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_이현민(서점 정치발전소 매니저)

공식 관리자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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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이현민 / 서점 정치발전소 매니져

 


<마키아벨리의 편지>를 꾸준히 구독하거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조금만 인상 깊게 읽었던 구독자라면 책의 몇 구절만 보고도 이 책이 브래디 미카코(Brady Mikako)의 글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에피소드로 신자유주의와 ‘긴축’으로 인한 영국 사회 노동계급의 삶과 커뮤니티의 변화를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으로 전달해 준 브래디 미카코가 이번에는 ‘브렉시트’(Brexit)와 ‘아저씨’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세계가 격동하는 혼란의 시대, ‘노동계급의 아저씨’들이 불안한 정세와 사회 쇠퇴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 트럼프의 집권, ‘브렉시트’, 확산되는 혐오와 차별 뿐 아니라 ‘좋았던 시절’만 되뇌며 시대에 뒤쳐져 있고, 다음 세대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 문제적 존재. 아무튼 브래디 미카코의 말처럼 지금 세상은 아저씨들을 특별 취급하며, 문제는 전부 거기서 나온다고 말하면 양식 있는 사람대접을 받는 모양새다.

 

이 책은 바로 그 문제적 아저씨들에 대한 일종의 변론서(?)이다. 요즘 유행처럼 잘잘못을 가리고 ‘정의’로 심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계급적 긍지와 자부심, 체념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며, ‘살아있기에 노래를 부르고, 살아있으니 슬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특유의 편견 없는 시선을 통해 이 문제적 아저씨들의 삶(때론 엉뚱하고 기괴하지만, 때론 눈물이 핑 돌고 감동적이기도 한)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삶의 배경에 놓여있는 사회와 노동현장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서, 결국 개인의 삶의 궤적이 사회 변화에 따라 뒤뚱거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자 한다.

 

브래디 미카코의 담백하지만 사랑을 가득 머금은 글들로 인해 ‘항복은 없다(No Surrender)’정신의 고집불통‘해머타운 아저씨’들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아저씨들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조금 부끄러워졌다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한 때 내가 ‘추앙’했던 나의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을 한 시절 나의 영웅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얼치기 학생 운동권이었던 나에게 아저씨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닮고 싶고 그래서 결국엔 속하고 싶은 미래였다. 아저씨들은 이 견고한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할 영도계급으로 호명되었고, 우린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시절 책의 원제(Still Wandering Around The Wild Side)처럼 그 ‘거칠고 낯선 길’을 긍지로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강산이 여러 번 바뀌면서, 아저씨들의 처지도 변했다. 권위주의가 타파되고, 더디긴 해도 민주주의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여러 ‘정체성’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계급’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전선을 여기저기 비집고 뚫고 나왔다. 성장의 동력을 잃은 저성장 시대, 불안정 노동의 확대로 인한 노동시장의 분절, 기회마저 빼앗긴 청년들의 불안과 불투명한 미래는 계급 내부 갈등과 세대 갈등의 형태로 폭발했다. 그리고 많은 사회적 갈등의 화살이 이 노동계급의 영웅(Walking Class Hero)들에게 날아와 박혔다.

 

어느 순간 나의 아저씨들도 시대에 뒤떨어졌고, 다음 세대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될 문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문제적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이젠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신화를 이끌었다는 다른 의미의 ‘훈장’마저 전 지구적 기후 위기 앞에 골동품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현실은 냉혹한 법(Reality Bites).

 

하지만 책에 나온 ‘해머타운의 아저씨’들 만큼 나의 아저씨들도 저 마다의 사연과 각기 다른 삶의 궤적들이 있다. 저자가 얘기하듯, 아저씨들이라고 해서 다 ‘결이 같은 한 덩어리’가 아니며, ‘노동계급 아저씨’들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라서 대충 하나로 묶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싸잡아 비난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맞서 현재를 살아내는 고단한 개인의 삶마저 폄훼될 이유는 없다.

 

설사 아저씨들이 ‘기소’된 내용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라도,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혐오를 퍼부어 사회가 나아질 수는 없다. 삶의 현장은 세대론, 계급론 등으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훨씬 복잡하다. 역설적으로 사탄 취급을 받는 아저씨들이 실은 ‘신의 적대적인 사탄이 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쯤, 이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책을 덮으며, 긍지로 걸었던 ‘거칠고 낯선 길(Wild Side)’을 여전히 배회하고 있을 ‘나의 아저씨’들을 상상한다. 갈 길이 여전히 멀지만 우리에겐 ‘앞으로 나아질 일만 남았음( Things can only get better)’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