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정신적 문제’라는 인식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 문제’를 말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정신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와 동의어로 사용하며 사회 문제와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이 때 정신적 문제는 특정 소수에게만 발생하는 부차적 결과로 여겨지고, 보다 ‘근본적인’ 사회 문제가 강조된다. 또 다른 경우에 정신적 문제는 의료적 접근이나 치료에 국한된다. 따라서 핵심은 정신질환/정신장애가 인간의 나약함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촉구하고, 치료 체계가 부족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관점은 ‘정신’을 논하는 순간, 개인이 처한 사회환경과 그 상호작용을 지운다는 문제제기이다. 이 때의 비판 대상은 정신의학과 심리학 그 자체가 된다.
세 가지 용례는 각각 강조점이나 비판의 대상이 다르나 모두 ‘정신건강’을 사회와 분리된 무엇인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국 사회는 정신건강을 개인 내부의 문제, 치료의 문제, 혹은 사회를 가리는 담론으로만 이해해 왔다. 그러나 자살처럼 사회환경과 생애경로가 강하게 반영되는 문제에서 정신건강을 이렇게 협소하게 설정하면 정책의 대상범위가 왜곡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기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우리 사회가 유전자 가위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면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사회경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경로는 보건의료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하나의 원인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해결가능하지도 않다.
최근 대통령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하며, 생산적 공공 일자리 발굴이나 자살률 감소를 위해 고위험군에 대한 적극 행정을 주문하기도 했다. 늦었지만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2026년에 발표된 제 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과, 2023년의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실제 들여다보았을 시 국가정책은 여전히 캠페인, 인식개선, 중증정신질환 및 위기대응, 치료연계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정신건강의학과도, 심리상담센터도, 재활시설도, 이를 운영할 예산도, 수행할 인력도 모두 부족하며, 치료시스템 구축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은 이미 악화된 사람들 뿐 아니라 악화되기 전의 개입을 함께 고려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오랜 기간 높은 자살률을 유지한 나라에서 자살예방 정책이 실질적 효과를 가지려면 병원과 상담실, 응급실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노동과 주거, 사회관계망 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며 자살 위험을 누적시키는 경로를 바꾸는 범정부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살은 연령별·사회환경별 경로를 따라 발생하는 정신건강 악화와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기에 사회 전체의 안전망이나 개입시점을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미래에 대한 감각, 노동에 뒤따르는 자기가치 판단,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회적 연결망, 주거안정성이나 신체적 고통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유지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상 ‘자살’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더라도 ‘전국민 정신건강 안전망 강화’와 같은 예방 영역은 국가의 자살예방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살사망자의 55%가량은 40~60대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시장 안팎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계획은 거의 없다. 노동부 산하의 노동자건강센터와 직업트라우마센터를 2025년 기준 24개소에서 2029년까지 29개소로 늘리겠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더욱이 두 센터가 별도의 전달체계로서 확장되어 있기보다는 같은 거점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접근성은 수치보다 더 낮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40대가 명예퇴직 대상이 되고 비정규직·프리랜서가 800만인 시대에 노동부가 제시한 방향이라기에는 매우 소극적인 정책방안이다.
10~30대 자살의 급격한 증가를 그들의 남은 생애뿐 아니라 사회의 미래가 함께 사라지는 일로 바라본다면 우울증과 조기정신증 관련 문항 몇 개를 더 체크하게끔 하는 국가건강검진이나, 학생정서행동평가와 같은 모니터링, 혹은 학교나 직장에 치료자가 상주하는 치료시스템 구축에만 그칠 수 없다. 비교와 경쟁을 유년시절부터 내면화하게 만드는 교육 환경, 현실의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고립을 강화시키는 디지털환경, 청년들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과 주거 환경 등을 함께 논해야한다.
7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빈곤과 의료복지, 지역사회 연결망 부재 등 사회적 고립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자살뿐만 아니라 고독사나 절망사 역시 같은 사회적 고립과 삶의 기반 약화라는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현재 부처간 협력회의, 사례공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부 내 협력구조 자체의 변혁과 함께 10년 이상의 중장기적인 대책을 설계하고 실현해나갈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와 인식 속에서 실효를 보기 위해서는, ‘이런 것까지 정신건강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의문이 떠오를 때 대개 그런 것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고립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대에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보건복지부 한 부처의 특정 의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손실이자 공공 정책의 핵심 과제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문제는 단순하지도, 특수하지도 않다.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척도이며, 복잡한 경로와 더불어 해법도 매우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겐 정신건강을 개인의 내부나 치료실에 가두지 않는 관점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 문제’를 말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정신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와 동의어로 사용하며 사회 문제와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이 때 정신적 문제는 특정 소수에게만 발생하는 부차적 결과로 여겨지고, 보다 ‘근본적인’ 사회 문제가 강조된다. 또 다른 경우에 정신적 문제는 의료적 접근이나 치료에 국한된다. 따라서 핵심은 정신질환/정신장애가 인간의 나약함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촉구하고, 치료 체계가 부족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관점은 ‘정신’을 논하는 순간, 개인이 처한 사회환경과 그 상호작용을 지운다는 문제제기이다. 이 때의 비판 대상은 정신의학과 심리학 그 자체가 된다.
세 가지 용례는 각각 강조점이나 비판의 대상이 다르나 모두 ‘정신건강’을 사회와 분리된 무엇인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국 사회는 정신건강을 개인 내부의 문제, 치료의 문제, 혹은 사회를 가리는 담론으로만 이해해 왔다. 그러나 자살처럼 사회환경과 생애경로가 강하게 반영되는 문제에서 정신건강을 이렇게 협소하게 설정하면 정책의 대상범위가 왜곡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기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우리 사회가 유전자 가위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면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사회경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경로는 보건의료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하나의 원인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해결가능하지도 않다.
최근 대통령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하며, 생산적 공공 일자리 발굴이나 자살률 감소를 위해 고위험군에 대한 적극 행정을 주문하기도 했다. 늦었지만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2026년에 발표된 제 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과, 2023년의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실제 들여다보았을 시 국가정책은 여전히 캠페인, 인식개선, 중증정신질환 및 위기대응, 치료연계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정신건강의학과도, 심리상담센터도, 재활시설도, 이를 운영할 예산도, 수행할 인력도 모두 부족하며, 치료시스템 구축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은 이미 악화된 사람들 뿐 아니라 악화되기 전의 개입을 함께 고려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오랜 기간 높은 자살률을 유지한 나라에서 자살예방 정책이 실질적 효과를 가지려면 병원과 상담실, 응급실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노동과 주거, 사회관계망 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며 자살 위험을 누적시키는 경로를 바꾸는 범정부적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살은 연령별·사회환경별 경로를 따라 발생하는 정신건강 악화와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기에 사회 전체의 안전망이나 개입시점을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미래에 대한 감각, 노동에 뒤따르는 자기가치 판단,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회적 연결망, 주거안정성이나 신체적 고통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유지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상 ‘자살’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더라도 ‘전국민 정신건강 안전망 강화’와 같은 예방 영역은 국가의 자살예방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살사망자의 55%가량은 40~60대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시장 안팎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계획은 거의 없다. 노동부 산하의 노동자건강센터와 직업트라우마센터를 2025년 기준 24개소에서 2029년까지 29개소로 늘리겠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더욱이 두 센터가 별도의 전달체계로서 확장되어 있기보다는 같은 거점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접근성은 수치보다 더 낮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40대가 명예퇴직 대상이 되고 비정규직·프리랜서가 800만인 시대에 노동부가 제시한 방향이라기에는 매우 소극적인 정책방안이다.
10~30대 자살의 급격한 증가를 그들의 남은 생애뿐 아니라 사회의 미래가 함께 사라지는 일로 바라본다면 우울증과 조기정신증 관련 문항 몇 개를 더 체크하게끔 하는 국가건강검진이나, 학생정서행동평가와 같은 모니터링, 혹은 학교나 직장에 치료자가 상주하는 치료시스템 구축에만 그칠 수 없다. 비교와 경쟁을 유년시절부터 내면화하게 만드는 교육 환경, 현실의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고립을 강화시키는 디지털환경, 청년들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과 주거 환경 등을 함께 논해야한다.
7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빈곤과 의료복지, 지역사회 연결망 부재 등 사회적 고립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자살뿐만 아니라 고독사나 절망사 역시 같은 사회적 고립과 삶의 기반 약화라는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현재 부처간 협력회의, 사례공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부 내 협력구조 자체의 변혁과 함께 10년 이상의 중장기적인 대책을 설계하고 실현해나갈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와 인식 속에서 실효를 보기 위해서는, ‘이런 것까지 정신건강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의문이 떠오를 때 대개 그런 것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고립이 보편화되고 있는 현대에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보건복지부 한 부처의 특정 의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손실이자 공공 정책의 핵심 과제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 문제는 단순하지도, 특수하지도 않다. 시민들의 정신건강은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척도이며, 복잡한 경로와 더불어 해법도 매우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겐 정신건강을 개인의 내부나 치료실에 가두지 않는 관점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상상력이 필요하다.