 삼게 되었다. 그를 알기도 전인 1월 1일, 겁도 없이 공식 풋살 경기에 나갔다가 그와 비슷한 ‘골대 앞 위치 선정’ 덕에 나도 첫 데뷔 골을 넣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연습 때도 얼떨결에 한 골을 넣었는데 유사한 패턴이었다. 초보 풋살러의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인자기님…… 당신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쾌하고 호쾌한 저자를 따라 나도 호탕하게 이 글을 마쳐 본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도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 (어딘가에 있을 축구 동지들에게) 나중에 잔디 구장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