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이 책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_김혜미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간사

공식 관리자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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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이 책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김혜미Ⅰ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간사, 녹색당 건강사회위원회 공동위원장

 

 

최근 동료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각국의 NDC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기후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젠더 불평등 해소 관련 부분을 번역하며 읽는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국가들도 마주한다. 부족한 실력으로 여러 방법을 써가며 국가별 보고서를 읽다 보면 너무 멀게 느껴져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실제로 든다. 그 수많은 나라 중에 내 눈길을 잡은 국가는 사모아라는 곳이었다(영화 <모아나>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모아의 NDC는 ‘지역사회 회복력’ ‘성 평등한 접근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밝히며 기후 재난에서 ‘여성’과 ‘아동’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원칙이 이 나라에 지금 당장 필요한 이유는 이미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가 물에 잠겨 적극적인 이주 정책까지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듯 ‘기후 난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남태평양에선 한국 사회에 기후 위기라는 말조차 낯설었을 때부터 이미 기후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그 결과 주거지와 섬이 물에 잠기자 ‘살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면서 1947년 1600여 명에 불과했던 사우스 타라와 섬에는 현재 5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전쟁 같은 날을 살아 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미 몇몇 국가에선 지도자가 나서서 자국민을 난민으로 받아 달라고 요청까지 하고 있다.


한국도 당연히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NDC 발표를 했다. 첫 번째 발표 때는 망신을 당했고(유엔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지난 10월 중순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가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어쩌면 책에 등장하는 돔시티(24쪽)나, 전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시청 청사(193쪽)와 비슷한 이미지의 수많은 회의장과 둥그런 테이블에서 기업가와 연구자, 정치인과 시민 대표들이 뜨거운 지구를 두고 가열 차게 토론을 진행한 결과다. 그리고 둥근 테이블의 결론에 유감을 가진 사람들은 회의장 바깥에서 시나리오의 ‘부정의함’을 알리며 극렬하게 ‘시위’했다. 시위대는 공권력에 ‘진압’ 당했다.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분야별로 당사국이 취할 노력을 스스로 결정하여 제출한 목표.)

비슷한 시기였던 10월 15일 삼천포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화력발전소 폐쇄가 논의되면서 고용 불안을 겪었고 이로 인한 우울감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부고가 있기 4개월 전 쯤의 언론 기사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많이 위축되어 있”고, “잠재적 범죄자”의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경향신문󰡕 6월 4일자)고 했다. 이처럼 발전소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 위험과 사회적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기후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까지 출판되는 시대에, 부끄럽게도 ‘녹색 정치’는 실종되어 있다. 아니,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 발굴을 위한 제대로 된 대화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체 이탈 화법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녹색 정치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애초부터 ‘둥근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한 존재들도 있지만, ‘정부’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집단도 있다. 거절한 사유는 너무나 옳다. 들러리 설 수 없고, 양보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한 그들의 거부 사유에 걸맞게 정부가 기후 위기의 원인을 가진 기업과 자본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우선 보호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를 대변하고, 큰 규모를 자랑하는 노동자 조직이 떳떳함을 위해 소통을 포기할 때 누가 나를 대표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콘돔 폭탄을 만드는 소피(23쪽)의 행동을 응원하고, 다니엘라(99쪽)의 신념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의원실로 간 희연(166쪽)을 이해하고, 몰디브로 떠나고 싶은 경민(320쪽)의 욕망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맥락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랑 달고, 자위행위를 묘사하는 것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다. 독자들의 윤리적 딜레마를 노골적으로 건드리는 도입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책은 가장 현재(우리로부터 미래)에서 가장 과거(우리로부터 현재)의 시점으로 흐른다. 망한, 그리고 망해 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10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물론 이 책이 점지해 놓은 것처럼 우리의 일상이 변할지,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이 소설의 지구 멸망 시나리오가 대단히 새롭지는 않다. 이미 영화 <설국열차>가 있었고, <엘리시움>도 있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우리가 ‘서서히 망해 가는지’를 영화보다는 긴 호흡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망해 가는 중에도 ‘적대’는 우리를 나아지게 만들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기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연하게 따라 붙는 ‘위기’라는 단어가 우리를 사납고 조급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공간, 정치의 공간을 더 좁아지게 만드는 기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현실’의 ‘돔시티’는 더욱 견고하고 막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콘돔 폭탄을 만드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전히 ‘천국의 초저녁’(319쪽)을 보고 싶은 욕망을 ‘접을 수’(299쪽) 없는 사람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니 말이다. 당장 코로나19 팬데믹이 나아지면 해외여행을 갈 채비부터 하는 친구는 먼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까지도 설득하는 것이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감응하는 정치’라 생각한다. 합의된 기준을 만드는 일도, 그 과정에서 ‘개인의 각성’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도(17쪽) 정치의 역할이자 책임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