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정치적 말의 힘_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공식 관리자
20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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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말의 힘>

장혜영 / 정의당 국회의원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은 말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늘 온갖 장소에서 사람들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힘주어 말한다. 나 역시 국회의원으로서 거리의 집회 현장, 아침 라디오방송, 온라인 공간, 국회 기자회견장과 본회의장을 오가며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말을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이 중요하고 다른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 일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 바로 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그렇기에 정치인은 말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말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은 꿈에서도 생각한다. 내가 품은 정치적 가치에 비추어 지금 무엇에 대해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 말이 가져올 영향과 책임은 무엇인지, 그 말을 함으로써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 항상 생각한다. 새로운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말을 다듬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상황은 급변하고 정보는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정치인은 말해야 한다. 정치는 말을 통해 불확실한 세상에 나아갈 길을 비추고 동료 시민들의 용기를 북돋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정치가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 백 마디 말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그 전제는 백 마디 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갑다. 정치인은 말하는 사람이고 말을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말에 실패하는 사람이자 말을 불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선의 시도는 때로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못난 자신의 말을 겸허히 되돌아보며 다시 벼리는 일은 정치인에게 생명과도 같다. 문제는 이런 성찰이 무척 고독하고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은 말의 실패를 돌아보는 정치인의 고독한 순간에 꼭 필요한 오래된 지혜와 조용한 격려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정치가는 ‘말밖에 가진 게 없지만, 말로 변화를 일궈 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인의 말은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특히나 권위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것은 책에 수록된 1600여 년 전부터 현재를 망라하는 불멸의 정치연설들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속에서 민주적 삶과 정치의 전통을 지켜온 이 힘차고 감동적인 말들이 간직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경탄과 부러움은 잦아들고 이 시대의 정치인으로서 나 자신의 말과 신념을 돌아보게 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당연스레 청중으로 끌어안는 ‘의견의 정치’가 힘을 잃고 오로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모욕하는 ‘선동의 정치’, 강자에게 줄서는 ‘아부의 정치’가 득세하는 지금, 말의 힘을 믿는 소수 정당 정치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여전히 사람들은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노래했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거친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정치가의 아름다운 말을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불확실함과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삶의 삼라만상을 포착하기에 선동과 아부의 언어는 너무나 빈곤하다. 저마다의 삶이 하나의 의견이라면, 이 세상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의견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으로서 오늘도 말을 가다듬는다. 불러지지 않은 이름들을 부른다. 나는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말하고 또 말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라도 기꺼이 눈앞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