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에 관하여'

전혜원(시사IN 기자)
2021-01-09
조회수 758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에 관하여'



- 전혜원 시사IN 기자



지구 건너편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으며, 한국 정부의 백신 확보가 적절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지금,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새해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건지 답답함과 피로감을 견디는 날들에 펼쳐 보기 좋은 책이 <면역에 관하여>(율라 비스 지음/김명남 옮김 /열린책들)다. 미국에서 2014년에 출간되고 한국에는 2016년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팬데믹을 예견한 듯한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외부자, 이민자, 팔다리가 없는 사람, 얼굴에 낙인이 찍힌 사람을 피하는 건 오래된 질병 예방 전술이다. 그리고 자연히 그것은 질병이란 우리가 타자로 정의한 자들이 만들어 내는 거라는 오랜 믿음을 더더욱 부추긴다. 수잔 손택이 썼듯이, “매독은 영국인들에게는 ‘프랑스 발진’이었으며, 파리 사람들에게는 ‘독일 질병’, 피렌체 사람들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들에게는 중국 질병이었다.”

 

이 독특한 바이러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 우리 공동체가 겪은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우한 코로나’라는 명칭을 끝끝내 고집했던 어느 신문도.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한편으로는 과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이며, 무엇보다도 밀도 높은 사고”이다. 이는 다름 아닌 저자의 삶의 이력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저자 율라 비스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이자 2009년 아들을 낳은 여성이다.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거칠게 요약하면 ‘백신 옹호론’에 속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역설적이게도 백신 반대론자들이 ‘무지’하고 ‘반지성주의’적이라며 그들을 쉽게 단죄하지 않는 데 있다. 한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운명에 내던져진 인간 여성이자 동료 시민의 목소리로, 저자는 시종일관 따뜻하면서도 차분하고 냉철한 태도로 백신 반대자들이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왜 옳지 않은지를 논증해 나간다. 아마 이 책을 받아 볼 <마키아벨리의 편지> 독자분들은 백신 접종이 논쟁이 되는 상황 자체를 못 견뎌 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책이 풍부한 사례와 비유,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해서만은 아니다. 반대편을 설득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신화로 시작하는 이 책의 첫 문장부터 독자는 눈을 뗄 수 없다. 감염의 공포가 인류에게 얼마나 뿌리 깊고 근원적인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저자가 걷는 ‘의심의 오솔길’(옮긴이 표현)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 순수한 것과 오염된 것의 경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되며 겸허해진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수두 유행이, 지독한 농담처럼 들리는 ‘수두 파티’로 부활한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는, 얼마 전 독감 백신을 둘러싸고 한국이 겪은 진통이 떠오른다. 믿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는 세상에서 이것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0’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백신 접종을 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선택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저자는 윤리학 교수인 동생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지. 우리 몸의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에 의존하고 있어. (…) 요컨대 독립성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단 거야.”

 


혼자서 마스크를 잘 쓰고 손을 잘 씻는다고 우리의 건강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이제 우리는 안다.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이 바이러스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저위험군도 백신을 맞아야 한다. 백신 접종은 “면역에 대한 예금”이며, “그 은행에 돈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의 면역으로 보호받을 능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일이다.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백신이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접종하면, 바이러스가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져서 전파가 멎기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면역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감염을 모면한다.” ‘그래도 나는 싫다’고 한다면,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리고 특히, 다른 사람들과도.”


건강과 안전의 문제에서 개개인이 결코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조건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콜센터 노동자, ‘특수 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시급 4200원을 받고 일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한 간병인,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온라인 배송업체의 물류센터 노동자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모든 이가 안전하지 않게 된다. 코로나19가 진정으로 알려준 게 있다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도 결국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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