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베버리지 보고서 _ 강지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부국장

공식 관리자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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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리지 보고서>

강지헌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놀라웠다. 고전으로 여겨지는 책에서 오늘날 복지 현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80여 년 전 베버리지가 주장한 23개의 정책 중 다수가 여전히 도입 중이거나 고도화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당파와 무관하게 복지국가의 위태로움을 쉽게 거론하지만, 베버리지가 제안한 복지국가 사상의 시대적 요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체제로서의 복지국가

『베버리지 보고서』의 성과 중 특기할 부분은 체제(system)로서 복지국가 청사진을 그려냈다는 데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 전에도 개별적인 사회복지 정책은 존재했다. 그러나 권리가 아닌 시혜로 여겨졌고, 정부나 종교기관의 빈민에 대한 구제책으로만 수렴될 뿐이었다.

반면 『베버리지 보고서』는 모든 시민이 자기 능력에 따라 적절한 근로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보험에 기여한다면, 퇴직 등으로 소득이 단절된 이후 직면하게 될 궁핍에 대응할 수 있는 소득을 권리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39항에서 명시하듯 사회보장 정책을 청구할 권리(claim as of right)로 만든 것이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소득보장 계획을 촘촘하게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부조, 완전고용, 아동수당, 국민보건서비스 등 현대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제도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나아가 제안한 정책들의 세부적인 운영 방안과 예산, 실행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까지 담아냈다. 생산과 단순 분배의 틀에 갇혀 있던 사회정책을 되짚어,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라는 유명한 경구가 압축하듯 생애주기를 고려한 재분배 의의를 정립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시혜에 머물러 있었던 복지를 국가의 책임이자 시민의 권리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고, 개별적으로 산개되어 있었던 복지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체제’로서의 ‘복지국가’를 구축해낸 것이다. 이로써 인민의 ‘궁핍’을 궁극적으로 극복하려 했다.

당대 처칠 연립내각은 『베버리지 보고서』가 현실성이 없다며 부정적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에 ‘궁핍’을 극복하자는 베버리지의 신념이 담긴 제안은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인의 95%가 『베버리지 보고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중 88%가 우호적이었으며, 6%만이 반대했다. 처칠 내각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베버리지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노동당에 참패하였다는 것은 주지할 사실이다.

▲궁핍(want), 질병(disease), 무지(ignorance), 불결(squalor), 나태(idleness) 등 다섯 가지 악에 대항하여 사회보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베버리지의 주장을 담은 만평


 

복지국가 사상이 직면한 과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활황에 힘입어 복지국가는 산업화 시대 사회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경제위기가 닥치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통해 인민 생활의 포괄성과 적정성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만이 불평등 해소에 실질적 결과를 내어왔다.

탈산업화 시대 자본주의와 노동의 변화는 해법으로 작동해왔던 복지국가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포스트코로나로 인해 인민은 삶의 안전망으로 작동하는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호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버리지 보고서』는 다시 읽혀져야 한다. 미증유의 위기가 도래한 시대 해법은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복지국가의 혁신이 될 수밖에 없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서 복지국가는 사회적 위기의 대응 체제로서 정교하게 구상되었으며, 혁명에 준하는 비전으로 주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