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연] 정신건강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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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민주주의] “인간이래. 그런데 인간적이지 않아.”

공식 관리자
2026-05-21
조회수 300

“인간이래. 그런데 인간적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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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꼭 이야깃거리로 오른다. 박해영 작가는 전작인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에서부터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는 환멸, 소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마음을 실제로 있을 법한 장면 속에서 독특한 대사로 전달하는 데에 탁월했고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갑자기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 엄청난 계기를 통해 회개하거나, 과장되게 선하지도, 악질적이지도 않다.


극 중 최필름 대표와 마재영, 8인회의 몇 명은 주인공(황동만, 변은아)과 직접적으로 맞서는 위치에 있기에 악해보이기 쉽지만 사실 너무나 일상적이다. ‘내 곁에 있을만한 사람인지 증명하라’며 계급을 나누거나, 누군가를 ‘걸어다니는 시체’ ‘지능이 낮은 것 아니냐’며 공공연히 떠들고, ‘약자들의 연대냐’며 비웃는 사람들. 황진만(황동만의 형)의 양보로 재산을 독식해놓고 ‘황씨는 남자들이 늘 부실했다’고 말하는 고모네. 황동만의 아이디어는 덥석 물지만 그가 겪는 불안과 공포는 은연중에 네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선을 긋는 20년지기들이 정말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캐릭터던가?


이 사람들은 모두 머리 속에서 철저히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은 0으로 여기고 –10인 사람에게 더 내놓으라고 한다. 받을 때에는 고마워하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빼앗거나 희생시키는 것까지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자신이 잘 나가는 이유이자 유능함이라고, 사회적으로도 옳은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눈 앞의 이익을 두고 타인과의 신뢰를 신경쓰고 미안해하며 손해보는 사람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진다 여긴다. 그러나 스크린이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그 계산은 대단한 성공비결이긴커녕 좀스러워보이기만 하다. 


반면 1화에서부터 TPO와 맞지 않는 언행으로 눈총받던 황동만은 그런 식의 계산은 잘 하지 못하고, 타인의 호의에 서툴게나마 돌려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황동만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구박받는 박경세도 엇비슷하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과거 황동만의 이야기를 가져다써서 먼저 데뷔한 걸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둘은 분명 사회적으로 미숙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받은 것에 감사하고 부끄러워하기에 인간적이며 그래서 귀엽고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적 인물인 변은아와 고혜진이 그 둘과 이어지는 건 그런 인간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위해 사채를 쓰는 황동만, 조롱받으면서도 몇 번이고 완주하는 박경세로 살기란 대단히 어렵고, 최필름 대표나 마재영같이 사는 건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 드라마는 사람들 깊은 곳의 수치심을 건드리기 쉬운 드라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곤란을 보고 안도한 적이 있고, 받은 것을 잊고 내 손해만 크게 느낀 적이 있다. 누군가의 미숙함이나 취약함을 보고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며 깎아내린 적이 있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는 무관심하면서 왜 내 얘기는 듣지 않냐고 억지부린 적이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기는커녕 인간적으로 무능한 사람이라는 걸, 좀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들키는 게 두려워서 ‘사람들 다 그래’ ‘나만 그런 거 아니야’라는 자기합리화 뒤에 숨은 적이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황동만부터가 그런 모습이 있고, 그 때문에 자신이 괴물이 아닌가 괴로워한다.


그렇게 수치스러워지기 전에 변은아와 고혜진이 나타나서 그들의 고뇌를 정확히 알아봐준다. 당신의 서툰 면을 이미 알고 있고 그래도 빛이 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겠다고 말하고 함께 싸워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성은 그렇게 쉽게 발견되거나 보상받지 않는다. 타인의 호의를 기억하고 오래 미안해하고 쉽게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약하고(착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내가 좋은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재지 않고 퍼줄 수 있는대로 다 퍼주며, 망하더라도 같이 망하자고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이 세상에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사회적 무가치함과 싸울 수 있다. 사람들은 변은아와 고혜진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현실에서 받지 못하는 응원과 애정을 받으며 자기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이길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무능함으로 오해받는지, 이 세상에서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지에 관한 이야기다. 계산하지 못해서, 쉽게 부끄러워해서, 받은 마음을 잊지 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꾸 뒤처진다. ‘현실적인’ 사람들을 보며 왜 자신은 저렇게 살지 못하는지 자책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왜 저런 사람들이랑 똑같은 짓을 하냐고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기기 위해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는 것보다, 바로 그 미숙함과 불완전함이 곧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끝내 좀스러움에 익숙해지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래. 그런데 인간적이지 않아. 그게 최고 무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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