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칙이 사라진 세계의 지배자들 / 포식자들의 시간(줄리아노 다 엠폴리 / 을유문화사)을 읽고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이현민
이 책 추천의 글을 쓴 장강명 작가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위기는 정확히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이 공백기에는 아주 다양한 병리적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 책 <포식자들의 시간>을 읽고 나서 이젠 그람시를 그만 인용해야겠다고 말한다. 이미 우리는 그람시가 말한 위기의 종반부에 와있으며, 새것은 이미 태어났기 때문에.
요즘 뉴스를 보거나 어쩌다 만나는 지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무언가 찝찝함이 남는다. 분명 세상 혹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이를 해석하거나 설명하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일정한 규칙과 정해진 룰의 범위 내, 혹은 그 범위를 조금씩 넘나들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어쩌면 예측 가능하고 개입도 가능할 것 같던 세상의 변화라는 것이 지금은 예측은 물론 그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난폭한 가속 페달만 밟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 <포식자들의 시간>은 그런 세상과 시대의 변화를 개념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경험의 언어로 설명한다. 저자 줄리아노 다 엠폴리(Giuliano da Empoli)는 이탈리아의 정치평론가이자 소설가이며, 마테오 렌치 전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금 상황을 16세기 아스테카 제국의 몰락에 빗대고, 본인을 아스테카 제국의 마지막 서기관에 비유하며 구세계의 몰락 과정을 생생히 증언한다.
저자는 먼저 20세기 정치 질서의 상징과도 같은 UN의 몰락을 ‘유리궁전(UN본부)’안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 상황의 묘사를 통해 르포처럼 전달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연설, 경호원 사이의 신경전, 좁은 복도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해프닝 등. 이 묘사를 읽다 보면, 정치 현장을 <웨스트윙>으로 기대하는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늘 <웨스트윙> 10%, <하우스 오브 카드> 20%, <빕 (부통령이 필요해 /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코믹 시리즈)> 70%라는 저자의 재치 있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이어 푸틴과 트럼프, 무함마드 빈 살만과 에콰도르의 나이브 부켈레(밀레니얼 독재자)에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는데, 마키아벨리가 존경한 체사레 보르자에 빗댄 이‘보르자형’ 지도자들을 새로운 시대의 정치적 포식자로 규정한다.
한편, 이 ‘보르자형’ 군주들은 형식이 아닌 인간의 근본(물가, 범죄율, 이민)에 집중한 반면, 자유주의자 혹은 진보세력은 민주주의 위기, 소수 집단 보호, 규제 같은 얘기만 늘어놓았다며, 워키즘(Wokeism/인종, 젠더 등 정체성 차별을 강조하는 진보의 흐름)이야 말로 포식자들에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이 정치적 포식자들에 의해 과거에는 반란의 무기였던 혼돈도 이제는 지배자들의 표식이 되었다. 관습과 규칙에 의해 한계를 정했던 정치는 무엇이든 허용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흙탕 싸움이 되었고, “민주주의 체제들의 운명은 점점 더 전 지구적 규모의 ‘디지털 소말리아’(무정부 상태)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일침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정치적 포식자들을 떠받친 건 결국 기술과 정치의 공모다. 저자는 소위 테크계의 거물들도 ‘보르자형’인간상에 가까우며, 관습을 깨부수고, 기행을 일삼으며, 기존 정치가들과 관료들을 약해 빠진 위선자로 멸시한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정치적 포식자들과 한 쌍의 포식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두 쌍의 포식자들은 디지털 봉기에서 힘을 얻고 자신의 권력 의지에 제한을 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UN의 몰락이 정치적 포식자들을 불러왔다면, 이 테크 포식자들의 등장은 다보스식 합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한때 변방에 머무르던 ‘야스퍼거’ 기질의 순박한 너드들이 이제는 테크 정복자가 되어 헨리 키신저의 친구들(구세계의 정치, 사회 지도층)을 당황케 하는 장면은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
저자는 이 테크 포식자들을 설명하며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 제프리 힌턴 등 최근 AI 산업의 선구자들을 지목한다. 하지만 사실 이 불온한 정치와 기술의 공모는 에릭 슈미트 시대 민주당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 정치인들이 테크 기업가들 앞에 바짝 엎드리며, 그들의 거대한 사회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규제나 최소한의 책임 부과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이 책은 대단히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책은 아니며 앞서 밝혔듯 개념을 완성하는 책도 아니다. 다만 구체적인 현실에 비춰 지금의 변화 혹은 이미 와버린 미래의 가려진 실체를 눈 앞의 생생한 이미지로 확인시켜준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울분인지, 답답함인지 모를 응어리 같은 게 마음에 쌓이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소리 없이 라기엔 요란하고, 빠르게 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이현민
이 책 추천의 글을 쓴 장강명 작가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위기는 정확히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이 공백기에는 아주 다양한 병리적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이 책 <포식자들의 시간>을 읽고 나서 이젠 그람시를 그만 인용해야겠다고 말한다. 이미 우리는 그람시가 말한 위기의 종반부에 와있으며, 새것은 이미 태어났기 때문에.
요즘 뉴스를 보거나 어쩌다 만나는 지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무언가 찝찝함이 남는다. 분명 세상 혹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이를 해석하거나 설명하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일정한 규칙과 정해진 룰의 범위 내, 혹은 그 범위를 조금씩 넘나들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어쩌면 예측 가능하고 개입도 가능할 것 같던 세상의 변화라는 것이 지금은 예측은 물론 그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난폭한 가속 페달만 밟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 <포식자들의 시간>은 그런 세상과 시대의 변화를 개념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경험의 언어로 설명한다. 저자 줄리아노 다 엠폴리(Giuliano da Empoli)는 이탈리아의 정치평론가이자 소설가이며, 마테오 렌치 전 총리의 수석 고문으로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금 상황을 16세기 아스테카 제국의 몰락에 빗대고, 본인을 아스테카 제국의 마지막 서기관에 비유하며 구세계의 몰락 과정을 생생히 증언한다.
저자는 먼저 20세기 정치 질서의 상징과도 같은 UN의 몰락을 ‘유리궁전(UN본부)’안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 상황의 묘사를 통해 르포처럼 전달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연설, 경호원 사이의 신경전, 좁은 복도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해프닝 등. 이 묘사를 읽다 보면, 정치 현장을 <웨스트윙>으로 기대하는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늘 <웨스트윙> 10%, <하우스 오브 카드> 20%, <빕 (부통령이 필요해 /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코믹 시리즈)> 70%라는 저자의 재치 있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이어 푸틴과 트럼프, 무함마드 빈 살만과 에콰도르의 나이브 부켈레(밀레니얼 독재자)에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는데, 마키아벨리가 존경한 체사레 보르자에 빗댄 이‘보르자형’ 지도자들을 새로운 시대의 정치적 포식자로 규정한다.
한편, 이 ‘보르자형’ 군주들은 형식이 아닌 인간의 근본(물가, 범죄율, 이민)에 집중한 반면, 자유주의자 혹은 진보세력은 민주주의 위기, 소수 집단 보호, 규제 같은 얘기만 늘어놓았다며, 워키즘(Wokeism/인종, 젠더 등 정체성 차별을 강조하는 진보의 흐름)이야 말로 포식자들에겐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이 정치적 포식자들에 의해 과거에는 반란의 무기였던 혼돈도 이제는 지배자들의 표식이 되었다. 관습과 규칙에 의해 한계를 정했던 정치는 무엇이든 허용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흙탕 싸움이 되었고, “민주주의 체제들의 운명은 점점 더 전 지구적 규모의 ‘디지털 소말리아’(무정부 상태)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일침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정치적 포식자들을 떠받친 건 결국 기술과 정치의 공모다. 저자는 소위 테크계의 거물들도 ‘보르자형’인간상에 가까우며, 관습을 깨부수고, 기행을 일삼으며, 기존 정치가들과 관료들을 약해 빠진 위선자로 멸시한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정치적 포식자들과 한 쌍의 포식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두 쌍의 포식자들은 디지털 봉기에서 힘을 얻고 자신의 권력 의지에 제한을 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UN의 몰락이 정치적 포식자들을 불러왔다면, 이 테크 포식자들의 등장은 다보스식 합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한때 변방에 머무르던 ‘야스퍼거’ 기질의 순박한 너드들이 이제는 테크 정복자가 되어 헨리 키신저의 친구들(구세계의 정치, 사회 지도층)을 당황케 하는 장면은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
저자는 이 테크 포식자들을 설명하며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 제프리 힌턴 등 최근 AI 산업의 선구자들을 지목한다. 하지만 사실 이 불온한 정치와 기술의 공모는 에릭 슈미트 시대 민주당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 정치인들이 테크 기업가들 앞에 바짝 엎드리며, 그들의 거대한 사회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규제나 최소한의 책임 부과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이 책은 대단히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책은 아니며 앞서 밝혔듯 개념을 완성하는 책도 아니다. 다만 구체적인 현실에 비춰 지금의 변화 혹은 이미 와버린 미래의 가려진 실체를 눈 앞의 생생한 이미지로 확인시켜준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울분인지, 답답함인지 모를 응어리 같은 게 마음에 쌓이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소리 없이 라기엔 요란하고, 빠르게 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